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태성제(實錄泰盛帝)’ - 좋은 역사와 나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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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죤모리스
작품등록일 :
2018.04.09 11:12
최근연재일 :
2018.05.1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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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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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8. 혁명(革命)과 저항(抵抗) - (1)

DUMMY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르기를 ‘인시수견형시민지치불(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 이라 했다. 즉, 사람이 물을 보면 형체가 드러나듯 백성을 보면 정치가 제대로 다스려 지는 지를 알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과인이 최근 민심을 둘러보니 백성들의 삶이 지극히 곤고하고 피폐하여 집집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인륜을 져버리는 행위가 만연하니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안을 기탄없이 말해 보라”


이른 봄의 따스한 봄볕이 내리 쬐는 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넓은 마당에 조선의 젊은 관료 400 여명이 모여 넓은 마당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지필묵이 준비되어 과거시험을 보듯이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임금이 과거시험에 제시하는 현안문제인 ‘책문(策聞)’이 현제판(懸題板-책문을 거는 판)에 게시 되었다.


“이제 조정은 새롭게 일신이 되었다. 이에 과인은 유비가 제갈양에게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영입하여 이 조선을 새롭게 하고자 하니 어떠한 과격한 내용일지라도 과인은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을 것이며 벼슬의 높낮이를 불문하고 ‘대책(對策-책문에 대한 답변서)’이 선정되면 관련 업무의 수장으로 임명할 것이다”


영은 불타서 폐허가 되었으니 중건하지 못한 채 버려져 있는 근정전을 바라다 보았다.


“과인이 굳이 이곳 근정전을 시험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실제 살펴 보고 이를 극복하며 미래를 준비하자는 다짐에서 이니 모두 성심 성의를 다하기를 바라노라”


용상에 앉은 영이 시험을 치루기 위해 준비중인 젊은 관료 400 여명을 향해 일성(一聲)했다.


“또한 그대들이 제출한 시권(試券-답안지)은 과인이 몇 일 밤을 세워서라도 모두 읽고 되새기며 합격자를 공정하게 선택할 것이니 그대들은 대책을 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유대열을 제거한 영은 조정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젊은 조정 관료들을 모두 근정전에 불러모아 시험을 치루고 있었다. 여기에는 영의 여러가지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두 시진(時辰-4 시간)이다. 시간은 충분하니 기탄없이 말하라”


여기 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간이 흘렀다. 두 식경(食頃-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누군가가 ‘시권’을 제출하고 나가기 시작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백 여명이 넘는 젊은 관료들이 줄을 지어 시권을 제출하고 자리를 떴다.


“아니, 두 식경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대책문에 다 작성이 되었다는 것이야?”


영이 흠찟 놀라듯이 주변에 시립해 있는 신하들을 둘러보며 놀라워하자 삼정승을 비롯하여 고위 대신들이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영과의 눈을 마주치기는 조차 피한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젊은 신료들이 얼마나 백성들의 삶에 대한 애착을 가졌으면 저렇게 빨리 시권을 작성하여 대책을 내어 놓는다 말입니까? 하하하”


시간이 흘렀다. 이제 거의 자리를 떠나고 두 세명만이 마지막 순간까지 앉아있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마지막 관리 한명이 시권을 제출하고 자리를 떠났다. 젊은 관리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나이는 있어 보이나 관직은 매우 낮아 보였다. 그리고 빽빽이 적은 몇 장의 시권을 제출하고서는 하늘을 바라다 보며 한숨을 크게 쉬고 자리를 떴다.


‘저 사람은······ 혹시······’


영은 혹시나 하며 짐짓 놀랐다. 15 살은 어린 영이 대궐을 도망쳐 나와 무작정 외할아버지 집이 있는 부산을 향해 갈 때 저자거리에서 만난 권 선비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확신은 없었다. 영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성이 ‘권’씨라는 것뿐이었고 시간이 흘러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출된 시권을 모두 과인에게 가져오라”


시험을 주관하는 이조참판이 시권을 정리하여 주상께 올린다. 시권을 받아 본 주상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그리고 시권을 잡고 있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과인을 능멸하려는 것인가?”


영은 시권을 한 장씩 공중에 집어 던져버린다. 영이 집어 던진 시권은 모두 백지였다. 그리고 단 몇 줄만 적힌 시권도 많았다.


“이것은 백지, 이것도 백지. 이것은 두줄만 적혔고······허 그래도 이것은 좀 괜찮소이다. 다섯 줄입니다. 허허허”


이렇게 영의 화를 돋구어 버린 시권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50 명이 채 안되는 젊은 신료들이 작성한 대책문만이 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조판서께서는 젊은 신료들이 과인을 이렇게 능멸한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 두 식경도 아니되어 자리를 뜬 신료들은 모두 백지를 낸 것이며 그 이후에 자리를 뜬 그들도 단 몇 줄만 적어내고 자리를 뜬 것이요. 이는 과인의 말을 무시하고 임금을 능멸했다 아니할 수 없소이다. 과인은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엄히 다스릴 것이요”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그들이 진심으로 그리한 것이 아닌 줄 아옵니다”


“진심이 아니다? 그럼 의도적이 아니다? 적어도 대궐에서 일하는 젊은 신료들은 모두 과거를 통하여 선발된 인재들 중에 인재입니다. 그들이 책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은 과인의 말을 무시하고 과인을 능멸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냐 말입니까?”


영은 크게 화를 냈다. 아니 크게 화를 내는 척 했다. 모두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식은 땀만 흘리며 서로의 눈치만 처다 보고 있었다. 혹시 영과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이기 까지 했다. 영은 매우 화가 난 듯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거리고 있었다. 이때 대제학(지금의 교육 부총리) 한문순이 급히 주상 앞에 부복을 했다.


“전하!! 소신이 현실을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정녕 모르셨다면 현실을 아셔야 하옵니다”


“현실이라? 말씀해 보세요. 대제학”


대제학 한문순은 곧은 선비로 선비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고 그의 입바른 소리와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귀향을 수차례 다녀오고 중요 관직에서는 배제되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성품답게 모두가 말하기를 꺼리는 '현실'에 대해 십자가를 지기로 하였다.


“400 여명의 젊은 관료들 중에 과거로 벼슬길에 오른 사람은 불과 100 여명이 아니 되옵니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조선의 법령에는 존재하지 않사오나 음서제(蔭敍制)라 하여 고위 신료들의 자제나 그들의 추천으로 아름 아름 조정의 신료가 된 자들로써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자도 있으며 그들은 또한 조정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을 추천해 준 사람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과인이 너무 오랫동안 조선을 떠나 있었나 봅니다. 그러면 실력으로 관료가 된 조정의 신료들 보다 음서제로 관리나 신료가 된 이들이 오히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겠습니다. 그렇습니까? 대제학?”


대제학 한문순은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우리 조선이 가진 최대의 병폐로 가장 먼저 혁파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실력이 있는 자들보다 오히려 음서제로 들어 온 이들이 그들을 추천해준 이들의 천거로 조정의 주요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오늘 대책문을 제출한 관료들을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시립해 있는 조정 대신들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원망스러운 듯이 한문순을 바라다 보고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지켜 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옥석이 가려질 것입니다. 대책문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자가 어찌 중요 요직에 앉아있을 수 있다 말입니까? 그런 자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백성이 아니라 오로지 뇌물과 자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 밖에 더 있겠습니까?”


영의 입가에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살짝 흘렀다.


“과인은 오늘 이 사안을 매우 엄중히 다룰 것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대책을 마련 할 것입니다. 그리고 관료들에게 권면하고 실력이 있는 인재를 조속히 등용한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비 정기적인 시험을 불시에 다시 시행할 것이니 그리들 아세요. 무능하고 배경으로 입신양명한 관료들은 더 이상 이 조정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영은 대제학을 바라다 보았다.


“대제학은 대책을 세워 조속히 과인에게 보고를 하세요”


“전하. 명을 받자옵니다”


“오늘 과인이 이 시권을 모두 읽어보고 내일 장원을 발표할 것이며 장원에게는 그가 주장한 내용을 시행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맡길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상응하는 관직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모두들 이제 돌아가세요. 고생하셨습니다”


영은 밤새 대책문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한 명을 선정했다. 그리고 늦은 밤에 도승지에게 일러 장원을 한 신료를 아침에 열리는 상참(常參-아침조회)에 들라 일렀다.





“그대의 이름이 충청도 증평에서 온 권우현(權又玄) 인가?”


“그러하옵니다. 소신이 권우현이옵니다”


“그대의 식견이 놀랍도다. 그리고 백성들의 현실을 직시하는 그대의 현실감 또한 놀랍도다. 그런 그대가 아직 당하관의 6 품 이하인 참하관 (參下官)이라니 이 또한 조선의 인재등용의 넌맥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전하. 과찬이시옵니다”


“그대는 백성의 삶이 피폐한 가장 큰 이유를 방납의 폐해 그리고 육의전, 보부상 및 주요 지역 거상들의 독점적인 상거래로 관행으로 인해 물자가 제대로 돌지 않고 매점매석이나 가격 조작이 가능하여 체계적인 수탈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대의 논리를 여기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잠시 주위를 살피던 권우현은


“알겠사옵니다. 소신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사옵니까? 소신이 그렇게 개혁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미관말직(微官末職)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다 아는 사실이옵니다”


“무엄하다.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인가?”


좌의정 최병화가 엄히 꾸짖는다.


“그만하세요. 좌상. 할 말은 해야지요. 권위로 말을 막는 것은 언로(言路)를 막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비록 말이 좀 거칠더라도 이해를 하세요”


“육의전은 궁궐의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고 그 비용을 금난전권(禁亂廛權-행상을 금하는 권리)을 부여 받아 도성 안팎 10리(4 km) 내에 모든 상권을 독점하고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육의전 물품만 팔아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어 백성의 삶이 힘이 든 이유이옵고 또한······”


듣고 있던 조정 대신들의 얼굴이 변하고 있다. 육의전에서는 금난전권과 폭리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뇌물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들로부터 금전적인 이익을 얻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였다.


“방납(防納)이라 하여 말 그대로 ‘납품을 막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지방의 공물이나 토산품을 진상할 때 벼슬아치들과 결탁한 이들 상인은 미리 공물이나 진상품을 조정에 대납하고 그 납품비용을 엄청나게 부풀려 폭리를 취하고 이를 서로 나누어 가지는데 결국 이 모든 피해는 불쌍한 백성들의 몫이옵니다. 이 또한 조정의 대신들과 상인들이 결탁하여 백성의 고혈을 빨고 있는 것이옵니다”


“대책은 있는 것인가?”


“공물과 진상품 가격을 조정에서 미리 책정하여 쌀로 그 납품가격만큼 받는 것이옵니다. 쌀은 토산품과 달라서 가격변동이 그리 심하지 않고 구하기도 쉬우니 누군가가 장난 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오니 소신은 이를 ‘대동법(大同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중간 상인들의 대납을 없애어 납세구조를 단순히 하고 관아에서 쌀로 직접 받으면 방납의 피해를 막을 수 있사옵니다”


“대동법이라······”


영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주변의 대신들의 눈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권우현의 말에 깊은 적의감을 감추려 해도 감추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이익기반을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자에 대한 증오감이었다.


“또 다른 것이있는가?”


“아직 많사옵니다. 어디 조선의 병폐가 하나 둘이겠시옵니까?”


“아니......저저저 저 사람이······’


권우현의 말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여기 저기서 단말마 적인 짧은 소리만 흘러 나왔다.


“또한 보부상 조직은 조선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그 흐름을 독점하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유통이 될 수가 없고 그들 또한 가격을 조작하거나 만상이나 송상, 내상들의 물류를 책임 지고 있어 조선은 물이 흐르듯이 물류가 흐르지 못하여 동맥경화 현상이 뚜렷합니다”


“대책은?”


“보부상의 독점을 폐지하고 경쟁을 유도하여야 하옵니다”


“아니되옵니다. 보부상의 역할은 커옵니다. 물류가 활발해 지면 쓸데 없는 정보가 돌게 되고 또한 인간의 심성을 간악하게 만드는 돈도 함께 돌게 되어 순박한 조선의 농민들을 오염시킬 수가 있사옵니다”


사간원의 대사간(大司諫) 홍순언이 피를 토하며 아뢴다.


“조선의 건국이념을 기억하시옵소서. 농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유교국가이옵니다. 돈이 돌면 백성의 마음이 부패를 하고 정보가 돌면 왕업이 위험해지옵니다. 천년대계의 조선을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보부상들은 왕업의 안정을 위하여 지방의 양반들과 불온한 사상을 가진 이들을 감시하는 기능도 크옵니다”


“알겠습니다. 대사간. 권우현. 또다른 할 말이 있는가?”


“하나 더 있사옵니다. 수조권(收租權)이옵니다”


‘수조권’이란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한을 말하는데 이 말이 나오자 갑자기 조정전체가 누구나 할 것없이 술렁거렸다.


“전하. 조선은 과전법(科田法)을 기본으로 경자유전(耕者有田), 즉, 농사를 짓는 자가 전답을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사옵니다. 그래서 ‘토지 공개념(公念)’을 근간으로 하옵니다. 따라서 벼슬을 하게 되면 토지를 하사 받게 되고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면 토지를 국가에 반납을 하여 다음 벼슬하는 자가 그 토지의 수조권을 행사하는 것을 법으로 정해두고 있사온데 아무도 그런 법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 어찌 조선을 법치국가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벼슬아치라면 모두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무도 거론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대를 이어 사유재산처럼 상속을 하면서 소유권을 행사하여 왔던 문제의 원천을 건드린 것이며 대대로 벼슬을 한 사대부 집안이라면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단언하건데 없었다.


‘저······저 미친 놈이······’


시립해 있는 대신들의 입에서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조그마한 술렁임이 터져 나왔다. 권우현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아픈 부분을 그리고 이익기반을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번 벼슬길에 나가 토지를 소유하면 벼슬길에서 물러나도 대를 이어 상속을 하니 토지는 부족하고 이 모자라는 분에 대해서는 백성의 고혈로 메꾸어 나가니 금난전권에 방납, 그리고 보부상의 횡포에 더하여 ‘수조권’ 문제까지 겹친데 다가 지주들의 수탈이 극에 달하고 국가에서 수시로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무상으로 동원하여 공사를 시키니 어찌 이 나라의 백성들이 조선의 백성임을 저주하지 않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여기 저기서 다시 술렁이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렇지만 틀린 말이 아니니 그 누구도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과인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구나”


영은 짐짓 슬픈 표정을 짓고 가슴 아파하면서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듯 하였다.


“과인은 그대에게 종 2 품 이조 참판(參判)의 관직을 내린다. 그리고 그대가 말한 이 모든 것에 대한 개혁을 그대에게 일임한다. 또한 인재를 뽑고 정책을 시행하며 예산을 사용하는 일체의 모든 권한을 그대에게 부여한다면 그대는 개혁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저······저······전하······ 어찌······”


갑작스런 전하의 말씀에 모든 중신들이 놀란다. 그런데 권우현은 한치의 주저함이 없이 영에게 아뢴다.


“전하. 아뢰옵기 항공하오나 저는 해 낼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니 소신에게 기대는 말아 주시옵소서”


“네 이놈이 미쳤구나. 누구 안전이라고 망발을 하는 것이야?”


좌의정 최병화가 권우현의 언사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친다.


“좌상대감.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가 없습니다. 좌상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까?”


권우현은 좌상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할말은 다한다.


“아니, 왜 못한다는 것인가? 그대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영이 의아한 듯이 권우현에게 물었다.


“전하. 소신이 진정 그 일을 하려고 한다면 소신과 소신의 가족은 그 날로 모두 죽사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이 문제에 연관되어 금전적인 이득을 얻지 않고 있는 조정의 관료가 한 명도 없사온데 어찌 소신이 살아있기를 바라겠사옵니까? 불가하옵니다”


“아니, 이놈이 그래도 아직!!”


보이지 않는 엄청난 주위의 압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권우현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보부상은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무서운 조직이옵니다. 또한 거상들과 육의전 상인들은 모두 왈패(깡패)를 수하에 두고 부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칼을 들이대는 순간 그들은 살수(殺手-자객)을 동원하여 소신과 소신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만천하에 그들의 힘을 과시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칼을 겨누는 자는 오직 죽음 뿐이다’라는 경고를 할 것이옵니다 “


“경고를?”


“그렇다면 소신에게뿐만 아니라 전하에게도 같은 경고를 보내는 것이오니 전하의 안위도 장담하실 수 없사옵니다. 유대열은 해주 유씨라는 하나의 문벌을 상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옵니다. 조선의 사대부 모두를 상대하셔야 하옵니다.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영은 크게 웃었다.


“듣고 보니 그렇소. 과인은 모르겠소. 이미 조정 신료들에게 공포를 한 것이니 바로 거두어 들일 수가 없소이다. 경이 이미 직책을 맡았으니 그 권력을 이용해서 돈을 벌든지 조용히 지내든지 알아서 하세요. 과인이 적당한 때를 보아 처리하리다”


“저하. 다시 아뢰옵기 항공하오나 조정에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하나 소신에게는 더 이상 기대를 말아 주시옵소서”


“과인이 말했지 않소이까? 그대가 알아서 하세요. 상참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상참은 이렇게 끝이 났다. 영은 용상에서 일어나 권우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둘만의 나지막한 소리로


“그런데 그대는 나를 본 적이 없는가?”


발길을 돌리던 조정 신료들의 걸음을 멈추고 두사람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두사람의 이야기를 알아 들어 보려고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으니 둘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있사옵니다. 20 년도 더 전에 저자거리에서 만났던 그 어린 선비가 아니셨사옵니까?”


“어찌 그것을 기억한다 말인가?”


“사실은 소신도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사오나 형제판의 ‘책문’을 보고 그때의 일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소년의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과 오늘 뵈온 전하의 눈망울이 다르지 않아 확실치는 않으나 그렇게 짐작 하였사옵니다. 정말 전하셨사옵니까?”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의 권선비의 모습이 머리속을 떠난 적은 없어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실망하셨사옵니까?”


“실망이랄게 있습니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정도로 해 둡시다.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 하였소? 참으로 과인의 나약함을 요즈음 뼈저리게 느끼겠소이다. 그런데 그대가 오늘 벌집을 건드렸구려. 벌들이 그대를 쏠 텐데”


영은 가볍게 권우현과 귓속말을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다 본 조정의 대소 신료들은 두사람이 짧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매우 궁금해 했으나 모두 억측에 그칠 뿐 그 말을 알지 못해 매우 불안해 했다.


‘저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


“좌의정 최병화의 아들 홍문관 좌랑 최성우는 들라”


대전에서 주강(晝講-낮 공부시간)에 영은 갑자기 최성우를 불러들였다. 공부 시간이니 어떤 주제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 싶었던 영은 그를 불렀다.


“과인이 어제 지난해 식년시(式年試-3 년만에 열리는 과거시험. 대과)에서 장원급제한 그대의 시권을 읽어보고 매우 감탄을 하였다. 그래서 그대를 만나보기 위해서 그대를 불렀다. 그 대는 좌상의 둘째 아들이라고?”


“항공하옵니다. 전하”


“좌상. 어찌 이리 똑똑한 아들을 두시었습니까? 좌상의 자랑이요 가문의 자랑이 아닙니까?”


“과찬이시옵니다. 전하”


“좌랑. 그대는 현재 조선이 처한 국제적 관계를 잘 묘사를 하였고 명나라와 왜국 그리고 여진 간의 외교관계에 대하여 참으로 기탄 없이 물 흐르듯이 의견을 잘 개진하였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감읍한 듯이 최성우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최병화의 얼굴이 눈에 들어 온다.


“그럼 오늘 조정 신료들 앞에서 그대의 식견을 마음껏 자랑을 하여 보게. 앞으로 우리 조선의 외교는 앞으로 어떻게 추진해 나가면 좋겠는가?”


“그게······저······”


갑작스런 주상의 어명에 최성우는 식은 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는다.


“괜찮아. 떨지 말고 시작해 보시게”


거듭되는 주상의 요청에도 최성우는 말만 더듬을 뿐 아무런 말을 못하고 당황하여 아버지를 처다 보고 구원을 요청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소신의 아들이 매우 갑작스러운 전하의 하명에 당황한 듯 하옵니다. 내일 다시 불러 물어 보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하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조정관료들이 일제히 일치를 이루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아니, 장원급제를 한 그대가 어찌 말을 못하는가? 그대가 정년 이 시권의 주인이 맞다 말인가?”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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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4. 왜 나쁜 역사는 ‘더 나쁘게’ 반복 되는가? - (2) 18.05.16 616 1 25쪽
75 24. 왜 나쁜 역사는 ‘더 나쁘게’ 반복 되는가? - (1) +1 18.05.16 701 3 24쪽
74 23. 실록 태성제(實錄 泰盛帝) - (1) +1 18.05.15 756 1 27쪽
73 22. 망나니 김치영(金治英) - (2) +1 18.05.15 703 2 23쪽
72 22. 망나니 김치영(金治英) - (1) 18.05.15 657 1 25쪽
71 21. 수구반동(守舊反動) - (5) +1 18.05.14 871 3 28쪽
70 21. 수구반동(守舊反動) - (4) 18.05.14 708 2 29쪽
69 21. 수구반동(守舊反動) - (3) 18.05.13 698 2 26쪽
68 21. 수구반동(守舊反動) -(2) 18.05.13 739 2 28쪽
67 21. 수구반동(守舊反動) -(1) 18.05.13 728 2 30쪽
66 20. 조-만 통합(朝-滿統合) - (2) 18.05.12 730 2 26쪽
65 20. 조-만 통합(朝-滿統合) - (1) 18.05.12 740 4 25쪽
64 19. 누루하치 - (5) 18.05.11 738 2 15쪽
63 19. 누루하치 - (4) 18.05.11 743 3 24쪽
62 19. 누루하치 - (3) 18.05.11 705 3 27쪽
61 19. 누루하치 - (2) 18.05.10 732 3 33쪽
60 19. 누루하치 - (1) 18.05.10 816 2 28쪽
59 18. 혁명(革命)과 저항(抵抗) - (4) 18.05.09 762 3 28쪽
58 18. 혁명(革命)과 저항(抵抗) - (3) 18.05.09 726 2 28쪽
57 18. 혁명(革命)과 저항(抵抗) - (2) 18.05.08 739 3 24쪽
» 18. 혁명(革命)과 저항(抵抗) - (1) 18.05.08 750 2 24쪽
55 17. 두 개의 태양 - (5) 18.05.07 764 2 22쪽
54 17. 두 개의 태양 - (4) 18.05.07 760 3 22쪽
53 17. 두 개의 태양 - (3) 18.05.06 738 3 24쪽
52 17. 두 개의 태양 - (2) 18.05.06 746 3 24쪽
51 17. 두 개의 태양 - (1) 18.05.05 805 3 26쪽
50 16. 피와 물 - (5) 18.05.05 1,024 3 18쪽
49 16. 피와 물 - (4) 18.05.04 1,029 3 28쪽
48 16. 피와 물 - (3) 18.05.04 774 4 27쪽
47 16. 피와 물 - (2) 18.05.03 1,195 4 29쪽
46 16. 피와 물 - (1) 18.05.03 776 4 20쪽
45 15. 사절단(使節團)과 황제 - (5) 18.05.02 781 3 25쪽
44 15. 사절단(使節團)과 황제 - (4) 18.05.02 727 3 28쪽
43 15. 사절단(使節團)과 황제 - (3) 18.05.01 818 3 22쪽
42 15. 사절단(使節團)과 황제 - (2) 18.05.01 784 3 23쪽
41 15. 사절단(使節團)과 황제 - (1) 18.04.30 796 3 24쪽
40 14. 유배(流配) - (4) 18.04.30 1,174 3 20쪽
39 14. 유배(流配) - (3) 18.04.29 810 4 27쪽
38 14. 유배(流配) - (2) 18.04.29 808 4 19쪽
37 14. 유배(流配) - (1) 18.04.28 852 4 22쪽
36 13. 철병(撤兵) - (3) 18.04.28 804 6 27쪽
35 13. 철병(撤兵) - (2) 18.04.27 785 7 24쪽
34 13. 철병(撤兵) - (1) 18.04.27 803 5 22쪽
33 12. 할지(割地) - (5) 18.04.26 805 6 17쪽
32 12. 할지(割地) - (4) 18.04.26 763 3 20쪽
31 12. 할지(割地) - (3) 18.04.25 779 7 19쪽
30 12. 할지(割地) - (2) 18.04.25 800 7 27쪽
29 12. 할지(割地) - (1) 18.04.24 831 8 20쪽
28 11. 진주성(晋州城) - (7) 18.04.24 809 8 19쪽
27 11. 진주성(晋州城) - (6) 18.04.23 816 7 17쪽
26 11. 진주성(晋州城) - (5) 18.04.23 847 5 20쪽
25 11. 진주성(晋州城) - (4) 18.04.21 795 5 19쪽
24 11. 진주성(晋州城) - (3) 18.04.21 1,145 6 21쪽
23 11. 진주성(晋州城) - (2) 18.04.20 861 6 19쪽
22 11. 진주성(晋州城) - (1) 18.04.20 863 6 20쪽
21 10. 분봉왕(分封王) 18.04.19 902 5 30쪽
20 9. 전화(戰禍), 그리고 풍전등화(風前燈火) - (2) 18.04.19 876 5 16쪽
19 9. 전화(戰禍), 그리고 풍전등화(風前燈火) - (1) 18.04.18 931 6 21쪽
18 8. 귀환(歸還), 그리고 전운(戰雲) - (3) 18.04.18 880 7 19쪽
17 8. 귀환(歸還), 그리고 전운(戰雲) - (2) 18.04.17 916 6 17쪽
16 8. 귀환(歸還), 그리고 전운(戰雲) - (1) 18.04.17 924 4 28쪽
15 7. 아델과 죽림칠현(竹林七賢) - (2) 18.04.16 899 5 20쪽
14 7. 아델과 죽림칠현(竹林七賢) - (1) 18.04.16 1,002 7 22쪽
13 6. 만석꾼 심환지(沈煥之) - (3) 18.04.15 1,192 8 19쪽
12 6. 만석꾼 심환지(沈煥之) - (2) 18.04.15 956 5 17쪽
11 6. 만석꾼 심환지(沈煥之) - (1) 18.04.14 1,036 5 19쪽
10 5. 김총각 - (2) 18.04.14 1,062 6 17쪽
9 5. 김총각 - (1) 18.04.13 1,145 5 18쪽
8 4. 효봉 대군(孝奉 大君) -(2) 18.04.13 1,221 8 25쪽
7 4. 효봉 대군(孝奉大君) - (1) 18.04.12 1,256 4 22쪽
6 3. 역모(逆謀) - (3) 18.04.12 1,260 7 14쪽
5 3. 역모(逆謀) - (2) +1 18.04.11 1,339 8 18쪽
4 3. 역모(逆謀) - (1) 18.04.11 1,555 8 20쪽
3 2. 권력과 삼형제 - (2) 18.04.10 1,865 11 19쪽
2 2. 권력과 삼형제 - (1) 18.04.10 2,690 14 18쪽
1 1. 만리장성(萬里長城) +1 18.04.09 4,585 2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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