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크라운파
265화.
보이스 피싱의 예를 들어 보면,
'00경찰서 형사과 00입니다.'
라고 경찰인척 속인다. 그런후
'당신의 계좌가 오레오레(オレオレ.보이스 피싱) 사기에 사용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불안감에 휩싸여 판단력이 흐려진다.
'당신의 계좌에 있는 돈은 사기로 입금된 금액이기에 압수를 당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더욱 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 당장 돈을 인출해 안전한 곳으로 송금해 놓으십시요. 00은행 직원 전화 번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직원에게 전화를 하면 친절히 안내를 해 드릴겁니다.'
불안해진 피해자는 친절한 경찰의 말을 믿고 알려준 전화 번호대로 은행 직원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면 00 은행 직원이라고 하는 자가 등장해 경찰에게 연락을 받았다며 임시 계좌라고 하면서 계좌 번호를 알려 주고 돈을 송금시킨다. 조금만 냉정한 판단을 할수 있으면 이런 사기 수법에는 당하지 않지만 판단력이 저하된 노인들은 당하고 마는 것이다.
몇년전에는 이런 오레오레 사기 금액이 연간 500억엔(약 5000억)에 달할 정도다. 파악되지 않은 금액을 합치면 더욱더 늘어 날수 있다. 그런 오레오레 사기를 지휘하는 자들은 대부분 야쿠자들이다. 야쿠자들이 자금 마련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버젓한 사업체를 운영하기가 어려워져 머릴 싸매고 새로운 사기 수법을 생각해 내는 일본의 야쿠자들에 비해 한국의 조폭들은 나이트 클럽이나 룸살롱 몇개만 가지고 있으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수 있다.
즉, 기업형 조폭들이다. 일본에 비하면 큰욕심만 내지 않으면 먹고 살만한게 한국의 조폭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룸살롱으로 보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지역이 크라운파가 장악하고 있는 이상 룸살롱은 그놈들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어서 오세요. 일행이 있으신지요?"
"혼자야.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룸살롱은 처음이다. 룸으로 안내되어 들어 간곳은 'ㄷ'자 소파와 긴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룸이었다.
"아가씨는 어떻게 할까요?"
"아가씨는 됐고 이곳에 크라운파 녀석이 있으면 불러 줘."
크라운파라는 말에 안내한 아가씨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이곳에 놈들이 상주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냥 보자고 해. 그리고 한상 차려와."
"알겠어요."
잠시후 정장을 입은 떡대 한명이 들어왔다.
"일단 앉아라."
"저어, 누구신지요?"
"알면 다쳐. 너희들 보스를 불러와."
"먼저 누군신지 말씀해 주십시요."
강단이 있는 놈인지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것 같았다. 그렇다고 놈에게 탓할 생각은 없었다. 조폭이라면 이 정도는 강단은 필요했다. 오히려 맘에 들었다.
"횟집에서 찾아 왔다고 하면 알아 들을꺼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듯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놈은 폰을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고 들어왔다. 놈과 동시에 아가씨 한명이 술과 푸짐한 안주를 들고 들어왔다.
"한잔 하자."
놈이 따라준 위스키를 한잔 마셔 보았다. 처음보는 위스키였다. 그럭저럭이었다. 요즈음 입맛이 고급스러워진 탓이었다.
"한잔 할래?"
"감사합니다."
쪼르르.
"이름이 뭐냐?"
"호대호입니다."
앞에서 읽어도 호대호 거꾸로 읽어도 호대호였다. 재미있는 이름이다.
꿀꺽.
"저어, 어느 횟집에서 나오신겁니까?"
"얘길 듣지 못했어?"
"혹시 저희 애들이 실수를 한 부산 횟집라는 곳을 말씀하시는겁니까?"
"알고 있잖아."
이미 알고 있는것 같았다. 조직원들에게 어떤 명령이 하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너희 조직원들은 몇명이냐?"
"음...모두 14명입니다."
"작은 조직이네."
한국의 조직은 군소 조직들이 난립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지역에 따라선 큰조직 아래로 들어가 자신들의 조직을 간간히 유지하며 연명하고 있는 조직들도 많다고 한다. 부산에 있는 작은 조직들은 거의 모두 광역파 아래로 들어 갔다고도 했다. 광역파 보스인 최동혁을 거역할수 없어서였다. 최동혁은 무서운 자로 거역하는 조직은 철저히 박살내 버렸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노크 소리가 들려오며 볼이 퉁퉁부은 덩치가 좋은 놈이 들어왔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런데 얼굴이 왜..."
들어온 형님이라는 자가 한손을 들어 올려 호대호를 제지하고는 켄에게 허릴 숙였다.
"전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애들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됐어. 이미 지난 일이다. 일단 앉아."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은 놈에게 술한잔을 권하며 이름을 물어 보았다. 김장대라는 이름의 크라운파 보스는 광역파의 최동혁에게 불려가 볼떼기가 불이 날 정도로 얻어 터졌다고 했다. 애들 관리를 잘못했다고 얻어 맞은것이다.
"쯧쯧쯧."
김장대는 혀를 차고 있는 눈앞의 이 젊은 놈을 때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만 했다. 이 자 뒤에는 국정원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 직원 둘을 데리고 다닐 정도라면 굉장히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놈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놈을 족칠수는 없었다. 억울해도 참아야만 했다. 새롭게 오픈한 가게에서 상납금을 받아 내는 일은 늘 하는 일이다. 이번엔 재수가 없어 똥 밟았다고 생각하는수 밖에 없었다.
"얼굴을 들고 움직이지마. 고쳐 줄테니까."
"옛?"
"힐링!"
퉁퉁부은 김장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붓기가 가라 안고 평소의 얼굴로 되돌아왔다.
"어? 혀, 형님! 얼굴이..."
"뭐?"
얼굴을 매만지는 김장대는 더이상 아프지도 쓰라리지도 않고 평소의 얼굴로 되돌아 온게 믿기지 않았다. 일순 얼굴에 간지러움을 느꼈지만 어떻게 된것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어, 어떻게 한겁니까?"
"비밀이다."
눈앞의 젊은 놈이 치료를 한것이다. 어떻게 한것인지는 모르지만 얼떨떨하기만했다.
"네 부하 중에 한명을 내가 개인적으로 쓸려고 한다. 운전 잘 하는 얼굴이 평범한 놈을 한명 데려와."
"저어, 무슨 일을 시킬려는지 알수 있겠습니까?"
"내 직원 한명을 장산 마을까지 매일 출퇴근시키는 일이야. 놈에게 월급도 줄꺼야.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놈이라면 더욱 좋아."
"그런 부하라면 적당한 녀석이 있습니다."
부산 횟집으로 다음날 아침 개점 시간에 맞춰 보내라고 말해 두었다. 테이블에 있는 술을 모두 비우고는 일어났다. 볼일이 끝난 이상 횟집으로 돌아가 봐야했다.
"이건 술값이다."
"아닙니다. 절대로 받을수 없습니다."
"너 주는게 아냐. 아가씨들 나눠 줘."
"......"
5만원권 다발로 보이는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 놓는 이 젊은 놈의 배포에 놀라는 한편 더이상 거절할수도 없어 받아 들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해."
늦은 시간이어서 인지 횟집의 손님들은 몇테이블 밖에 없었다. 술 손님들이었다. 홀안을 둘러 보고 있을때 형님이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발생한것 같았다.
"형님! 무슨 일이라고 생긴겁니까?"
"그게 2층 손님들이 와인을 달라고 해서 말이야."
"와인은 가게에 있잖아요?"
"그게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와인을 달라고 해서 말이야."
가게에 와인도 준비해 놓았다. 대부분 저렴한 가격의 와인들이다. 2층 손님들은 와인을 즐겨 마시는지 특별한 와인을 원하고 있는것 같았다.
"제가 올라가 보겠습니다."
2층은 모두 룸으로 되어 있다. 그런 한쪽 룸을 차지하고 있는 3명의 중년인들의 테이블에는 이미 와인이 한병 올려져 있었다. 가게에 있는 평범한 와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특별한 와인을 부탁한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자네는 소믈리에(Sommelier)인가?"
"아닙니다. 이곳 가게 주인 동생입니다."
"그럼 어떤 와인을 가지고왔나? 이곳 주인은 와인을 잘 모르는것 같아서 가장 비싼걸 가져 오라고 했었네."
테이블위에 올려져 있는 와인을 가르키는 중년인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잠시만요."
룸을 나가 복도에서 아공간을 열어 앙리 회장에게서 받은 특별한 와인 한병을 꺼내 들고 와 테이블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자 중년인의 눈이 한끗 커지며 놀라워했다.
"자. 자네 보르드 생테스태프 쉬블림(Bordeaux Saint Estephe Sublime)은 어디서 구한겐가?"
"앙리 회장에게 받았습니다."
"뭐라고? 자네가 앙리 회장을 알고 있다고?"
"앙리 회장이라면 잘 알지."
중년인은 프랑스의 앙리 회장을 잘 아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존대를 할 필요는 없었다.
"프랑스의 B&G 와인 제조 회사의 전직 회장이었던 앙리 회장을 잘 알고 있다고?"
"그래. 잘 알고 있으니까 회장에게 이런 와인을 받을수 있는거잖아."
"그런데 자네 왜 갑자기 반말을 하는겐가?"
불만을 토로하는 중년인은 물론 다른 두명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난 앙리 회장에게도 반말을 하거든."
"크흠, 그 말이 정말인가?"
"그래.믿기지 않으면 전화를 해 볼까?"
"해 보게. 거짓말이라면 각오해야 할걸세."
앙리 회장이 아무나 만날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유명하기나 한건인지 이들이 믿지 못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켄은 모르고 있었지만 프랑스의 와인 업계에서는 앙리 회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 오랜만일세.
"화장품은 잘 팔려?"
- 사교계에 점점 소문이 돌고 있네. 머지않아 큰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될걸세.
"그래? 회장만 믿을께. 그건그렇고 회장하고 통화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바꿔 줄께."
전화를 걸어 보라는 중년인에게 스마트 폰을 넘겨 주었다.
"앙리 회장이야. 통화해 봐."
"아, 알로(Allo.여보세요)?"
얼떨결에 폰을 받아든 중년인은 긴장한듯 말투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통화를 하면서 머릴 굽신거리며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중년인은 불어를 알고 있는지 통화는 모두 불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동안 통화를 한 중년인이 폰을 넘겨 주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겠지?"
- 허허허, 쓸데없는 말이라니. 시간날때 한번 찾아 오게.
"장담은 못하지만 시간 나면 갈께."
전화를 끊자마자 중년인이 곧바로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자네 앙리 회장님과는 어떻게 아는 사인가?"
"앙리 회장과는 서로 돕고 돕는 사이야."
"그, 그럼 회장에게 다리를 놓아 줄수 있나?"
"무슨 다리? 프랑스까지 다리를 놓아 달라고?"
머엉.
썰렁한 농담에 중년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농담이야. 일단 앉아도 되지?"
계속 선채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빈의자에 앉아 무슨 일로 회장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는지 켄도 궁금해졌다.
"일단 한잔하면서 이야길 해 보도록 하지."
오프너를 집어 코르크에 박아 넣을려고 할때였다.
"자, 잠깐만! 안되네. 그 귀한걸 이런곳에서 마실순 없네."
뽕.
"헉! 자, 자네..."
"생각하기 나름이야. 누구에겐 귀하지만 누구에겐 흔한 물이나 마찮가지야. 한잔씩 해."
세명의 중년인에게 와인을 따라 주고 켄도 테이블 아래에서 아공간을 열어 와인잔을 꺼내 한잔 따랐다.
"마셔 봐. 지금까지 한번도 맛 보지 못한 천상의 맛을 느낄수 있을꺼야."
"후우...자네들도 마셔 봐. 그거 한잔에 '억'소리가 날 정도로 비싼거야."
중년인이 동료들에게도 권했다.
"그, 그렇게 비싼거란 말이야?"
"그래. 앙리 회장이 가격은 말하지 않았지만 VVIP들만 상대로 판매를 할거라고 했어. 쉬블림 시음식에 나도 참가를 했었거든. 시음해 본 사람들이 모두 앙리 회장에게 달라 붙어 팔아 달라고 애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을 정도야. 지구에서 숙성시킨 와인중에 최고 와인은 이제 쉬블림이야."
모두들 조심스럽게 와인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중년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켄은 느긋하게 와인을 음미했다.
"그럼 당신은 그 시음식때 처음 앙리 회장을 안거야?"
"성준호일세. 그리고 이 친구는 박천희이고 저 친구는 김동길이네."
성준호는 와인 수입상이고 친구 둘은 제각기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난 핸드라고 부르면 돼."
"핸드? 특이한 이름이군. 별명인가?"
"별호야. 남들이 그렇게 불러."
"그런가? 앙리 회장 회사 사람과 사업상 거래로 몇번 만났을뿐이야. 회장과는 시음식때 잠깐 인사만 나누었을 정도야."
그런 잠깐의 인사만으로 앙리 회장이 성준호를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뭐야? 거의 모르는거나 마찮가지잖아."
"크흠, 뭐 그렇다네."
성준호는 무안해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회장과 친하다면 소개좀 시켜 줄수 없겠나?"
"소개?"
"그렇다네. 회장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어서 그렇다네."
"거래를 하고 있는게 아니었어?"
회장 회사 직원과 몇번 만난적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와인 거래로 만났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거래를 터고 싶어 그렇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성준호는 일시적으로 몇번 거래를 한것이 고작이었다.
"앙리 회장은 B&G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 주고 다른 회사를 차린건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뭐라고? 그, 그게 정말인가?"
앙리 회장은 대체 어떤식으로 와인 시음회를 연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새로운 회사명으로 시음회를 개최한것인지 아니면 예전 회사 이름으로 한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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