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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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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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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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2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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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 편

DUMMY

독고무쌍은 류사의 대답을 듣고 대수롭잖은 사람으로 보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 이제 볼 일을 보았으면 자네들은 갈 길을 가보게나. 여기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고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한지평이 나섰다.


“ 여기까지 왔으니 마마상(媽媽桑)을 만나보고 가게 해주오!”


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독고무쌍이 “흥” 하고 콧방귀를 날렸다.


“ 마마상이 그리 한가한 줄 아느냐? 다음에 만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게!”


그러면서 시연연을 보고.


“ 자! 날 따라오너라!”


손짓하며, 류사와 한지평을 향해서는


“ 자네들은 그만 가보라니까!”


하고 역정을 내며 돌아섰다. 그 사이에 류사가 얼른 독고무쌍의 옆에 달라붙으며 손아귀에 은자 석 냥을 집어 주었다. 독고무쌍은 손에 잡히는 은자의 무게를 가늠해보면서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고 헛기침을 했다.


“ 허! 이 사람들. 끈질기기는! 정히 그렇다면 인사나 드리고 가도록 하게! 하지만 인사만 드리고 곧 가야하네. 알겠는가?”


하고 다짐을 받았다. 한지평이 얼른 말을 받아서.


“ 이를 말씀입니까! 아가씨를 부탁한다는 말씀만 드리고 저희들은 곧 일어나겠습니다.”

언질을 주자 그제야 독고무쌍이 앞서서 계단을 올라 붉은 칠을 한 커다란 대문을 지나 이화원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말자 화려한 치장을 한 삼층 누각이 정면으로 보이고 청석으로 된 보도(步道)가 가운데로 놓여 있었다.


양 옆으로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백 매화가 향을 품어내고 있었다. 정원 안으로는 연못이 파져 있으며, 신선과 선녀의 조각상이 군데군데 서있고 분수가 좌우 양옆으로 물을 뿜었다. 반쯤 문이 열린 대청에는 화려한 조명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간드러진 여인의 교태와 남자들의 음탕한 웃음소리가 시전 바닥처럼 떠들썩했다.


정원 옆으로도 길이 나 있었는데 대숲이 가려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걸어 들어가면 폭이 세 길쯤 되는 물길이 대숲 사이에서 나와 정원으로 흘렀다. 물길 위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다리가 놓였는데 난간을 뱀 몸통 모양으로 꿈틀거리게 하고 양 끝에는 거대한 코브라의 대가리를 조각하였다. 불빛을 받아 불그스름하게 비치는 코브라의 괴기한 아가리를 보자 연연과 아영이 소스라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독고무쌍이 너털웃음을 쳤다.


“ 처음 보는 사람은 다 놀라게 마련이지! 하지만 그저 돌로 만든 형상이니 괘념치 말게나.”


하고 달랬다. 맞은편에 이층 누각이 보였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으나 새어나오는 불빛이 환했고 , 커다란 붉은 등롱이 문설주에 걸려 있었다.


“ 여기는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네. 특별한 손님들의 풍류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 허! 이런 곳을 자네들에게 보일 필요는 없겠지만 오늘은 마마상이 여기 계시니 어쩔 수 없구먼.“


하고는 독고무쌍이 발걸음을 빨리 하며 뒤에서 따라오는 류사 일행을 재촉했다. 돌 다리를 건너자 야차와 나찰이 생동감 있게 조각된 석상이 있고, 그 뒤에 공작새가 화려하게 날개를 편 모습을 양각한 추녀 밑에 아치형의 벽돌로 된 문이 열려 있었다. 덩치 큰 사내 둘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가, 독고무쌍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안에 마마님 계시느냐?”


독고무쌍이 묻자 왼편에 선 사내가 얼른 두 손을 모으고 답했다.


“ 한 식경 전부터 화청(花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독고무쌍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연 일행에게 따라 오라는 손짓을 했다. 청석을 깔아놓은 길을 잠깐 걸으니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긴 낭하(廊下)가 이어졌다. 그 곳은 별천지였다. 야명주가 휘황하게 천정에 걸려 사방을 밝히고, 오른 편에는 남녀 간의 정사를 그린 춘화가 벽에 그려져 있으며, 왼편으로는 수족관이 있었다.


왼쪽 벽면 낭하를 따라서 유리관을 만들고, 그 안에 수초(水草)와 기이한 돌들이 쌓여 있는데 풀 사이로 금붕어와 황금잉어가 돌아다녔다, 더욱 황당한 일은 말로만 듣던 인어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수족관 안에서 헤엄치다 빤히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은 노랗게 물들였고, 얼굴은 갸름한데 눈은 갈색 눈동자에 초승달처럼 휘어진 미인이었다. 다리는 황금색 비늘을 입힌 양 갈래진 꼬리로 물을 휘젓고 다녔다.


시연연과 아영은 물론이고 류사와 한지평도 어안이 벙벙해져 말문이 막혔다. 그들 옆으로 초록색 비단 치마저고리를 걸친 여인들이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며 지나갔다. 독고무쌍은 시연연 일행의 놀라는 모습을 돌아보고 빙그레 웃음을 띄었다.


“그대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오! 여기는 이화원의 자랑인 지옥도라는 곳이오!”


류사가 독고무쌍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화류장(花柳場)에 지옥도(地獄道)가 웬 말이오?”


하자, 독고무쌍이 당연히 그러리라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 여기 누각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는 줄 아는가?”


하고 되물었다.


“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류사가 말을 흐리자, 독고무쌍이 의기양양하게.


“ 이 누각이야말로 당세에 짝이 없는 화류계의 기물(奇物) 이라네. 이 누각의 이름은 명부전이라 하며, 일반 기루(妓樓 )에서 놀다 지쳐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한량들을 위해 각별한 즐거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곳이라네. 이화원의 진짜 재미란 여기서 다 이루어진다고 보면 되네!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어서 가진 재물이나 명줄을 다 쏟아도, 쾌락의 다함을 어디에서 찾을 텐가?”


류사가 속뜻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쉬었다. 독고무쌍은 말을 계속하였다.


“ 쾌락의 끝이란 자기를 학대하는 것이라네! 대체로 즐거움이란 자신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네. 살리고 죽이는 것이 모두 명부전에 있으니 그 지독한 쾌락이란 격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네!”


하고는 이윽히 그들을 바라보며.


“ 자! 이제 그만가지!”


하면서 복도를 걸어 왼편으로 돌았다. 그 지점에서 수족관은 끝나고 두터운 카펫이 깔린 복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곧 바른편으로 등근 원형의 문이 있는 방 앞에 서서 독고무쌍이 공손히 알렸다.


“ 마마상! 정주 시가의 여식을 데리고 왔는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곧 우아한 목소리가.


“ 어서 들어오게!”


하고 명했다. 독고무쌍이 그들을 돌아보며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고는 방문을 옆으로 밀었다.

방안에는 향을 피워 은은한 기운이 감도는데 가운데에 둥근 탁자가 있고, 그 앞에 궁장을 한 수려한 얼굴의 미녀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다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좌우에는 시녀 복장을 한 젊은 여인 둘이 시립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의 미모도 보통이 아니었다. 마마상은 턱이 살짝 네모져 강인한 인상을 주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품위를 높이고 결단력이 있는 인상을 주었다. 방안으로 들어서며, 독고무쌍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시연연을 가리켰다.


“ 마마님! 여기 이 사람이 시가의 여식이고, 그 옆은 시가의 종복입니다.”


하다가 다시 류사를 쳐다보면서.


“ 이 사람은 시가의 일가라고 합니다.”


하고 소개했다. 그러자 류사가 앞으로 나서며.


“ 소생은 시씨 가문이 아니라 성은 류 이름은 사라하며 금릉 사람이오이다."


라고 정중하게 자신을 알렸다. 그러면서.


“ 소생이 독고 지배인에게 시 씨 일가라고 한 것은, 마마를 만나 보고자 방편 상 그리한 것이니, 너무 질책하지 말아 주시길 바라오!”


하고 점잖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수려한 얼굴의 미녀는 류사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잠시 쳐다보고는, 시연 연을 향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아가야! 이제 그만 면사를 벗으려무나.”


하자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는지 시연 연은 겁에 질려 발발 떨리는 손으로 면사를 얼굴에서 끌렀다. 그러자 화려한 얼굴의 시연연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마마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어서 본 모습을 보이지 못할까?”


호령하니 한지평과 아영도 당황하고, 시연 연은 놀라서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목덜미를 만지며 면구(面具)를 벗었다. 그녀가 다시 돌아서는 순간 류사는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얼굴은 좀 전에 보던 시연연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절대의 미모와 마주선 것과 같은 완벽함이었다.


희고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피부며, 서늘하면서도 가늘게 휘어지는 눈매, 날렵하게 솟은 콧날과 오목한 볼우물, 붉고 짙은 입술이며, 가장자리가 살짝 위로 솟은 탄력 있는 입매, 가을하늘 같이 서늘하고 반듯한 이마. 그리고 어느 한군데 모난 구석 없는 유려한 얼굴의 윤곽. 당당하게 우뚝 솟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엉덩이, 그에 더해 후리후리한 키는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도 힘든 경국지색이었다. 그녀는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가득 담고, 황당해서 쳐다보는 류사를 향해 눈을 살짝 흘겼다. 독고무쌍도 어이가 없었는지 한참 쳐다보다, 마마상의 질책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지배인은 그만 나가보게!”


그러자 독고무쌍이 몸을 움츠리며 인사하고 뒤로 돌아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한지평이 앞으로 나서며 변명했다.


“마마님 ! 우리 아가씨가 얼굴을 숨긴 것은 마마님을 속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 길을 오는 도중에 사내들의 희롱을 면하고자 함이니 널리 양해하여 주십시요!”


그러자 마마상이 아무 말 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젓고는 다시 한 번 시연연을 요모조모 살피더니 탄성을 울렸다.


“ 내가 이 생활을 한지 삼십년이 되어가나 이런 우물(尤物)을 본 적이 없네! 과연 소문이란 헛되지만은 않군 그래!”


하고 말을 잠시 멈추더니 다시.


“ 실은 시언휘 영감이 해를 입은 것은 저 아이 때문이기도 하네! 정주의 지부란 놈이 저 아이의 미모를 탐하여 몇 번 달라는 것을 주지 않았더니 표판관과 같이 짜고 결국 시영감 댁을 풍비박산 내었지. 내가 구하지 않았으면 저 아이도 살지 못했을 걸세!”


그러자 시연연의 얼굴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마마상이 시비를 시켜 시연연을 벽에 붙어있던 와상(臥床)으로 옮겨 달래도록 했다. 그리고는 혼잣말 하듯이.


“ 저 정도 미모의 여인은 일생을 결코 평탄하게 살지 못하네! 서시나 왕소군의 경우를 보게나! 하늘이 질투하는 게야. 옛 사람 말에 가인박명(佳人薄明)이라 일렀으니 틀린 것이 없네! 한 사람의 여인으로 살기에는 미모가 너무 출중해.”


그러더니 문득 한지평을 향하여.


“ 그래!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갈 텐가?”


하고 물었다. 한지평은 우물쭈물하면서.


“ 저는 본래 사천 성도 사람이온데, 떠나 온지 오래되나 달리 갈 곳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하니 마마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 고향이라 하나 달리 믿을만한 친척이 없으면 설움 받는 것은 마찬가지 일 테니, 우리 집에서 사는 것이 어떻겠나! 자네가 시 영감 집에서 충직히 일한 것으로 알고 있네만!”

한지평이 그런 제안을 받자 갑자기 희색이 만면하여.


“ 그리해 주신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시켜 주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으니 아가씨를 가까이 볼 수 있게만 해 주십시오!”


마마상이 하하! 웃으며.


“ 그리하도록 하지! 알아보고 적당한 일자리를 내어 주겠네!”


그러자 아영이 기뻐하며 한지평의 손을 꽉 잡았다. 둘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미한 웃음을 머금던 마마상이 류사를 돌아보고 물었다.


“ 그래! 자넨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였는가?”


류사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앞으로 나서며.


“ 실은 소생이 생각한 것은 저기 시연연 아가씨를 방면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오이다.”


이번엔 마마상이 너무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연연과 한지평도 놀랐다.


“ 무어라 하였는가? 자네!”


류사가 또박또박 잘라서 말했다.


“ 시연연 아가씨를 놓아주시길 바라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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