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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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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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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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 #3. 상경회령부 3 >

DUMMY

당황한 호위대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무슨 망신인가?


주변의 병사들이 달려와 겸이를 강제로 내리눌러 땅에 꿇렸다. 그리고는 뒤에서 조아리고 있던 류와 달봉마저 끌고 와 옆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호위대장은 언월도를 번쩍 들어 겸이부터 목을 베려 했다. 병사들은 피가 튀기며 머리통 네 개가 굴러다닐 생각에 인상을 썼다.


하지만 차분한 완안명의 말이 참사를 멈추게 했다.


“그만, 녀석들을 집으로 데려와라.”


완안명은 더는 말하지 않고 차양을 쳤다. 소명은 피를 보는걸 좋아하지 않지만, 법도를 중시하는 아버지를 알기에 의아했다. 감히 좌승상의 앞을 가로막은 자들이다.


“아버지. 왜 그리 자비를 베푸시나요?”


“사연이 있는 거 같으니 얘기는 들어주지. 평민들이 쳐다보는데 피를 뿌리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아···.”


“정원에 피가 넘치는 것도 눈살 찌푸릴 일이지만 잘 치우면 되겠지.”


나중에라도 죄를 물으면 된다는 완안명의 말에 소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하지만 완안명은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장걸은 그래도 서북에서 힘깨나 쓴다는 녀석이다. 한 손으로 막아? 그걸? 그래······. 별로 세지 않을 수도 있어. 장걸이 녀석이 신경 쓰지 않고 베어 버리려 했으니 힘을 많이 안 준거일 수도 있다. 그 정도라도 벨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하지만 완안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의 헐렁하고 넓은 옷으로 커다란 근육을 감추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힘만 센 게 아니다. 짧은 거리지만 달려와 받아낼 때의 수완 또한 뛰어났다.


분명 무예를 제대로 배운 자다.



****



“무슨 집에 이런 감옥이 있는 거지?”


정원 구석진 곳에 있는 별채는 들어서자마자 두꺼운 나무로 창살이 되어 있었다. 병사들은 창이 일행을 짐짝 던지듯 집어던지고는 자물쇠를 채우고 나갔다. 마지막에 나서던 호위대장은 잠시 겸이를 바라보며 인상을 쓰다가 나갔다.


잔뜩 성난 모습이 쉽게 놔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봐, 도련님. 미친 녀석처럼 나서면 어쩌자는 거야? 목 달아날 뻔했잖아.”


겸이가 손뼈를 다친 듯 벌겋게 부어오르는 손바닥을 매만지며 얘기하자, 류가 다가와 손을 살폈다.


“좌승상이다. 저 사람하고 얘기만 잘된다면 분명 황제를 볼 수 있을 거야. 집사도 그리 말하지 않았나?”


“그···. 그건 그렇지만 그리 뛰어나가실 줄 몰랐습니다. 성급하기는 했습니다.”


창이의 닦달에 여러 관리를 찾아 나섰지만, 성과가 별로 없었다.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아니면 넌지시 넘긴 패물만 뺏겼다. 그러다 거리에서 꽤 큰 행렬이 좌승상이란 걸 알자마자 창이에 얘기한 것뿐이다.


방에서 식사하던 창이가 신발도 챙겨 신지 않고 달려나갈 줄 그도 몰랐다.


“어쨌든 제대로 얘기 드린다면 무례는 용서하실 거다. 나도 귀족이다. 귀족끼리는 다른 나라라 해도 서로 통하는 게 있는 법이야.”


무슨 자신감인지···. 겸이와 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반년 가까운 생활에도 전혀 세상을 모르고 있었다.



***



“저는 고려 서경유수이자 병부상서였던 조위총의 아들, 조창이라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조아린 채 창이는 힘주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가슴속 한탄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고 있었는가? 허송세월로 시간만 보내던 창이는 꿈꿀 때마다 읊조리던 얘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완안명은 의자에 걸터앉은 채 차를 마시며 귀만 기울이고 있었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음이 다급해진 창이의 말은 더 빨라졌다.


“아시겠지만, 고려에는 난신적자들이 판을 치기 시작해 왕을 죽이고, 가짜 왕을 세워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그걸 바로잡으시고자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일으키셨습니다.”


흥분하기 시작한 애송이의 말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완안명은 그냥 홀짝거리며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다. 간간이 향취를 즐기듯 눈을 감고 음미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창이는 애가 가득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상황이 좋지 않아 패배하시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형님의 나라인 대금제국에 알려드리는 게 도리라 생각하시어···.”


완안명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돌았다. 분명 고려의 사신이 온 적이 있었다. 조정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는 했다. 금나라의 주변에 있는 송, 서하, 몽골, 고려의 일은 어떻게든 금의 위업에 영향을 줄 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몇몇 전쟁광인 녀석들이 군대를 보내자 목소리를 올렸지만, 완안명은 반대했었다. 남송과 대치하는 것만으로도 재정이 빠듯했다. 게다가 몽골 녀석들이 점점 세력을 키워가고 있어 걱정이 커졌다. 큰 부족이 나서서 통일이라도 이룰까 작은 부족 여러 개를 지원해 싸움을 시키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미친 선황제가 이리저리 전비를 탕진하지만 않았어도······.


게다가 고려는 쉽지 않다. 금의 기병들이 날뛸 평야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성채가 곳곳에 서 있다. 그리고 얼마나 독한 것들인가? 고려를 쳤다가 무너진 왕조가 몇 개더냐? 분명 수렁에 빠지듯 발목이 잡혀 허우적댈 거고 그걸 보면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송이 올라올 것이다.


그러면 금이 위험하다. 그의 의견에 대부분 신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고려는 놔두기로 결정 내렸고, 새로운 왕을 인정한다는 뜻을 넌지시 알리기까지 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녀석은 나에게 찾아와 자기 아비의 일을 고하고 있다. 이 얼마나 우습나?


창이는 완안명의 얕은 미소에 자신의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는 오해를 해 더 열띠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그의 말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게 내 앞을 막은 이유더냐? 그렇다면 목을 베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구나.”


찻잔을 내려놓고 완안명은 일어나 꾸짖듯이 말했다. 돌변한 완안명의 목소리에 창이는 몸서리치며 떨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내 눈을 봐라. 그깟 고려일에 내 심중을 어지럽히다니 얼마나 무례했는지 모르겠느냐?”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창이에 다시 호통을 치자 창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창이의 얼굴을 보자, 완안명의 머릿속에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지금의 난제를 이 녀석과 저 무예가를 엮으면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빠르게 머리가 돌기 시작한다. 작금의 황제인 세종이 언제나 하시던 말씀이 있지 않은가?


‘유방에게는 장자방이······. 나에겐 완안명이 있지 않은가?’


그 칭찬에 완안명은 정색하며 ‘장자방처럼 토사구팽하시렵니까?’라고 물었었지. 그러자 미안하다며 은상을 내리셨던 사람이다. 그래 세종의 꾀주머니가 바로 자신이 아닌가?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는 계산을 마쳤다. 이 묘수는 통할 것이다.


“그러나, 난 관대한 사람이다. 너에게 기회를 한번 주도록 하지. 황제 폐하는 힘들어도 그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분과 연을 맺도록 말이야.”


“가···. 감사합니다.”


창이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옆에 같이 꿇려진 겸이와 류는 이런 식으로 풀린다며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물론 기회라고 했다. 얼마나 너희가 잘하는지에 따라서 잡을 수 있는 거지.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다.”


“....네? 어떤 걸 잘하면 말입니까?”


완안명은 눈을 돌려 겸이를 봤다. 창이는 무시한 채 겸이를 이곳저곳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는 호위대장 장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좌승상의 저 눈빛은 사람이 마음에 들 때 하는 표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자신의 자리에 저 촌뜨기 녀석이 앉아 거들먹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네를 지키는 저 수하, 무예를 잘하나?”


창이는 좌승상의 기분이 상할까 급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치켜세워야 기분이 풀릴 그것으로 생각하고 말이다.


“아···. 아닙니다. 좀 창을 다루나, 좌승상 나리의 수하들만 하겠습니까? 아까는 우연이었습니다.”

창이의 말에 겸이는 살짝 코웃음을 치며 어이없어했다. 그 우연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도 못 하는 건가?


“아니···. 잘 해야 할 걸세.”


“네?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소개해드릴 분이 무예를 좋아한다네. 그래서 두 달에 한 번씩 대회를 여시지. 그때 저 녀석이 나가도록 주선하려 하는 거네.”


“대회라는 게?”


“우승한다면 그분의 눈에 들 거고, 수하가 되겠지. 그때 저 녀석을 넘기면서 소소한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들어주실 거네······. 그 전에는 눈도 못 마주치겠지만 말이야.”


겸이는 가득 짜증 난 표정으로 창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넘기면서’라는 말이 기분을 버리게 만든 것이다. 이제 아비와 약속한 날짜도 그리 남지 않았는데······. 말만 들어서는 팔려가는 게 아닌가?


겸이의 표정을 알아챈 완안명은 웃으며 다정스레 얘기했다.


“말이 좀 그랬나? 모실만한 분이야. 그분만 잘 모시면 자네도 대장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걸세···. 하하하”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군. 겸이의 표정도 좀 풀리기 시작했고, 류도 형이 대장군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니 눈이 반짝거렸다.


“그···. 그분이 누구신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폐하의 둘째 아드님인 조왕 완안숙련님이라네. 하하하”


창이가 조심스레 여쭈자 완안명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 말에 창이는 가슴속 맺혔던 게 내려가는 듯했다. 둘째 황자······. 세상일이 모르니 다음번 황제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도움만 받는다면 복수 할 수 있을 것이다. 창이도 완안명을 따라 웃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다만, 수준도 안 되는 녀석이라면 내가 데리고 갈 수 없지. 내 명성이라는 게 있는데······. 장걸! 이 녀석과 한번 겨뤄보게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장걸이란 불린 호위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쭉정이라면 빨리 쳐내는 게 농사에 도움이 되지. 진다면 목을 베어 대로변에 버려 버릴 테다. 나머지 놈들도 모두 말이야.”


갑작스레 말투가 바뀌었다. 서슬 퍼런 완안명의 말에 창이는 웃음을 거뒀다.


하지만 겸이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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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4 6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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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27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0 6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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