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조급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계성은 당우형이 알려준 대로 천천히 운기 했다. 단전에서 뽑아낸 내공을 다시 단전으로 돌리지 않고 몇 개 혈도를 순환하게 했다. 그 혈도들이 하나로 이어진 느낌이 들 때 바닥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악!"
동요를 부르던 소리가 드디어 멈췄다.
"사람이오?"
"당연히 사람이오."
"어딘가 기관이 숨겨져 있을 거요. 나를 여기서 꺼내주면 꼭 후한 사례를 하리다."
당우형의 대답에 밑에 있던 작자가 말했다. 아까는 아무리 소리 질러도 못 듣더니 귀에 내공을 집중했는지 당우형의 말도 잘 알아들었다.
"이름을 밝히시오."
당우형은 계성에게 기관을 찾으라고 눈짓하고 계속 사내와 대화를 나눴다.
"나는 산야에 숨어서 지내는 무명이라 말씀드려도 모르실 거요."
"난 쫓기는 신세라 기관을 열어주기 좀 그렇군."
의견이 일치를 보지 못하자 대화가 일단락되었다. 그때 계성이 당우형을 불렀다.
"당 대협, 여기."
다가가 보니 칠을 해서 돌처럼 보이지만 쇠가 확실한 짧은 막대가 보였다. 빛이 들어오는 상대적으로 환한 곳에 있어서 오히려 발견하기 어려웠다.
"혹시 당문의 분이시오? 삼 년 전에 독왕 어르신께 치료를 받은 적이 있소."
계성의 말을 들은 상대가 독왕을 언급했다.
"적란?"
당우형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했다. 당우형이 떠나기 전에 독왕의 치료를 직접 받은 건 전영득밖에 없다.
"당우형?"
"내가 당우형이오."
그제야 밑에 있던 사람은 이름을 밝혔다.
"당 대협, 나 전영득이오."
유신에게서 백면귀산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힘썼다는 걸 전해 들은 당우형은 바로 기관을 가동했다. 바닥이 갈라질 거로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틈을 따라 위아래로 엇갈렸다.
막혀있는 쪽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새로운 동굴이 나타났다. 당우형은 보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엄청난 기관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전영득이 주판을 들고 경계하다가 당우형의 얼굴을 확인하고 자세를 풀었다.
"여긴 뭡니까? 그리고 전 대협이 왜 안에 있는 겁니까?"
"여긴 옛날 왕의 무덤인데 내 조부가 수집품을 모아두는 장소로 활용했소."
전영득의 조부가 도굴꾼이자 도둑놈임을 모르는 당우형은 그저 감탄하기만 했다. 전영득은 안에서 물건을 한 보따리 싸 들고 밖으로 나온 후 다시 기관을 닫았다. 구해준 사례로 전영득은 당우형에게 잘 만들어진 비도를 건넸고 계성에게는 금으로 빚은 두꺼비를 건넸다. 눈알 자리에 빨간 보석이 박혀 있어서 작지만 무척 귀해 보였다.
"당 대협은 어찌 된 것이오? 그리고 어떻게 여길 찾아내신 거요?"
당우형은 뇌음사의 무인과의 은원을 간단히 얘기했다. 두전에게는 참 안타깝지만 당우형은 그새 두전의 이름을 까먹었다.
"다행히 이 아이의 기지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 전 대협은 어쩌다 갇히게 된 겁니까?"
"돈 없이는 무슨 일을 하기 힘든 세상 아니오. 가지고 있던 돈이 떨어져서 남무천과 함께 이곳을 찾았소. 그런데 이곳이 이미 홍두명에게 들킨 줄은 미처 몰랐지. 매복에 걸렸고 나랑 남무천 둘 다 주독에 중독되었소. 남무천은 홍두명에게 생포되었고 나는 기관을 닫고 안에 숨었소. 그런데 홍두명 개자식이 밖에서 기관을 파괴해서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게 만들어버렸소."
"나는 주독을 다 배출한 후 나갈 방법을 찾다가 결국 바위를 깨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소. 그래서 소리에 내공을 담아 어느 쪽 바위가 가장 얇은지 알아내려고 했는데 그냥 소리를 지르자니 미친놈 같아서 동요를 불렀소."
당우형은 같은 동요를 끊임없이 부르는 게 더 미친놈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이 방법은 처음 써보는 거라서 잘 판단이 되지 않았소. 가까운 곳에 다른 동굴이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지. 그래도 덕분에 두 분의 도움을 받게 되었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절벽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머리를 살짝 내밀어 확인한 전영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위로 올라가는 건 힘드오. 그리고 누가 위에서 돌멩이라도 던지면 꼼짝 못 하고 당하겠소."
"유신과 은무성 대협이 있습니다. 은무성 대협의 실력은 아실 테고 유신도 이제는 절정입니다. 누구라도 와서 밧줄을 내려주면 좋겠는데, 눈사태가 걱정되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겠습니다."
"용 소협은 사람 놀래주는 재주가 있군."
당우형의 말에 대답한 전영득은 머리를 동굴 밖으로 내민 후 소리 질렀다.
"당우형이 여기에 있다."
무슨 수법을 사용했는지 전영득의 목소리는 무척 넓게 퍼졌지만 메아리가 울리지 않았다. 이 수법을 이용한다면 아무리 크게 외쳐도 눈사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설마 아까 동요도 이 수법으로 불렀던 겁니까?"
"그렇네."
절벽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여기저기 흔적을 살피던 유신은 전영득의 외침을 듣고 곧바로 절벽을 향해 달렸다. 고개를 쑥 빼 들고 밑을 향해 조심스럽게 외쳤다.
"형님, 어디에 계십니까?"
"용 소협, 나 전영득일세. 빨리 밧줄 하나 내려주시오."
급한 마음에 유신은 옷을 찢어서 밧줄을 꼬아 허리띠와 묶어 밑으로 드리웠다. 계성은 허리띠처럼 쓰는 밧줄을 거기에 묶어서 유신에게 당기라고 했다. 유신이 끌어올린 밧줄의 한끝을 잡자 우선 몸이 가벼운 계성이 잽싸게 타고 올라갔다. 다음 전영득이 밧줄을 잡고 경공을 펼쳐 몇 걸음 만에 위로 뛰어 올라왔고 당우형은 밧줄을 손목에 돌려 감았다.
계성에게서 당우형의 왼쪽 어깨가 탈골된 걸 알아낸 유신은 밧줄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당우형이 올라오자마자 부어오른 왼쪽 어깨를 내공으로 치료했다. 추궁과혈하는 유신의 손이 조금 거칠어서 당우형은 큼직한 땀방울을 뚝뚝 떨궜다.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나서 전영득에게서 받은 비도로 살을 째고 죽은 피를 짜냈다. 가만 놔둬도 며칠이면 회복할 상처지만, 아무래도 당장 이곳을 떠야 할 것 같아서 조금 과격한 조치를 했다.
유신이 당우형을 업고 앞장서고 계성이 뒤를 따랐다. 험한 길을 벗어나니 은무성이 두전을 잡아서 옆구리에 끼고 달려오고 있었다. 일행이 다시 만난 곳은 마침 볼일을 보다가 불행을 맞은 뇌음사 무인이 죽은 근처였다. 계성은 지독한 냄새를 참고 가까이 가서 극락왕생주를 간략하게 읊었다.
"당우형, 이 간악한 놈, 감히 나를 농락했다니. 그리고 모용부영, 뇌음사에서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 두전, 사내로 태어나서 사내로 죽으나니, 이십 년 후에 다시 대장부로 태어나리다."
"외치는 소리를 듣고 돌아오는데 이 자식이 뛰어오더군. 그래서 뒤에서 몰래 기습해서 생포했네."
두전은 전영득의 외침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 당우형의 쌍둥이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서 마음이 약간 찝찝했는데 외침을 듣고 당우형에게 농락당했음을 깨닫고 화가 꼭지까지 치밀었다. 숨어있다가 내공이 없는 당우형을 기습으로 죽이고 도망칠 생각을 하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리다가 은무성에게 생포되었다.
[모용부영이라니 무슨 소리요?]
전영득은 전음으로 유신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뜬금없이 유신을 모용부영이라고 부르니 깊은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신에게 전말을 전해 들으니 헛웃음만 나왔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오랜만이오. 청천."
"거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네."
놀랍게도 은무성과 전영득은 아는 사이였다. 그것도 서로의 호를 부를 정도로 친숙했다. 두전은 그제야 전영득을 발견하고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중원에서는 우문현성 다음으로 남무천을 쳐주지만, 이쪽 동네에서는 우문현성보다 백면귀산을 더 두려워했다. 다른 호법들과는 달리 백면귀산은 대호법이라고 호칭한다.
"이자에게는 알아낼 정보가 있으니 내가 맡도록 하지."
전영득은 두전을 옆구리에 끼고 일행과 함께 모옥에 갔다. 짐을 챙기고 식량을 짊어진 후 빠르게 떠났다. 뇌음사가 당우형을 발견하고 이곳까지 찾아왔다면 홍두명의 일월교가 이곳을 찾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언젠가는 홍두명과 묵힌 빚을 청산해야겠지만,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쉬지도 않고 내내 달리다가 밤을 보내기 좋은 공터가 나타나자 모닥불을 피우고 노숙을 준비했다. 두전을 한쪽 구석에 버려둔 전영득은 일행과 대화를 나눴다.
"청천, 교주의 계책에 차질이 생겼네."
"그건 무슨 소리요. 나는 교주 지시로 무림맹에 잠입해 있느라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소. 이곳에 와서 거산의 지시에 따르라는 말만 듣고 왔는데 차질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남무천이 배신했소. 지금 홍두명이 남무천을 가둬놓고 설득하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무척 어려울 것 같소. 남무천이 교주의 계획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양이오."
"무슨 소리요? 교주가 여기 모용부영으로 변장하고 무림맹주가 된 다음 황실을 뒤엎고 황제가 되는 게 계획의 전부가 아니오?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계획이 있소?"
"정확히는 이렇소. 교주가 여기 제자로 삼은 모용부영으로 변장한 후 무림맹과 교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는 것이오. 그리고 그걸 빌미로 십 년 뒤에 무림맹주가 되오. 다음 황족을 모두 암살한 뒤에 교주가 황제가 되는 게 이 계획의 골자요. 이미 대신과 변방의 장군 중 절반 정도는 설득했소."
"그런데 남무천이 왜 반대한다는 말이오?"
"십 년 뒤라고 해도 모용부영은 불혹에 못 이른 나이요. 무림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큰 공을 세워야 하오. 그래서 교의 대부분 형제는 물론 뇌음사를 비롯해 교에 협력하는 문파나 세력들을 전부 처리하기로 했소. 그 정도 공이면 무림맹주 자리를 내주지 않고는 못 배기지. 그런데 남무천이 쓸데없이 의리를 지킨다고 이 계획에 반대한 거요."
"출신이 비천한 자라 대의보다 잔정에 얽매이는군."
"뇌음사를 뿌리 뽑으려면 남무천도 도와야 하오. 교주와 나, 청천과 홍두명 거기에 남무천까지 있어야 증인을 남기지 않고 몰살시킬 수 있소. 그런데 남무천이 빠지면 살아서 도망치는 자가 생길 수 있는데 아무의 손이나 빌릴 수 있는 일도 아니니 그야말로 난감하지 않겠소?"
"그럼 어떻게 한다는 말이오?"
"그래서 여기 당 대협을 청한 것이오. 다만 독으로 죽이면 흔적이 남기에 뇌음사를 전부 불태워야 하오."
한쪽 바닥에 엎어져서 전영득과 은무성의 대화를 엿듣던 두전은 바지에 오줌을 찔끔 지렸다. 검왕과 대호법, 거기에 홍면주귀와 흑면야차까지, 그것도 부족해서 남무천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진 은무성도 힘을 합쳐서 뇌음사를 몰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일전에 접수한 정보와는 조금 다르지만, 우문현성이 무림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만은 정확히 일치했다.
'당우형 개자식, 손속이 독하고 입도 더럽다 했더니 마교의 종자였구나.'
뇌음사는 마교의 힘에 굴복하여 동맹을 맺었지만, 자신들은 정종의 문파라고 생각하며 마교의 무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토번에서는 여자를 사고파는 게 일상이기에 고작 가격을 물어봤다고 사람을 병신 만드는 당우형이 절대적으로 잘못했다고 여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요?"
"교주를 기다려서 남무천을 설득해야지. 남무천이 거절하면 죽이고 당문의 독으로 뇌음사를 처리하는 거요."
"그래도 오랜 기간 함께 해온 사이인데, 그저 가두기만 하면 되지 굳이 죽여야겠소?"
"남무천이 뇌음사에 붙으면 당문의 독이 있어도 몰살이 어렵소. 거기에 남무천이 무림맹이나 황실에 우리 계획을 다 불어버리면 낭패가 아니겠소?"
그러고 나서 은무성과 전영득은 어린 시절 황실의 숙청을 피해 천산으로 도망 오면서 있었던 일들을 즐겁게 회상했다. 잠자코 듣기만 하던 당우형은 둘의 대화 주제가 바뀌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벅저벅 두전에게 걸어간 당우형이 두전의 팔을 힘껏 걷어찼다.
"심문이 끝난 다음을 기대해라. 살 한 점 한 점 포를 떠서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 감히 나를 노려?"
당우형의 발길질은 내공이 실리지 않았지만 무척 아팠다. 두전은 혀를 깨물고 자살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죽는 게 두려운 것도 있고, 전영득이 자신에게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지도 궁금했다.
호된 발길질을 몇 번 더 한 당우형은 화가 풀렸는지 몸을 돌려서 모닥불로 향했다. 몸을 돌리면서 전영득에게서 사례로 받은 비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두전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비도를 감췄다.
밤이 깊어지자 두전은 비도를 입에 물고 발목을 묶은 밧줄을 끊으려 노력했다. 은무성이 점혈한 혈도는 아까 벌써 내공을 움직여 풀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밧줄이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자 두전은 깜짝 놀라 바로 드러누웠다. 자는 척 시늉을 하던 두전은 아무 기척도 없자 일어서서 비도를 입에 문 후 살금살금 움직였다. 팔을 묶은 밧줄은 멀리 도망가서 풀 생각이다.
두전은 공터와 꽤 먼 거리가 된 후에야 경공을 펼쳐 도망치기 시작했다. 입에 비도를 꼭 물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달리는 두전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두전의 기척이 멀어지자 일행은 자는 척을 그만두고 몸을 일으켰다.
"사내자식이 간이 콩알만 해서는. 뭐가 그리 조심스러운지. 그럼 약속대로 화령초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소."
그리고 아까 당우형에게 해줬던 말을 간략하게 복술 했다.
"나는 돈이 떨어져서 조부의 수집품을 보관한 동굴을 방문했다가 주독에 중독되었고, 나와 함께 있던 남무천은 생포되고 나는 갇혔소. 내가 겨우 주독을 다 빼고 탈출하려고 할 때 당 대협을 만난 것이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유신은 전영득의 조부가 도굴꾼이자 도둑놈이라는 걸 안다. 아무래도 장물을 숨겨두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아, 지호."
당우형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러자 유신의 등짐에서 하얀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낯선 사람이 있어서 숨어 있다가 당우형이 부르자 고개를 내밀었다. 당우형은 기쁜 웃음을 짓고 지호의 턱밑을 긁어주었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게 내심 미안했다.
전영득은 등에 멘 짐을 한참 뒤적거리다가 지도 한 장을 꺼내 모닥불의 불빛을 빌어 일행에게 보여줬다.
"화령초가 나는 데를 세 곳 알고 있소. 물론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커다란 산맥을 샅샅이 수색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클 것이오. 대신 화령초를 취한 후 나를 도와 남무천을 구출해 주시오. 그 대가는 내가 꼭 따로 치르겠소."
당우형과 유신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승낙했다. 어차피 당우형이 내공만 회복하면 홍두명을 찾아서 몰래 죽이려고 했었다. 홍두명이 삼 년 전과 같은 무위라면 유신과 당우형이 힘을 합쳐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모용부영 덕분에 깨우친 독을 몰아내는 방법이 있어 주독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은무성은 전영득과 손을 잡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차피 일월교의 교주인 홍두명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삼 년을 각오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으로 마음에 꼭 드는 제자라 덩굴째 굴러온 더욱 확실한 기회를 걷어차고 싶지 않았다.
"그럼 빠르게 움직이겠소. 아까 그 작자가 뇌음사까지 가고 뇌음사에서 홍두명이 있는 나포박까지 가려면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리니 그 안에 성과가 있었으면 하오."
푹 자고 일어난 일행은 은무성이 계성을 업고 유신이 당우형을 업었다. 버릴 건 버리고 간추린 짐을 들고 전영득의 뒤를 따랐다. 둘을 배려해서인지 전영득은 조금 에돌더라도 쉬운 길로 움직였다.
"설산에 자주 오셨어요?"
유신의 질문에 전영득은 암암리에 감탄했다. 당우형을 업고 손에 짐을 들고도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다는 건 내공과 경신법 둘 다 훌륭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지만, 항상 남쪽에 있소. 그래서 남쪽 비탈은 북쪽 비탈보다 가파르오. 지금 우리는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길 두 개가 나타나면 오른쪽을 선택하는 게 맞소. 대부분은 북쪽 길이 남쪽 길보다 다니기 더 편할 것이오."
전영득은 항상 들어맞는 게 아니지만 거의 틀리지 않았다고 말을 보탰다.
보름 동안 첫 목적지와 두 번째 목적지에서 허탕을 친 일행은 간절한 마음으로 가장 먼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렸다.
- 작가의말
원래 이번 편을 비축분으로 쓸 때 제목은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입니다. 5초 동안이나 심사숙고하고 제목을 바꿨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을 조금 깨달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주에 슬럼프가 와서 사흘 동안 용유신의 비축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으니 월드컵 전까지 비축분을 열심히 쌓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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