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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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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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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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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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 #13. 낙성(落城) 8 >

DUMMY

살라흐앗딘의 재촉에 발리앙은 항복조건을 수락할 수 없다고 정중히 말했다. 살라흐앗딘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를 돌려보내며 말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시작이네."


발리앙은 돌아와 류에게 말을 건넸고 둘은 성벽에 올라 적의 군대가 진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역시 남문이 주력인 것처럼 사다리차를 모았어. 다른 곳에 병력은 줄이고 말이야. 우리도 깃발을 잔뜩 세우고 남문의 수비를 강화한 것처럼 꾸몄고······. 그런데 진짜 동문인가?"


"분명해. 적의 진을 보면 기병들의 수가 동쪽이 더 많이 배치되어 있어. 하마드가 길을 열면 바로 저들이 넓히겠지."


류는 단정 짓고는 내일 전투를 위해 다시 동문 수비상황을 살피러 갔다. 제러미의 공사는 거의 끝맺음을 했고 더불어 여기저기 흩어있던 기사들 중 싸울만한 이들은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몽, 조슈아. 그리고 가장 믿을만한 알폰소.


"어떻게 할 거야? 그냥 창 들고 버티기?"


"어떻게 되겠지. 성벽에는 수가 많은 것처럼 하고 망루 주변은 사람을 빼버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류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을 방책 앞에 몰아놓고 그 곁에 주저앉았다. 커다란 모포를 몸에 칭칭 두르고는 앉은 채 잠을 자기 시작했다.


"자···. 자는 거야?"


알폰소는 혀를 차며 모포를 가져다가 류의 곁에 누웠다. 알폰소는 넉살 좋게 코까지 골아대며 자는 류에게 놀랍다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 눈을 감았다.



***



차가운 밤바람이 멎고 스멀거리며 어디선가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다. 류는 일어서서 몸을 움직이며 풀었다. 아직 어둑했지만, 곧 해가 뜰 걸 몸이 알아챘으니 말이다.


류는 발길질해 아직도 잠에서 깨지 못한 알폰소를 깨웠다.


"갑옷이나 입혀줘."


알폰소는 눈을 비비고 멍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사슬갑옷을 머리부터 넣어주기 시작했다. 류의 갑옷은 예전에 하지즈가 공들여 만든 것으로 사슬갑옷 위에 서코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철판을 두들겨 만든 판갑도 몇 군데 조여야 했기에 알폰소의 도움이 필요했다.


"젠장,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겠어?"


"관절을 빼고 입으니까 상관없다. 그리고 무거운 사슬갑옷을 칭칭 덮지 않잖아. 오히려 짧아서 가볍기도 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제러미와 동료들은 그들의 담대함에 혀를 내둘렀다. 갑옷을 다 입은 류가 알폰소를 돕기 시작할 때, 성벽 너머로 무슬림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이군."


"그래···. 살아 남아보세나."


류는 말에 올라탔고 때마침 세상을 가득 울렸던 기도 소리가 뚝 끊겼다.


"온다!"



***



류의 말이 끝나자 망루가 흔들거리다가 쑤욱 땅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성벽 일부와 그 중간에 우뚝 서 있던 망루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곧이어 무너진 돌덩이를 짓밟고 기병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얀 옷을 입은 하마드의 기병들이 가슴의 갑옷에 검을 두들기며 달려들었다.


앞열에 선 하마드와 알마릭. 그리고 조금 뒤의 하지즈. 류는 순식간에 그들을 찾아냈다. 그들도 들어서자마자 안에 방어선이 쳐진 걸 보고 놀랐으나 곧 그 앞의 류와 눈이 마주쳤다.


'하마드, 뒤에 있으라니까······.'


하지만 놓아둘 순 없었다. 류는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방책 뒤에서 몸을 드러낸 궁수들이 활을 매섭게 당겼다. 석궁병이 쉬지 않고 석궁을 넘겨받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순식간에 대열의 선두가 무너져버렸다.


성벽 위를 달려 무너진 틈 주변에 도착한 병사들이 자루에서 철질려를 꺼내 바닥에 던져넣었다. 말들이 비명을 지른다. 입구부터 쓰러져 엉켜버리는 기병들이 많았다.


곧이어 적들도 활을 당기며 성벽을 견제하고 계속 병사를 밀어 넣었다. 방책을 꿰뚫으러 달리던 말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병사를 토해내듯 땅에 떨궜다.


발목이 꺾여버린 말들의 비명이 구슬펐다. 결국 작은 해자들은 말들과 병사들의 시체로 메워졌고 그 위를 짓밟으며 기병들이 넘어 들어왔다.


"류!"


알마릭이 류를 마주하고는 검을 내밀었다. 류는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거세게 달려오는 알마릭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극을 들어 옆구리에 들었다. 알마릭이 고성을 지르며 류에게 달려온다. 그도 알고 있다. 이 방어선의 책임자는 류. 가장 강한 적은 류. 그의 주군을 위협하는 건 류라고 말이다.


알마릭의 말이 다가올수록 류는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달려오던 알마릭이 옆에서 찔러오는 장창에 주춤거렸다. 높은 곳에서 내려찍은 검이 십자군 병사의 투구를 내려치며 흘러서 어깨를 갈랐다. 그 순간 반대쪽에서 찌른 창이 알마릭의 옆구리에 박혔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그는 버텨내며 검을 다시 반대쪽으로 내리쳐 상대의 창을 잘랐다. 상처 입은 맹수에게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다행이다.'


온몸에 창이 박히는 알마릭을 보며 류는 그렇게 속삭였다. 안타깝지만 자신이 베기도 싫은 상황. 어떻게든 이렇게 돼버렸다. 기병대의 대장 역할을 하던 알마릭이 공격받자 적들은 더 힘을 내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방책에선 계속 화살을 쏟아부으며 긴 창을 여러 겹 들어 버텼고 맥없이 기병들이 쓰러져갔다. 방책 앞에 쓰러진 무슬림은 허리를 굽히며 기다리던 십자군 병사들의 도끼와 망치질에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공격하라!"


다시 하마드의 고함이 외쳐졌다. 기병들은 무리를 지어 덩어리째 방책을 부수고 뛰어들었다. 난전의 한가운데 류는 계속 극을 휘둘러 피 보라를 일으켰다. 방책을 넘어선 기병들은 말이 공격받자 몸을 날려 십자군 병사들을 껴안았다. 쿠란을 암송하며 버티는 그들의 등에 동료들이 검을 찍었다.


적도 아군도, 그리고 나도 없다.


"궁수는 모두 저 사람을 노려라!"


입에서 단내가 풍겨오던 류는 극을 들어 하마드를 가리켰다. 외치기 싫은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 하마드는 너무 앞으로 나와 있었다.


주변의 기병들이 말을 몰아 하마드를 감쌌다. 화살 비가 쏟아져 두꺼운 하마드의 갑옷을 한 겹씩 벗겨나갔다. 하마드는 두 손을 움켜쥔 채 쓰러지는 수하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알마릭은 하마드를 향해 손을 뻗으며 도망치라 외쳤다. 그런 그의 등에 커다란 도끼 창이 내려 찍혔다.


하마드는 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이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만 류의 눈에 들어왔다. 하마드는 얘기했다.


'어서······.'


하마드의 가슴에는 매정한 화살들이 꽂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적의 기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처 입고 혼란스러운 맹수들은 오히려 사냥하기 쉬웠다.


하마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



하마드의 옷자락에는 여러 개의 화살이 꽂혀있었다.


하얀 옷을 붉게 물들이며 피가 번지고 있었다. 적들은 주인을 지키고자 애쓰며 달려들었지만 피해만 커지고 있었다.


류는 달려가 하마드를 안았다. 전투는 끝나가고 있었다. 알마릭의 시체와 사로잡힌 하마드를 바라본 하지즈는 이를 악물더니 병사들에게 퇴각을 명령했다.


하마드의 군대는 들어올 때보다 나설 때 더 큰 피해를 보았다. 몸을 바짝 누이고 말을 달려도 철질려를 밟고 말이 발버둥을 치면 뒤의 기병도 같이 엉켜 넘어져 버렸다.


뒤에서 쏟아지는 석궁과 활이 등을 꿰뚫었고 남은 성벽 위에도 어느새 올라선 병사들이 돌덩이를 들어 던졌다. 좁은 틈에 몰려있던 무슬림 병사들을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던지면 퍼석 소리와 함께 입에 거품을 물고 버둥거리며 동료들에게 밟혀버릴 뿐이었다.


하지즈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류를 쳐다보다가 결국 부서진 성벽을 넘어섰다.


"하···. 하마드, 어찌 선두에 선 것입니까?"


류는 품 안의 하마드에게 원망을 담아 물었다. 그가 밉지 않았었다. 죽이고 싶지 않던 인물이 결국 자신의 품에서 숨을 거둬가고 있다.


"귀찮아. 너무 오래 살았네······. 너무······."


"그래도?"


류는 그의 어깨를 움켜쥐면서 소리치다가 쿨럭거리는 모습에 움찔했다.


"날 하람 알 샤리프(고귀한 성소)의 알아크사(무슬림 모스크)에 데려다주게.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네. 꼭···."


류는 하마드를 조심스레 안아 말에 얹었다. 그 말고삐를 붙잡은 류는 말을 끌어 그가 원하던 알 아크사로 향했다. 무슬림이나 기독교인이나 모두 성전의 산(템플 마운틴)이라고 부르는 그곳에 알 아크사가 있었다.


무슬림들은 이곳을 그들의 3대 성지중 하나라 칭했다.


류는 하마드를 말에서 내려 가슴팍에 안아 들었다. 하마드는 거대한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초라한 늙은이다. 언제나 살라흐앗딘을 위해 몸을 혹사하던 그는 지금 뼈만 남은 늙은이가 돼버렸다.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던 류는 전쟁으로 무슬림들이 모두 흩어진 줄 알았으나 누군가 나와 앞을 막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이 든 이맘이었다. 아마도 분풀이하려는 기독교도들에게서 이곳을 지키려 남은 것인듯했다.


"난, 아신의 하마드 알 아신입니다. 순례를 왔습니다."


류의 가슴팍의 하마드가 힘겹게 말하자, 이맘은 잠시 고민하다가 사원의 문을 열었다. 하마드의 가슴팍에서 흐르던 피가 성소에 한 방울씩 떨어져 갔다.


"마지막까지 못난 무슬림이군."


하마드는 류가 바닥에 내려주자,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절을 올렸다. 한번 절을 올릴 때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마지막 절을 하자 하마드는 일어서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류가 다가가 그를 안았다.


"고맙네. 사실 여기는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에 찾아뵙겠다고 끝까지 버티던 곳이었지. 알량한 자존심에 너무 늦어버렸어."


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앗산···. 그 못난 녀석이 사실은 내 아이일세."


충격이었지만 그제야 이해가 갔다. 냉철한 두뇌를 가진 하마드가 언제나 앗산에만은 계속 기회를 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벌을 받을 테니······. 그 녀석의 죄는 사해달라고 부탁드렸네. 난 괜찮은 무슬림이었으니 들어주시겠지. 사실 앗산이 불탄 채 죽고······. 지옥 불에서 다시 타고 있을 생각을 하니 견디기 힘들었네. 그래서 성벽을 넘자마자 방책을 보고는······. 내가 죽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


"네···. 그는 낙원에 갈 겁니다. 당신 손을 잡고요."


"고마워······. 이 못난 목숨을 결국 지하드에서 바쳤으니 소원을 들어주···. 시······."


하마드는 눈을 감았다. 피범벅이 된 류는 그를 조심스레 들어 창가의 단에 눕혔다. 어깨에 둘렀던 천을 풀어낸 류는 그에게 덮어주었다. 참 못난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었으리라. 영웅이 결국 못난 아들에게 발목 잡혀버렸다. 어찌 범에게서 개가 나왔을까······.


오색찬란한 색유리가 햇빛을 받아들여 하마드에 영롱한 빛을 뿌려줬다. 하마드의 입가에는 미소가 남아있었다.


사원을 나서던 류는 다시 눈이 마주친 이맘에게 말했다.


"술탄의 충신이다. 술탄께서 찾을 테니 잘 모셔두도록 하게나."


이맘은 술탄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살며시 닫았다.


류도 눈가가 붉어져 한숨이 나왔다. 멀리서 살라흐앗딘 군대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등 뒤로는 나지막한 이맘의 기도가 하마드를 배웅하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작가의말

아직....많이 남았군.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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