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장 - 양들의 목장(2)
그러나 그건 정확한 사실은 아니었다. 그 가능성의 출발점은 모르델반트에서 알렉으로부터 건네받은 서류를 살펴보면서 이븐이 남긴 감상이었다.
‘죽인 다음 시체를 가져간다던데.’
‘시체귀 농장이라도 차렸단 말입니까?’
“범인이 반드시 마물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마물로 변해버린 가족을 차마 저버리지 못하고 눈물겨운 부양을 계속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는 괴담에 머물지만은 않거든요. 역시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저는 시체를 가져간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위르겐마저 숨죽이고 귀를 기울이는 좌중의 침묵 속에서 이븐은, 아마도 그로부터 오십 년 후에나 수사에 활용될 용의자 특정 기법의 원시적 형태를 선보였다.
“제가 받은 인상을 간추려 조금은 예단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범인은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목을 끌지 않아야 하므로 성으로부터 상당히 외따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을 겁니다. 출입 기록을 남긴 뒤 표적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합니다. 또한 범인에게는 어린 자식이 있고 최근 이 자녀의 행방이 묘연해졌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마물로 변해버린 가족이 바로 이 어린 자녀입니다.”
이븐에게는 이와 유사한 상황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그가 잔베르에서 얻은 상처로부터 회복하고 얼마간의 수습 기간을 거친 뒤 사냥꾼으로서 처음 맞닥뜨린 사건이 바로 이런 종류였던 것이다. 날뛰는 시체귀를 잡아 죽이기 위해 살해당한 가족의 집을 조사하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못 박힌 자국이 남은 방문, 그것을 부수고 뛰쳐나간 흔적과 뜯어 먹힌 일가족의 시신, 그리고 여기에 더해 신원불상의 뼈들이었다. 이븐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추측을 이어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단 성인이 마물로 변하면 그 완력을 당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물로 변한 것이 범인의 배우자나 친척이 아니고 자녀일 것이라 추정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이 마물을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동시에 집에 감금하고 사육하려면 범인은 필연적으로 건장한 남성이어야 할 테죠.”
서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어 파울라가 일전에 올린 보고서를 찾아 들었다. 그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말했다.
“맙소사, 주여. 맙소사, 파울라. 우리가 범인을 찾았네.”
*
드뷔레 서장과 달리 파울라는 신중했다. 당장 용의자를 체포하러 가는 대신 그녀는 서장실에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정리한 문서를 이븐에게 건네주었다. 시원시원하게 휘갈긴 글자 옆에는 그녀가 생각나는 대로 적어둔 것 같은 메모들이 가득했다.
“열 살짜리 딸 하나와 둘이서 산에 살고, 네 번째 사건 발생 당시 말을 타고 짐을 옮기는 것이 목격······. 가택을 수색할 순 없겠습니까? 일단 수색하기만 하면 증거가 차고 넘칠 텐데요.”
파울라가 고개를 저었다.
“선후관계가 바뀌었습니다.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수색 명령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븐은 법 조항이 그것의 지향점이 아니라 그 자체의 형식에 붙들리는 것에는 질색했지만 이 경우에는 그도 법전의 문장을 들이미는 수밖에 없었다.
“엽사기본법 가운데 강제처분에 관한 법 조항은 유사시 사냥꾼의 사유지 및 주거에 대한 진입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교황령과 제국 사이에 맺어진 투나레드 조약은 이것이 제국령 어디에서나 유효하다는 것을 보장해주고요. 혹시 문제가 된다면 책임은 제가 지도록 하겠습니다.”
“베르자크, 당신이 오기 전에 해당 조항은 저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유사시라는 것은 말 그대로 마물이 토지에 침입한 때에, 그것이 목격되었고 여전히 그곳에 있으리라는 충분한 정황을 토대로 할 때에만 해당되는 조건이더군요.”
“법령을 조금 더 폭넓게 해석하면 가능합니다.”
이븐이 조금은 융통성을 발휘해보라는 듯 기대에 찬 눈빛으로 파울라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고지식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상만 놓고 보자면 영락없는 열혈 경찰관인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세세하게 따지는 인물인 성싶었다.
“그건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제국치안청의 필요에 공감하고 활동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양도한 사적 제재의 권리를 치안청이 자신들을 수호하는 데 사용하리란 믿음 때문입니다. 불쑥 쳐들어와 집을 들쑤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러나 결국 목표는 공공의 치안으로 수렴되는 것 아닙니까?”
파울라가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녀 역시 이븐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문제입니다, 베르자크. 복잡한 문제예요. 법무장관인 데케르 씨는 취임 후 경찰의 현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개혁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과 일단 잡고 보는 식의 전근대적 수사 방식으로부터 탈피하자는 것이지요. 더욱이 황제 폐하와 교황 성하 간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지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가 당신의 손을 들어주는 위험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겠습니다.”
결국은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게헤만 의회가 혁명 과업을 수행하는 일환으로 전제군주정의 타도를 외치는 가운데 살바도스 제국의 리카드 8세는 지금이 곧 대륙의 질서를 바로잡고 제국의 힘을 보여줄 적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이로드 교황은 유일하게 필요한 전쟁은 마물을 향한 것뿐이라며 황제를 윽박지르는 한편 게헤만 의회의 온건파를 설득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단에 소속된 일인인 동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교황의 사람인 그에게는 공연히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을 의무가 있는 것이었다.
“저 친구는 경사님께 특별한 감정이라도 품고 있습니까?”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갇히자 이븐은 좀 전부터 떨어진 자신의 책상에서 목을 빼고 이븐과 파울라가 대화하는 양을 지켜보던 위르겐을 가리키며 물었다. 일견 무례해 보이는 질문에 파울라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누구···? 아, 위르겐. 아뇨, 아닐 겁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는요. 그보다 가깝게 지내시면 좋을 텐데요. 베르자크 당신과 비슷한 연배일 겁니다.”
“저 친구가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것 같은데.”
깔끔하게 빗어 넘긴 금발은 그 나이 또래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성숙한 느낌을 주기보다 군살 없이 말끔한 얼굴 위에 얹혀 도리어 풋내기 같은 인상을 강화해줄 뿐이었다. 아버지의 옷을 물려 입은 어린 아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문득 자신이 사건에 대해 성급히 결론 내린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의견에 시시콜콜 딴죽을 걸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보존된 사건 현장이 있다고 하셨죠. 저 친구와 함께 가보겠습니다.”
“둘이서요?”
파울라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븐이 기대고 있던 책상으로부터 몸을 바로 세우며 대꾸했다.
“이참에 친해져 보죠.”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