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가리사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빈별
작품등록일 :
2018.04.09 14:44
최근연재일 :
2019.02.03 20:03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864
추천수 :
128
글자수 :
368,276

작성
19.01.29 21:00
조회
149
추천
1
글자
11쪽

25. d-day (1)

DUMMY

통신국으로 가는 내내 수송기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할 말이 있는 듯 바론이 하늘을 힐끗거렸으나 굳은 그녀의 표정 때문에 쉽사리 말을 붙이진 못했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길이 꽤 막히네요.”


바론의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앞에 앉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 기사가 꽉 막힌 도로를 내다봤다.


“그러게요. 마치 앞에 무슨 사고라도 난 것처럼 몇 분 째 움직일 생각을 안 하네요.”


기사의 말을 들으며 하늘이 초조한 듯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설마요. 그냥 막히는 거겠죠.”


사고라는 말에 바론이 하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리곤 하늘 몰래 통신기를 두드려 누리울에 접속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바론의 눈이 분주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인데...”


기사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메마른 입술을 짓씹던 하늘은 저도 모르게 손톱으로 입술을 뜯기 시작했다.


“뛰어서 가면 어느 정도 걸리나요?”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늘이 속으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지금 도로는 주차장처럼 정차되어 있었기에 내린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하늘이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을 때 바론의 손이 하늘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하늘아, 이것 좀 봐.”


바론이 하늘의 앞으로 통신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화면 속에 높은 빌딩 한 가운데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전 9시 3분. 통신국에 갑자기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당국은 신속히 무슨 일인지 파악에 나섰으며 사람들을 긴급 대피 시켰습니다. 혹시 모를 또 다른 폭발의 위험이 있으니.......”


여자의 목소리가 긴급히 상황을 전했다. 하늘의 귀에 갑작스런 이명이 찾아왔다.


“기사님! 빨리요!”


바론이 외치자 수송기가 위로 급히 솟았다.


“제 친구가 통신국에 있단 말이에요!”


바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안절부절 못했다. 수송기가 지상 위로 올라가는 순간 기사가 어느 한 버튼을 누르자 수송기의 모습이 감춰졌다.


“도련님, 침착하세요. 수호단과 구조대가 벌써 도착했을 겁니다.”


바론이 다리를 달달 떨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갑자기 지직 소리를 내며 꺼진 통신기를 바론이 흔들어댔다. 생명관에 있었을 때 하늘의 통신기가 꺼져 버린 것과 비슷했다.


“기사님 통신기는 어때요?”

“제 것도 불능입니다.”


바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통신국에 문제가 생겨 통신기의 전원이 나간 걸까요?”


하늘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통신국에 문제가 생겨도 만일을 대비해 통신을 조정하는 시스템이 있으니까요. 이건, 어쩌면...”


수송기가 다시 지상에 내려앉았다.


“누군가가 일부러 조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신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통신국 건물 중간에 위치한 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매디 찾아서 금방 올 테니까 넌 여기에 있어.”

“나도 같이 갈래!”


하늘을 뒤따라 수송기에서 내린 바론이 하늘의 앞을 가로막았다.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러니까...!”


생명관을 가득 채웠던 비열한 웃음소리를 떠올린 하늘이 목소리를 키웠다.


“나도 매디의 친구야. 그리고 널 혼자 보낼 수는 없어.”


단호한 바론의 말에 하늘의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하늘이 말려달라는 듯 기사를 쳐다봤지만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괜찮을 거야.”


바론이 앞장서며 말했다. 통신국으로 향하는 바론을 피해 사람들이 홍해가 갈라지 듯 뛰어갔다.


“그 녀석 신력이 물이잖아. 별일 없을 거야.”


뛰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바론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왜 그랬어? 굳이 가리사니에 가서 요란을 떨 필요는 없었잖아.”


커다란 창 너머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고 있는 남자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물었다.


“순조롭게 진행될 그들의 d-day를 보고 싶진 않아서.”


창에 비쳐진 남자의 입 꼬리가 비틀렸다. 그의 뒤에 있던 남자가 복면을 벗자 새카맣게 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우릴 이용했군.”


검은 얼굴에서 노란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영광스럽게 생각해야하는 것 아닌가? 희생으로써 이름을 날리게 되었잖아.”


창가에 선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맞은 편 건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 놈이 주는 영광 따위.”


검은 얼굴의 남자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창가에선 남색 정장의 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당했지만 다음에도 이딴식이면 그 잘난 얼굴도 이 신세를 면치 못하게 해주지.”


말을 마친 남자가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자 그제야 창가선 이가 고개를 돌렸다. 여유롭게 넓은 책상에 다가온 남자가 손목에 찬 통신기를 풀었다. 검은 화면의 통신기가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호기롭게 통신국으로 향하던 걸음이 가로막는 팔에 의해 막혀버렸다. 바론이 무어라 항변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하늘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오는 문을 제외한 들어가는 문을 모두 봉쇄해버린 것이었다.


“잠깐이면 된다니까요!”


바론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쳐댔다. 하늘의 눈이 바쁘게 주위를 살폈다.


“들어가면 안 된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틈으로 들어가려던 하늘의 앞을 막아선 이가 말했다.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요. 잠깐만 들어가서 살필게요.”


또박또박 말하는 하늘의 눈을 보며 흰 제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수호군들이 남은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으니 기다리렴.”


하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통신국으로 오는 내내 매디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허망한 얼굴을 한 바론과 하늘이 서로를 쳐다봤다.


“모두 물러서세요!”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위로 넓게 물의 장벽이 쳐졌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신국 입구 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다들 진정하시고 얼른 이쪽으로...!”

“다친 데는 없니?”


폭발이 일어난 순간 하늘의 머리를 감쌌던 수호군이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또다. 이명이 하늘의 귓가를 가득 메웠다. 혼비백산하며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보던 하늘이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막혀버린 입구를 바라봤다.


“아직 매디가...”


하늘의 중얼거림을 뒤로 하고 흰 제복의 남자가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런 하늘의 눈에 3층에 커다란 유리창이 깨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리자 잔뜩 흐트러진 얼굴로 뛰어오는 진솔이 보였다. 다행히 멀쩡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하늘이 안심했다.


“금방 다녀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말을 마친 하늘이 땅에 떨어진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바람을 힘껏 일으켜 순식간에 3층 높이 만큼 뛰어 올랐다. 창틀을 붙잡은 하늘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진솔이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봤다. 팔에 힘을 준 하늘이 건물 안으로 기어올라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성공한 하늘이 손수건을 꽉 쥐자 물에 축축히 젖어들었다. 연기가 짙진 않았지만 젖은 손수건을 코와 입에 대며 주위를 살폈다. 휴게실로 보이는 3층은 매우 넓었다. 계단을 발견한 하늘이 걸음을 서둘렀다.




한편 통신국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장실은 고요했다. 모여든 통신국 간부들을 죽 훑어보던 통신국 국장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통탄함을 내비치는 그의 말에 그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곳 안 어딘가에서 범인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도망이나 가야한다니...”

“중요 자료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피하시는 게...”

“자료 보관고가 모여 있는 27층이 폭발에 모두 날아갔는데 중요 자료를 밖으로 내보냈다?”


날선 국장의 물음에 검은 정장의 남자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똑똑.


살벌함이 감도는 방 안에 노크소리가 들리고 은발의 여자가 들어왔다.


“국장님. 방금 또 다른 폭발로 통신국의 입구가 막혀버렸다고 합니다.”


려가 고개를 숙이며 보고하자 국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호국은 대체 뭐하고 있길래 폭발하나 막지 못하는 건가!”

“어서 피하셔야합니다.”


국장의 호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려가 말했다.


“어서 국장님을 모시도록.”


려가 자신의 뒤에 서있는 남자에게 명령했다. 국장의 눈치를 살피던 간부들이 하나 둘 방안을 나섰다.


“제가 남아서 최대한 막겠습니다. 어서 가세요.”


려의 굳은 눈빛에 결국 국장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방을 나섰다. 무거운 나무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닫혔다. 텅 빈 방안에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퍼졌다. 좀 전에 굳은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려가 콧노래를 부르며 국장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제 시작해볼까.”


빙긋 웃음을 지으며 조그만 USB를 국장의 책상에 연결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책상에 화면이 켜지며 하나의 창이 나타났다.


“나야.”


려가 검지로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처럼 보이는 것을 톡톡 두드렸다.


“국장의 메인 컴퓨터에 접속했어.”


려가 짙은 와인색 매니큐어로 칠해진 손톱을 매만지며 말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렀다.


“난 널 부른 게 아니라 준을 부른 거야. 그리고 너희가 제 때 폭탄을 터뜨렸으면 이렇게 안 늦었어.”


려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암호나 알려 줘. 금방 찾아서 내려갈 테니까.”


국장실의 창 너머로 나타난 커다란 수송기가 방 안을 그림자지게 했다. 그것을 힐끗 쳐다본 려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찾았어?’


이어폰 너머의 물음에 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래. 지금 바로 입국장으로 내려갈게.”

‘그럼, 나머지 폭탄들은 어떻게 할까?’


의자에서 일어난 려가 USB를 뽑았다.


“우릴 막으려 그렇게 애쓰는 저들에게도 기회는 줘야지. 20분이 지나면 너희 마음대로 해.”


은색의 눈동자가 창 밖에 있는 수송기로 향했다. 그러더니 미련 없이 몸을 돌린 려가 국장실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린 국장실로 인해 복도에 거센 바람이 들어찼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늘과 가리사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를 마치며 19.02.03 101 0 -
공지 연재 시간 변경 19.01.17 119 0 -
70 26. 돌아올 곳 (2) - 完 19.02.03 131 1 12쪽
69 26. 돌아올 곳 (1) 19.02.01 118 1 12쪽
68 25. d-day (3) 19.01.31 129 1 13쪽
67 25. d-day (2) 19.01.30 112 1 11쪽
» 25. d-day (1) 19.01.29 150 1 11쪽
65 24. 전초전 (3) 19.01.26 123 1 11쪽
64 24. 전초전 (2) 19.01.25 127 1 11쪽
63 24. 전초전 (1) 19.01.24 125 1 12쪽
62 23. 완벽한 함정 (2) 19.01.23 131 1 11쪽
61 23. 완벽한 함정 (1) 19.01.19 126 1 11쪽
60 22. 눈속임 (3) 19.01.18 140 1 11쪽
59 22. 눈속임 (2) 19.01.17 126 1 12쪽
58 22. 눈속임 (1) 19.01.16 144 1 11쪽
57 21. 뜻밖의 외출 (3) 19.01.15 164 1 12쪽
56 21. 뜻밖의 외출 (2) 19.01.12 155 1 11쪽
55 21. 뜻밖의 외출 (1) 19.01.11 145 1 11쪽
54 20. 소리 없는 습격 (2) 19.01.10 146 1 12쪽
53 20. 소리 없는 습격 (1) 19.01.09 147 1 11쪽
52 19. 경고와 경계 (2) 19.01.08 164 1 11쪽
51 19. 경고와 경계 (1) 19.01.05 185 1 11쪽
50 18. 물속의 그림자 (3) 19.01.04 154 1 11쪽
49 18. 물속의 그림자 (2) 19.01.03 148 1 11쪽
48 18. 물속의 그림자 (1) 19.01.02 150 1 11쪽
47 17. 소중한 기억 (2) 19.01.01 181 1 11쪽
46 17. 소중한 기억 (1) +2 18.12.29 141 2 12쪽
45 16. 검은 부족 (2) 18.12.28 140 2 11쪽
44 16. 검은 부족 (1) 18.12.27 129 2 12쪽
43 15. 상상의 숲 (3) 18.12.26 183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