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4장 - 한 줌의 진실(2)
“사실은 베르자크 씨에게 공조를 요청하는 건 제 생각이었습니다. 경사님과 상의 없이 서장님께 바로 말씀 드렸는데 그분도 동의해주셨죠. 경사님은 처음에는 화를 내셨습니다. 말도 없이 일을 진행한다고요. 그래도 뭐, 어쨌거나 우리는 범인 체포를 앞두고 있잖습니까?”
“잠깐만요. 저를 부르는 게 위르겐 당신 생각이었다고요? 그럼 제게 했던 말은 뭡니까?”
이븐은 그가 처음 뤼스베르크에 도착했을 때 위르겐이 까탈스럽게 굴던 일을 떠올리고 물었다. 위르겐이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곧장 이해하지 못하자 이븐이 얼른 덧붙였다.
“제 위치를 명심하라고 경고했던 것 말입니다.”
“아, 그건 경사님께서 기꺼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기에 제가 미리 주의를 드렸던 겁니다.”
파울라 에네스바우어. 그러나 정말로?
“죽은 경관. 내게 말하지 않았던 살인 사건은··· 그 사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이븐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히 물었다. 하지만 얼른 튀어나온 위르겐의 대꾸를 들은 그는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죽은 경관요? 무슨 말씀이신지···”
빌어먹을. 이븐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송곳니는 쉬이 입술을 찢었고 두 줄기 피가 수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상처는 곧 아물었다.
“위르겐, 지금 당장 뤼스베르크로 돌아가십시오.”
입안에 번지는 피 맛을 느끼며 이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르겐은 도무지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갑자기 무슨···?”
그러나 위르겐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수풀로부터 뛰쳐나온 검은 형체가 그를 덮치는 것과 동시, 이븐이 위르겐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말로부터 떨어트렸다. 이븐이 몸을 낮추며 곡예에 가까운 몸짓을 선보인 덕에 땅바닥에서 한 바퀴 구른 위르겐은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위르겐을 덮쳐오던 형체는 목표물이 사라지자 자연히 이븐에게로 불시착했다.
“베르자크!”
역시 말에서 떨어져 기습해온 형체와 뒹굴고 있는 그를 보며 위르겐이 소리쳤다. 놀란 말이 부산스럽게 날뛰는 동안 말안장에 달린 램프가 그들의 모습을 비추고 감추기를 반복하면서 위르겐의 시야 속에서 점멸했다.
점등. 희멀건 마물이 이븐의 위에 올라타 그의 목을 감싸 쥔다. 이븐이 허리 뒤로 손을 가져다 댄다. 위르겐이 품에서 권총을 꺼내 그들에게로 겨냥한다. 그러나 섣불리 쏠 수 없다. 암전.
다시 점등. 이제 이븐이 마물의 위로 올라탔다. 그들 주위로 흙먼지가 부옇게 일어난다. 이븐의 두 손에 쥐어진 금속성 불빛이 반짝인다. 암전. 새된 비명소리. 꿀렁거리는 듯 역겨운 소리.
다시 점등. 마물의 갈라진 배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사지가 땅 위에서 버르적거린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븐이 무게를 실어 마물의 머리를 밟는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여전히 움직임은 멎지 않는다. 이븐이 마물의 목에 칼을 가져다댄다. 암전. 서걱거리는 소리.
위르겐이 다가가 말을 진정시켰다. 고정된 조명 안에서 난투의 전모가 드러났다. 피 웅덩이 속에 드러누운 목 없는 시체가 위르겐의 눈에 들어왔다. 이븐은 흉측한 마물의 머리를 수풀로 던져버리고는 그의 몸에 튄 내장과 오물을 털어냈다. 소매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낸 그가 말했다.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저게 대체 뭡니까?”
내장을 다 쏟아낸 채 죽어있는 시체를 보며 위르겐이 물었다.
“아귀(*)라는 놈입니다. 총을 함부로 쏘지 않은 건 좋은 판단이었습니다. 그런 걸로는 이놈들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이븐은 자신의 허벅지에 걸려있던 권총을 권총집째로 풀어 위르겐에게 건네주었다.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들고 쏴야 합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그러나 회전식 연발 권총을 직접 손에 쥐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약실을 왼손으로 감싸 쥐자 이븐이 손을 들어 위치를 교정해 주었다.
“손잡이를 잡으세요.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듯이. 아까 전처럼 잡으면 손가락이 날아갑니다. 반동이 대단할 겁니다. 쏠 때 팔을 너무 곧게 뻗으면 탈골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금 굽히십시오. 허리띠에 차세요. 외투 속에 감추고.”
“저게 디트마르입니까?”
위르겐이 이븐의 지시를 따르며 물었다. 벌거벗은 회백색 몸체는 불쾌할 정도로 창백해서 시퍼런 핏줄이 드러나 보였다. 디트마르라고 생각하기에는 체구가 작았고, 이븐이 보기엔 파울라도 아니었다.
“아니,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료인 건 거의 확실하군요. 당신을 시로 돌려보내려니 뛰쳐나온 걸 보면.”
“이런 게 몇 마리나 더 있을까요?”
말을 해줘야 하나? 이븐은 그러나 말을 아끼기로 했다.
“일단 두 마리는 더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영장.”
이븐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말머리 위로 던진 뒤 위르겐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위르겐은 정신이 팔린 듯 집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경사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경사님은 어디 계신 걸까요?”
이븐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자기 몸 지키는 데만 신경 쓰십시오.”
평소와 같았다면 발끈했겠지만 좀 전에 본 충격적인 장면으로 인해 위축된 위르겐은 고개만 끄덕였다. 이븐은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자신의 목덜미를 한 차례 쓸더니 위르겐에게 말했다.
“그 뭣이냐, 들어간다고 알려주십시오.”
이븐의 주문에 위르겐이 목을 가다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디트마르 숄츠! 다섯 건의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불응할 시 진입하겠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븐은, 위르겐이 듣지 못한 여자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이븐이 문으로 다가가 발로 찼다. 문은 열려 있었다. 다시 튕겨져 나오는 문을 손으로 잡으며 이븐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게, 사냥꾼. 식사중인데 함께 들겠나?”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가 서있는 입구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식탁에 둘러앉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식탁보는 피로 점철되어 있었다. 굳은 피 위로 다시 피가 흐르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 듯, 그것은 시커멓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 위로 다섯 번째 피해자의 시신이, 팔다리 없이 몸통만 남은 채로 올려져 있었다.
“에네스바우어, 언제부터였지?”
당장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게 최선이었겠지만 이븐은 호기심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배 속으로부터 끓어 오르는 짐승 같은 발성이었다.
“수사하던 중에 물렸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는데 맛을 들이니 빠져나올 수가 없더라고.”
무리의 가운데, 식탁의 상석에 앉은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양 옆으로 두 명이 더 앉아있었는데 하나는 디트마르였고 다른 하나는 이븐이 들어오자 말을 건넸던, 처음 보는 이였다.
“파울라, 얼른 죽여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디트마르가 눈에 띄게 불안해하면서 말했다. 그와 마주 앉은, 체구가 작은 남자는 킬킬거리고 있었는데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마르틴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리고 파울라 말을 들어보니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늑대인간?”
“마르틴은 내가 죽였다.”
이븐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빌어먹을 개구리처럼 배를 갈라서 죽여 버렸다고.”
“왜 멀쩡한 사람을 죽은 놈으로 만들어?”
그의 뒤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이븐은 돌아서서 얼른 허리로부터 권총을 빼내어 그를 겨누었지만 쏠 수 없었다. 남자가 위르겐의 목에 칼을 대고 서있었던 것이다.
*시체귓과에 속하는 마물. 팔다리가 가늘고 길며 튀어나온 배가 특징적이다. 근력은 늑대인간의 그것에 버금가며 한 번에 많은 양의 인육을 먹고 배 속에서 천천히 소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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