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병원에서(2)
21화.
"걱정말고 일단 물을 빼시죠."
"......"
켄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주저했다. 그런 이마나카상을 대신해 켄은 과감하게 물탱크 아래에 달린 꼭지를 틀었다.
"아앗!"
"괜찮습니다. 믿어 주십시요."
물이 흘러 나오자 깜짝 놀라는 이마나카상이었다. 완전히 물이 빠진것을 확인한 켄은 물탱크 위로 올라 가 마법을 시전했다.
"클린!"
탱크안은 한번도 청소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깨끗하게 청소를 한후 다시 마법을 시전했다.
"아쿠아 볼!"
물탱크 안에 거대한 물덩어리를 생성시켜 그대로 탱크안에서 마법을 해제시켰다. 단두번의 마법 시전으로 물탱크에 한가득 물이 차 버렸다.
"이쪽으로 올라와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이마나카상이 서둘러 탱크위로 올라 와 안쪽을 살펴 보았다.
"헉! 이, 이럴수가."
가득 찬 물을 확인하곤 입을 쩍 벌리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래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켄은 이마나카상을 기다리게 한 후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워프!"
이동해 온 곳은 치바현에 있는 류구죠 스파 호텔 밋카츠키 옥상이었다. 온천 호텔인 이곳 일층에는 천연 온천이 흘러 나온다. 그런 온천물을 커다란 오케(桶. 통)로 흘러 내려 오게끔 설치해 놓은 곳이 있었다. 온천물이 든 오케를 통채로 아공간에 담아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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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사라져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에 갔다 온것인지요?"
오오모리 병원 옥상으로 다시 공간 이동해 오자 이마나카상이 놀란 표정이었다.
"조금 멀리 다녀 왔습니다. 병원장님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십시요."
이마나카상이 병원장을 이곳으로 데려 올때까지 아공간에서 오케를 꺼내 옥상에 내려 놓았다. 이런 크기의 오케가 들어 갈만한 욕탕은 병원에 없을 것이어서 옥상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노천 온천이나 마찮가지였다. 수건과 갈아 입을 속옷은 물론 옷가지도 여러 벌 꺼내 놓았다. 맘에 드는 것을 골라 입으면 될것이다. 치바현의 여러 상점 물건들을 통채로 담아 둔것이 쓸모가 있게 되었다.
작은병에 담긴 니혼슈도 한병 꺼내 놓고 준비가 끝나자 옥상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후 옥상으로 올라온 병원장과 이마나카상은 옥상의 광경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올라 오고 있는 커다란 오케가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요. 원장님. 온천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목욕은 역시 온천에서 해야 피로도 풀리고 개운해 지겠죠."
수건이나 옷가지도 보여 주며 나중에 갈아 입으라고 말했다. 한동안 멍해 있는 원장과 이마나카상이었다. 도저히 믿기 못할것이다.
"저, 정말 고맙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병원장은 말까지 더듬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동한것이었다.
"그럼 천천히 즐기십시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이마나카상과 함께 옥상을 내려 갔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온천물이 담긴 오케를 어떻게 가져 왔는지 묻는 것이었다.
"제 능력입니다."
"흠흠, 굉장한 능력이군요."
오오모리 병원 옥상에 병원장을 위한 목욕탕을 만들어 아버지 수술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뇌물을 선사한후 켄은 아버지가 누워 있는 특실로 향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지금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 수술은 일주일 후로 예정되었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오오모리 병원에 피신해 있는 의사들과 환자 가족들을 위해 식량을 더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누구는 식량을 주고 누구는 주지 않을수도 없었다.
아버지 수술이 무사히 끝날때까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해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생각이다. 매일 생선만으로 끼니를 때울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것이나 배불리 먹으면 불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한가지만으로는 질리게 마련이다.
'음...쌀을 구해야 하나!?'
일본에는 유명한 쌀이 많다. 니가타(新潟)산 코시히카리(コシヒカリ), 치바(千葉)산 아키타코마치(あきたこまち), 미야기(宮城)산 히토메보레(ひとめぼれ)등등 많은 종류의 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니가타(新潟)산 코시히카리(コシヒカリ)가 최고로 유명하다.
"이마나카상! 이삼일 식량을 구하러 가 봐야 할것 같습니다. 돌아 올때까지 아버지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 오십시요."
의사들 편에 있는 육체 능력자인 이마나카상을 만나 아버지를 부탁해 놓고 일본 최고의 쌀 생산지로 유명한 니가타현(新潟県)으로 이동해 갔다. 니가타 구청 옥상에 도착한 켄은 일단 구청 건물을 스캔해 인간이나 좀비가 없는지 살펴 보았다.
구청은 텅 비어 있었다. 니가타 시내가 아닌 외곽의 농가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농가들이 있는 곳의 좌표를 알았다면 곧바로 농가들이 많은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 농가를 찾을수 밖에 없었다.
"플라이!"
하늘을 날아 올라 높은 곳에서 농가를 찾아 보았다. 논밭이 있는 곳에 농가도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가을이라서 논에는 황금빛으로 물든 벼들과 잡초들이 뒤섞여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탓이었다.
수확을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상황일것이다. 언제 좀비들이 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농가의 창고를 찾아야 했다. 창고안에 혹시라도 묵은 쌀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농가의 한 창고가 눈에 들어 왔다. 거주지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였다.
"마나 디텍터!"
창고안을 스캔해 혹시라도 좀비가 있을것에 대비했다. 아주 작은 마나가 감지되었다. 일반적인 마나가 아닌 음습한 마나로 좀비나 좀비로 변한 동물에게서나 감지되는 마나였다. 창고안에 좀비 한놈이 숨어 있는것 같았다.
"실드!"
혹시 모를 위험에 방어 마법을 두른 켄은 조심스럽게 창고문을 열었다.
끼이익.
거친 소음을 동반한채 창고안으로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 갔다. 코시히카리라고 쓰여져 있는 십여포대의 쌀 포대와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덮혀 있는 물건들과 농기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끼아아아."
갑자기 쌀포대 뒤쪽에서 괴성이 들려 오며 어떤 검은 물체가 뛰쳐 나왔다.
"매직 미사일!"
켄을 향해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일직선으로 뛰어 오른 놈은 고양이였다.
퍽!
"끼잉!"
매직 미사일에 옆구리를 얻어 맞은 고양이 놈은 괴로운듯한 신음을 흘리면서 또다시 몸을 낮추며 뛰어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홀드!"
"끼끽!"
고양이는 갑자기 꼼짝도 못하게 된 자신의 몸을 이상하게 여기는지 연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파이어!"
화르륵!
고양이 몸에 불이 붙어 버리자 순식간에 재만 남아 버렸다.
찌이익.
쌀 한포대를 열었다.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했다.
킁킁.
쌀 특유의 묵은 냄새가 났지만 먹지 못할것도 없었다.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것이지만 이런 세상에선 이런것도 소중한 식량이다.
"클린!"
쌀 포대 전부를 일단 깨끗하게 정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이 스며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근처의 다른 농가도 한집 한집 꼼꼼히 살펴 보았다. 창고로 짐작되는 곳에는 반드시 들러 식량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아공간 안으로 집어 넣었다.
남아 있는 식량은 대부분 묵은 쌀이었다. 밭에는 여러 종류의 채소들이 잡초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런 채소도 뿌리채 아공간으로 뽑아 넣었다. 감자나 고구마, 말라 비틀어진 옥수수등등 많은 종류가 무성의하게 자리하고 있는 밭에서 수확을 끝낸 켄은 논에 자리하고 있는 벼를 수확했다.
농가에는 콤바인이 있었지만 기름이 없는 탓으로 일일히 손으로 수확해야 했다. 다른 지역의 가솔린 스탠드에서 가솔린을 가져 오면 되겠지만 콤바인을 운전할줄도 몰랐다. 잡초와 벼를 한꺼번에 윈드 블레이드 마법으로 베어 바닥에 누워있는 벼들을 아공간 안으로 집어 넣는 작업을 했다.
넓은 논에 있는 벼들을 수확하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확보하는 식량이 많아진다는 생각에 지칠줄도 몰랐다. 주변의 논에 있는 벼들을 모두 수확한 켄은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고개를 들어 논을 둘러 보았다. 황량한 논이 넓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벼들을 베어낸 논에서 풋풋한 풀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금 눅눅한 느낌도 들었지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그마저도 싱그럽게 느껴진것이다.
저멀리 경사진 산언덕 어림에서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붉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에 달려 있는 붉은 무언가였다.
"블링크! 블링크!"
두번의 이동 마법으로 산언덕에 도착한 켄은 반짝였던 물체를 확인했다. 사과였다. 이곳은 사과 과수원이었다. 잡초들과 작은 나무들이 허리 어림까지 자라나 있어 먼곳에서 보았을때에는 과수원으로 보이지 않았었다.
"아삭!"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사과즙이 입안을 희롱했다. 얼마만에 먹어 보는 사과인지 몰랐다. 좀비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에 과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도시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귀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마치 보물을 찾아 횡재를 한 느낌이었다.
이곳 과수원도 관리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사과는 큰것과 작은것이 아우러져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과는 한군데에 서너개의 꽃과 과일이 맺힌다. 그런 이유로 적화와 적과, 봉지 씌우기 작업은 필수였다.
적화는 한곳에 밀집되어 피어나는 꽃중에 한개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따 주는 작업이며 적과는 열매가 맺혔을때 적화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놓친곳에 뭉쳐서 맺힌 사과중에 가장 실한 한개만 남겨두고 다른 열매를 따 주어야 사과가 제대로 성장한다. 사과가 얼마간 성장을 한후에는 봉지를 씌워 병충해를 막아 균일한 크기의 사과를 수확할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좀비들로 인해 전혀 되지 않아 크고 작은 사과들이 한곳에 뭉쳐 자리하고 있는 탓으로 실한 사과는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렁주렁 가지가 부러져라 달려 있는 사과를 보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과 한개한개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따는 일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벼를 수확했을때와 마찮가지로 마법으로 사과 나무를 통채로 베어 아공간으로 집어 넣었다. 사과 수확이 끝나자 이번엔 다른 과일도 있는지 인근 지역을 돌아 다니며 살펴 보았다.
배 나무나 감 나무, 포도 나무는 물론 밭에 자리하고 있는 수박을 발견했을때에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많은 수박들이 너무 성장해 버려 깨어진 상태로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게중에는 아직 온전한 상태로 있는 것도 제법 되었다.
퍽.
수박 한덩어리를 깨어 상태를 살펴 보았다. 먼저 냄새를 맡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직접 먹어 보았다. 달콤한 감각에 절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이스!"
역시 수박은 시원하게 식혀 먹는게 제맛이다. 마법으로 수박을 차갑게 식혀 정신없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에 젖어 있던 켄은 욕심이 났다. 일본의 유명한 농산물 산지를 돌아 다니면 더욱 많은 식량을 학보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지나면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일본 동경도 해가 거듭될수록 여름에는 더욱 더워지고 겨울에는 더욱 추워지는 추세였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동경에서 겨울에는 눈구경하기가 힘들 지경이었지만 가끔씩 폭설이 쏟아 지며 기온도 나날이 영하로 내려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영하 1,2도쯤은 추운 측에 들어 가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곳에 계속 적응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사항이다. 겨울 나기를 준비할려면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 전국을 돌아 다녔다. 위로는 홋카이도(北海道) 아래로는 쿠마모토(熊本)까지 돌아 다니며 식량 확보에 열을 올렸다. 어느 농가에서는 쌀 정미 기계를 확보도 하고 농기계는 물론 농기구도 확보해 놓았다.
여러 곳을 돌아 다니다 보니 자연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동물들과 조우를 했지만 손쉽게 처리를 하고 변이를 일으키지 않는 동물들은 보는 족족 사냥해 식량 목록에 추가했다. 사슴이나 멧돼지, 곰이 특히 많았다. 일본에는 사슴 공원이나 원숭이 공원이 존재할 정도로 야생 동물들이 많다.
수시로 민가로 내려 오는 멧돼지와 곰, 사슴으로 인해 한바탕 큰소동이 벌어 지기도 한다. 지역 경찰과 자치단이 민가로 내려온 동물들을 잡기 위해 그물을 들고 쫓아 다니는 장면은 TV 뉴스에서 흔히 접할수 있다.
논밭에서는 식량과 과실, 농가에서는 먼훗날을 위한 농기계, 도시에서는 가전 제품과 의류, 요코하마(横浜) 항구 창고에서 확보한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밀가루와 소금 포대를 발견하고는 더이상 수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전국을 돌아 다니며 식량 수집에 나서 가장 큰 수확은 무엇보다도 태양광 패널을 대량으로 확보한 점이었다. 일본에는 2016년부터 전력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 작가의말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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