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 자꾸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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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경
작품등록일 :
2018.03.17 23:57
최근연재일 :
2018.04.21 22:0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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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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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6
글자수 :
128,205

작성
18.03.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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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글자
8쪽

대박이 자꾸난다 #014

DUMMY


“쟤들 요새 자주 나오는 것 같다?”


유건은 리모컨을 내려놓는 평화에게 말했다. 아이돌이니 뭐니 하는 건 관심 가져본 적이 없지만 TV에서 나오고 있는 그룹은 알고 있다.


“체리홀릭인가? 쟤, 쟤 귀엽더라.”


유건이 가운데에 있는 리더를 가리키며 픽 웃자, 밖에서 덜그럭 하고 셔터 울리는 소리가 났다.


“저기요~”


이 시간엔 보통 닫아둬서 사람들도 안 오는데. 유건은 의아한 얼굴을 하고 분식 코너로 나가봤다.


소녀 둘이 셔터 밖에 서있었다.


한 명은 인근 중학교의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다른 한 명은 얇은 코트 차림에 촌스러운 왕눈이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지친 얼굴을 한 왕눈이 안경은 지금 TV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체리홀릭의 보컬, 아리. 그러나 유건은 알아보지 못하고 옆의 소녀를 쳐다봤다.


며칠 전에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며 친구들을 우르르 데려왔었기에 기억이 났다.


그 소녀가 셔터를 흘끗거리며 물었다.


“오늘 문 닫으신 거예요?”

“아. 분식은 6시에 끝나는데. 이따 8시에 다시 열거든요. 근데 포차는 미성년자가 오기엔 좀.”


유건은 미안한 마음에 셔터를 열고 머쓱하게 웃었다. 떡볶이를 먹으러 온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망연자실한 채 서있던 왕눈이 안경, 아리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연지 귀엽죠. 저도 좋아해요······. 흐, 흐흐. 흐.”

“네? 연지가 뭐지?”

“방금 사장님께서 가리키신 아이돌입니다.”


홀 안에서 청소를 마저 하던 평화가 말했다. 유건은 그 아이돌 이름이 연지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이돌 가수에 열정적인 사람들은 때때로 무섭게 돌변한다. 유건은 약간 불안해져서 얼른 둘러대는 투로 말했다.


“아. 걔가 연지야? 뭐 다 귀엽지. 이 나이 되니까 아이돌 그룹 같은 건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하.”


나름 잘 둘러댄 것 같은데, 아리는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잔뜩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저 모르세요?”

“네? 어. 하하. 죄송해요. 제가 단골손님들 얼굴도 잘 기억을 못해서.”


그 말 한 마디에 아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언니 뭐해! 죄송해요! 저희 언니가 좀 아파요. 아 빨리 일어나 바보야!”


동생이 화들짝 놀라 언니의 등짝을 팍팍 때린다. 그러나 언니는 유건을 빤히 바라본 채 일어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때 평화가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왔다가 아리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사장님.”

“어, 별 일 아니니까 쉬고 있어. 괜찮아요?”


유건은 아리가 걱정되어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그러자 아리는 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더니, 대답 없이 처량하게 돌아섰다.


왠지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유건은 평화에게 해주려고 남겨놨던 떡볶이 재료를 꺼냈다.


“저기. 떡볶이 지금 해줄 테니까 안에서 먹고 가세요.”

“와 정말요!? 아저씨 감사합니다!”

“아, 아저씨라. 하하.”


동생이 호들갑을 떨며 언니를 홀로 끌고 간다. 밖을 의식하던 평화는 두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 움찔하며 구석 자리로 물러갔다.


‘쟤 왜 저래?’


낯을 가려도 저렇게 가릴 것 같지는 않은데. 유건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떡볶이를 끓여 홀로 가져갔다.


“자. 재료가 조금밖에 없어서 많이는 못 했어요. 서비스니까 그냥 먹고 가요.”

“정말요!?”


접시를 테이블에 두자 동생은 신이 나서 떡볶이를 찍어 먹었다. 그러나 아리는 여전히 상심한 듯이 느릿느릿 떡을 찍고, 국물에 비비적거리기만 했다.


“언니 한 번 먹어봐! 진짜 인생 떡볶이라니까? 언니 떡볶이 짱좋아하잖아!”

“떡볶이가 다 거기서 거기지.”


평화의 앞자리에 앉은 유건은 움찔했다. 아직 안 먹어봤으니까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빨리 먹어 장난 그만치구!”

“으응.”


아리는 동생의 재촉에 마지못해 떡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커다란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두더니, 바로 다음 한 입을 먹었다.


포크가 점점 빨라진다. 앞에 앉아서 생글생글 웃던 동생은 순식간에 빈 떡볶이 접시를 보고 울상이 되었다.


“맛있어······!”

“아 돼지야아아! 혼자 처먹으니까 맛있지 뚱돼지야!”


동생이 투덜거리며 일어서자 아리도 주춤주춤 일어섰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려는 동생을 붙잡아 머리를 짓누르며 유건에게 허리를 숙였다.


“잘 먹었습니다.”

“네? 아아, 맛있었으니 다행이네요.”


요상한 언니와 호들갑스러운 여동생은 그렇게 포차에서 떠났다. 유건은 두 사람의 뒤를 바라보다가 응? 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벤 한 대가 다가오더니 언니 쪽이 거기에 올라탔다. 일전에 괴한들과 한 판 벌였던 유건은 한 순간 뭔가 잘못되었나 싶었으나, 동생이 멀쩡히 서서 손을 흔드는 걸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사장님.”

“어 평화야.”

“아까 걔, 쟤 아닙니까.”

“응?”


평화가 손으로 TV를 가리킨다. 음악채널에선 공영방송의 뮤직프로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어, 어어어어!!”


유건은 그제야 아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뒤늦게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안경을 발견했다.


아리가 두고 간 것이다.


“이야, 장사도 하고 볼 일이다. 아이돌이 떡볶이······.”


문득 유건의 뇌리에 아리의 요상한 행동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체리홀릭인가? 쟤, 쟤 귀엽더라.

-아 뭐, 다 귀엽지. 이 나이 되니까 아이돌 그룹 같은 건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하.


자기를 못 알아 봐서 상심한 거였구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께서 박장대소 하세요.]

[사랑을 관장하는 신께서 아쉽다고 고개를 저으세요.]


‘아니 뭐 여자애만 봤다 하면 다 아쉽답니까.’


유건은 입꼬리를 비죽대며 떡볶이가 담겨있는 접시를 거두어 갔다. 그러자 평화가 옆에 붙어 알아서 설거지를 했다.


“근데 평화야.”

“예, 사장님.”

“너 씨, 알았으면 바로 얘기하지 그랬냐.”

“저도 당황해서.”


사실은 유건이 말을 못하게 막은 탓이지만.


어른스러워 보이는 녀석인데 이런 면도 있구나. 유건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 칼을 꺼내 연마봉에 갈았다.


“슬슬 시작해 보자!”


*


“잠깐 집에 간다더니, 저기 간 거야?”


운전석에 앉은 매니저는 뒷자리의 아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나 아리는 딴생각을 하는 듯 멍한 얼굴을 한 채 바깥만 바라봤다.


“아리야.”

“······네. 네?”

“어디 아파?”

“아뇨. 간만에 민지도 보고, 컨디션도 좋아요.”

“다행이네. 이번 주만 참아. 주말 이틀이나 쉬니까.”

“네. 헤헤.”


본가가 청주지만 사무실은 여의도에 있다. 너무 바쁜 나머지 휴일도 안 나와서 가족들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아리의 머릿속에서 가족들은 둘째 문제다.


‘떡볶이······.’


괜찮아요? 라고 묻는 유건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걱정스레 바라보는 얼굴에 두근거려서 일어서지도 못할 뻔했다.


왠지 어제 인사를 했던 그 배우와 겹쳐졌다.


‘멋있었지.’


아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대며 웃었다. 운전을 하던 매니저는 정말로 걱정스러운 얼굴로 백미러를 연신 흘끗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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