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2장 - 세 번째 안(2)
이븐이 창문에 다가가 흔적을 살피더니 나직이 말했다.
“이인조입니다. 하나는 창문으로 침입했고 다른 하나는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위르겐이 곧장 토를 달았다.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 가정은. 창문도 작거니와 그렇게 침입한 한 명이 있다면 안에서 문을 열어줄 수 있었을 겁니다. 문을 부수는 일은 그것에 드는 수고는 논외로 하더라도 지나치게 요란합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다만 이븐 역시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침입 흔적이 없었다면 어떤 가능성을 먼저 떠올리시겠습니까?”
“면식범의 소행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창문이겠죠.”
“그렇다면 나는 필연적으로 몸집이 작은 마물을 범인으로 상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근래에 이상 징후를 보인 아이들을 용의선상에 올릴 것이고 아마도 숄츠의 어린 딸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를 겁니다. 병을 핑계로 성 안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지 꽤 되었으니까요.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다섯 개의 사건 현장에서 모두 동일하게 나타났죠. 이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한 추론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븐의 말에 위르겐은 정말로 추론들을 떠올려 보는 기색이었다. 그가 물었다.
“의도적이란 뜻입니까?”
“우리가 숄츠를 가장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한 까닭은 단지 제가 거기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물로 변한 자녀를 위해 시체를 가져다주는 가족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한 일이고, 제가 만약 그와 같은 경험도, 그 경험으로부터 얻은 선입견도 없이 순수하게 이 사건을 봤다면 여전히 숄츠와 다른 건장한 남성 용의자들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었을 겁니다.”
위르겐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이븐의 추론에 제동을 걸었다.
“잠깐만요. 제가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 범인이 그냥 힘센 마물일 가능성은 왜 소거하신 겁니까? 그 편이 오히려 불필요한 가정 없이도 더 큰 설명력을 가질 텐데요.”
더 적은 수의 가정으로 더 많은 사례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타당하리라는 위르겐의 입장은 과학적 견지에서 보자면 흠잡을 데 없는 것이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이븐의 사냥꾼으로서의 경험이 그의 논지를 보강했다.
“피해자들. 이 피해자들은 맛은 없지만 사냥하기 수월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숄츠의 딸······. 이젠 둘 다 숄츠이니 이름으로 구분해야겠군요. 로라가 창문으로 들어왔고 피해자를 살해한 뒤 그녀의 아버지인 디트마르가 수사에 혼선을 야기하려고 문을 부쉈다는 겁니까?”
“그에 더해 시체 운반을 위해서요. 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위르겐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열 살짜리 소녀 마물이, 이게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소녀 마물이 그토록 변수 많은 계획을 실행하고 인간인 자신의 아버지와 합을 맞춰 들키지 않게 다섯 번의 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이븐은 자신에게 능글맞게 접근하던 베크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답했다.
“아, 경관. 이놈들의 교활함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
이것을 배려라고 불러야 할는지 몰라도 비교적 쾌적한 사건 현장 덕분에 식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이븐은 위르겐의 말을 빌리자면 북부에 얼마 없는 남부 음식 전문점에서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의 몫으로는 고기와 새우를 쌀과 함께 볶은 음식이 나왔는데 향신료의 맛이 강했다.
“샤냥꾼께서는······.”
“이븐이라고 부르십시오. 불편하거든 베르자크라고 불러도 되고.”
명칭을 고르는 데에 애를 먹는 위르겐에게, 이븐이 이름으로 부를 것을 주문했다.
“네, 베르자크. 아무튼 당신은 결심을 굳힌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나는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숄츠 집안이 관계되었을 거라 봅니다. 다른 용의자들도 살펴봤지만 명확한 동기가 없습니다.”
위르겐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자못 진지한 태도로 그에게 말했다.
“페스하임거의 책을 읽어봤다면 그가 했던 실험을 기억하실 겁니다. 먹이가 없을 때에도 지렛대를 누르던 생쥐 말입니다.”
그건 굳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 법한 유명한 실험이었다.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먹이가 굴러 떨어지도록 설계한 통에 얼마간 풀어놓은 생쥐는 먹이가 떨어지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지렛대를 누르더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생쥐는 깜찍하게도, 더 이상 먹이가 떨어지지 않자 제 나름대로 연구에 골몰해 온갖 행동 양식을 고안해냈다. 통 안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가 하면 지렛대를 누르는 발을 바꿔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이것들이 뒤섞여 제의(祭儀)라고 불러도 좋을 행동을 보였다.
“그러니까 제 말은, 베르자크 당신이 과거의 성공에 취해 지나치게 좁은 시야에 매몰되어 있는 것 아니냔 겁니다.”
위르겐의 어법은 다소 직설적이었다. 이븐은 오히려 그런 직설화법을 에두른 예의범절보다 높게 치는 위인이었다. 정직함의 대가로는 또 다른 정직한 고백이 있을 뿐이었다.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죠. 시체귀 한 마리를 잡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제 스승한테 돌아가서 보고했더니 저를 호되게 혼내더군요. 스승하고 다시 그 마을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었죠. 마을 사람 둘이 더 죽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같이 시체귀 소굴을 찾아 숲을 쏘다녔고 그 길로 세 마리를 더 잡았습니다.”
그때 웨인이 그에게 했던 말은 아직도 귓가에 쟁쟁했다. 이것들은 잡초다. 온 땅을 뒤집어서라도 뿌리 뽑을 각오가 없다면 얄팍한 정의감 따위로 섣불리 덤비고 섣불리 승리를 선언하지 마라. 이븐은 거듭 자신의 실수를 시인했다.
“제 실수였죠. 어린 아들이 —그때는 아들이었습니다— 자연히 마물이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겁니다.”
이븐의 경험담을 듣고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린 위르겐이 물었다.
“이 경우엔 어떻습니까? 로라만 마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실수가 아닐까요?”
“알 수 없죠. 그러나 로라든 디트마르든 일단 잡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시 식사를 재개한 위르겐이 그와 마주앉은 이븐의 너머로 눈을 돌렸다가 멈칫했다. 그의 표정에 돌연 긴장한 기색이 서렸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위르겐이 낮게 깐 목소리로 덧붙였다.
“디트마르가 지금 입구에 서있습니다.”
그러나 이븐은 뒤를 돌아보았다. 크게 헤맬 것도 없이 그의 시야에 사십대의 남성이 들어왔다. 자신에게로 던져지는 시선을 의식한 듯, 그 역시 이븐을 마주 쏘아보았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디트마르는 이븐이 경관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려 식당을 나갔다. 급한 발걸음이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를 잡아낸 이븐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체 냄새가 나는군.”
이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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