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1장 - 머리통 흥정(2)
“아, 스테펜 신부님.”
“이 아가씨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사냥꾼의 식견으로 보기에 말이오.”
남자는 상체를 일으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앞으로 숙여 참회를 연상케 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의 긴 두 다리 사이로 팔과 머리칼이 늘어졌다.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송하’는 빼고요.”
“하! 그것 보세요. 백 번 양보해서 60다렌 쳐주시면 받아들이죠. 세금은, 맹세컨대 이따 나갈 때 헌금함에 넣어드릴 테니까 따로 빼는 수고를 하지는 마시고요.”
신부는 마른 입술을 핥고는 더 이상의 흥정을 방지하고자 얼른 어음에 숫자를 적어 넣었다.
“중소형으로 분류해서 60다렌에 세금 제하면 57다렌하고 80루스. 은행은 전에 알려준 곳과 같소. 천천히 찾아도 무방하지만 그 사람들도 정산을 해야 하고 늘 바쁘니 빨리 가져다주는 걸 좋아할 게요.”
“방금 5다렌짜리 헌금을 놓치셨네요, 신부님. 헌금함에는 침이나 두둑이 뱉어드리지. 이렇게 해도 내가 손해 봤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거예요. 나누면 한 사람 앞에 20다렌도 채 안 돌아가는데다가, 흉갑을 새로 해야 하고 혁대를 끊어먹었으니, 아 젠장! 완전 봉사야, 봉사! 이러다 죽기라도 하는 날엔 어디 묏자리나 구할 돈이 남아 있을까 모르겠네.”
여자의 말에는 무엇인가 또 불경한 소리가 들어간 것 같았지만 워낙 호들갑스럽게 지껄인 탓에 그녀의 말이 끝났을 즈음 신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만 혁대를 끊어먹었단 정보는 놓칠 수가 없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바지를 밧줄로 동여매고 있었던 것이다. 신부는 그 밧줄이 낯익다고 여겼다가 곧 교회 정원의 덤불이 누워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묶어 뒀던 것이란 발견에 이르러서는 또 다시 머릿속의 성경에서 인내의 말씀을 찾아야 했다.
“묏자리는 걱정 안 해도 될 거요. 마물에게 죽으면 우린 모두 똥이 될 테니까.”
군터하임이라 불렸던 남자가 익살스럽게 지껄였다. 그러자 여자는 표정을 대번에 바꾸고 볼멘소리를 했다.
“재수 없는 소릴. 똥 같은 소리 하지 마시고 거, 약이나 한 대 더 맞으시죠.”
여자가 그를 숫제 마약 중독자 취급을 하거나 말거나 남자는 광인의 음산한 쾌활함을 잃지 않았다.
“아, 그럴까. 그래도, 그러나, 그보다도······.”
그는 말장난 같은 소리를 하며 단어를 고르다가 고개를 번쩍 들고 여자를 향해 말했다.
“이번이 세 번째라면서요. 저것들은 감염이 되어 나타나는, 말하자면 권속 같은 것들인데 응당 뿌리를 찾아 뽑아야지 않겠습니까?”
“아, 이 아저씨 하는 말은 통 알아듣질 못 하겠어.”
여자는 소지로 귀를 후비더니 신부가 있는 쪽을 향해 후 불었다.
“실력도 있고 수완도 있는 것 같은데, 흐, 어떻습니까? 나랑 같이 구렁이 사냥이나 안 떠나시렵니까? 서로 배울 점이 많을 텐데.”
“구렁이는 또 무슨 술 담가먹는 소리야. 됐고, 그런 건 교단의 잘나신 사냥꾼 나리들이나 많이 하세요. 약도 적당히 하시고. 아저씨 친구 별로 없죠? 외로운 건 알겠는데 꼽사리 붙는 거 질색이니까 여기 우리 신부님하고 어떻게 한번 잘- 해보세요.”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신부에게서 받아든 어음을 품속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그녀는 깜박했다는 듯 손잡이를 잡고 매달린 자세로 고개만 돌려 인사했다.
“죽여주는 가호와 은총과 뭐 하여튼 그런 것들이 그대들과 함께 하기를!”
조심성 없이 놓은 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밖의 공기를 끌어들여 안의 것과 갈음했다. 예배당의 문은 신부의 철학을 반영해 항상 열어둔 채였고 그 때문에 비에 젖은 흙냄새가 그의 집무실까지 들어왔다. 신부는 그제야 참아왔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머리통에 손이 닿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면서 가죽 주머니를 닫아 묶었다.
“수상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오.”
신부가 그렇게 말하자 남자가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에 대어 보였다. 그로서는 무척 이례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발뒤꿈치를 들고 상체를 말아 문을 향해 소리 죽여 다가갔다. 그가 벌컥 문을 열어젖혔을 때 신부는 문짝이 뜯겨나가는 줄 알았다.
“왕!”
문밖에서 자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에에잇, 육시랄 거! 뭐 하자는 수작이야?”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안에서. 그게 아니면 아주 밖으로 나가시고.”
“간다고, 가! 내가 이 염병할 곳에 더 있느니 돼지 똥구멍을 핥지.”
그 이후에도 상스런 말이 더 이어졌지만 남자는 깨끗이 무시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앉지 않고 창문에 붙어 서서 여자가 그녀의 일행과 합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부가 그에게 제공했던 사전 정보에 따르면 방금 신부에게서 어음을 받아간 여자가 저들 무리의 수장격인 인물로, 이름은 앰버였고 지난 달 말부터 마물의 머리통을 하나씩 들고 오더니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어음을 확인하고자 스스럼없이 앰버의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 차려 입은 남자는 오스왈드였는데 신부의 말에 따르면 둘은 연인 사이라는 것이었다. 옆머리를 바싹 깎고 그렇게 드러난 맨살에 문신을 새겨 넣은 여자는 신부도 이름을 몰랐는데, 입을 굳게 다문 채 나머지 둘의 실랑이를 지켜보는 모양이 어쩐지 절도가 느껴지는 품새였다.
“내 생각은 말이죠.”
남자는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와 털썩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흐, 아주 잘 훈련된 용병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요새는 그런 걸 사설 사냥꾼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던데. 우리야 헷갈리니 용병, 용병 하고 부르지요. 흐흐, 세상이 전부 사냥터고 전쟁터야. 기왕이면 나도 장군쯤 했으면 좋겠는데, 사냥꾼, 흐.”
남자와 대화하는 법에 요령이 생긴 신부는 쓸데없는 말들을 쳐내서 듣고 자신이 하려는 말을 되는 대로 쏟아냈다.
“그래도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소이까? 보름 동안 세 마리를, 그것도 한 번에 잡아온 것도 아니고 꼭 어디서 구해오는 것처럼 머리통을 하나씩 잘라 바치니, 원. 군터하임 당신이 말한 것도 그렇고, 내가 아는 바도 그러한데, 이건 감염되어 생긴 마물 아니오? 주여, 용서하소서. 저들이 일부러 작당을 하고 감염시키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지 않소?”
신부가 교단에 지원을 요청한 데에는 바로 이 같은 의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 미치광이가 올 줄은 그도 몰랐던 바였다. 그는 내심 언젠가 본 적 있는 지팡이칼을 쓰는 말쑥한 노신사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잔베르의 사냥꾼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냄새, 냄새라··· 나 이런 거 잘 못하는데······.”
남자는 턱을 긁적이며 중얼거리더니 그가 노상 그러하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뇌까렸다.
“어디서 사냥개 한 마리를 얻어 와야 하나.”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