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전쟁의 서막(1)
119화.
긴나팔 소리가 메아리치며 성대한 국왕 취임식이 행해졌다. 취임식과 동시에 한달동안 파티가 벌어진다. 이 파티는 왕국의 귀족이라면 누구든지 참석할수 있다. 계승 귀족은 물론 단승 귀족까지 참석할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귀족들이 수도로 몰려 들었다. 그로인해 수도는 귀족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오야붕! 오야붕은 파티에 참석하지 않을겁니까?"
"그런 번거로운 곳엔 왜 가냐? 귀찮다."
이 방안에는 지금 헤르난데스 백작과 오스카 남작, 루벤 남작이 함께하고 있었다. 국왕 파티에 참석차 수도로 올라 온것이다.
"그러지 말고 함께 가시죠. 국왕 폐하께서도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거든요."
매번 거절하는 켄에게 이제 국왕이 된 이왕자가 어린 백작에게 바람을 불어 넣은것 같았다.
"귀찮게시리...그럼 딱 한번만 간다."
딱 한번만 참석하고 귀찮음을 피할 생각이다.
"분명히 약속하셨어요. 파티복을 준비해 놓을께요."
"파티복? 필요없다."
귀족들이 입는 파티복은 마치 승마 복장같았다. 몸에 착 달라 붙은 모양이 활동하기에 불편하게 보였다. 그런 파티복을 입을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냥 아공간에 들어 있는 양복을 입고 갈 생각이다. 물론 파티에 어울리는 양복을 고를것이다. 어떤 복장이 파티 복장인지는 잘 모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파티 복장을 고를것이다.
"저녁 파티에 참석할테니까 그때 와라."
백작 일행이 밖으로 나가자 즉시 아공간을 열어 수많은 양복을 꺼내 파티에 어울리는 연미복을 고르기 시작했다.
*******
"오야붕! 준비가 되셨는지요?"
"그래."
저녁때 찾아온 헤르난데스 백작이 켄의 복장을 보고는 놀라움을 토해냈다. 백작 뒷편의 오스카 남작과 루벤 남작도 눈이 커졌다.
"와! 처음 보는 파티복인데요?"
"멋쩍은 소리말고 가자."
파티장이 어딘지 모르는 켄은 백작을 따라 갈수 밖에 없었다. 파티장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귀족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 귀족들은 켄의 복장을 신기한 듯한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헤르난데스 백작 일행이십니다~."
파티장 문앞으로 접근하자 시종장으로 보이는 자가 큰소리로 외쳐댔다. 앞선 귀족들은 호명하지도 않으면서 왜 백작을 호명하는지는 몰랐다.
"오야붕! 고위 귀족만 저렇게 소개를 합니다."
"그렇냐? 들어 가자."
고위 귀족들만의 특권같았다. 실례가 되지 않도록 파티장에 고위 귀족이 등장했다는것을 알리는 것이다.
왁자지껄.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 오는 가운데 귀족들이 곳곳에 뭉쳐 파티장은 조금 소란스러운 느낌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도 많았으며 파티장 중앙에는 손을 마주잡고 가벼운 댄스를 추는 커플들도 있었다. 긴 테이블위에는 온갖 음식들로 넘쳐났다. 빈접시를 든 켄은 음식을 조금씩 담았다. 지구의 뷔페나 마찮가지다. 입에 맞는 음식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는 음식도 있었다. 대충 배를 채우고 와인을 한잔 들고 있을때였다.
"안녕하세요. 헤르난데스 백작님!"
나이가 많아 보여야 15, 6세정도도 되지 않은 처음보는 여자가 백작에게 말을 걸었다.
"젤리 오핀이라고 합니다."
"알렉스 반 헤르난데스입니다."
한쪽 무릎을 살짝 구부린 여자가 자기 소개를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성(姓)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댄스 신청을 해도 될까요?"
젤리라는 여자의 댄스 신청에 백작은 켄을 바라 보았다. 춤을 추러 가도 되는지 묻는 것이다.
"내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해."
"레이디! 부탁드리죠."
백작이 살짝 무릎을 굽혀 오른손을 내밀자 젤리는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어 백작 손을 쥐고는 파티장 중앙으로 향했다.
"켄 마법사님! 고르딘은 어디있는지요?"
"고르딘은 지금 먼곳에서 수련중이다. 수련이 끝나면 한단계 더 상승되어 있을꺼다."
루벤 남작이 자신의 아들 소식을 궁금해 했다. 수도로 올라와 아들을 찾아 볼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르딘을 보호해 줄 기사도 같이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네들은 부인들은 같이 오지 않았나?"
"그, 그게..."
루벤 남작은 말을 더듬었다. 뭔가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것 같았다.
"저어, 단승 귀족은 대부분 본인만 참석합니다. 부인이나 딸아이는 다른 계승 귀족 부인들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오스카 남작이 대신 설명해 주었다. 하긴 여자들의 질투가 남자들보다 심하다. 지금도 곳곳에 귀부인들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있었지만 어느곳에도 끼지 못하고 드문드문 혼자 있는 부인도 있었다.
"아로마인 폰 테스라 공작이십니다~."
공작이 파티장으로 들어서자 흐르던 음악이 멈추었다. 자연적으로 춤을 추고 있던 귀족들도 멈춘채 파티장 중앙을 열어 주었다. 그런 중앙을 당당한 표정으로 걸어 오고 있는 공작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오히려 공작 뒤를 따라 걷고 있는 귀족들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테스라 공작이 중앙을 걸으며 한손을 들어 올리자 음악이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하며 귀족들의 떠들썩함이 다시 시작됐다.
"호호호, 백작님! 즐거웠어요."
음악이 멈추자 켄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백작에게 젤리 영애가 말과는 달리 아쉬운듯한 얼굴이었다.
"오핀 백작 영애냐?"
"예."
젤리 영애는 켄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누군지 소개시켜 달라는 표정으로 백작을 바라 보았다.
"백작은 어딧지?"
"아버님이요?"
"그래."
처음 보는 특이한 파티복의 키가 큰 남자는 아버지를 알고 있는듯했다. 헤르난데스 백작과 같이 있는것으로 볼때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남자같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하는 것으로 볼때 신분도 꽤 높은 위치의 귀족으로 짐작되었다. 그렇다면 함부로 대할순 없었다.
"아버님을 불러 올까요?"
"불러와."
오핀 백작은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는 딸아이의 재촉에 어쩔수없이 따라 나섰다. 딸아이도 슬슬 결혼을 생각할때다. 지금 약혼을 하고 몇년후에 결혼을 하면 될 나이다. 보통 귀족 딸은 스무살 안팎으로 결혼을 한다. 대부분 정략 결혼이다. 가문에 이익이 되는 귀족 집안과 정략 결혼을 맺은것이다. 그런 딸아이가 소개시켜 줄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다.
가문에 이익이 되지 않는 귀족 자제라면 딸아이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했다. 이왕자님이 국왕으로 등극한 덕분으로 이제 왕국 3인자로 떠오른 자신을 감히 찾아 오지도 않고 직접 발걸음을 옮기야하는 놈이 대체 어떤 놈인지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딸아이의 뒤를 따라가는 방향에는 헤르난데스 백작이 보였다. 백작뒤에는 놀랍게도 자신을 협박한 그 마법사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젤리! 소개시켜 줄 자가 헤르난데스 백작이냐?"
"아니요. 백작 뒤에 있는 키가 큰 남자인데요."
"뭐라고?"
깜짝 놀란 오핀 백작은 마법사를 다시 한번 바라 보았다. 바로 그때 그 마법사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웃는 마법사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였다.
덜덜덜.
악마의 웃음같았다. 추운 겨울도 아닌데도 몸이 절로 떨려왔다.
"아빠! 왜 그래요?"
"아, 아니다."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기분이었다. 저 마법사의 신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국왕이 된 이왕자님이 직접 말해 주었다. 절대 실례되는 행동을 하면 않된다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다. 무려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 확실하다고 하면서 마도사라고 부르라고 했다. 저 드래곤 때문에 헤르난데스 백작령 토벌에 실패했다. 드래곤이라면 당연했다. 그때는 설마 했었지만 사실로 드러난것이다.
젤리가 어떻게 저 드래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 드래곤 앞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 약속한 일만 골드도 주지 않은 상태다. 일만 골드로 인해 영지는 파산할지도 모른다. 어쩔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에게 아부를 하는 귀족들에게 뇌물을 받아 일만 골드를 마련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죽을상을 하며 마지못해 헤르난데스 백작이 있는 곳으로 딸아이를 따라 갔다.
"마, 마도사님! 오, 오랜만입니다."
두려움에 절로 말이 떨려왔다. 그런 말에 젤리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잘 지낸것 같네?"
"더, 덕분입니다."
"빚진건 잊지는 않았겠지?"
"무, 물론입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요."
역시 일만 골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빚이 한개 더 생긴건 알고 있나?"
"옛? 한개 더라니요?"
"흑마법사를 암살한 놈들이 잡힌건 알고 있겠지?"
"아, 알고 있습니다."
고위 귀족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국왕 폐하를 암살한 흑마법사를 죽인 놈들이 잡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놈들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저런 말을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놈들이 다음 목표는 오핀 백작 너라고 실토했다."
"예엣? 그, 그게 정말이신지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냐? 국왕이 말해 주지 않았냐?"
"처음 듣는 것입니다."
실로몬 신임 국왕이 일부러 말해 주지 않은것 같았다. 암살을 사전해 차단해 오핀 백작 암살은 실패를 했기 때문에 괜히 경각심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어 봐."
"예. 그, 그런데 그것하고 빚 한개를 더 진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백작 암살을 시도할려는 그놈들을 잡은게 바로 나다."
"헉! 가, 감사합니다."
정말이라면 빚을 진게 맞았다. 아직 사실로 드러 난 일이 아니지만 드래곤이 거짓말 할 이유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고마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완전히 영지는 파산했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보상으로 금전을 요구한다면 영지는 완전히 무너진다. 요구하는 보상 금액이 막대할것이 뻔했다. 이번엔 대체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덜덜덜덜.
"아, 아빠! 자꾸 왜 떨고 그래요?"
"크흠, 떠, 떨긴 누가 떤다고 그래."
오핀 백작은 딸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는지 너스레를 떨었다.
"그, 그럼 이번에는 얼마나..."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자."
저 말이 더 무서웠다.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었습니까? 파티는 즐거우신지요?"
그때 테스라 공작이 찾아왔다.
"공작 전하를 뵈옵니다."
"공작 전하를 뵈옵니다."
테스라 공작을 본 일행들이 일제히 공작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는 반면 켄은 그런 광경을 멀뚱멀뚱 지켜 보기만했다. 그런 모습을 본것인지 젤리 영애는 고개를 갸웃했다. 공작 전하가 직접 찾아와 백작인 아빠가 어려워하는 젊은 남자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인것이다. 저 특이한 복장의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증만 더해갔다.
"그럭저럭 즐기고 있다. 바쁘진 않나?"
"머리도 식힐겸 술 한잔 하러 참석한겁니다."
신임 국왕이 취임해 왕국 전체를 총괄하는 공작은 굉장히 바쁠것이다. 이런 파티에 참석할 여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스모 왕국 일은 알고 계신지요?"
"......"
갑자기 공작이 코스모 왕국 일을 들먹였다. 이런 곳에서 말을 꺼내는 것으로 볼때 무슨 일이 발생한것 같았다.
"코스모 왕국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바테 왕국이 침범해 와 전쟁이 벌어진 상태입니다."
"뭐라고? 전쟁?"
"그렇습니다."
갑자기 전쟁이 터졌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바테 왕국의 국왕이 바뀌었다는 말은 들었다. 신임 국왕은 굉장히 호전적인 인물같았다.
"바테 왕국은 강하나?"
"코스모 왕국보다는 강합니다. 코스모 왕국에는 소드 마스터가 한명도 없지만 바테 왕국에는 소드 마스터가 존재합니다. 그 소드 마스터가 전쟁에 참가한다면 코스모 왕국은 패배할것이 뻔합니다."
"음, 전쟁 명분은 뭐지?"
국가간의 전쟁은 반드시 명분이 필요했다. 각지역 영주들의 병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적당한 명분이 없는 한 귀족들이 전쟁을 반대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영지간의 명분은 조작되기도 하지만 국가간의 명분은 조작도 쉽지 않다.
"소금이라고 합니다."
"소금?"
"바테 왕국은 암염이 국가의 주수입원입니다. 풍부한 암염으로 인해 부강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그런 암염이 지금 코스모 왕국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소금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입니다."
"음, 옆집에서 빵을 구웠는데 너무 고소한 냄새로 자신의 배가 절로 고파왔다. 그 배고픔의 보상을 하라고 옆집으로 처 들어 갔다는 말이지?"
터무니없는 명분이지만 이 모든것이 켄이 바닷물을 이용한 소금 생산 방식을 코스모 왕국 아르타인 자작령의 퉁가 마을에 알려준 탓이다. 이래서 지구의 문물이나 방식을 이 대륙에 전파하는걸 꺼렸었다.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낀 켄은 전쟁의 상황이 궁금했다.
"아직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나?"
"지금 국경으로 병력이 이동하고 있을겁니다. 전력에서 뒤지는 코스모 왕국에서 브리보아 왕국으로 원군 요청을 해온 상황입니다."
"파병은 할건가?"
"코스모 왕국과는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왕국에서는 원군을 보내지 않을수도 없습니다. 코스모 왕국과 연결되어 있는 터널으로 소금이 왕국으로 유입되는데 만약 그 길이 막혀 버린다면 왕국은 곤란해 질겁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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