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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그래도 나는 떠나련다(6)

DUMMY

096

*****

뚜벅뚜벅...


천천히 칠라가 걸어왔다. 그녀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 입을 벌렸다.


“너를 죽일 첫 번째 기회는 단연코 출입국관리소에서였어. 물론... 도심지라는 제한은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키겠지만, 그 이상으로 나와 브레조라는 실력자가 가까이 있지. 하지만 브레조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더군. 그래서 녀석의 의견을 존중했다.”


브레조가 되도 않는 잔소리로 둘의 싸움을 멈춘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이정진도 ‘화해’를 받아들여 잔소리에 굴복하는 스텐스를 취함으로써 그날의 전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마치 레게머리처럼 꼬인 촉수가 머리카락을 대신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하지만, 입안에는 육식동물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비정상적으로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이정진에게 말했다.


“지금도 가끔 후회 돼. 너라는 폭탄을 길거리에 풀어두었단 사실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어. 네 행적은 전부 내게 보고되니. 외차원계에 들어갔을 때... 몰래 게이트를 닫으면 끝이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정진을 바라보던 칠라가 말을 이었다.


“다들 내 주장을 의심하더군. 후후... 출입국관리소에서 피해가 얼마나 발생하던 그때 너를 죽였어야 했다는 말을 하자 반응이 어땠는지 아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과민반응했다는 의견이 점점 커졌지만... 드디어 오늘 밤. 내 주장이 전혀 과장됐다는 게 아님이 밝혀졌다. 네 살기를 17지구에 있는 실력자들이 느낌으로서.”


꿀꺽... 그들을 지켜보는 순찰단은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자 마른 침을 삼켰다. 현재 칠라는 완전한 이정진의 ‘영역’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정진에겐, 아니 마스터 이상의 실력자에겐 세 분류의 영역이 있다. 그리고 칠라는 팔방으로 한 보 반 거리의 가장 깊은 곳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이정진은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자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칠라를 앞에 두고 소파에 누워 등을 돌리다니... 무지하기에 할 수 있었던 미친 짓거리군.’


차원종과 싸우는 인생을 반복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론 알면서도 인식하지 않았던 미세한 거리감. 하지만 작게는 카르코와 싸우고, 베스타지의 마스터와 만나며 서서히 발전해가는 그의 전사로서의 감은 크리쉬드와 싸우며 완전히 개화했다.


‘칠라가 괜히 피곤해한 게 아니었어. 이크!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정진은 일행을 포위한 순찰단을 바라보았다. 순찰단은 따르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하지만, 위급상황에선 ‘실질적 상위권자’인 칠라의 명령이 우선된다.


특히나 17번 지구에서 이정진의 기세를 느낀 고수들이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단 이야기까지 듣고, 이렇게 기습의 증거까지 잡았으니 이정진 편을 들긴 힘들었다.


‘자... 이제 어쩌나.’


앞에는 200레벨의 그랜드 마스터급 강자인 칠라. 그리고 마스터 극에 달한 브레조. 추가로 마스터 셋을 포함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강자 서른 명.


거기에... 베스타지에 도착했을 때, 추락하는 우주선을 멈춰 세운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인 루안. 그가 저 멀리서 이정진을 지켜본다.


“마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네가 이타적인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네 안에 잠들어있는 살기는... 음?”


칠라가 말을 멈췄다. 그녀는 이정진이 정신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을 것을 느끼자 이전까지 보이던 신경질적인 태도를 버리고 진심으로 분노했다.


“뭐... 하는... 거냐...! 나를 앞에 두고 신경을 팔아?!”


칠라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이정진은 한순간 자신의 머리통이 일자로 짓눌리는 환상을 보았다. 아니,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긴장을 풀면 이정진에게 일어날 현실이기도 했다.


단순한 투기가 아니다. ‘나’라는 정신의 그릇을 깨고, 무한히 확장되어가는 공간에 자신을 풀어두어, 마나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를 갖추는 것! 의기강의 경지!


그것이 그랜드 마스터의 영역이었다. 이정진은 마주 기운을 방출하여 칠라와 무형의 공방을 나눴다.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아이그라흐는 순간 칠라와 이정진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지면, 번개와 바람, 그리고 손발의 형체가 주변 공간을 빼곡히 채우는 환상을 목격했다.


“아!” 뒤에서 씩씩대던 잭 카터가 소리를 참지 못했다. 그를 제지할 순찰단원 역시 본래의 목적을 잃고 칠라와 이정진의 심상 공방을 관찰했다.


아이그라흐의 환상관 달리 둘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에게서 방출되어 자신의 영역을 견고하게 구성하는 마나가 주인의 상념과 만나 앞으로 이루어질 실제적인 공방을 대신했다.


스슥...

둘이 다시 형체를 갖췄을 땐, 이정진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칠라는 은은한 휘광을 전신에 두르고, 양손에 전류를 번쩍이며 허공에 미세하게 떠있다. 자연의 화신과도 같은 칠라가 말했다.


“그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잡스러운 일 따위에 손을 빌릴 필요도 없겠지!”


발성기관을 통한 언어가 아닌, 마치 전신에서 번개 치듯이 우렁차게 울리는 칠라의 말. 이정진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 장난 아닌데. 여태까지 너무 나댔나?’


과거 결사단에는 4차 전직자가 수백 명은 있었다. 당연히 그들 또한 생물학적인 형태적 한계를 넘은 의기강의 경지에 들어선 자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칠라 이상으로 완전하게 자기 영역을 구축하진 않았다. 양과 기상천외함으론 칠라 이상인 자들은 많지만, 본질적인 구분에선 칠라가 더 우위에 있었다.


그것이 바로 스텟과 레벨의 힘으로 경지를 깨부순 축복자와 광기와도 같은 순수한 향상심으로 경지에 도달한 ‘진짜’의 차이였다.


‘공멸까진 가능하겠는데. 그러기엔 걸리는 게 많네.’


이정진이 방법을 찾지 못해 망설이자, 브레조가 둘의 영역에 침범했다. 그는 두려운 기색 없이 칠라를 마주 보며 말했다.


“선배. 지금은 싸우러 온 게 아니잖습니까. 진정하시죠.”


“...” 칠라의 기분 나쁜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듯이 상체를 휘감는 번개가 더욱 커졌다. 기회를 잡자 이정진이 물었다.


“17번 지구가 아니라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 걸 보고, 영락없이 싸우려고 마음먹은 줄 알았는데?”


아직 자세를 풀지 않은 칠라를 말리며 브레조가 말했다.


“케케묵은 말이지만... 당신의 행동에 달렸습니다.”


그러며 칠라를 뒤로 물린다. 브레조는 이정진을 설득하듯이 양팔을 펼치며 고개를 뒤로 까닥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 억류된 일행은 손끝 하나 다친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그들을 포위하는 순찰단조차 일행이 아닌 이정진을 주시했다.


“겨우 사 개월... 베스타지에 온 지 사 개월 만에 당신이 성취한 업적이 있습니다. 용병들에게 무상으로 마나호흡법을 알려주고, 여려 외차원계를 돌아다니며 차원종을 정리한 것은 저희에게도 부담을 덜어주었죠. 사제로서 4번 게이트까지 안정을 시켰으니...”


거기까지 말한 브레조는 아이그라흐에게 물었다.


“사제님. 분명 사제님은 이정진의 살기를 정면에서 맞보고도 여전히 그의 뒤에 서 있군요. 그렇다는 것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신뢰’를 이정진에게 느낀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네. 이걸 보게나.”


아이그라흐는 망설이다가 안주머니에서 성수를 꺼냈다. 아이그라흐의 그것관 확연하게 다른 기운을 풍기는 성수.


“보게나. 마나가 진실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네. 나는 이 젊은 친구가 그저 방황하고 있을 뿐이라 생각해.”


“방황이라 보기엔 그건...” 칠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세상은 넓고 자네들이 짐작할 수 없는 종족도 많지 않을까?”


아이그라흐는 브레조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웃었다. 그리고 손에 든 성수를 조심스레 건넸다.


“확인해 보게. 어떤가? 지성종족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살기를 풍기는 자가 이와 같은 신성력을 품을 수 있다 생각하나?”


칠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단 기색이었지만, 성수에서 풍기는 신성력을 느끼자 복잡한 얼굴을 했다.


“이게 내 의견일세. 마나도 진실. 살기도 진실.... 그리고 신성력 또한 진실. 그는 단지 갈림길에 서 있을 뿐이야. 칠라 사무관. 자네가 걱정하는 ‘그쪽’ 으로 갈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이쪽’으로 갈지에 대해서...”


“...”


아이그라흐의 말을 듣자 칠라는 경계하는 태도는 여전하지만, 전신에 번쩍거리는 번개를 없애고, 땅에 발을 디뎠다.


“후우...” 브레조가 길게 한숨을 내쉈다.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려 순찰단과 눈을 마주쳤다. 순찰단은 브레조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알았다.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브레조의 무언의 질문에 답했다.


끄덕...


그들은 10일간 4번 게이트에서 함께 일하며 이정진이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순수하게 게이트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한 것을 알았다. 물론 악명을 없애기 위한 이유가 컸지만, 그것이 개인 수련시간조차 포기하며 10일을 보낸 것을 폄하할 순 없다.


“하아...” 한숨을 푹푹 쉬던 브레조가 옆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아이그라흐는 움찔했지만, 이정진과 칠라는 미동도 없이 마주친 눈을 떼지 않는다.


차작!


재빠르게 원위치로 이동한 브레조가 의자 세 개를 들고 왔다. 칠라와 이정진의 앞에 하나씩 던지고, 본인도 의자에 앉은 그는 무릎을 지지대로 턱을 괴듯이 얼굴을 손바닥에 깊게 파묻었다.


“사정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무슨 일로 한밤중에 여기까지 오는지도 전부... 꼭 가야겠습니까?”


이정진과 칠라는 여전히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의자에 앉았다. 이정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인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시간만 낭비할 뿐이겠죠. 그래도 갈 겁니까?”

“그래!”


“4번 게이트는 어쩔 생각으로 그냥 버려둡니까? 지금도 실력자들은 반년 넘게 베스타지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외차원계를 안정시키는 중입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하질 말 것이지. 아무리 동족을 찾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책임감 없이 떠나면. 빈자리를 메꾸려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래도 꼭 가야겠습니까?!”

“그래!!”


빠직!

칠라가 앉은 의자에 금이 갔다. 이정진은 칠라와 눈을 마주치며, 마치 자신에게 되뇌듯이 말했다.


“간다... 그래도 난 간다.”


벌떡! 칠라가 일어섰다.

“이건 시간낭...”


칠라의 말을 끊고 이정진이 말했다.

“물론 나도 책임은 져야겠지. 베스타지로 돌아왔을 때, 앞뒤 안 가리는 미친놈이란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니.”


이정진은 인벤토리를 조작해 양초를 꺼냈다. 바로 훌라에게 건네준 신성력을 풍기는 양초. 그는 양초를 브레조에게 건넸다.


“책임이란 게...”


“하루 여덟 시간을... 아니, 베스타지 기준시로 하루 약 여섯 시간 반씩 백일을 킬 수 있다.”


“?” 브레조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양초를 만진다. 이정진이 양초를 꺼내자 그들 뒤에서 대기하던 순찰단 마스터가 다가왔다. 순찰단원은 브레조에게서 양초를 받은 뒤 불을 켰다.


파앗


작은 촛불이 켜지며, 그들이 있는 공간에 신성력이 퍼진다. 칠라가 눈을 돌려 양초를 바라보자, 이정진이 말했다.


“물론 신성마법은 재현할 수 없어. 그건 신의 방정식이니. 그저 무식하게 신성력을 방출할 뿐. 하지만 너희의 기술력이면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겠지. 한 사람의 사제 몫도 할 테고.”


이정진은 양초를 가리키며 ‘그걸 나 대신으로 주겠다. 사제님이 직접 블레스를 사용하는 것보단 효율이 줄겠지만, 너희도 지켜야 할 대상이 사라지니 이게 더 낫겠지.’ 라고 말했다.


칠라가 양초를 받았다. 그녀는 양초에서 초당 발산하는 신성력을 면밀히 관찰했다.


“진짜군...”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는 인간으로 보였나? 이것도 받아라.”

이정진이 투덜거리며 두꺼운 책 두 권을 추가로 건넸다. 칠라는 책을 받아 내용을 살피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법이군. 그것도 기초부터 고급 과정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두 번째는 뭐지?”


“마법회로 라고 한다. 내가 살던 지구에서 발생한 이론체계지. 한 권은 두 달 전에 고란어를 공부하면서 적은 마법회로의 지식. 또 한 권은... 누구 덕분에 삼 주 동안 시간 낭비를 하는 와중에 마법을 조금 공부했지. 그때 마법회로와 접목할 방법을 내 나름대로 적은 거야.”


“흐음...” 칠라는 책을 뒤로 던졌다. 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순찰단원이 속독으로 책을 살피다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충 살펴봐도 평범한 수준이 아닙니다. 이건 인간의 기억력에 의존했다기보단 외부 저장장치로 정보를 보관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꼼꼼하군요.”


칠라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했다.

“마법진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나 보군.”


“대충 사정은 알고 있다. 베스타지의 문명수준이 워낙 똥 멍청이 같아서, 상위종족이 개량해준 행성보호마법진을 수천 년이 지나도 해석하기 힘들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고란 하위종족의 마나감응력으론 마법체계를 일정 단계를 넘기 힘들어서 여러 종족의 지식을 모았고, 서로 다른 지향점과 이론체계를 가진 지식을 한데 모으기 위해 마법진이라는 새로운 마법이 탄생했다는 것까지.”


“...말론인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묻자 이정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다.


“그 새끼가...! 아주 주둥아리는 둥둥 떠다녀서...”

뒤에 서 있는 순찰단원들이 찔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명예를 위해 변명하자면, 딱히 베스타지의 문명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었다.


마법은 이론을 세웠다 한들, 실험으로 판명하기 힘들다. 심지어 동일한 시험을 시행한다 한들, 사용자의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애초에 ‘마나’ 라는 에너지의 최소단위의 감지가 경지에 따라 구분되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물리의 세계에선 1kg의 물체는 (표준 변수를 고정한다는 가정 하에) 초등학생이 들던, 박사가 들던 질량만큼의 에너지를 보존하지만, 마법의 세계에선 ‘누가’ 시행하느냐에 따라 같은 마나라도 뽑아낼 수 있는 에너지가 다르다.


때문에 전문가의 영역에 들어서기도 힘들고, ‘관측’ 할 수 있는 기계를 이용하기도 힘드니 마법의 발전은 느리기 그지없었다.


실험을 시행하는 지성체의 정신이라는 변수가 깊게 관여하니 관측도, 이론 확립도 힘든 분야가 마법이었다. 그리고 지구에서 자생한 마법회로는 극히 한정된 영역에서 마나를 다룸으로서 ‘변수’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그로서 얻은 ‘한정적인’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순찰단원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정진은 킥킥 웃다가 책을 가리켰다.

“내 명예를 걸고 말하지. 저 책에 담긴 마법회로에 대한 지식은 내 기억의 불완전성을 제외한다면, 조금의 왜곡도 없다.”


“네 명예는. 아니, 그 누구의 명예도 신뢰를 주진 않는다.”


“하아... 가지가지 하는군. 그러면... 이건 어떤가?”

이정진은 추가로 물건 하나를 더 꺼냈다.


사람 상체보다 크고 황홀한 붉은빛을 자랑하는 루비와 같은 보석은 바로 차원종의 코어. 그것도 처음 카오루와 만난 외차원계 우두머리를 처치하며 얻은 심장의 반쪽 이었다.


“오... 오오옷?!” 누구라고 할 것 없는 긴 탄성이 흘렀다.


이정진은 코어를 칠라에게 던졌다. 칠라가 어리둥절하며 코어를 받자 이정진이 말했다.


“그걸 담보로 잡겠다.”


“담...보?”


“내가 4번 게이트에서 복귀하기 전까지 양초의 성능이나, 마법회로에 대한 지식에서 왜곡된 부분이 있다면... 그 코어를 너희가 가지도록 하지. 어때? 최소한 양초에 대해선 성능이 입증됐으니 4번 게이트의 안전은 변함없고, 마법회로가 거짓말인 게 밝혀져도 나름 빼 먹을 게 있겠지?”


“...!”

칠라는 한참을 코어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코어를 브레조에게 던지곤 이정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정신이냐...! 이 게이트는 당장 내일 닫힐 수도 있어. 너희가 인간을 구한다 한들...”


울분을 참듯이 떨고 있는 칠라에게 브레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선배. 이제 그만하죠. 선배가 졌습니다.”


그 말에 칠라가 벌떡 일어섰다.

“뭐?! 난 안 졌어! 애초에 싸우지도 않았다! 내...”


“아뇨.” 칠라의 말을 끊은 브레조가 이어 말했다.


“저도 이정진 씨의 살기를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작은 바늘이 뇌 속 깊은 곳까지 쿡쿡 찔러오는 느낌이더군요. 지금도 본능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정진을 죽여!’ 라고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이그라흐 사제님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군요. 그리고... 저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며 순찰단을 가리킨다. 순찰단원들은 잭 카터 등에게 보이던 최소한의 경계심조차 지웠다. 브레조가 어깨를 으쓱했다.


“선배가 졌습니다. 싸움이 아니라 혀로 말이지만요.”


이정진이 여유롭게 말했다.

"뇌물의 힘이 아니라?"



작가의말

100화 이전에 4번 게이트로 들어가는 걸 목표로 잡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칠라와 브레조의 이야기를 대폭 축소한 덕분에 얻은 쾌거입니다. 그만큼 나중이 힘들어지겠죠. 조삼모사 같군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예전 작가의 말에도 쓴 것 같은데. 그것도 어떻게든 되겠죠.

아리세씨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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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연쇄성인마(1) +28 18.05.31 4,045 168 11쪽
84 84화. 난장판(6) +29 18.05.30 3,845 200 17쪽
83 83화. 난장판(5) +13 18.05.27 4,007 178 19쪽
82 82화. 난장판(4) +24 18.05.26 4,009 194 18쪽
81 81화. 난장판(3) +24 18.05.25 3,936 190 16쪽
80 80화. 난장판(2) +16 18.05.24 3,985 183 14쪽
79 79화. 난장판(1) +30 18.05.23 4,074 197 15쪽
78 78화. 단서(5) +46 18.05.20 4,282 215 16쪽
77 77화. 단서(4) +15 18.05.19 4,128 178 18쪽
76 76화. 단서(3) +17 18.05.18 4,130 193 19쪽
75 75화. 단서(2) +17 18.05.17 4,101 188 15쪽
74 74화. 단서(1) +9 18.05.16 4,196 19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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