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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ivuy
작품등록일 :
2018.02.26 17:26
최근연재일 :
2018.07.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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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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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90화. 연쇄성인마(6)

DUMMY

090

*****

다음 날 아침.


병원으로 들어가는 정문 입구에서 이정진이 팔을 활짝 벌리고 섰다. 아침 일찍 아이그라흐 사제를 만나거나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주일 넘게 지속된 신 종족의 기이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가 시작됨을 알았다.


아이그라흐가 ‘그 사람은 광신도가 아니다. 또는 맞다.’ 라는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굳이 ‘내가 허락한 일이니 가만히 내버려둬라.’ 라고 끝내니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불편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특히나 이번엔 더했다. 이정진은 폭넓은 백색 옷을 입고는 옆에 벨라코를 세웠다. 벨라코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곤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 숙인 벨라코의 등을 두드리며 이정진이 소리쳤다.


“자! 다들 보쇼!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언제 어느 때든 신성마법으로 다친 육체를 회복할 기회가 왔습니다!”


“어휴...” “저건 또 뭐야?” 사람들은 이정진과 벨라코를 흘겨보며 지나쳤다. 반응을 예상한 이정진은 벨라코를 앞세웠다.


“여기 이 용병을 보십시오! 상처 하나 없는 단단한 근육! 이 친구가 이 주 전까지만 해도 중상을 입어 죽어가던 자라는 것이 믿깁니까?”


“그렇습니다아...” 벨라코가 작게 말했다.


“그건 바로 제 신성력! 저의 신성마법으로 후유증 하나 없이 말끔하게 상처를 치료했기 때문이죠. 벨라코는 제 덕분에 용병일에서 은퇴하지 않고,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가. 벨라코?”


멋진 사나이 벨라코. 멋진 남자 벨라코.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선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참된 용병 벨라코. 그런 그로서도 이번 일은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그는 흐느끼듯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흐흐흑... 감사합니다...!”


만족한 이정진은 벨라코를 앞세우며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도 불편한 몸, 노쇠한 육체, 상처 입은 뼈와 근육 등을 무상으로 치료받길 원한다면 언제든지 여기로 오십시오! 저 이정진이 얼마든지 신성력을 이용해 당신들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이정진이 활짝 웃으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과 부담스럽게 눈을 마주쳤다.


“...”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그를 피했다. 상대가 마스터급 실력자라는 것을 아니까 시비를 걸기도 힘들고, 결국 외면하는 것만이 일반인들의 유일한 대응이었다.


이정진은 팔을 높게 들며 크게 외쳤다.


“오세요! 프리덤 디파인 파워!”


그리고 그날 역시 단 한 명의 방문자도 없었다.


이정진은 발버둥치는 벨라코를 달래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토루로 돌아왔다.


토루로 돌아와서 카운트의 아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때우니 잭 카터, 카오루, 마리나가 돌아왔다. 카오루는 이정진이 오늘 하루 동안 저지른 소문을 듣곤 어이없는 기색이 역력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일 필요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생각해봐라. 내가 이렇게 지랄을 할수록, 폭탄마, 광신도 등... 지구인에 대한 악명이 17지구에 널리 퍼지겠지.”


“17지구를 넘어서 퍼지겠죠.” 카오루가 말했다.


“여하튼. 악명이 퍼지고 퍼지다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알고 보니 그 지구인이 광신도가 아니라 진짜 사제였다! 그것도 엄청난 능력을 갖춘!’ 하고 진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잭 카터가 일리 있다는 얼굴로 감탄했다.

“흠... 악명도 명성의 일조.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건가.”


“그래. 일단은 크게, 더 크게 스케일을 키우는 게 중요해. 어그로가 끌리면 끌릴수록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충격은 더욱 크지. 그리고 사람들은... 나에게 더욱 미안해할 테고.”


“미안해할까요?”


“신성력을 마구 퍼주려던 사제님을 광신도로 의심했다고? 미안해하는 정도를 넘어설걸? 그때 내가 마음 넓게 넘어가면서 지구인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거다. 그러면 엔드게임이야.”


“엔드게임은 그런 뜻이 아니다.” 잭 카터가 말했다.

“닥쳐.”


또 다음 날.


정문에 선 이정진이 찜찜한 듯 말했다.


“왠지 점점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초탈한 얼굴로 옆에 선 벨라코가 중얼거렸다.

“당연하죠...”


“흐음...”


이정진은 어제와 같이 열렬히 사람들을 모았다. 오늘은 카오루와 마리나가 함께했다. 카오루의 역할은 벨라코의 마인드 케어였다. 카오루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세요.”


그 어떤 설득보다 설득력 있는 간단한 말. 벨라코는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숫제 거리의 명물 취급받는 이정진의 기행.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눈에 익은 얼굴을 보았다.


“어이! 그래 거기!” 이정진이 상대를 불렀다.


“어, 너. 모르는 척하지 말고. 이리 와 봐. 내가 가기 전에 알아서 오는 게 좋을 거다. 좋은 말 할 때 빨리 와.”


그다지 부드럽게 부르진 않았다. 이정진이 손을 까딱대며 지목하자 그는 한숨을 푹푹 쉬며 정문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이정진 앞에 서서 잔뜩 긴장한 태도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다. 이정진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나 알지.”


“예? 아뇨. 모르, 모, 모르는데요? 오늘 처음 보는데요? 초면이에요 우리.”


상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양손을 내밀어 열렬하게 저었다. 이정진은 의심스럽단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닌데... 키 크고 어깨 넓은 게 딱...”


“베스타지에 어깨 넓고 키 크고 덩치 큰 종족이 한둘입니까? 저 이만 가볼게요...”


상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이정진의 말에 부정했다. 그리곤...


“누군데요? 아!”


카오루가 엄한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이정진을 제지하기위해 다가오다가 상대의 얼굴을 보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시민권 얻으려고 관공서에 갔을 때... 그, 경비원 씨 아닌가요?”


셋이 처음 베스타지에 도착하고 시민권을 얻으러 갔을 때, 이정진은 관공서 직원인 탈틴이란 자의 신경을 긁는 말에 ‘조금 엄한’ 짓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정진을 말리고자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다가 구석에 처박힌 경비원. 그가 이정진이 부른 자였다.


“반가워요! 오늘 쉬는 날인가요?”


“아... 예, 예 그렇습니다.”


경비원은 카오루마저 자신을 기억하자 포기한 얼굴로 자인했다. 이정진이 인상을 구기며 경비원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야. 다 기억하면서 왜 모르는 척 한 거냐. 솔직히 그때 우리가 잘못했어?”


“아닙니다. 자, 잘못했어요...”


경비원은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최대한 뒤로 당겼다. 그 모습을 보며 벨라코가 생각을 읽기 힘든 아련한 얼굴을 했다.


울기 직전까지 감정이 북받친 경비원에게 구원자가 다가왔다. 바로 마리나가 이정진의 팔을 잡아 내린 것이다. 그는 조금 어색한 고란어로 이정진을 말렸다.


“대장! 살살! 살살 해야죠!”


“이... 이 분은?” 경비원이 구세주를 보듯이 마리나를 보았다.


“새로 찾은 지구인입니다. 이 주 전에 찾았죠. 블루워터. 대충 소문을 들었죠?”


“아... 그!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동족을 찾았군요!”


경비원은 멱살 잡힌 자기 모습을 잊고 순수하게 이정진을 축하했다. 난데없이 축하의 말을 듣자 그의 멱살을 잡은 이정진의 손이 조금 풀렸다.


“히히!”


마리나만이 즐겁게 웃으며 입간판을 휘둘렀다. 마리나는 이틀에 한 번씩 이정진에게 정령술의 이론에 대해 교육받았다. 그러며 짬짬이 이정진의 사제광고를 도와주는 그였다.


고란어로 조금이라도 대화가 통했을 때, 들었던 그의 인생을 고려한다면 이런 어이없는 짓거리도 충격적인 자극으로 다가올 터니 즐거울 게 당연했다.


*****

이름 마리나.

나이는 스물 다섯 살. 그것도 본인이 기억하는 나이가 아닌, 상태창에 표시되는 나이를 보고 알아낸 정보다.


마리나는 자신이 어떤 국가에서 태어난 지도 몰랐다. 그가 전생에서 표준공간에서 교육기간을 보냈을 땐, 겨우 다섯 살에 불과했고, 단 일주일 만에 포기를 한 그는 오 년도 살지 못하고 죽었다. 심지어 그 오년도 그다지 인간미 있는 삶은 아니었다.


첫 번째 삶에서 아직은 희망이 보였던 초창기 십 년. 인간들은 외차원계라는 ‘숨겨진 공간’의 확인하고, 흥분했다. 그곳은 자원의 보고였고, 외부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더군다나 세상이 조금 어지럽나? 어제까진 멀쩡하던 도시에 차원종이 나타나 수십 명이 죽고. 오늘은 뒷산에서 게이트가 열려 또 수십 명이 죽고. 내일도 아마 수십 명이 죽을 예정이었던 지구.


그 기회를 노리고 야만적인 조직이 우후죽순 생겼다. 전생 초창기에 한정해서.


전생에서 마리나의 과거는 그들에게 약탈단한 인생이었다. 겨우 다섯 살짜리 꼬맹이도 쓸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쓸 데가 있다. 그렇게 납치당해 쓸만한 인력으로 마구 부려 먹히다가 5년을 채 살지 못하고 죽은 마리나.


그는 두 번째 인생에서 그의 인생을 바꿀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그 사람의 이름도 마리나였다.


표기가 혼란스러우니 선생님이라 부르자. 마리나가 선생님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잊었기 때문이다.


겨우 다섯 살. 부모님과 떨어져 비인간적인 노동에 5년 동안 시달리다가 자신의 이름도, 과거도 까먹은 그. 마리나는 선생님을 만나 표준공간에서 두 번째 교육기간을 훌륭하게 버텼다. 선생님에게 격투술과 정령술을 배우고, 암살법도 배웠다.


‘선생님에게 정령술을 배우며 정령을 받았어... 그래서 자라면서 몸이 이렇게 변하더라...’

라고 어색하게 중성적인 몸을 가리키며 마리나가 변명했다.


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인생. 거기서 마리나가 말했다.

‘아 아마, 나 인도사람 이었나 봐. 선생님도 인도 사람이고.’

여하튼. 인도든 뭐든 간에.


마리나는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자마자 과거에 자신을 학대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죽이고자 했다. 아! 다섯 살짜리 아이가 조막만 한 단검을 들고 십 년 간 배운 암살법과 정령술을 이용해 복수하고자 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가. 지구의 보배라 할 만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시작하자마자 실패. 오히려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거기서 선생님이 도착한다. 교육기간이 끝나자마자 마리나가 살던 지역으로 죽어라 뛰어온 선생님은 마리나를 구하고, 같이 교육기간을 보낸 자들을 모았다.


알고 보니 이 선생님의 인생도 기구하기 짝이 없다. 선생님의 명예를 위해 그의 과거는 말하지 않았다. 마리나는 선생님을 따라 그렇게 하나둘 과거의 악연을 살인이라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을 따르는 자들도 늘어났다.


죽이고 또 죽이고. 남성 한 명의 거시기를 산 채로 뜯으며 ‘어디 또 흔들어봐 이 개자식아!’ 라고 즐겁게 과거의 고객을 고문하던 선생님을 방문한 축복자가 있었다. 한 번에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인도 경찰들과 레벨이 높은 축복자들에게 들통 난 것이다.


겨우겨우 도망친 선생님과 동료들. 선생님은 죽을 각오로 외차원계로 도망갈 결정을 했다. 마리나도, 그리고 그를 따르는 동료들도 그 결정에 찬성했다. 어차피 지구도 똥같고, 인생도 개같으니 여기든 어디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외차원계에서 숨어 지냈다고.


마리나의 레벨은 100. 동료들도 대부분 비슷하고, 선생님이라는 작자도 거기서 거기나 다름없는 무력을 지녔으니, 싸움은 꿈도 못 꾸고 정령술과 은신에 의존해 숨어 지내거나 암살로 차원종을 죽여서 생존했다고 한다.


음식은 대형마트 몇 개를 터니 평생을 먹어도 남는 분량이 쌓였다고. 물과 불은 정령술로 해결이 가능하고, 옷도 한가득, 음식도 한 가득이니 외차원계에서 십 년을 넘게 버텼다.


힘들었고, 죽은 동료들도 있었지만, 행복했었다. 라고 마리나는 그때를 회상했다. 그리고 약 십 몇 년 후. 우연찮게 외차원계를 돌아다니는 군인들에게 몰래 들은 이야기. 지구가 과거처럼 망할 위기에 처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전생과 다른 점은 타운스피어라는 탈출구를 마련했다는 이야기까지. 마리나는. 그리고 선생님과 몇 안 남은 동료들은 죽을 각오로 외차원계에서 지구로 귀환했다.


아니, 귀환하는 와중. 딱 하나 남은 외차원계를 은신이 풀린 것도 깜빡하고 뛰어가는 도중. 게이트에서 무시무시한 마나파동이 흘러나왔다. 마나파동은 차원종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외차원계를 통째로 붕괴시켰다.


마리나는 그것이 ‘존재’가 벌인 짓임을 늦게나마 알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마리나는, 그리고 선생님과 동료들은 모르는 이야기. 지구에서 외차원계에 대해 연구하던 정보도 모르는 일행은 붕괴하는 외차원계에서 공포에 질렸다.


해결책을 고안한 것은 선생님이었다. 그는 일행과 힘을 공유하며 정령을 조합한 방어막을 급하게 만들었다. 그게 바로 이정진이 발견한 수정 형태의 생명유지장치.


“그... 다음의 기억은 없어.” 마리나가 말했다.


다만, 이정진이 짐작해본다면 붕괴하는 외차원계에서 천운으로 게이트를 통해 블루워터 외차원계로 들어가고, ‘정령’ 이라는 새로운 정보를 얻은 블루워터 외차원계가 그것을 모방한 마나수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


단지 가설일 뿐이지만. 그리고 마리나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은 정보이지만. 거기까지가 마리나가 말한 그의 인생.


비슷한 마지막 헤어짐을 겪은 잭 카터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뽑아내고, 카오루는 조용히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감상에 잠겼다.


“내... 동생들은 전부 죽었겠지...?” 마리가 망설이며 말했다.


“그렇겠지.” 이정진이 냉정하게 말했다.


훌쩍...! 마리나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궜다. 잭 카터는 그를 위로하고, 카오루가 이정진의 등을 쳤지만, 이정진은 사과하지 않았다.


“닥쳐.” 이정진이 말했다. 앙 다문 이빨에서 억누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더욱 위압적으로.

“분위기 가라앉히는 징징거리는 소리 하지 마.” 라고 말한다.


이정진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마리나는 잭 카터에게서 받은 휴지로 눈물을 닦더니, 자세를 바로하고 물었다.


“카오루에게 들었어. 이정진. 인간들을... 찾으려 한다고.”


카오루가 마리나를 달랬다.


“예. 마리나씨. 타인을 못 믿는 건. 그 이야기로 잘 알겠지만... 일단은 머리가 정리될 때까지. 저희하고 같이 다닐래요?”


“...”


마리나는 조용히 이정진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그리고, 카오루와 잭 카터는 알 수 없지만, 이정진은 화가 잔뜩 나보였다. 마리나는 조금 불편한 듯이 이정진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잘 부탁해. 마리나입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이정진이 말했다. 여전히 화난 상태로.


*****


그래서 마리나는 이정진의 엉뚱한 계획도 즐거웠다. 종족과 상관없이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이 적의가 아닌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할 정도.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상식조차 얻지 못한 그는 이 주 동안 셋과 함께하며 인생이 뒤바뀌는 신선하고도 즐거운 충격을 여러 번 겪는 중이었다.


마리나가 발랄하게 입간판을 흔들며 말했다.


“신성력입니다. 지구인 이에에요.”


경비원의 멱살을 잡은 이정진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나마 활기차서 좋네.’


경비원이 이정진의 웃음을 보고 다른 쪽으로 오해했다.

“어? 이제 저 가도 됩니까?”


이정진이 고개를 돌렸다. 마리나에게서 경비원에게 고개를 돌리는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이마에 주름이 가득 생긴다.


“안 돼. 공짜로 해줄 테니까. 치료받고 가.”


“다친 데 없는데요...”


“옷 벗어 봐. 잔 상처 하나 보일 때마다 열 대씩이다.”


“이... 이러지 마세요...”


경비원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울먹였다. 카오루는 덩치에 걸맞지 않은 그의 행동을 보며 심히 속이 쏠렸지만, 상대의 심정을 헤아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섬세함을 보였다.


“치료 해준다니까? 그것도 공짜로?” “진짜 괜찮거든요...? 저 집에 가족들이 기다리는...” “아니, 내가 지금 뭐, 너, 막, 이렇게, 뭐, 해코지하려고 하는 거냐? 그냥 치료만 해줄게.” “진짜로...”


그렇게 한쪽은 무상으로 치료를 베풀려고 하고, 한쪽은 그것을 거부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싸움의 승자는 경비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찢어진 옷자락이 승자라 할 수 있었다.


“이러지 마시와요!”


부욱! 손에 잡힌 상의가 찢어지자, 이정진이 비틀거렸다. 경비원은 그에게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도망쳤다.


“아...”


이정진이 찢어진 옷을 잡으며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만 먹으면 경비원의 감각이 찢어진 옷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를 재차 억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었다.


“내일 외차원계로 가기 전에 관공서에 방문해서 옷값을 물어줘야겠네요.”


카오루가 다가와 담담하게 말했다. 이정진은 옷자락을 부여잡곤 몸을 부르르 떨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좋... 좋은 소식. 뭔가 좋은 소식이 필요해...”


“잭이 또 레벨이 올랐습니다. 벌써 112네요. 저도 1이 올라서 167이 됐고요.”


“하아... 그래 그거면 됐다. 집에 가자. 어이! 벨라코 정리해!”


이정진은 피곤해하며 천막과 침대 등은 두고 몇몇 값비싼 물품만 챙겨 병원을 벗어났다. 벨라코와 헤어지고 마리나, 카오루와 거리를 걸어가던 중 그가 무심하게 물었다.


“아직도 직업은 물음표로 나오고?”


카오루는 잠시 움찔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곤 별 거 아니란 듯이 말했다.


“아... 예. 레벨이 올라도 똑같네요.”


이정진이 그를 위로했다.


“차원종으로 변이가 정말 심각하게 됐었나 보군. 이건 나도 처음 보는데. 걱정하지 마. 지금 직업이 없는 만큼 4차 전직을 했을 때, 더욱 유니크한 직업이 생길 테니까.”


“하핫... 축복자의 직업은 지구의 온라인 게임과 달리 특별히 좋고 나쁜 게 없지 않나요?”


“개중에도 조금 더 뛰어난 건 있긴 하지.”


마리나가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

“카오루. 직업 없어?”


“예. 저번에 설명한 제... 사정 있죠? 그거 영향인 듯싶네요.”


카오루는 부드럽게 마리나가 들고 있는 입간판을 대신 받아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그는 입간판에 얼굴이 가려졌을 때 시선을 미묘하게 빈 허공에 향했다. 얼굴 앞에 있는 입간판이 아닌 곳에 초점을 맞춘 눈이지만, 그의 시야엔 이런 문구가 똑똑히 보였다.


[이름: 카오루

나이: 37

레벨: 167

성별: 남성

직업: 흑마법사

종족: 인간]


‘후우...’

카오루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곧이어 입간판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그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이정진, 마리나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잭이 축하 파티하자며 여기 음식이나 사와달래요. 잠시 상가골목에 들렀다가죠.”


작가의말

이정진은 무식하고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적이 아닌 자에겐 은근 소심한 욕쟁이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많이 고심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녀석이라 균형잡기 피곤하죠.

옛날엔 안 이랬는데 세월이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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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6

  • 작성자
    Lv.37 NANOST
    작성일
    18.06.07 19:14
    No. 1

    올로카 행성민 보고 야만인이라 소리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호야놈
    작성일
    18.06.07 19:17
    No. 2

    양아치 그 자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만족함
    작성일
    18.06.07 19:34
    No. 3

    엔드게임ㅋㅋ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48 수국과국화
    작성일
    18.06.07 20:01
    No. 4

    이로지 마시와요 흑흑. 가련한 경비머튼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3 아그룬타
    작성일
    18.06.07 20:04
    No. 5

    뭔가 신성력(외차원에서 공개했울 때) 나올 때부터 재미가 떨어짐.. 약간 개연성이...

    찬성: 2 | 반대: 7

  • 작성자
    Lv.47 치킨생맥
    작성일
    18.06.07 20:05
    No. 6

    이동네는 흑마법사도 뭔가 지구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닐수도?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30 악토
    작성일
    18.06.07 20:28
    No. 7
  • 작성자
    Lv.65 칼데라호수
    작성일
    18.06.07 20:34
    No. 8

    흑마법사 찢고 죽인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검은Ursa
    작성일
    18.06.07 20:34
    No. 9

    다른 글에 휘둘리지 말고 작가님 소신대로 글 써주세요.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크림
    작성일
    18.06.07 20:44
    No. 10

    외차원 정화시켜주면 존경받을텐데, 꼭 병자치유에만 신경쓰고. 이정진 치열한 뭐든 하는 생존특화캐인듯 생각했는데 단순열혈바보로 바뀐듯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52 durtngks
    작성일
    18.06.07 20:50
    No. 11

    제가 무례한 글을 적었군요. 죄송합니다.
    재미있는 글이고, 취향에 맞는 글인데, 개인적인 생활에서의 짜증을 저도 모르게 댓글로 풀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우르강
    작성일
    18.06.07 20:55
    No. 12

    신성력 관련한 내용은 설정과 전개가 이상해요. 보면서도 이해안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7 無雙狂人
    작성일
    18.06.07 21:01
    No. 13

    사제와 흑마법사 파티라니! 이 무슨 혼돈의 카오스가!!!
    재밌게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Riemann4..
    작성일
    18.06.07 21:15
    No. 14

    엔드게임ㅋㅋㅋㅋㅌ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5 gdhy
    작성일
    18.06.07 22:31
    No. 15

    작가님 의도를 잘모르겠네요
    해준다해도 싫다는데
    뭐 테러나 사고라도 일어나서
    애들 다죽어나갈때 가서야 치료받고 오오 사제님 이러는전개인건가 지난편부터
    이해가 잘안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아시타카
    작성일
    18.06.07 23:00
    No. 16

    저는 이런 극단적인 이정진 캐릭터에 애정이 있어서 오늘 참 재미있게보았아요. 실제 인간들이 대부분 단순하지않고 모순적인 성격이라는 생각에 더 살아있는 캐릭터 같거든요. 그리고 마리나 불쌍하네요 생각도 못한 스토리인데 이번편에 주옥같은 유머코드도 넘 많았.. 지구의 보배 카오루의 미친개 또 많았는데...여튼...그리고 흑마법사가 나쁜거였나 기억이 잘 안나네용 ㅠㅠ 기억력이...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33 아시타카
    작성일
    18.06.07 23:02
    No. 17

    아 댓글에 사제와 흑마법사 조합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흑마법사 숨긴건가?? 너무 뻔한것보다 이렇게 궁금하게 끝나고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풀어가는게 재미있지않나요..너무 뻔하고 유치하지 않아서 좋은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이즈니타스
    작성일
    18.06.07 23:16
    No. 18

    일상파트를 쓴다는데 전투안준다고 날리네 걍 양판형 용사물이나읽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박도령
    작성일
    18.06.07 23:27
    No. 19

    진행속도가 너무 더뎌보여요
    그렇다고 재미없다는건 절대아니에여 재미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머청말린
    작성일
    18.06.08 00:02
    No. 20

    지구인 대가리에 전투밖에 없다는 게 강조됬죠. 만나자마자 죽빵갈기면서 신원확인하는 놀라운 사람들이니 그 외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방법을 까먹었다고 해도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85 요혈락사
    작성일
    18.06.08 11:55
    No. 21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고르르
    작성일
    18.06.08 23:26
    No. 22

    약탈달한 약탈당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아리세씨
    작성일
    18.06.09 22:38
    No. 23

    ㅎㅎㅎㅎㅎ 지구인 최고... 이정진 최고오오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몽중정원
    작성일
    18.06.13 21:41
    No. 24

    공간'의 확인하고 -> 공간'을 확인하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몽중정원
    작성일
    18.06.13 21:42
    No. 25

    약탈단한 -> 약탈당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메덩메덩
    작성일
    18.06.20 18:10
    No. 26

    마리가 망설이며 > 마리나가 망설이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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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화. 외국산보단 우주산(6) +18 18.07.05 2,521 155 19쪽
110 110화. 외국산보단 우주산(5) +20 18.07.04 2,618 163 15쪽
109 109화. 외국산보단 우주산(4) +37 18.07.01 2,913 176 23쪽
108 108화. 외국산보단 우주산(3) +31 18.06.30 2,825 143 20쪽
107 107화. 외국산보단 우주산(2) +13 18.06.29 2,800 175 18쪽
106 106화. 외국산보단 우주산(1) +16 18.06.28 2,949 167 19쪽
105 105화. 지부로(5) +56 18.06.24 3,350 239 28쪽
104 104화. 지부로(4) +49 18.06.23 3,027 165 21쪽
103 103화. 지부로(3) +39 18.06.22 3,053 163 22쪽
102 102화. 지부로(2) +23 18.06.21 3,042 193 25쪽
101 101화. 지부로(1) +12 18.06.20 3,038 182 19쪽
100 100화. 할아부지(4) +33 18.06.20 3,068 184 18쪽
99 99화. 할아부지(3) +32 18.06.17 3,321 177 20쪽
98 98화. 할아부지(2) +20 18.06.16 3,326 14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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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4화. 그래도 나는 떠나련다(4) +37 18.06.11 3,401 195 19쪽
93 93화. 그래도 나는 떠나련다(3) +17 18.06.10 3,375 19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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