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3장 - 이중 함정(2)
엄중한 경고의 의미로 디트마르의 말에는 삿대질이 가미되었다. 손끝이 이븐을 찌를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이븐을 찌르려 드는 것은 손가락만이 아니었다. 이븐은 확장된 감각을 거두어 들여 그의 몸이 풍기는 악취로부터 코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단순한 얘기입니다, 숄츠 씨.”
벽으로부터 몸을 뗀 이븐이 천천히 디트마르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내뿜는 위압감에 파울라는 자신이 늑대인간이라던 그의 말이 단순한 농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교단은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늑대인간을 사냥꾼으로 쓴다고?
“나는 이 뤼스베르크란 도시가 도무지 지긋지긋해졌단 말이죠. 도와주러 왔더니 사람을 강아지 취급하는 경관도 있고요. 바람이나 쐴 겸 도시 밖을 돌아다니다가 공기 좋아 뵈는 산에 들어섭니다. 밤은 깊었고 다시 뤼스베르크로 돌아가자니 영 귀찮아진 겁니다. 마침 산중턱에 제법 그럴 듯한 별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을 두드리는데 안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죠. 혹 마물이 아닐까? 제기랄, 사냥꾼이 별 수 있나요. 문을 따고 들어갑니다.”
디트마르가 이븐을 노려보았다. 그의 핏발 선 눈이 이븐의 움푹 패여 음험한 느낌을 주는 두 눈을 향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븐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웬걸, 꼬마 마물이 달려들죠. 어쩔 수 없이 이놈으로 머리를 한 대 갈깁니다.”
이븐이 그의 허리에 걸린 권총을 툭툭 두들겼다. 그건 사람을 상대하는 호신용 총 따위가 아니었다.
“퍽-!”
이븐이 두 주먹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펼쳐 보였다. 참지 못하고 디트마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 쳤다.
“허튼 소리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내가 듣기에는 제법 개연성이 있습니다, 숄츠 씨.”
파울라의 말에 디트마르가 이번에는 그녀에게로 살벌한 시선을 던졌다. 딸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이 따위 불한당이랑 영합하겠다는 거요, 에네스바우어?”
파울라는 등받이로 천천히 몸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사실대로 말하세요. 진심으로 충고 드리는 겁니다.”
디트마르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븐이 문으로 향하며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다.
“답답한데 바람이나 쐬러 가야겠습니다.”
“협박이오!”
돌아선 그의 등을 향해 디트마르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븐은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럼 내가 뭐 당신하고 담소나 즐기고 있는 줄···”
“아니, 내 말은, 내가 협박당하고 있다는 거요. 협박!”
이븐이 제자리에 우뚝 섰다. 파울라 역시 실마리를 찾았다는 듯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황급히 테이블에 몸을 붙였다. 그녀가 신중히, 그러나 조급함을 감추지 못한 채로 물었다.
“누가 협박하고 있다는 거죠?”
“로라··· 놈들이 로라를 죽일 거요. 내 딸 로라를 죽이고 말 거야.”
별안간 디트마르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하지? 디트마르의 예상치 못한 실토에 이븐은 혼란스러워졌다. 더욱이 그의 추론은 제삼자가 끼어들면서 들어맞는 구석 하나 없이 어긋나버렸다.
“세 놈이오. 세 놈이 내 집을 차지하고 로라를 인질로 삼아 날 끌어들였소. 그놈들은 식인종이오! 내게 사람들을 물색하고 그들을 죽일 때도 내가 돕도록 만들었소. 경관 나리, 엽사 나리, 나는 공범이오. 하지만 정말이지 난 그러고 싶지 않았소. 맹세하리다!”
디트마르가 울음으로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이 예기치 못한 히스테리에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파울라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디트마르가 테이블 위로 머리를 처박았다. 한동안 지속되던 그의 흐느낌이 조금 멎자 그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놈들이 그 사람을 죽일 거요.”
“누굴 죽인단 말입니까?”
이븐이 정신을 수습하고 물었다.
“당신과 같이 날 잡아온 경관 말이오. 놈이 그 사람을 봤소.”
“위르겐.”
파울라가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멍하게 말했다. 그러나 곧 자신이 내뱉은 단어로 스스로의 정신을 깨워내는 데에 성공한 듯 흥분해 소리쳤다.
“위르겐. 맙소사! 베르자크, 마물이 위르겐을 노리고 있어요!”
이븐은 두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사냥 수칙 하나, 흥분하지 말 것.
“진정하십시오. 지금 와서 경관을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건 지나치게 대범한 짓거리란 말입니다.”
그러나 디트마르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그의 추측을 뒤집었다.
“내가 잡혀가는 걸 봤으니 이제 여길 뜰 거요. 놈들은 전에도 경찰을 죽인 적이 있소.”
이븐이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파울라를 쳐다봤다.
“이건 극비예요, 베르자크. 피해자는 여섯입니다. 우리는 혼란을 최소화해야만 했어요.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은 시체는 우리 치안청 소속 경관의 것입니다. 하지만 범행 수법이 같다고 생각하기엔 확실치 않아서 우리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이븐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놈을 지켜보고 있으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
“그렇다면 디트마르가 마물인 걸까요?”
“젠장, 나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입 좀 닥치시오.”
이븐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가 서둘러 찾아낸 위르겐은 그들이 오늘 저녁 즘에 둘러봤던 피해자의 집 근처에서 과부가 던지는 추파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위르겐의 입장에서는 일생일대의 위기일지 몰라도 이븐이 우려했던 유의 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일이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븐은 위르겐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치안청 건물로 뛰어가는 중이었다. 밤이 이슥했으나 그들의 일과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 한데요. 제가, 볼 때는 베르자크 당신을, 떼어 놓으려 한 것 같단······.”
이븐의 뜀박질에 도무지 따라잡기 힘들 속도가 붙자 위르겐이 뒤처져서 숨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븐은 숫제 온몸으로 뛰고 있었다.
“파울라!”
이븐이 치안청의 문을 부술 기세로 밀어 젖히며 외쳤다. 아닌 게 아니라 벽에 부딪힌 문의 유리창이 깨어져서 바닥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치안청 안은 그 시간대에 드물게 경관들의 말소리로 시끄러웠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이븐이 경관 둘을 손으로 어깨로 밀쳐 가며 파울라의 자리 앞으로 당도했다.
“놈은?”
파울라의 피범벅이 된 뒷머리를 한 경관이 들여다보며 응급처치를 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탈력해서 해쓱해진 얼굴이 이븐을 올려다보았다. 이븐은 그녀의 말을 듣기도 전에 내용을 알고 있었다.
“베르자크, 놈이에요. 놈이 우리를 속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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