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2장 - 세 번째 안(1)
2막 배덕
2장 세 번째 안(案)
“문을 부수고 들어왔군.”
“보고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위르겐이 별 대단치 않은 걸 떠든다는 것처럼 말했다. 다만 그의 태도는 다소 누그러져 있었는데 사냥꾼과 함께 현장을 살피는 막중한 임무에 차출된 것이 자신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븐은 한결 여유로워진 태도로 표정으로만 웃으며 떨어져나간 문짝을 주워들었다.
“흔적이 보입니까? 신장이 나랑 얼추 비슷합니다. 폭은 더 넓으니 살집 제법 있는 양반이겠군.”
“에네스바우어 경사님께서 특정하신 용의자의 신체 특징과 일치합니다.”
위르겐은 자신의 말에 권위가 필요할 때면 경사님을 찾았다. 그 외에도 이븐에게 은근히 핀잔을 줄 때,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할 때 등 경사님은 시시때때로 불려 나왔다. 이븐은 위르겐의 정강이를 걷어차면 그가 분명 ‘경사님 맙소사!’를 외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둘의 관계가 더욱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현장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집에 들어선 뒤로는 망설인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피해자의 침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사전에 알고 있었단 말이군.”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사건의 발생 시각은 새벽 한 시 경이었다. 그들이 문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은 이웃의 허름한 문짝이 또 다시 말썽을 부렸거나 술 취한 이가 마누라를 깨우는 소리일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아시겠습니까? 무작정 침입한 게 아니라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별 과정을 거친 뒤 사전 조사를 했단 말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주변 인가를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벌였지만 숄츠가 최근에 목격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숄츠는 그들이 범인으로 점찍은 인물이었다. 치안청의 발 빠른 대처를 자랑하여 그것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위르겐의 열기는 그 기저에 깔린 오만함을 제하고 보자면 이븐에게도 이로운 것이었다. 정보와 주도권을 두고 벌이는 은근한 신경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글쎄, 주민들의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서. 보통 사람의 예사로운 관찰이란 것은 스스로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법입니다. 그 사람이 여기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여기에 온 적이 없다고 증언하는 식이죠.”
그건 그가 이 년 여의 사냥을 해오면서 느낀 바였다. 사람들은 언제나 목격한 마물의 크기를 부풀려 증언했다. 공포가 몸집을 불리는 것이었다. 이븐은 이 풋내기 경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특히 어떤 권위를 가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사람들은 갑자기 모호한 태도를 걷어치우고 확신에 가득차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합니다. 권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가져오는 상황 변화가 즐겁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페스하임거의 인지심리학이로군요. 대학에서 읽은 적 있습니다.”
살면서 받은 정식적인 교육이라고는 갓 모집된 신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 군사 교육이 전부인 이븐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사실 그마저도 전장에서는 그리 쓸모가 크지 않았다. 위르겐은 문득 궁금해졌다는 듯 물었다.
“사냥꾼들도 양성 기관을 거칩니까?”
“교육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기관 같은 건 없습니다. 노련한 사냥꾼 하나 붙여주고 옆에서 보며 체득하기를 기다리는 거죠. 우리는 그걸 수습 기간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사냥꾼들이 그렇게 점잔빼는 용어를 사용할 리는 없었다. 그는 그가 소위 수습 기간 동안 젖먹이로 불리던 일을 떠올렸다.
“그런 식으로는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내지 못할 텐데요.”
“동감입니다.”
위르겐의 감상에 이븐은 쉬이 동의해버리고는 다시 사건 현장에 정신을 모았다. 그는 그다지 넓지 않은 실내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더니 문간에 서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자, 내가 사람 고기에 환장한 마물이라고······.”
그러나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지 이븐은 말을 멈추었다. 위르겐은 이제 이 사냥꾼의 뚱딴지같은 소리에는 익숙해진 모양으로 얌전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무튼 내가 그 마물이라고 칩시다.”
“범인이 꼭 마물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아, 이건 두 번째 안(案)이오. 한 편에 물러나 잠자코 계세요.”
그 말대로 위르겐은 한 편에 물러났다. 그에 앞서 제법 학술적인 소리를 지껄인 덕분에 권위를 인정받은 것인지 위르겐의 태도는 다소 고분고분해졌다. 밖으로 나간 이븐이 문을 부수는 시늉을 하며 들어오더니 성큼 성큼 넓은 보폭으로 침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재연하는 모양새가 얼마나 충실한지, 그 현장감으로 위르겐의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한 번에 제압하려면 목을 꺾어야겠지.”
그는 침대를 향해 손을 뻗어 가상의 피해자의 목을 부러뜨렸다. 그러쥔 주먹 사이에서 손마디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찢어진 기도에서 피거품이 올라와 튀면 핏자국도 설명될 테고······. 얼마나 걸렸습니까?”
“중간에 혼잣말하신 걸 빼면 삼십 초 정도일까요.”
대뜸 던진 질문을 위르겐이 솜씨 좋게 받았다. 이븐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보다는 빠를 텐데.”
“숨이 멎는 걸 확인하는 시간을 더했습니다.”
“합리적이군요. 납득했습니다. 사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걸립니다만 일단 넘어갑시다.”
이븐은 다시 밖으로 나가 문간에 섰다.
“이번에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가능성이죠.”
위르겐이 조끼의 앞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드는 걸 보고 이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좀 전과는 달리 문에 들이박는 시늉을 여러 번에 걸쳐 했다. 이븐이 벌이는 연극에 흥미가 동했는지 위르겐이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피해자는 깼습니다.”
“문이 부서졌습니다. 피해자와 눈이 마주쳤군요.”
“비명을 지릅니다.”
이븐은 연극을 멈추고 제자리에 우뚝 섰다.
“망했습니다.”
“네,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주민들을 신뢰해도 될 것 같군요. 아무튼 비명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강행한다면 삼사 분 내외의 시간이 걸릴 겁니다.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서도 그가 우리의 예상대로 건장한 남성이라면 저항하는 피해자의 목을 부러뜨리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일체의 저항 흔적도,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없었다. 이븐은 자신의 추론을 되짚어 보았다.
“피해자들은 혼자 사는 여성이거나, 귀가 어두운 배우자를 둔 노인이거나, 주인 가족이 잠시 비운 집을 돌보던 나이든 하녀였습니다. 만약 그가 건장한 남성이고 또 마물이라면 그보다는 더 대담하게 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설령 신중히 행동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더 먹음직스러운 이들을 골랐겠죠.”
“더 먹음직스러운 이들요?”
위르겐이 놀라서 묻자 이븐이 부연했다.
“보통은 당신 또래의 남성이거나 살집 많고 젊은 여성입니다. 노인을 먹잇감으로 삼는 건 이성이라곤 없는 시체귀들이나 하는 짓이죠. 혹은··· 아주 힘이 약한 마물이거나.”
그는 부엌 쪽에 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렇게 가정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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