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헤르난데스 백작성(1)
71화.
"집사장님!"
"들어 가시지요. 이제 백작님의 자리를 찾으셔야죠."
"어떻게 된것입니까?"
"임시 영주를 따르는 기사들은 모두 도주를 했습니다. 임시 영주는...음...직접 보시죠."
집사장의 안내로 성문으로 들어 섰다. 성문 옆 양쪽에는 수많은 영지민들이 서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영주님이시다. 백작님이 돌아 오셨다."
큰함성과 더불어 영지민들이 헤르난데스 백작을 환영해 주었다. 그런 영지민들을 향해 마차 창문으로 손을 흔들어 주며 자신의 귀환을 알리는 헤르난데스였다. 어린 나이지만 조숙했다.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럴때에 손한번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영지민들의 충성심은 더욱더 상승할것이다.
내성안에는 시녀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와 부복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지나쳐 임시 영주의 집무실로 안내하는 메사드 노집사장을 따라 갔다. 집무실안에는 슬라프 숙부가 가슴에 칼을 박은채 죽어 있었다.
"어, 어떻게 된거죠?"
"자살했습니다."
"자살이라니요?"
"백작님이 안톤 자작군과 스미르 남작군을 복속시키고 임시 영주를 따르는 병력까지 격파하고 복속시켜 성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다음날 아침 집무실에는 보다시피...."
노집사장은 말끝을 흐렸다. 더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숙부는 깨끗하게 자살을 택한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권력의 말로는 자살로 끝을 맺었다.
저벅저벅.
"백작! 정말 저 사람이 자살이라고 생각하는거냐?"
"아! 오야붕. 집사장님, 인사하십시요. 제 마스터십니다."
"마, 마스터라고요?"
메사드 집사장은 당황했다. 고위 귀족인 백작이 마스터로 모시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오야붕의 도움없이는 살아 돌아 올수도 없었으며 백작성을 수복할수도 없었을겁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메사드라고 불러 주십시요."
"야마모토 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백작을 많이 도와 주십시요."
나이가 지긋한 노집사장에게 차마 반말을 할순 없었다. 중년의 나이였다면 반말을 했을 것이다. 작위보다는 나이순으로 존대를 하는 켄이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요. 백작님의 마스터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이게 편합니다."
"오야붕! 자살이 아니면 설마 타살이라는 말입니까?"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타살같다."
가슴에 박혀 있는 단검의 위치나 깊이로 볼때 타살로 추정되었다. 임시 영주라는 자는 집무실의 의자에 앉아 머리를 뒤쪽으로 눕히고 있는 상태였다.
"티젤 단장! 어떻게 생각하나?"
"음...잘 모르겠습니다."
"가슴에 칼을 박고 자살한 사람을 본적이 있나?"
집무실에 있는 백작이나 노집사장, 티젤 단장을 보며 확인을 해 보았다. 켄은 딱한번 본적이 있었다. 아니키와 사채빚 독촉을 하러 갔을때였다.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던 중년 사내는 야쿠자의 추심에 더이상 견딜수 없었는지 가슴에 칼을 박아 자살해 버린것이다. 그때의 광경이 떠 올랐다.
"우선 단검의 위치가 이상하다. 자살하는 사람은 칼을 가슴에 박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배를 찌른다. 또한 저 단검은 칼날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박혀 있는 상태다. 자살하는 사람이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한 스스로가 저렇게 깊숙히 박을순 없다. 특히 가슴쪽에는 갈비뼈가 가슴을 보호하고 있는 탓으로 저런식으로는 스스로 깊게 박을순 없는거다. 또한가지 저 사람은 머리를 뒤쪽으로 하고 있다. 스스로 칼을 박으면 고통에 앞으로 숙여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이 타살로 추정할수 있는것이다. 이해가 되나?"
"그, 그럴수도 있겠군요."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가지 방법을 사용해 조사해 보겠다. 집사장님, 저 칼을 누가 건드렸습니까?"
"아니요. 처음 발견한 그대로입니다."
다행이었다. 누가 칼을 건드렸다면 지문을 채취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아공간을 열어 밀가루와 붓, 그리고 검은색 종이를 한장 꺼냈다.
"헉! 마법사님이십니까?"
"집사장님. 오야붕은 마법사입니다."
"오오!"
켄이 마법사라는 말에 노집사장이 놀라워 하며 밀가루와 붓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하얀 밀가루가 굉장히 부드럽고 고와 보였다. 또한 저 깃털을 모아 놓은것 같은 끝이 뾰족한 물건이 뭔지 알수는 없었다.
"오야붕! 그 깃털은 뭔지요?"
"응? 이거? 붓이라는 거다. 주로 글씨를 쓰는데 사용하지만 그림을 그려도 된다."
"아, 그렇군요. 근데 그 검고 얇은 것은 무엇입니까?"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켄은 슬슬 귀찮아질려고 했다. 만약 이런 질문을 하는 놈이 헤로드였다면 한방 먹여 주었겠지만 어린 백작이어서 참는거다.
"이건 종이다."
"종이요? 어떻게 검은색 종이가 있을수 있는거죠?"
"흰색 종이가 있으면 검은색 종이도 있지 않겠느냐?"
"아, 그, 그러군요."
이 대륙에도 종이는 있다. 비록 누른색의 종이지만 너무 귀해 귀족들이 아니라면 사용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비싸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그런걸로 무얼 할려는지요?"
"사람들에겐 지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지문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네 손가락을 봐라. 손가락마다 모양이 모두 다르지? 집사장님이나 티젤 단장과 비교해 봐라. 모두 다를꺼다."
백작이나 집사장, 티젤은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 보며 서로의 손가락을 비교해 보았다.
"와아! 정말이에요. 모두 달라요."
"음, 정말 믿기지 않지만 다르군요."
"음...."
몇번이나 번갈아 가며 비교해 보며 신기해 하는 일행들을 지켜 보며 밀가루를 더욱 곱게 마법으로 갈았다. 그런 밀가루를 붓에 묻혀 단검 자루에 조심스럽게 묻혔다. 다행히도 단검은 손잡이까지 통짜 철로 되어 있었다. 지문 채취도 쉬울 것이다. 단검 자루에 묻힌 밀가루를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남아 있는 밀가루를 마법으로 복사해 검은색 종이에 붙여 넣었다. 그러자 검은색 종이에는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오오!"
"저럴수가!"
"굉장하군요."
놀라운 반응을 보이는 백작 일행들에 내심 안도의 숨을 내리 쉬었다. 처음해 보는 일이어서 성공할지 자신은 없었지만 다행히 한번에 성공했다.
"네 숙부는 오른손 잡이냐?"
"그렇습니다."
백작의 말에 임시 영주의 오른 손가락을 들어 책상위에 있는 잉크를 살짝 손가락에 묻혀 역시 책상위에 있는 누런색 종이위에 다섯 손가락의 지문을 찍었다.
"비교해 봐라. 네 숙부가 스스로 자살했다면 이 두개의 지문이 똑 같을꺼다."
"음. 살펴 보겠습니다."
백작이 먼저 한참이나 비교를 해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살펴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틀리는것 같기도 하고 같은것 같기도 하고..."
집사장과 티젤 순으로 살펴 보았지만 여전히 그 둘도 고개를 저었다.
"그럼 마법으로 비교를 해 보자."
검은색 종이에 단검 자루에서 채취한 지문을 다섯개나 붙여 넣고 임시 영주의 손가락에서 채취한 지문을 한개씩 복사해 검은색 종이위의 지문에 한개씩 겹치게끔 붙여 넣어 비교를 해 보았다.
"자, 잘 봐라. 모두 다르다. 스스로 자살한 것이라면 지문이 일치해야 하지만 모두 다른점으로 볼때 타살이라고 확신할수 있다. 마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 정말 다르군요. 그, 그럼 누가 죽였을까요?"
"도주한 기사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겠지?"
*******
"오티스님! 죄송합니다.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어떻게 실패할수 있단 말인가?"
"정체를 모르는 마법사가 끼어 들었습니다. 고서클 마법사라고 추정됩니다."
회색 로브를 입고 있는 자가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자에게 머리를 숙인채 보고하고 있었다.
"음, 계획 수정은 불가피하겠군."
"아닙니다. 그대로 이행해도 될것같습니다. 전의 계획과는 명분만 조금 다를뿐 변한것은 없습니다."
보고하는 회색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는 임무를 실패한 자 답지 않았다.
"어떤 명분?"
"전번에는 헤르난데스 백작령을 장악해 반역을 일으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 계획이 실패했지만 이번엔 백작령에 흑마법사가 출현했다는 정보를 흘려 왕실에서 조사를 하게 되면 흑마법사의 실험실을 찾게 될것입니다. 그 다음은 전번 계획과 변함이 없습니다."
"음, 마케아 마법 왕국에서 이미 암독을 조사차 마법 기사단을 파견했다더군. 어차피 백작령에 흑마법사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될것이다. 그것을 먼저 이용하자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좋아. 실행하라. 이번엔 실패는 용납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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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영주의 타살은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범인을 잡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백작령을 탈환한다면 슬라프 임시 영주는 죽이거나 감옥에서 평생을 썩어야만 했다.
그런 사람을 위해 굳이 범인을 잡는다고 영지를 들쑤실 필요는 없었다. 영지를 완전히 장악한 헤르난데스는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며칠동안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던 켄은 좀이 쑤셔 백작령을 둘러 보기로 했다.
"커시피! 백작령을 둘러 보자."
아이언 용병 단장인 커시피를 데리고 내성을 지나 외성으로 나가자 백작령답게 굉장히 큰도시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 다니고 있었다.
"백작령은 모두 이정도로 번화하냐?"
"백작령마다 다르지만 비슷합니다."
커시피는 켄을 아직 드래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헤로드가 아니라고 말해 주었지만 믿지 않는 것이다. 드래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끔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대했다. 백작령 거리에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큰통을 들고 오물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였다.
예전에 오물 처리에 관해 백작에게 말해 준것을 당장 시행하고 있는듯했다. 무거운 통을 낑낑대며 들고 가는 어린 아이들이 안쓰러웠지만 저 아이들은 저 일을 하고 얼마간의 돈을 받으며 생활하게 될것이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만의 혜택으로 저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될수 있으면 많은 아이들이 할수 있는 일을 강구해야 했다.
"특별히 할일도 없는데 저 아이를 따라가 보자."
오물을 수거한 큰통을 낑낑 대며 들고 가는 아이는 성문으로 향했다. 몇번을 쉬면서 숨을 헐떡이는 아이는 힘들어 보였다. 성문에는 성문 경비병들이 오물통을 들고 오는 아이를 향해 코를 막으며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재촉했다. 경비병이 두려운지 아이는 재빨리 성문을 지나 오물을 모아 놓은 곳으로 가자 그곳에는 몇몇 어른들이 오물과 낙엽을 섞는 일을 하고 있었다. 퇴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쪽에 부어라."
"예."
어른의 지시에 아이는 오물을 낙엽위에 쏟아 붇고는 재빨리 성으로 다시 걸어갔다. 성문까지 도착한 아이는 경비병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몇통까지 수거한거냐?"
"4통입니다."
"그럼 2쿠퍼구나. 옛다."
경비병이 2쿠퍼를 던져 주자 아이는 황송한듯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품속에 넣고는 웃는 얼굴로 성안으로 향했다.
"커시피! 저 아이를 데려 와라."
이상한 점이 있어서 저 아이에게 물어 볼 말이 있었다. 겁먹은 얼굴의 아이는 불안감을 감출수 없었다. 오물이 아이의 몸 곳곳에 튀어 냄새가 심했다.
"클린!"
"헉!"
아이는 이상한 점을 감지했는지 깜짝 놀랐지만 깨끗해진 자신의 옷을 보며 신기해했다.
"겁먹을 필요없어. 널 헤코지 할려고 데려 온게 아니다. 어디 보자. 저곳이 좋겠군."
성문 근처의 큰나무가 아래를 가르키며 그쪽으로 이동해 아공간을 열어 아웃 도어용 의자 3개와 사과 3개를 꺼냈다. 아이는 머리를 숙인채여서 아공간을 보지 못했다.
"앉아라. 너도 앉고."
"아, 아닙니다. 전 이게 편합니다."
커시피는 감히 위대한 존재인 드래곤과 함께 앉을수는 없었다.
"앉으라면 앉아. 너한테 말할려면 올려다 봐야잖아."
"아,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이해를 했는지 커시피는 급히 이상해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천으로 만들어진 의자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몸이 아래쪽으로 푹 파묻히며 편안해 지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너도 앉거라."
"으흑...제, 제발 살려 주세요."
"누가 잡아 먹는다냐? 아무 일도 없을테니까 우선 앉아라."
토르는 귀족으로 보이는 자가 너무 무서웠다. 입고 있는 옷도 무려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저런 옷을 입은 귀족은 처음 보았다. 얼마나 고위 귀족이길래 황금을 저런식으로 사용한단 말인가.
그런 귀족이 천으로 만든듯한 신기한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귀족옆에 노예나 다름없는 빈민촌의 아이가 감히 앉을수는 없었다. 무슨 트집을 잡아 죽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닥에 엎드려 애원하는 아이에게 더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 그곳에 편하게 앉아라. 명령이다."
"가, 감사합니다."
땅바닥에 편하게 앉은 아이와 커시피에게 사과를 한개 던져 주었다.
"감사합니다."
커시피는 표정이 환해졌다. 사과맛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싹.
"먹어라. 과일이다."
껍질채로 사과를 한입 깨물며 아이에게 먹으라고 했다. 토르는 귀족이 던져준 붉그스름한 처음보는 과일이라는 것을 한입 깨물었다. 먹지 않으면 귀족이 화를 낼것이다.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먹지 않을수 없었다.
아싹.
오물오물.
"응? 아!"
토르는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맛있다.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귀족들만이 먹는 과일은 역시 달랐다. 허겁지겁 쑤셔 넣은 과일이 사라지자 손가락을 빨며 아쉬워했다.
"오물 청소는 언제부터 시작한거냐?"
"오,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빈민가 애들이 너무 많은 바람에 오늘에야 일을 할수 있었어요."
"일은 누가 주는데?"
"알론소 두목이요. 알론소 두목이 애들을 지정해 내성문 밖에서 아침 일찍 기다리게 하면 행정관이 나와 오물 청소를 시키며 일당은 외성 경비병 아저씨에게 받으라고 했어요."
- 작가의말
즐겨 찾아 주시는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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