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5장 - 역병의 계절(2)
탕-
비척비척 일어나고 있는 액슬의 머리에 다시 한 번 총알을 박아 넣은 이븐은 쓰러져 있던 마르틴을 살폈다. 그는 죽어 있었다. 위르겐은 그의 옆에 서서 벌벌 떨며 파울라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경사님,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아, 위르겐, 너도 이걸 알아야 해. 인육의 맛을, 사람의 피가 선사하는 달콤함을, 그 모든 것 너머로 배덕이 주는 희열을!”
이제 사람다운 데를 찾기 힘든 그녀의 입에서 독성을 띤 타액이 튀었다. 입은 양쪽으로 찢어졌고 그 사이로 갈퀴 같은 이빨이 들쑥날쑥했다. 찢어진 제복의 틈으로 부풀어 오른 배가 드러났다. 이븐은 신중히 그녀의 배를 겨누었다. 배는 아귀의 거의 유일한 약점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쏘지 못했다. 파울라가 빠른 속도로 도약하며 위르겐에게로 덮쳐 왔다. 위르겐의 망설이던 왼손은 뒤늦게 권총을 격발시켰다. 총알은 어림도 없이 위로 치솟았다. 파울라가 위르겐 위로 올라타며 그의 목을 물었다.
숨이 넘어가는 듯 위르겐이 끄르륵 소리를 냈다. 바닥으로 피가 튀어 번졌다. 권총을 허리에 건 이븐이 파울라의 머리채와 가랑이를 잡고 위르겐에게서 떼어내 던졌다.
벽에 몸을 부딪힌 파울라가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잡으며 이븐에게 덤벼들었다. 이븐은 달려드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목을 물었다. 이븐의 양손이 파울라의 배를 뚫고 좌우로 찢었다. 이븐에게 안긴 형태로 파울라의 몸이 무너졌다.
“대체 무슨······?”
쓰러진 그녀가 자신의 열린 배를 닫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이븐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바닥 위에서 뒤로 기는 파울라에게로 이븐이 다가가 턱 아래로 손을 넣었다.
“궁금할 테지, 내가 뭔지.”
파울라가 물어뜯은 목의 상처에서는 살이 돋고 있었다. 이븐은 발로 그녀의 배를 밟아 고정시킨 뒤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넌 궁금한 채로 죽을 거야.”
머리와 척추가 함께 뽑혀 나왔다. 이븐은 잠깐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디트마르의 시체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는 위르겐에게로 다가가 벽에 기대게 했다. 상처를 살펴보는 이븐의 표정이 어두웠다. 피를 쏟아 창백해진 얼굴의 위르겐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안 좋은···가요?”
“많이.”
위르겐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느끼던 그의 목에서 피 섞인 가래가 끓었다. 이븐은 이미 늦은 줄 알면서도 손으로 환부를 막아 지혈했다. 심장이 느리게 뛸 때마다 피가 끈질기게도 손 틈새로 새어나왔다.
“그래도··· 뤼스베··· 안전해지겠죠···? 저랑··· 이븐··· 덕분에 안전···”
“당분간은.”
이븐은 거짓말에 재능이 없었다. 그는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말을 덧붙였다.
“언제 이런 일이 또 있을지는 모르지. 이 도시는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싶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걸로··· 된 겁니다. 그걸로······.”
졸음이 밀려오는 듯 위르겐의 눈이 감겼다. 이븐은 위르겐의 손에서 그가 꼭 쥐고 있던 권총을 빼냈다. 약실에는 탄환이 세 발 들어있었다. 그는 허리띠에 걸려 있던 권총집을 다시 자신의 허벅지에 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이 있던 곳으로 가서 이븐은 떨어트렸던 권총을 주워 약실을 교체했다.
“그르륵-”
소리는 뒤에서 나는 것이었으므로 액슬은 아니었다. 이븐은 허벅지에서 총을 빼내고는 얼른 뒤를 돌아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의 총구가 가닿은 곳은 위르겐의 시체였다. 감각이 그 자신을 오도했을 리는 없을 터, 그렇다면 이것은 이븐이 피하고 싶었던 가능성이 실현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븐은 사격 자세를 유지한 채로 위르겐에게 다가갔다. 감겼던 눈은 다시 떠진 채였으나 거기엔 어떤 이성도 담겨있지 않았다. 목의 상처가 천천히 아무는 것을 보며 이븐은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이윽고 위르겐의 머리는 곤죽이 되었다. 이븐은 외투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가죽으로 두른 담뱃갑은 제 소임을 다한 듯했다. 핏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진 담배를 입에 물며 이븐은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남기며 그는 층계 위로 올라섰다. 방은 두 개였다. 잠기지 않은 첫 번째 방은 비어있었다. 그는 두 번째 방문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문은 잠겨 있었다. 이븐은 권총으로 문고리를 내리쳐 부쉈다.
“살려주세요.”
소녀였다. 이븐은 그 소녀가 디트마르의 딸인 로라라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총구로 그녀를 겨누며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소녀가 뒷걸음질 치며 창문에 붙었다.
“쏘지 마세요.”
이븐은 방아쇠를 당겼다. 격철이 약실을 때렸다. 그러나 탄환은 발사되지 않았다. 재빨리 옆으로 튀어 오른 소녀는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븐의 얕은 수에 속아 넘어갔단 것을 깨달은 마물은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로 뛰어들었다. 빈총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이븐은 달려든 마물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움켜잡았다. 공중에 뜬 마물의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으지직-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움켜잡은 머리를 벽에 찧은 이븐이 담배를 뱉으며 말했다.
“이제는 별 지랄 같은 것들이 다 나를 속이려드네.”
이븐은 그대로 마물의 머리를 벽에 대고 가로로 획을 그었다. 마물의 머리통이 갈려나가며 벽에 눈알과 뇌가 칠해졌다. 머리의 반쪽이 사라진 마물의 배를, 이븐이 칼로 갈랐다. 찢어진 내장에서 소화가 덜 된 인간의 살점이 비어져 나왔다.
*
이븐이 전하는 말을, 서장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경관들과 함께 가서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지켜보고 온 뒤로 그는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븐은 피에 흠뻑 젖은 채로 서장실의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보고 왔습니다.”
제법 충격적인 일이었을 텐데도 서장은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서장쯤 해먹으려면 이 정도 정신력은 있어야 하는 모양이라고, 이븐은 속으로 뇌까렸다. 그러나 그는 서장의 눈가에 눈물자국이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시체는 모두 태우셔야 할 겁니다. 마이어 순경 것도요.”
그건 이븐이 두 번째로 하는 말이었다. 잠결에 했던 말을 반복한 셈이었지만 강조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이븐은 한가로이 하품을 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제가 더 도와드릴 일이 있겠습니까?”
“이··· 이 마물들이 더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로라를 죽이고 나서도 집 근처를 더 살펴봤던 그가 대답했다.
“아주 적다고 봅니다.”
“그러면 없습니다, 베르자크. 해가 뜨는 대로 떠나셔도 좋습니다.”
이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오, 베르자크. 가십시오.”
서장이 고개를 숙였다. 이븐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바로 오늘 낮에, 여기서 파울라, 위르겐과 함께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다.
“베르자크.”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를 서장이 불러 세웠다. 울음기 섞인 목소리였다. 이븐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만 제자리에 멈췄다.
“누가 인간으로 변장한 마물인지도 모르고, 또 그 마물에 사람이 물려 감염되는 것을 막지도 못한다면, 대체 사냥꾼이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뭐란 말입니까?”
그건 역병을 의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고약한 짓이었다. 그러나 역병이 휩쓸고 간 자리에 유족들이 탓할 것은 의사밖에 없으므로, 게다가 이븐은 바로 이런 짓거리에 익숙했으므로 아주 차분하게, 그리고 동시에 간단히 대꾸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은 뒤져서 관 속에나 나자빠져 있죠. 우리는 거기에 못을 박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븐은 잠잘 곳을 부탁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2막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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