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냥(1)
가끔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찾아오는 모험가나 얼뜨기 사냥꾼들이 핌불베르트 산맥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산맥 초입의 숲을 거쳐 좀 더 깊숙이 들어가곤 했다. 그런 그들을 볼 때마다 티롤의 사냥꾼인 외삼촌은 소년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 인간의 호기심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그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때도 있지만, 패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단다. 하지만 저치들은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 같구나. 때로는 비밀이란 그저 비밀인 채로 놔두는 것도 좋은 법인데 말이다."
때로는 외삼촌에게 직접 핌불베르트 산맥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 숲의 진정한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티롤 사냥꾼은 그럴 때마다 그들을 강하게 만류하곤 했다. 핌불베르트 산맥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란 무척이나 통제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그런 그의 조언을 무시하고 핌불베르트 산맥을 오르려던 사람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핌불베르트 산맥에 들어서기도 전에 굶주린 늑대 무리에게 사냥당해 갈가리 찢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신을 발견할 때마다 외삼촌은 타지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며 그 자리를 뜨곤 했다. 시신을 묻거나 처리하지 않고서 말이다.
외삼촌은 소년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시체 청소는 그들의 몫이 아니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될 거라고...
그리고 소년 역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 숲 속에서 늑대 무리는 그만큼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에 외삼촌은 틈날 때마다 소년에게 영역의 구분을 가르쳐 주었다.
늑대가 살아가려면 늑대만의 영역이 필요했고, 사냥꾼 역시 살아가려면 사냥꾼만의 영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영역의 구분으로 인해 사냥꾼과 늑대는 이 숲 속에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었고, 당연히 이 숲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려면 이를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만 했다.
소년 역시 외삼촌의 끊임없는 가르침에 힘입어 이곳 핌불베르트 산맥 인근의 영역을 어렴풋이나마 구분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로도 이 숲에서의 안전은 충분히 보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핌불베르트 산맥과 그 너머의 영역은 사냥꾼에게도, 늑대 무리에게도 위험한 곳이었다.
늑대...
하얀 입김을 뿜어대며 숲 속 오솔길을 총총히 걷고 있던 소년에게 지금 '늑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소년이 지금 걷고 있는 오솔길 옆 전나무 숲 속에서 갑자기 오크나 트롤 같은 괴물이 불쑥 튀어나온다 해도 말이다.
소년의 머리 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으니깐.
그런데 오크나 트롤이라니...!
소년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어린 나이답지 않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소년은 가끔 후견인인 외삼촌을 따라 생필품을 구입하러 가까운 륀옌 마을을 방문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직은 어린 탓에 핌불베르트 산맥 근처 깊숙이 가본 적이 없던 또래의 마을 아이들이 소년을 보고 신기해하며 오크나 트롤 같은 괴물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외삼촌은 소년에게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무시하라고 가르쳐줬다.
어차피 소년도 그런 질문엔 대답해줄 수 없었다. 숲에 살면서 그런 존재들은 본 적이 없었으니깐.
외삼촌도 그런 것들은 미신이나 신화, 전설 같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처럼 인근 마을의 어린아이들 마저도 숲 속의 오크나 트롤 같은 허상의 존재를 믿고 있을 정도로 핌불베르트 산맥에 대해 이런저런 불가사의한 이야깃거리가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저 핌불베르트 산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그곳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존재는,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여태껏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슨 전설 속의 처녀림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핌불베르트 산맥은 어엿한 실체를 가진 수수께끼의 존재였다.
외삼촌은 가끔 이런 핌불베르트 산맥 쪽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뭐라 중얼거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소년의 시선을 느끼면 외삼촌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곤 했는데, 소년도 딱히 외삼촌이 뭐라고 중얼거렸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외삼촌은 틈만 나면 그 누구도 저 산맥에 올라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며 아이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주곤 했는데, 저 산맥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는 소년의 근원적인 질문엔 그 역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 근방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티롤의 사냥꾼마저도 모른다고 하니 그 어느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티롤의 주민들에게 핌불베르트라는 이름은 두렵고도 불길한, 한편으로는 호기심 어린 존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정체모를 목소리처럼 말이다.
이처럼 이 세상의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에 대해서는 언제나 근거 없는 소문이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특히 소년과 그의 후견인이 살고 있는 티롤 지방에서는, 산맥 너머에 잊혀진 고대의 신들이 존재한다느니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들의 둥지가 존재한다느니 하는 여러 가지 허황된 이야기들이 나돌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확인시켜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어느 누가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겠는가!
어쩌면 이런 불가사의한 불확실성 때문에 이 세상의 모험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도 몰랐다. 마치 조그마한 모닥불에도 모여드는 불나방 떼처럼 말이다.
늑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말이지...
소년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오크든 트롤이든, 늑대 무리든 이런 것들은 지금 소년의 안중에 없었다.
지금 소년의 머리 속엔 온통 올무 생각뿐이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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