붉은 제비는 어디에서도 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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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작품등록일 :
2018.02.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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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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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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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8)

DUMMY

갑판 아래 휴게실에서 시엔은 탁자에 엎드려 멍하니 흔들흔들 거리는 조명을 보고 리나는 옆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장난을 쳤다.

“시엔, 방에 가서 쉬지.”

“아냐. 여기 있어도 돼. 같이 있고 싶어.”

시엔은 탁자 밑으로 다리를 덜덜 떨었다. 지금의 상황에 자신이 뱉은 말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의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아서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지질 않았다.

똑. 똑. 하고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리나가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공용으로 쓰는 휴게실이었지만 선원들은 모두 갑판의 복구와 청소를 위해 일하고 있던 중이라 리나와 시엔만이 휴게실에 있는 것을 알고 노크를 한 것이었다.

노크를 하고 들어온 것은 나이가 굉장히 많아 보이는 선원이었다. 선원은 방에 들어와 시엔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시엔 앞에 다가갔다.

“저희 배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룬테라로 가는 길이라 들었습니다만 혹시 시간이 된다면 잠시 엘리시움 성지에 들렀다 가도 되겠습니까?”

시엔이 리나를 쳐다 봤다. 어차피 테라 제국으로 가는 이유는 리나 때문이었기에 리나의 눈치를 봤다.

“혹시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 있을까요?”

리나가 선원에게 물었다. 선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제 성지에서 새로운 교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성지 사람들에게는 그 축제를 즐기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둘도 없는 영광입니다. 저는 지금 비록 배를 타고 있지만 예전에는 성지에서 살던 종교인이었습니다.”

리나는 시엔을 잠시 주시하다가 다시 선원을 보고 말했다.

“네. 들려도 되요.”

선원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 하고는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시엔이 리나에게 괜찮냐는 표정을 짓자 리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잠시는 괜찮겠지. 듣기로는 엘리시움 성지가 엄청 풍경도 좋고 동네가 예쁘대.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한번쯤 가보고 싶기도 했고.”

“여행이 목적이네?”

“꼭 그런건 아니고. 헤헤. 어차피 가문에 가는 것도 여유롭게 가도 되잖아?”

“여유롭게 가도 되는 거 맞아? 늦으면 탑에서 오는 것이 아닌걸 들킬텐데.”

“어차피 우리 집은 회의 같은거 별로 안 좋아해서 다 모여 있어도 회의보다는 얼렁뚱땅 잡담을 하며 지내고 있을거야.”

리나가 시엔을 향해 빙긋 웃었다. 룬테라행 배였던 그들의 배는 엘리시움 성지로 향해 이틀이 안되어 성지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미치겠네.”

카멜이 드레이크의 머리를 모래 위에서 질질 끌어당겼다. 이미 드레이크의 머리는 모래에 뒤덮여 아주 지저분했다.

카잔 제국 앞에 도착하고 나서는 말이나 마차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하려면 편리하다지만 사막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 카멜은 숨이 가빠 씩씩 거리면서도 원시적인 방법으로밖에 드레이크를 옮길수가 없었다.

카멜이 고개를 들어 앞을 가만히 주시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들! 카멜은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은 드레이크의 머리에 기대어 이젠 잘 나오지도 않는 꿈을 꼴깍 삼켰다.

“해츨링한테 죽지 않아도 이러다 죽겠네.”

거의 남의 명예 챙겨주려다 자기가 죽는 꼴! 카멜은 이글거리는 눈 앞의 시야에 흐릿하게 정신을 잃어갔다. 잠들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었지만 곧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카멜이 눈을 뜬 것은 해가 다 진 후였다. 카멜은 사삭 하고 뭔가 모래를 기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일어났다. 카멜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소리의 원인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일어나 원정대가 출발하기 전에 받은 건틀릿을 착용하고 검을 뽑아들었다. 검은 날이 다 상하고 부서져 검이라고 말 하기도 힘들었다.

모래 밑에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다 스콜피언 하나가 카멜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사람의 절반만한 크기의 스콜피언은 굉장히 빨라 카멜이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스콜피언이 카멜에게 독침을 휘두르려는 순간 스콜피언의 등에 화살이 박혔다.

“제국 기사단에 있던 이로군. 여기서 그렇게 무방비하게 있으면 목숨을 잃기 쉽지.”

리오네가 사박사박 걸어왔다. 손에 든 화살을 빙그르 돌려 등 뒤에 다시 꽃아넣고는 카멜에게 다가와 스콜피언의 등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카멜의 등 뒤에 있는 드레이크의 머리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게 그 해츨링인가? 다른 이들은 어디 있지?”

“...”

카멜은 입을 떼려 했으나 극심한 갈증과 목에 낀 모래 때문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저런, 물도 제대로 못 마신 모양이군.”

리오네가 카멜에게 물을 건넸다. 카멜은 리오네의 수통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물을 들이키다 물을 토해 냈다. 카멜은 목에 낀 모래를 가래와 함께 뱉어내고 입을 열고 “아,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이제 말해보지. 어떻게 된건가?”

“다 죽었어. 해츨링은 놓쳤고.”

리오네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명예를 저버리고 후퇴를 선택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럼 이건 뭔가?”

리오네가 드레이크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멜은 뒤를 돌아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놈은 드레이크야. 레어에 들어갔을 때 자고 있던 놈이지. 해츨링으로 완전히 착각하고 총 공격을 퍼부었는데 알고보니 해츨링이 세워둔 집 지키는 개였어. 죽은 이들이 비록 해츨링은 잡지 못 했지만 드레이크 슬레이어라는 명예 정도는 가지고 가게 해주고자 이 냄새나는 고깃덩이를 끌고가는 중이야.”

“그래도 드레이크를 잡고 해츨링을 도망보낼 정도면 사냥단의 저력이 만만하진 않았나 보군.”

카멜은 들고있던 검을 다시 검집에 찔러넣고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사실 그런 것도 아냐. 우린 드레이크조차 잡지 못 했어.”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은 뭐지?”

“사냥단은 완벽히 실패였다. 드레이크를 해츨링으로 착각해 모든 저력을 쏟아 붙고 그 공격에 잠에서 깨어난 드레이크는 해츨링을 데려 왔지. 해츨링은 사냥단을 몰살시키는 데까지 몇 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어. 드레이크를 죽이고 해츨링을 달아나게 한 것은 단 한 명이 해낸 일이야.”

“네가 드레이크의 목을 베고 해츨링을 레어에서 쫓아 보냈단 말인가?”

카멜이 물을 한 모금 더 들이키고는 말했다.

“아니, 사막 횡단 도중에 제국 기사단 한 명과 싸운 여자 마검사 기억나? 그녀가 한 일이야. 믿기진 않겠지만.”

“소뮤를 말하는 모양이군. 그녀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 정도 실력자였다니. 그녀는 어디에 있지?”

카멜은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레이크의 머리를 제국으로 옮기면 그녀를 찾아 볼 생각이야. 이 일이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물을 것이 있었으니.”

리오네는 드레이크의 머리를 이리저리 훝어보다가 말했다.

“아무리 드레이크 슬레이어의 명예 때문이라지만 이걸 굳이 제국으로 가져가려는 이유가 뭐지?”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한 이들을 기리는 무덤을 만들면 그 위에 이걸 장식할거야. 그들은 대대로 명예로운 이들로 기록되겠지.”

“바보같긴, 이걸 운반하다 너도 죽게 될 마당에 죽은 이들의 명예를 지켜주려 하다니. 정말 완전히 바보로군. 진짜 명예는 쿤 제국에서나 지키는거지. 카잔 제국에서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그 명예에 담겨있는 이름값을 중요시하는거지. 자신의 이름 값이 높아지면 자신의 자식을, 그 이후의 자손들도 이득을 보고 기사나 귀족의 경우에는 가문의 가치가 상승하니깐 말이야. 카잔 제국에서의 명예는 그런 것이다. 죽은 이들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넌 그런 것을 위해 네 목숨을 바칠거냐?”

리오네의 말에 카멜은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고는 드레이크의 턱과 입에 묶은 밧줄을 풀었다. 그렇게 존경받는 리더였던 사이탄의 명예를 위한 선물은 모래 사이에 버려졌다. 리오네가 좋은 생각이라며 빙긋 웃었다.

“어디로 갈 생각인가? 이제 제국에 볼 일은 없잖아.”

“내 볼 일은 언제나 제국에 있었다. 일단 제국으로 돌아가서 황제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녀에게도 볼 일이 있기는 하지만.”

“자네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나는 그녀에게 먼저 볼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나와 동행해서 그녀를 찾아보지 않겠나? 나는 카잔 제국의 가장 큰 용병단 두 개의 마지막 생존자 두 명에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녀를 찾아볼거고... 자네도 볼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리오네가 카멜에게 손을 내밀자 카멜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카멜과 리오네는 함께 사막으로 안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리오네 용병단은 전멸한 것은 아니지 않나?”

“해체했으니 사실상 전멸과 마찬가지지. 우리는 서로의 꿈을 향해 서로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네.”

카멜은 가만히 생각하다 말했다.

“넌 다시 용병단을 창설하기를 원하는군.”

“그녀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면 말이지.”

리오네가 고개를 들어 사막의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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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다시 사막으로(4) 18.11.24 32 0 7쪽
55 다시 사막으로(3) 18.11.11 30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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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소뮤(11) +1 18.10.14 51 1 10쪽
50 소뮤(10) +1 18.10.06 53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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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소뮤(4) 18.09.09 51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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