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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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6
최근연재일 :
2018.05.02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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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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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11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1)

DUMMY

[구복남. 67세. 여, XX시 OO빌라]


두 번째 이름을 검지손가락으로 찍자 이미 어느 빌라 앞에 서 있었다.


후텁지근한 저녁이다. 차도와 인도가 나란히 있고 늘어선 주택가들이 보인다. 앞의 3층짜리 주택에서 검회색 오라를 휘두른 한 할머니가 나온다.


저 할머니인가? 그냥 자연사 할 사람도 리스트에 집어넣은 건가? 아니면 저 할머니도 악마 같은 뭔가가 있는 건가. 정말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겠다. 그저 자그마하고 바지런한 할머니로만 보이는데 말이다. 혹시 다른 사람인데 착각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할머니 외에 다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할머니는 검은 봉지를 들고 골목 어귀에 놓인 쓰레기봉지들에 다가간다. 바닥에 놓여 있는 더 이상 담을 수도 없이 가득 찬 쓰레기봉지들을 이것저것 살펴 보던 할머니는 그 중에 가장 헐렁하게 담긴 봉투를 푼 다음 들고 온 검은 봉지를 꾹꾹 눌러 담기 시작했다.


노인이 무리하게 담겠다고 애를 쓰더니 결국 꽉 찬 쓰레기봉지의 옆구리가 터져버렸다. 자주 있는 일인지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넓적한 박스 테잎을 꺼내더니 이빨로 끊어내 찢어진 부위를 봉합했다. 그리고 검은 봉지와 쓰레기봉지를 연결해서 박스 테잎을 둘둘 말듯이 붙여놓았다. 저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새.


김혁은 검은 봉지가 더 큰가 쓰레기봉지가 더 큰가 가늠해보다가 또 쓸데없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고 슬며시 혼잣말을 했다.


"아이구 노인네, 그거 얼마나 한다고 저렇게 극성을."


그리고나서 낡은 옷차림도 그렇고 70세도 안 됐는데 팍삭 늙어버린 모양새도 그렇고 엄청 가난하게 사는 할머닌가 보다고 생각했다.


일을 마무리 지은 할머니가 건물로 들어가길래 김혁도 따라 들어갔다. 어디로 가나 보고 있는데 할머니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안 좋은 무릎을 짚어가며 한칸 한칸 오른다.


보고 있자니 갑갑증이 일어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하면서 확 들어다 옮겨 놓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아직 눈앞에 나타나긴 이르다.


마침내 할머니의 고독하고 길고 긴 장정이 끝나고 3층에 다다르니 그곳이 할머니 집이었다.


어라? 김혁은 할머니를 뒤따라 들어서고 나서 조금 놀랐다. 예상과 다르게 빌라 안은 꽤 넓었다. 짐작과 다르게 가난한 노인이 아닌 모양이었다. 집안 살림살이들은 전부 몇 십년은 된 듯 낡았고 검소하다 못해 초라하긴 했지만 집 자체는 꽤 널찍하고 방도 많았다.


김혁은 먼저 익숙하게 집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들어선 방에 서 화들짝 놀랐다.


욱, 냄새. 코를 찌르는 악취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방은 발 디딜 구석이 없을 정도로 이런 저런 쓰레기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컴퓨터와 그 책상 주변만 조금 한산한 편이지 바닥은 찌그러진 깡통과 페트병 피자 박스나 컵라면 용기 과자봉지 등등 먹고 버린 것으로 보이는 껍데기들로 가득했다.


아, 이건 또 뭐지? 쓰레기봉투를 아끼려고 방 하나를 쓰레기장으로 만든 건가?... 응?


구석진 곳 한쪽 침대에 이불을 들쓰고 누운 작은 몸이 보였다. 규칙적으로 이불이 들썩이고 있다. 쓰레기를 모아두는 방이 아니라 저 아이의 방인가보다. 세상에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니 김혁은 다시 한번 방안을 둘러보았다.


은둔형 외톨이 같은 건가? 말로만 들었지만 직접 목격하니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지? 구두쇠 할머니와 은든형 외톨이의 집이라. 일단 고독사가 아니게 되는 건 다행인데 저런 아이가 할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의문이었다.


집안에서 처리하는 게 좋을지 집밖에서 처리하는 게 좋을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설마 배고프면 나오겠지 뭐.


거실로 나간 김혁은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이불을 펴기 전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고 있는 중이었다.


김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나타난 김혁을 발견하고 할머니는 낯선 존재에 대한 놀라움이라기보다 마치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는 듯 반가워했다.


“응? 아니 너, 나왔구나. 옳지, 옳지. 그래 잘했다.”


김혁의 손을 잡아 끌어 다정스레 옆에 앉히며 어찌나 반가운 얼굴을 하는지 저승사자임을 밝히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래 진수야 뭐, 배고프냐? 뭐 주랴?”

“전 ... ”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가며 잡은 손을 쓰다듬는 할머니.


눈이 안 좋은 건가, 치매기가 있는 건가 김혁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대체 얼마만이냐? 이 에미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이제 주름진 손으로 김혁의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좀전까지 걸레를 만지던 손이지만 거부감보다도 김혁은 그런 쓰다듬음을 처음 느껴보는 거라 생소하면서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자신에게도 친할머니가 있다면 항상 이렇게 해주셨겠지? 어머니가 있다면 이렇게 쓰다듬어 주는 게 당연한 거였으리라.


고아원 원장에게 맞을 때 외에는 어른의 스킨십을 받아본 적 없는 김혁에게는 이 낯선 할머니의 메마른 손이 이상하면서도 뿌리치기 싫은 묘한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 그런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나오니 얼마나 좋으냐. 응? 이제 안 그럴 거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할머니, 흠, 할머니?”

“애미한테 할머니라니 왜 그려?”

“저 좀 보세요. 할머니. 전 진수란 아이가 아니고 할머니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입니다”

“응? 저승? 뭐?”

“구복남 할머니 맞으십니까?”


그때서야 할머니는 아들 목소리가 아닌 것을 알아챈 듯 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할머니는 온화하던 표정이 금새 달라지며 서둘러 손을 거뒀다.


“뭐, 뭐라는 게야. 응? 여기 뭐 훔칠게 있다고 왔어?”

“저승사자라고요. 할머니! 가실 때가 돼서 모시러 왔습니다.”

“도적놈이면 물건이나 훔쳐 가면 될 것이지, 사람까지 해친다냐?”

“그게 아니라.”


김혁은 몸을 사라지게 했다가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할머니 눈이 안 좋은 듯 한데 제대로 보긴 했는지 모르겠어서 한번 더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도둑놈이 아니라 저승사자라는 걸 믿는 눈치였다. 할머니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허, 저승은 무신. 난 못 간다. 못 가. 아직 안돼. 우리 진수는 어쩌고. 안 되지, 그럼.”

“그건 할머니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요.”


할머니는 갑자기 무릎을 그러모아 꿇고 김혁의 무릎에 엎드려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저승 양반. 나 좀 봐주소. 내가 이리 가면 안 되지 않겄소? 저 아가, 저 방에 내 아들놈이 있는데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온 지가 1년이 넘었소. 50 다 돼가 낳은 늦둥인데 잘못 키운 탓인지 뭔 일이 있었는가 몰라도 갑자기 방에서 나오래도 안 나오고 학교도 때려치우고 콕 틀어박혀서 오도 가도 않는데 내가 이래 가버리면 쟈는 어쩌란 말요. 밥이나 제대로 먹겠소? 한번 봐주소. 두 사람 살리는 셈치고 눈 한번 감아주소.”


“할머니.”


“아, 쟈를 사람 맹그러 놓고 가야지 내가 편히 눈을 감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골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주름진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세월의 더께가 무서울 만큼 적나라한 얼굴.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얼굴이 다른 노인들에 비해 더 많이 주름진 것 같았다.


“할머니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쟈를, 쟈를 어쩌고.... ”


할머니는 잠시 눈물만 글썽이다가 뭔가를 결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라믄..... 사실은 말이요. 쟈 어미가 따로 있소. 그 어미라도 찾아주고 가면 안 되겄소?”


“네? 방금 어머니라고....”


“사실은 내가 쟈 할미요. 호적만 나한테 올라있지 쟈 어미는 따로 있어. 지금도 사방팔방 찾고 있는데 어딨는가 아직 못 찾았거든. 쟈 어미라도 델따 놓으면 안심을 하고 내가 눈을 감을 텐데 .... ”


“.... ”


지금까지 못 찾았다면 언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며칠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일 텐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사정까지는 봐줄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 저 아이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응? 그거야...”


“저 아이에게 말씀하세요. 모든 사실을. 저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아, 저승양반. 그래도 좀....”


“할머니,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하루입니다.”


김혁은 몸을 사라지게 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을 놓은 채 방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얼마 후 할머니는 쓰레기가 가득찬 방으로 가서 문을 빼꼼히 열었다. 아이가 아직 잠들어 있는 것을 보더니 그대로 문을 닫았다. 오늘밤은 그냥 넘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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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45화 슬픈 진실 +1 18.05.02 870 8 9쪽
45 제44화 슈퍼맨의 마음2 +1 18.05.01 910 7 9쪽
44 제43화 슈퍼맨의 마음1 +1 18.05.01 866 9 11쪽
43 제42화 그건 꿈이었을까? +1 18.04.30 837 7 10쪽
42 제41화 새로운 가족 +1 18.04.30 827 8 8쪽
41 제40화 천사를 만나다 +1 18.04.29 823 6 7쪽
40 제39화 출생의 비밀 +1 18.04.29 887 7 10쪽
39 제38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7)- 지옥으로 +1 18.04.28 820 9 8쪽
38 제37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6) +1 18.04.28 835 9 8쪽
37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1 18.04.27 777 7 8쪽
36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1 18.04.26 878 8 8쪽
35 제34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3) +1 18.04.25 798 8 8쪽
34 제33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2) +1 18.04.25 813 8 7쪽
33 제32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1) +1 18.04.23 848 13 8쪽
32 제 31화 인형의집(3) +1 18.04.23 838 9 10쪽
31 제 30화 인형의집(2) +1 18.04.22 861 10 8쪽
30 제 29화 인형의 집(1) +1 18.04.22 816 7 7쪽
29 제28화 너 자신을 알라 +1 18.04.21 950 10 9쪽
28 제27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9) +1 18.04.20 852 7 9쪽
27 제26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8) +1 18.04.20 833 8 10쪽
26 제25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7) +1 18.04.19 862 9 11쪽
25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1 18.04.19 1,065 9 8쪽
24 제23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5)-상철이형 +1 18.04.18 883 7 9쪽
23 제22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4) -상철이형 +1 18.04.18 904 8 9쪽
22 제21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3) +1 18.04.17 1,076 8 8쪽
21 제20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2) +1 18.04.17 939 8 8쪽
20 제19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1) +1 18.04.16 992 9 11쪽
19 제18화 잔인한 여름 +1 18.04.16 991 8 10쪽
18 제17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7) +1 18.04.15 1,192 8 11쪽
17 제16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6) +1 18.04.15 978 7 10쪽
16 제15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5) -악마와의 첫 만남 +1 18.04.14 1,059 7 9쪽
15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1 18.04.14 1,215 11 8쪽
14 제13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3) +1 18.04.13 1,084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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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1 18.04.10 1,563 19 9쪽
7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1 18.04.10 1,583 21 10쪽
6 제5화 개와 늑대의 시간(3) +1 18.04.09 1,737 22 8쪽
5 제4화 개와 늑대의 시간(2) +1 18.04.09 1,814 22 8쪽
4 제3화 개와 늑대의 시간(1) +1 18.04.09 2,026 22 8쪽
3 제2화 악마가 원하는 것, 악마의 리스트 +2 18.04.09 2,612 25 9쪽
2 제1화 지옥을 선택한 남자, 김혁 +5 18.04.09 3,685 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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