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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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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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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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DUMMY

영국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함대는 브리스틀에 모여 사람을 내려놓았다. 왕의 도착을 기다리던 이들은 흉흉한 소문에 당황하며 자신의 영지나 고향으로 사라져갔다.


왕이 없는 동안에 전횡을 부리던 이들은 리처드가 신성로마에 포로로 잡혔다는 얘기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를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작은 범선 한 척이 브리스틀에 도착하자 그들의 밤은 악몽이 되었다. 그리고 류는 브리스틀에서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났다.


아니 찾는 건 쉬웠다. 배가 들어설 때부터 류는 알았다. 어느 여인이 들어오는 배 한 척 한 척을 살피며 애처롭게 서 있는 것을 말이다. 쌀쌀하고 습한 날씨에 웃옷을 깊숙이 덮어 머리부터 가렸지만, 알 수 있었다.


연이였다.


“기다렸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연이가 이끄는 대로 거리를 돌아 작은 집으로 따라갔다. 아버지와 중동에서부터 따라온 하녀까지 가족이 모두 모여있었다. 기쁜 날이었다.


“수척하구나. 우선 뭐라도 좀 먹어라.”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그동안 많이 수척해 있었다. 어서 식사를 권하면서도 기침을 쿨럭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살집이 가득하던 얼굴이 빼빼 말라버렸다.


“아···. 아버지?”


“무슨 걱정이냐? 때가 되면 가는 것을. 난 이제 걱정이 없다. 전쟁터를 벗어났고 아들이 돌아왔고. 걱정할 게 무어냐?”


그리 말하는 모습이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쿨럭이다가 조그만 천에다가 피를 쏟는 모습에 류는 당황해 잠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는 건강해질 거다. 손주를 볼 때까지는 죽지 않을 것이니 걱정은 말아라.”


아버지는 기운 내 웃었다. 그 모습에 류는 짠한 마음을 숨기고는 같이 웃었다.



***



먼저 도착했다가 해산하지 않고 브리스틀에 남아있던 병사들은 왕에게 다시 충성을 맹세하며 창과 검을 들었다. 리처드는 곧 잉글랜드 내륙을 돌며 영주들의 충성을 다시 서약받고 벌 받을 자들을 단죄했다. 그동안 섭정의 자리를 맡겼던 롱샘프라는 관리가 전횡의 죄과로 추방되었다. 그는 프랑스로 넘어가 리처드를 험담하는 성명을 내고는 필리프의 측근이 되었다.


류는 리처드를 따라 모르탱 백작이 농성하던 성을 공략하는 일에 참여했다. 헛된 농성은 곧 끝났다. 존은 위세 등등한 리처드에게 오히려 눈물로 사죄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스물일곱이라고 들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는 겁이 많았다. 리처드와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형의 앞에서 부들거리며 떠는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변명을 하기에 바빴다.


“사악한 신하의 입놀림에 놀아났을 뿐이다. 모르탱 백작은 아직 어린애라서 그 말이 옳고 그름을 몰랐을 뿐이다. 그러니 용서한다.”


그 한마디로 형의 자리를 노리던 동생은 용서받았다. 벌이라고 해봤자 자신의 영지에 틀어박힌 채 자숙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이외에는 없었다. 존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형의 신발에 입 맞추며 관대함을 칭송했다.


류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병사가 모이기 시작했다. 필리프의 공격을 받는 프랑스 쪽 영토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병사들이 다시 브리스틀에 모이기 시작했다. 천막이 쳐졌고 배들은 각지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작지 않은 도시였지만 평소보다 배는 되는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번 배로 넘어갈 거야. 류, 자네의 땅을 구경해야지. 노르망디 쪽에 영지를 준비해뒀네.”


전쟁준비로 여념이 없던 리처드는 지도를 바라보다가 뜬금없이 말을 던졌다. 류는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에 손사래를 치던 왕이 손짓해 다가오라 했다.


“여기네. 지도에 잘 보면 나와 있지? 에브뢰라는 곳이지. 뭐? 너무 필리프의 땅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가깝다. 너무 가깝다. 전쟁이 벌어지면 최전선이 될 것이다. 그걸 본 류는 가족은 이곳에 남겨두고 넘어가야 할까 걱정이 앞섰다. 류의 안색이 변한 걸 본 리처드는 이내 알아채고는 말을 더했다.


“이번 전쟁은 내가 직접 나선다. 에브뢰는 내 영지에서도 중요하고 풍요로운 곳이야. 걱정하지 말아. 그리고 난 말이야. 자넬 저기 뒤편에다가 모셔놓고 먼지가 쌓인 채 아낄 생각은 없었네. 자네도 알 거 아닌가?”


“다만,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하니 우선은 저만 넘어가야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또 떨어지려고 하니.”


“가족들도 데려가게. 그 안전은 내가 책임질 테니.”

“알겠습니다. 데려가겠습니다.”


“에브뢰는 파리의 목을 겨누는 곳이다. 필리프의 목을 끊어낼 요지이지. 그곳의 영주라면 말이야. 내가 가장 아끼는 검이라는 얘기야.”


그리 말을 마무리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바쁘니 어서 가서 볼일을 보라는 얘기일 터 고개를 숙이고 나서려던 류는 돌아서서 하나 더 물었다.


“외람되지만 언제 출항하시나요?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내일.”


고개를 다시 숙이고 나섰다. 말을 바꿀 위인이 아니었으니 서둘러 준비를 하는 게 맞을듯했다. 집에 돌아온 류는 연이에게 떠날 준비를 하라 일렀고 아버지를 찾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찾을 수 없어 당황한 류에게 연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요즘 좀 괜찮아지시더니 활을 들고 바깥출입을 자주 하십니다.”


연이의 말에 류는 모여든 병사들 구경이나 할 겸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힘이 넘치는 병사들 틈에서 괜히 시비라도 붙으면 아버지가 곤욕을 치르겠다는 걱정도 들어서였다.



***



병사들이 모인 병영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모습에 병사들이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들 눈에는 특이한 외모이니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주고받다가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괴물이야. 중동에서 말이야.’


그들 눈에 조금은 경외심이 보이는 거 같아 류의 마음도 흡족하였다.


-와아! 말도 안 돼!-


-믿을 수 있나? 보고도 믿지 못하겠군.-


조금 걷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피유융거리는 활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지나겠는가? 아버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빨리했다.


역시 아버지가 있었다. 먼 거리에 과녁이 있고 활을 당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고려 제일궁이라더니 지금은 영국에 와서 그 솜씨를 보이고 있었다.


잠시 방해하지 않고 류도 구경이나 하려고 마음먹었다.


한 청년이 활을 늘어뜨리고는 아버지 앞에 와 동전을 놓고 사라졌다. 과녁에 보이는 아버지의 화살은 중앙을 꿰뚫어놓았고 다른 화살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가 도전하겠는가?”


어설픈 발음이지만 나름 힘있게 외치자 병사들 사이를 제치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록슬리라고 합니다. 노인, 내가 당신을 상대해보지요.”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몇 명이 환하게 웃는 것을 보니 대단한 궁수인가보다. 누군가 조용히 ‘셔우드의 로빈’이라고 얘기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록슬리라는 사내가 아버지가 박아놓은 화살을 겨누고 활을 당겼다. 화살 뒤에 화살이 날아가더니 정확히 부딪치며 쪼개져 부서져 버렸다. 병사들이 그제야 환호성을 지른다. 아버지 앞에 놓인 동전이 꽤 많은 걸 보니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게 컸었나 보다.


아버지는 ‘호오, 이 녀석 봐라.’라는 표정을 짓더니 록슬리의 화살을 다시 쪼개어버렸다. 그러자 록슬리는 다시 쪼갰다.


“쳇, 이러면 끝이 없잖아.”


아버지는 땅에 화살을 세 대 꽂더니 연달아 활을 날렸다. 첫 번째 화살이 록슬리의 화살을 쪼개고, 두 번째 화살이 자기의 화살을 쪼개고 다른 하나는 바로 옆의 과녁 중앙에 꽂혔다.


그 모습에 놀란 록슬리가 활을 들지 못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빤히 그 모습을 보며 웃던 아버지는 화살을 한 번에 두 개를 먹이더니 다시 쏘아버렸다.


그대로 자신의 화살 두 개를 다시 쪼개버렸다.


-오아아! 신이다. 활의 신이야. 아르테미스가 환생한 것 같다.-


-록슬리가 졌다. 셔우드의 로빈이 졌다.-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아버지는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으쓱거리며 외쳤다. 상대했던 록슬리마저 손뼉을 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늘은 재미있게 놀다 가네. 그러면 모두 즐겁게 지내게나.”


동전을 그러모으는 아버지 곁에 류가 다가섰다. 고려말로 물었다.


“이렇게 잘 쏘시는지 몰랐습니다.”


“‘오늘은 왠지 잘 맞는다. 가끔가다가 잘 맞는 날이 있잖아. 운이 안 따라줬으면 저 녀석한테 개망신당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기본이 있으시니까 그렇죠. 바람도 찬데 가시죠.”


“그러자꾸나.”


둘은 집을 향해 걸었다. 영지를 받은 얘기, 내일 넘어갈 거라는 얘기. 그리고 따뜻하고 좋은 곳이라 설명했다. 아버지의 폐병에도 좋을 것이라는 얘기를 덧붙여서 말이다.


“집이구나. 그래, 이제 집이 생겼어. 이제 하나만 이루면 내 소원은 다 이뤄진다.”


“뭔데요?”


“내 손에 꼬물거리는 귀여운 녀석을 안고 싶다. 배냇짓 하는 녀석의 얼굴에 뽀뽀라도 하고 싶다. 어서 노력해봐. 요즘 같이 잠은 자는 거니?”


류는 얼굴이 새빨개져 아무 말도 못 했다.


작가의말

연참은 아니옵니다. 그냥 빨리 올렸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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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완결에 대한 소고 +60 18.10.11 3,519 48 3쪽
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27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76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7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1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0 67 11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3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6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4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79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1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1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27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0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1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6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1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5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3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2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5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77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7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68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89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3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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