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5장 - 역병의 계절(1)
2막 배덕
5장 역병의 계절
위르겐을 인질로 삼은 사내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만든 권속을 나로 착각한 모양이군.”
“하, 제기랄. 어쩐지 쉽더라니.”
사람을 감염시켜 권속으로 부릴 정도라면 이들도 상당한 힘을 가진 마물일 터였다. 앞뒤로 적을 두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었으므로 이븐은 천천히 식탁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마르틴도 그를 따라 들어오며 거실 쪽에 자리를 잡았다. 파울라가 이븐을 보고 말했다.
“권총 세 자루 다 식탁 위로 올려.”
“경사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위르겐이 놀라 소리쳤다.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마르틴이 위르겐의 머리를 꺾어 올렸다. 그의 품 안에서 위르겐이 버둥거렸다. 이븐은 두 자루의 권총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액슬, 이쪽으로 가져와. 다른 한 자루는?”
“없어. 네놈들 권속 잡다가 부서졌다.”
그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었다. 파울라가 말했다.
“마르틴, 그 놈 몸 뒤져봐.”
마르틴은 파울라의 명령에 위르겐의 몸을 뒤져 그가 본래 들고 왔던 단발 권총과 이븐이 건네주었던 연발 권총을 모두 찾아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은 봐주지. 또 수작 부리면 저놈 팔다리를 찢어버릴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아귀들이 담소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 불쾌한 식사에 초대된 손님으로서 이븐이 감상을 밝히자 파울라는 짧게 웃었다. 그녀는 흥미가 동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늑대인간이라며. 변신해 봐.”
“못 해.”
파울라가 실망했다는 듯이 과장스럽게 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뭐야, 거짓말이었던 거야? 피 냄새가 어쩌고 했던 것도?”
“교단도 제정신이라면, 물론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여하간 생각이 있다면 늑대인간을 사냥꾼으로 쓰지는 않겠지.”
이븐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잔베르 얘기는 어디까지 사실이지?”
그건 디트마르의 질문이었다. 파울라로부터 그가 늑대사냥개, 이븐 베르자크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우두머리를 잡아 죽인 건 사실이지. 열흘 동안 숨어서 사냥을 한 것도 사실이고. 수백 마리를 죽였네, 피가 강처럼 흘렀네 마네 하는 건 거짓이야.”
“그럼 몇 마리였는데?”
액슬의 말에 이븐은 그를 포위한 형세로 둘러싼 이들을 한 번 눈으로 훑고는 말했다.
“몇 마리든 간에 네 마리보단 많았지.”
“그래서, 네가 한 번에 우리 넷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건가?”
“이틀 전에 다섯 놈 잡고 오는 길이거든. 한 번에.”
디트마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파울라의 손에 들려있던 이븐의 권총으로 손을 뻗었다.
“됐어. 잡담은 끝. 파울라, 권총 이리 줘.”
“네깟 놈이 머스킷이나 다뤄봤지, 이걸 쏠 줄은 알아?”
파울라는 디트마르의 손을 쳐내고는 오른손에 들린 권총의 해머를 당겼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약실이 돌아갔다. 내려놓은 다른 한 권총은 액슬의 손에 들려졌다. 디트마르는 못마땅한 듯이 한숨을 뱉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파울라가 이븐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어디를 쏴줄까?”
총구를 이븐의 사타구니로 향하게 하며 그녀가 히죽 웃었다. 그녀의 왼손이 약실을 감싸 쥐고 있었다. 방아쇠에 걸린 검지에 힘이 들어갔다.
퍽-
“아아악-!”
굉음이 울리고 이븐이 서있던 자리 뒤의 진열장이 박살나며 접시가 쏟아져 내렸다. 이븐은 몸을 낮춰 식탁 밑으로 달리며 파울라에게 쇄도했다. 잘려나간 손가락의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뒹구는 그녀에게로 이븐이 권총을 주워들어 쐈다.
파울라가 몸을 뒤튼 탓에 총알은 본래 겨눴던 머리가 아니라 얼굴에 꽂히며 치명상을 입히는 데 실패했다. 디트마르와 액슬이 얼른 테이블을 집어 던지며 이븐을 파울라의 몸으로부터 떼어냈다. 액슬이 이븐에게로 총을 겨눴지만 디트마르와 얽혀 있는 탓에 쏘지 못했다.
“그 새끼 죽여!”
액슬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마르틴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들고 있던 칼로 위르겐의 목을 찢으려는 찰나에 이븐이 디트마르를 뿌리치며 왼손으로 자신의 칼을 던졌다.
불안정한 자세에서도 칼은 회전해 날아가 마르틴의 이마에 정확히 박혔다. 그가 주춤거리며 힘이 빠진 순간 위르겐이 압박을 풀고 나와 마르틴의 외투 주머니로 손을 넣어 총을 격발했다.
“크아악!”
총알은 마르틴의 골반과 사타구니를 거쳐 대퇴부에 박혔다. 채 자세를 잡지 못하고 총을 쏜 탓에 위르겐의 오른쪽 어깨가 빠졌다. 과연 이븐의 경고대로 반동이 끔찍했다. 그는 진땀을 흘리며 넘어진 마르틴의 몸에서 총을 빼내어 왼손으로 들었다. 그가 재차 쏘려고 하자 이븐이 외쳤다.
“쏘지 마! 내가 죽인다!”
다시 굉음. 총은 정확히 마르틴의 배를 맞혔고 터진 배의 틈으로 내장이 주르르 쏟아졌다. 은으로 된 탄환이 그의 몸을 부식시키며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그것으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귀가 다섯 사람을 먹으면 머리가 다섯 번 떨어져도 살아난다는 사냥꾼의 격언은 물론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만큼 아귀의 재생력에 십분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이었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행동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므로 이븐은 이번에는 액슬의 배를 겨눴다. 그러나 액슬이 더 빠르게 반응했다.
퍽-
액슬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이븐은 옆구리에 불타는 듯 뜨거운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삼켰다. 그러나 다행한 일이 하나 있다면 액슬의 손에 들린 권총에는 은탄환이 장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약실에 특수한 화약을 채워서 파괴력을 높인 물건이었다. 이븐은 왼손으로 쏟아지는 피를 틀어막으며 이를 악물고 다시 액슬을 겨눴다.
“개자식이-!”
디트마르가 뒤에서 덮치며 이븐을 밀어 넘어뜨렸다. 이븐은 넘어지며 권총을 격발, 총알은 액슬의 오른다리를 뚫었다. 그가 고통으로 껑충 뛰자 이븐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약실에 든 마지막 총알을 액슬의 배에 박아 넣었다.
배가 터져 내장을 흩뿌리며 액슬이 비명을 질렀다. 이븐은 자신의 목을 조아오던 디트마르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고통으로 느슨해진 틈에 이븐은 묵직한 권총의 손잡이로 디트마르의 머리를 한 대 갈긴 다음 빠져나오며 액슬의 손에서 권총을 빼냈다.
“막아! 죽이라고!”
파울라가 엉망이 된 얼굴로 악을 썼다.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팔다리가 길어지고 배가 튀어나와 걸치고 있던 옷을 찢었다. 디트마르 역시 일어나며 몸을 부풀렸다.
그가 입고 있던 조끼의 등이 터지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희극적인 소리를 내었다. 이븐은 일어난 것도 쓰러진 것도 아닌 모양새로 디트마르와 파울라에게 차례대로 한 발씩 쏘았다. 첫 발은 명중이었으나 두 번째 발은 아니었다.
디트마르는 총알을 맞고도 이븐에게 달려들어 그를 위르겐과 마르틴이 있는 거실로 밀쳐냈다. 다시 한바탕 바닥에서 구르는 지저분한 싸움이 이어지려는 차에 위르겐이 마르틴의 머리에 박혀있던 칼을 빼 디트마르의 옆구리에 박았다.
이븐은 디트마르의 거구를 번쩍 들어 집어던졌다. 이븐의 힘에 놀란 디트마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던져진 그의 몸은 벽난로 위에 있던 사슴 머리 장식의 뿔에 보기 좋게 꿰뚫렸다. 처참한 꼴로 박제 장식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그를, 이븐이 불붙은 벽난로 안으로 굴려 넣었다.
“그웨에엑-! 그웩-!”
마물로 변한 디트마르의 목에서 돼지 울음소리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다 들어가지 못한 그의 팔다리가 벽난로 밖으로 비어져 나와 허공을 휘저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친 탓에 불은 거의 꺼졌으나 이븐이 발로 짓밟고 욱여넣는 바람에 다시 기어 나오지는 못했다.
디트마르의 팔이 이븐의 다리를 잡으려 들자 그는 얼른 발을 떼고 디트마르의 옆구리에 꽂혀 있던 칼을 빼서 그의 배를 갈랐다. 달아오른 칼을 잡은 이븐의 손에서 연기가 새어나왔다. 갈라진 배에서 피가 쏟아지며 잔불을 꺼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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