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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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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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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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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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5
추천
107
글자
8쪽

< #8. 맘루크 2-2 >

DUMMY

“가라! 저 요새를 나에게 다오. 나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이여!”


하지즈는 이맘의 암송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서 진격을 명령했다. 하지즈의 외침에 병사들은 모두 카펫 옆에 놓아두었던 무기를 들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처량한 듯 밤을 가르던 이맘의 가락이 끝나자마자 평원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신을 찬미하던 목소리는 병사들의 욕설로 바뀌었다. 경건하게 하늘을 바라보던 순한 눈빛은 먹이를 앞둔 승냥이의 노란 눈빛으로 변해버렸다.


"우와와아!"


병사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요새의 해자를 건널 때까지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분명 쇠뇌에 십여 명은 죽어 나갈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분을 억누르지 않고 쏟아냈다. 사흘 동안 시달린 분풀이를 지금 한껏 쏟아내는 것이다. 두툼한 칼날로 녀석들의 머리를 짓이기겠다는 한풀이였다.


하지즈는 병사를 독려하며 달려나가다 점점 걸음을 늦췄다.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지만, 쇠뇌를 피하려 미친 듯이 달려드는 병사와 보조를 맞추기는 애당초 무리였다.


헉헉대며 양 무릎에 손을 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하지즈의 눈에는 아직도 문은 굳건하게 닫혀있었다. 선두는 벌써 해자를 뛰어넘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제발! 이 녀석. 널 아껴주겠다. 어서. 어서 열어라!"


하지즈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날아오는 건 화살뿐이었다. 화들짝 놀란 하지즈는 부리나케 몸을 피했다.


하지즈가 있던 주변에 화살이 터억하는 소리를 내며 땅에 박혔다. 하지즈는 아직도 귓가로 들리는 ‘쌔애액’ 소리에 몸서리치면서 부리나케 진지 쪽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계속 아쉬움이 남아 몇 번이나 뒤돌아 문이 열렸는지 힐끔거렸다.




***




초병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린 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분위기를 살폈다. 거의 끝나가는 기도 소리가 아무 변함이 없는 게 적들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류는 먼저 나서서 문을 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적들이 달려드는 병사들에 신경을 쓸 때 그때가 움직일 시간인 것이다. 그제야 목이 잘려나간 병사의 앳된 얼굴을 바라본 류는 씁쓸했다. 멍하니 움직임 없이 류를 쳐다보는 눈길이 보기 싫었다.


류는 병사가 애지중지했을 융단 위로 시체를 끌어올리고는 둘둘 말아버렸다. 그 후에 횃불이 활활 타오르는 부근 어두운 곳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원래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등잔 밑에 가까울수록 찾기 힘들다고. 그러고는 곁의 낮은 턱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기도는 이제 절정을 향해 달렸다. 이들의 말은 잘 들으면 노래 같다. 흥얼거림이 남다르다. 류도 이맘의 말을 조용히 따라 읊다가 그쳤다. 평원에서 하지즈의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망루에서 막 기도를 마친 초병이 비명을 지르며 동료들에게 경고했다. 그러자 요새 안에선 당황한 병사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수들은 성벽으로!”


문을 경계로 나눠진 양쪽 벽에 각기 열 명 정도의 궁수가 급하게 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망루에서 쇠뇌를 쏘던 궁수들은 불화살을 당겨 이리저리 쏴대기 시작했다. 우리가 야습할지 몰라 기름을 묻힌 짚더미를 이리저리 바깥에 놔뒀나 보다. 불길이 일렁거리며 솟아오르자 달려드는 병사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겨라!”


궁수들을 지휘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년 병사가 외치자 모두 화살을 시위에 걸고는 대기하기 시작했다.


“쏴라!”


동시에 스무 개의 화살이 날아들자 병사들의 욕설 사이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패를 눈앞에 두고 뛰던 병사들은 앞선 이가 쓰러져도 모르고 밟기 일쑤였다.


‘망루 두 개에 쇠뇌가 셋씩, 여섯 명. 아마도 장전하는 녀석도 하나씩은 붙어 있겠지. 그러면 열둘. 성벽에 궁수가 스물, 창을 들고 사다리를 막을 초병들이 열 명······. 그러면 문에는 많아야 여덟이구나.“


우습게도 류의 위장이 얼마나 철저했고, 궁수들이 경황이 없었는지 류가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곳에 둘이나 서 있었다. 그들은 연신 세워둔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는데 정신없을 뿐 고개만 조금 돌리면 마주칠 눈동자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조금···. 조금···. 조금만 더.‘


류의 귀에 동료들이 성문에 도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다리를 아직 걸치지는 못했지만, 궁수들이 몸을 내밀고 화살을 땅으로 내리꽂는 것을 보아 도착한 게 틀림없었다. 류는 몸을 숙인 채 튀어나가며 검으로 양쪽의 궁수를 한꺼번에 베어내고는 훌쩍 벽에서 뛰어내렸다.


충격을 받지 않으려 몸을 구르며 일어선 류의 눈에는 문 쪽에 창과 방패를 든 일곱 명의 병사들이 초조하게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류는 낮게 물 위를 나는 제비처럼 달렸다. 류의 발걸음 소리에 한 녀석이 고개를 돌려봤지만, 어느새 류는 병사들 사이로 들어와 버렸다. 류는 정신없이 이리저리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방패 밑에 드러난 한 녀석의 발을 내려찍고는 검을 돌려 겨드랑이 사이로 뒤 녀석의 가슴팍에 꽂아버렸다. 발을 다친 녀석이 고통에 방패를 내려뜨리자 어느새 뽑아낸 검이 녀석의 정수리를 조각내버렸다. 사슬을 엮은 면갑이 쪼개지며 불꽃이 튀어 올랐다.


아름답다. 류는 찰나의 순간, 그렇게 느껴버렸다.


갑자기 뛰어든 류가 순식간에 둘을 죽여도 병사들은 긴 창을 지르지 못했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류의 신영에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고 잘못하다가는 동료를 찌를 판이었으니 말이다.


당황만 하다가 둘이 더 쓰러지자 한 병사가 창을 버리고 검을 뽑았다. 그러자 다른 병사 둘도 그를 따라 검을 뽑으려 했다. 한 녀석은 검을 뽑고 류를 노려봤지만, 한 녀석은 검도 뽑지 못한 채 잘려나간 손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 녀석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 버린 류는 협공을 당하지 않으려 눈앞의 병사를 몰아붙였다. 검술이 그나마 나은 녀석이라 세 합이나 류의 공격을 버텨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네 번째 검이 얽힐 때 녀석의 목에 검을 찔러 넣어버렸다.


그때 등 뒤를 노리던 녀석의 검이 류의 어깻죽지를 내리쳤다. 순간 고통에 눈앞에 별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승부는 찰나기에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목을 노렸어야지! 병신아!“


목에 박힌 검을 뽑아 돌면서 류는 주저앉았다. 검은 둥그런 궤적을 만들었고 류를 내리친 녀석의 허리를 감아 돌았다. 사슬갑옷을 입었음에도 류의 검은 두껍고 날카롭고 강했다. 갈비뼈가 부서지는 우두둑 소리에 이어 내장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이어졌고, 조금 저항하듯이 버티던 척추도 으스러뜨렸다. 그 뒤로는 쉬웠다.


하늘로 조각난 사슬 조각이 흩뿌려져 튀었고, 녀석은 반 토막 난 채 피를 뿜어낼 뿐이었다.



***



”제발, 신이시여!“


손을 모으고 안절부절못하는 하지즈의 눈에는 벌써 선두의 병사들이 쓰러져 우왕좌왕하는 게 보였다.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를 겹쳐 들고 버텼지만, 망루에서 쏴대는 쇠뇌는 방패 따위는 무시하고 병사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벌써 스물은 죽어 나간 것 같다. 발을 동동 구르던 하지즈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다시 신을 불렀다. 그때 화답하듯이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며 병사들은 힘을 내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즈는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건해야 할 기도에 계속 잡념이 끼어들었다.


’녀석, 잡아야 한다. 저 녀석만 가지고 있으면 나도 아미르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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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1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1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27 7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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