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4장 - 한 줌의 진실(1)
2막 배덕
4장 한 줌의 진실
드뷔레 서장은 자신의 잘 훈련된 부하들이 경관을 폭행하고 달아나는 용의자를 제지하지 못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치안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부터 호출을 받고 허겁지겁 뛰어온 서장은 우선 파울라의 상태를 살핀 뒤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이븐과 위르겐 사이의 어딘가에 대고 말했다.
“체포 명령을 발효하겠소. 퇴근한 경관들을 모두 호출해 집을 포위하고···”
“아뇨, 서장님. 이 경우엔 그냥 제게 맡기십시오.”
이븐의 자신만만한 선언에 서장은 놀라서 물었다.
“하지만, 베르자크, 놈들이 몇이나 되는 줄 알고?”
“치안청의 경관들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만, 마물을 상대하는 일은 그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경관들 데려갔다가 물려서 감염이라도 되면 골치 아파집니다.”
그건 이븐이 가장 피하고 싶은 가능성이었다. 밀집된 대형에서의 마물에 의한 감염이란 걷잡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 모든 감염된 이들을 잡아 죽일 자신이 그에게 없진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일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니 그 자식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겠습니다.”
사냥꾼에게 사건을 전임하는 것은 이븐에게 그럴 능력이 있고 그래서 그의 부하 경관들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서장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안이었다. 그러나 제국치안청의 총경이자 뤼스베르크 시 경찰서의 서장으로서 그에게는 작전을 준법의 영역 안에서 조율할 의무가 있었다.
“그놈이 마물인 게 확실한가, 파울라?”
“힘이 무척 셌지만 신체 변형 같은 것은 경황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디트마르에 의해 그야말로 집어던져져서 벽에 머리를 찧은 탓에 가벼운 뇌진탕으로 잠시 기절했던 그녀였다.
“그럼 여전히 사유지 침입의 문제가 남는구먼. 베르자크, 내가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경관을 대동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가겠습니다.”
위르겐이 선뜻 나섰다. 파울라가 다친 데에는 그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위르겐, 이건 위험한 일이야.”
서장이 얼른 그를 말리고 나섰다. 위르겐이 믿고 따르는 파울라에게 한마디 보태줄 것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서장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도 따라가지요.”
그녀가 자신의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들며 말했다. 장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발 권총이었다. 무척 신중하게 겨냥하고 쏴서 마물의 눈을 맞힌다면 마물의 성깔을 한껏 돋울 수 있을 테고 그 덕분에 신속히 죽임을 당할 것이므로 자살 도구로는 손색이 없었다.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좋지 않은 것이 따라가겠다는 결정인지 그녀가 꺼내든 총인지 알 수 없이 모호하게 이븐이 말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둘을 단념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구태여 함께 간다면 몇 가지 약조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마물의 사살을 제게 온전히 맡기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길을 안내하는 것, 그리고 집 앞에서 체포에 불응할 시 진입하겠다고 고지하는 것뿐입니다. 그 이상으로 저를 돕고자 나선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물리거나 접촉해서 감염의 징후를 보인다면 그 즉시 사살하겠습니다.”
그건 시의 안전을 담당해오던 치안청 경관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주문이었다. 위르겐이 인상을 찌푸린 것은 물론이었고 서장마저 가히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다.
“약속드리겠습니다.”
대답은 파울라의 입에서 나왔다. 그녀는 머리 뒤로 받치고 있던 피가 흥건한 수건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기증이 이는지 책상의 모서리를 짚은 그녀를 서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봤다. 서장이 말했다.
“베르자크, 그럼 내게도 하나 약속해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경관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이들은 뤼스베르크의 기둥들입니다.”
*
시의 치안판사를 깨워 영장을 받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으므로 그들이 말을 타고 산기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가까운 무렵이었다. 이븐이 느끼는 피로감은 그의 육체적 능력이 일반인을 상회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체로 정신적인 압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모르델반트에서 출발한 것이 아침이었으니 꼬박 하루 종일 이 사건에 시달린 셈이었다. 그러나 그가 적의 존재를 알고 적이 그의 존재를 아는 지금, 지체할 시간이 조금도 없었다.
“지금부터는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선두에 서기를 고집한 이븐의 뒤에서 위르겐이 길을 알려왔다. 그들의 접근을 알리는 게 결코 현명한 일은 아니었지만 파울라와 위르겐은 별다른 도리 없이 랜턴을 들 수밖에 없었다. 무슨 배짱인지 아무런 조명기구 없이 이븐은 산의 짙은 어둠을 응시하며 이 작전이 성가신 추격전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베르자크, 디트마르를 잡아오고 나서 제게 했던 말··· 사실인가요?”
파울라가 말을 재촉해 이븐의 옆으로 붙으며 말했다. 파울라의 말안장에 걸린 랜턴의 불빛이 그를 포섭했다. 이븐은 그녀의 질문을 이해했지만 성의 없이 대꾸했다.
“저와 싸울 일이 없다면 모르셔도 됩니다.”
“함께 싸울 일은 있을 것 같은데요.”
이븐이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광원을 아래로 둔 그의 얼굴이 위험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단순한 조명의 농간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은 어쩐지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오기 전에 말씀드렸죠.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회피하시는 걸로 충분한 답변이 되었네요.”
이 남자도 전투를 앞두고 긴장을 하는 것일까? 파울라는 이븐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딱딱하게 구는 것을 그렇게 해석했다. 산허리쯤에 왔을 때 그들은 저 너머로 인가의 불빛이 비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자신감의 표현이거나 공들이지 않은 함정일 것이라고, 이븐은 생각했다.
“함정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위르겐 역시 이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말의 속도를 올려 앞선 두 사람과 나란히 붙으며 말했다.
“제가 먼저 가서 살피겠습니다.”
파울라가 말의 배를 차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븐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럴 필요 없으니 유난 떨지 마십시오.”
“이 주변의 지리는 내가 더 잘 알아요, 사냥꾼. 매복이 없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독단적으로는 진입하지 않겠어요, 그건 약속드리죠.”
“이미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파울라는 이미 말을 달려 나간 뒤였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븐은 불현듯 깊고 어두운 살의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달아나는 사냥감. 사냥감이라고? 대체 왜 그런 생각을? 이븐은 확장시켰던 감각을 거두어들였다. 살의가 누그러들면서 그의 시각과 후각은 다시 범상한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경사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위르겐이 난처한 듯이 말했다. 이븐은 한순간 살의에 사로잡혔던 여파로 자신도 모르게 신랄한 말을 내뱉었다.
“제 통제를 따르지 않으실 거라면 애초에 저를 뤼스베르크로 불러들일 필요도 없었을 텐데요.”
“아, 사실은.”
위르겐이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잠깐 뜸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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