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7) 타로카드
42회. 타로카드
“ 꽤나 유명한 곳이었고, 특히도 연애 점을 잘 본다고 했었어요.”
설명과 함께 그녀는 팔 년 전 학교 부근의 대학가로 돌아간 듯 했다.
길게 뻗은 인도 위로 장식품을 파는 리어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드문드문 소소한 먹거리를 파는 푸드 트럭들도 섞여있었다. 대학생인 연희는 친구와 즐겁게 수다를 떨며, 어묵꼬치를 먹고 있었다.
“ 야, 거기 진짜 잘 본데. 우리도 가보자. 나연이도 그 사람이 말해준대로 남친이랑 헤어졌잖아. 연애 점 전문이래.”
친구는 ‘연애 점 전문’이라는 어구에 방점을 찍으며 말했다. 연희는 은근슬쩍 궁금한 마음도 들었지만, 설마 라는 생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 에이, 우연이겠지.”
그 말에 친구는 우물거리며 씹던 어묵 살을 튕겨내며 반박했다.
“ 아니야, 민 선배는 죽어도 결혼 안한다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곧 결혼할거라고 말해서 비웃었다가, 임신해서 진짜 결혼했잖아.”
그 말에 연희의 호기심이 설마라는 의심을 훌쩍 넘어섰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 오······ 그래? 궁금하긴 하다.”
타로 카드로 점을 보는 카페는 군것질을 하던 장소에서 멀지 않은 건물 2층에 있었다. 평일임에도 한 시간 반을 기다리고 나서야 연희와 그 친구에게 순서가 돌아왔다. 두 사람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타로 카드 점을 보는 사람 앞에 앉았다. 예상과 달리 점을 보는 사람은 스페이드 무늬가 박힌 검은색 모자를 쓴 젊은 남자였다. 그는 카드를 섞고 연희에게 그 위에 손을 올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줄지어 놓은 후, 말없이 카드 하나를 고르라고 손짓했다. 연희는 한참을 고민하다 카드 한 장을 골랐다. 연이어 그도 한 장을 골라 연희가 고른 카드 아래에 펼쳤다. 그는 한동안 그녀가 고른 카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푹 눌러쓴 모자를 한 번 더 깊숙이 눌러썼다.
“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고, 평생···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에게 사랑받을 운명이에요.”
저음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연희는 친구와는 전혀 다른 점괘에 기분이 상했다. 그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연희는 기분이 나빠 뭔가를 묻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그녀는 박차듯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한 시간 반이나 기다렸는데, 저주 같은 말만 듣고 말았다. 같이 갔던 친구는 자기 점을 보느라 오래 걸려서 그런 것 같다며 커피숍을 나오는 내내 미안하다고 주절거렸다.
“ 그 이후부터였어요. 그 말이 저주가 돼서, 내 인생을 망치기 시작한 게···”
연희는 소름이 끼치는지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규혁은 점점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연희를 쳐다봤다.
“ 혹시, 스토킹 당하고 있다는 느낌 받은 적 없습니까?”
처음엔 의아하게 규혁을 쳐다보던 지영도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만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모르··· 겠어요.”
연희가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울먹이자, 규혁은 답답해 연희를 쏘아봤다. 그의 시선을 눈치 챈 지영은 타박하듯 그를 째리며 친절하게 다시 물었다.
“ 어쨌든, 그 이후부터 이런 일들이 생겼다는 거죠?”
지영의 나긋한 목소리에 연희는 안정이 되는지 다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경직된 얼굴로 대답을 내놓았다.
“ 맞아요. 그 이후부터였어요. 제가 자꾸 그 저주 같은 말을 되새겨서 이런 운명이 된 걸까요?”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질문에 규혁은 답변 대신 필요한 질문만 던졌다.
“ 그 타로 점 봤던 남자 얼굴 기억합니까?”
“ 아뇨.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오래된 일이라···”
그녀는 오래 전 봤던 영화를 되새기 듯 천천히 대답했다. 기대하던 답변이 아니었던지라, 규혁은 실망했지만 다시 물었다.
“ 그 타로 카페 이름은 기억합니까?”
그때, 여전히 생각에 빠져 있던 연희가 뭔가를 기억해냈는지, 입을 열었다.
“ 모자는 기억나요. 트럼프 카드 무늬였거든요.”
순간 규혁의 뇌리에 어떤 이미지 하나가 훅 스쳐지나갔다.
“ 혹시 스페이드?”
이번엔 지영도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표정으로 규혁을 쳐다봤다. 규혁의 얼굴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연희의 반응은 여전히 굼떴다.
“ 맞아요. 스페이드 무늬가 있는 검은색 모자······”
“ 우리가 오기 전에 누군가 다녀갔죠? 우릴 보자마자, ‘여기 그런 사람 없다’고 했잖습니까.”
규혁이 소리치듯 물었다.
지영은 순간 조금 전 연희를 만났을 때, 넋 나간 사람처럼 “여긴 그런 사람 없다”고 재차 되뇌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연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자꾸만 모르는 사람을 찾아서······ ”
“ 이런 씨···”
규혁은 욕 같은 외마디 중얼거림만 남기고 설명도 없이 다급하게 뛰어 나갔다. 지영은 놀라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규혁은 오피스텔 근처를 샅샅이 둘러보며 뛰어다녔다. 어느새 다시 연희의 오피스텔 앞으로 돌아온 그는 숨이 차 헉헉거렸다. 마침 연희의 집에서 내려온 지영이 입구 계단을 뛰어 내려 가 규혁 곁으로 다가갔다.
“ 팀장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지영이 묻자,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한 규혁은 헐떡이며 대답했다.
“ 몰라서 물어? 아까 다녀갔던 게 그 놈이잖아.”
이제 허벅지에 기댔던 손을 허리에 얹은 규혁이 지영을 나무라듯 말했다. ‘놈?’ 지영은 좀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연희의 집을 방문하기 전, 규혁과 지영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규혁은 본능적으로 그 남자를 주시했다. 지영은 규혁의 시선을 떠올렸다.
“ 혹시,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본 남자 말이에요?”
규혁은 흘끗 고개를 들고, 오피스텔 건물을 쳐다봤다.
“ 완전, 또라이한테 걸린 거야. 저 여자. 근데, 뭐 저렇게 둔한 여자가 다 있냐?”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질려버린 사람처럼 말했다. 지영도 일정부분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 글쎄요. 저 정도면 눈치 챌 법도 했을 텐데.”
“ 둔한 걸로 치면 너도 만만치는 않은데··· 저 여잔, 정말 걱정스럽다.”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는 장난어린 핀잔에 지영은 불쑥 화를 내다 빈정거렸다.
“ 둔하다뇨? 저 형삽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점 한 번을 봐준 사람이 스토킹을 한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혹시, 팀장님도 그 놈처럼 한 번 스쳐지나간 여자 스토킹 하고 뭐 그런 거 아닙니까? 바로 그런 놈 생각을 알아채시게?”
입술을 삐죽이던 지영이 오히려 그럴듯하게 자신을 공격해오자, 뻘쭘해진 규혁은 화제를 돌렸다.
“ 여기 관리소가 어디야? 가서 CCTV 영상 확보해와!”
“ 아까 갔던 데가 관리소인디요···”
지영이 툴툴거리며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자, 규혁은 위층을 쳐다보며 시니컬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 운명 좋아하시네. 감성에 쩔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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