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4장 - 흉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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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달리 뷔센은 예나첸 마을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일단 사냥에 나서자 뷔센은 이븐을 무섭도록 다그쳤고, 이븐은 그런 재촉에 시달리며 빠르게 예나첸 마을을 훑어 문제의 삼인조가 그 후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마을과 도시의 중간쯤 되는 규모의 다흐트만으로 향해 도무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뷔센의 주장으로 가죽 공방에 들러 마침내 흔적을 찾아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가죽 공방에서 허리띠를 사 간 세 명의 용병은 그 후 마차와 말을 빌렸고 깐깐한 마차 주인은 그들의 행선지를 캐물어 기록했던 것이다.
“거긴 아닐걸, 흐.”
뷔센은 그렇게 말하며 외투의 품속에서 너저분한 지도를 꺼냈다. 그러면서 마차 주인이 알려준 행선지와 비슷한 거리에 위치한 마을을 모두 짚어내더니 그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지금 파스귄트 마을로 향해 가는 이유였다.
“파스귄트에는 가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븐이 앞서가는 뷔센의 등에 대고 말했다. 뷔센의 독특한 안장은, 말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장치된 용수철이 압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충격을 상쇄시켰다. 덕분에 뷔센의 몸은 우스꽝스럽게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했다.
“안 가본 마을이 없지. 정말이지 안 가본 데가 없어. 발밑에서 세상이 팽글팽글 돈다니까.”
이븐은 외투를 여몄다. 비는 점차로 기세를 잃더니 부슬비로 화했으나 여전히, 그리고 끈질기게 내렸다. 화약이 젖으면 그야말로 무장해제를 당하는 격이었으므로 이븐은 총기를 외투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어두었다. 다만 새로 받은 총기는 그렇게 보관하기가 마땅찮아서 기름 먹인 종이로 감싸둔 참이었다. 이런 실정이니 이븐은 뷔센에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자고 요청했으나 뷔센은 또 말릴 길 없는 고집을 부렸다. 신속하고 집요하게. 아마도 스테펜 신부가 들었으면 어이없어 할 그 어구는 뷔센의 사냥 철학이었다.
악천후에 구애받지 않는 뷔센의 무기는 그가 지금 등에 메고 가는 기다란 검이었는데, 끝에서 날이 급격히 넓어져 닻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모양새의 검을, 뷔센은 귀상어라고 불렀고 이븐을 비롯한 다른 사냥꾼들은 본 적도 없는 생물의 이름 따위보다야 곡괭이검이라고만 불렀다. 언젠가 뷔센이 말하기를 마물의 내장을 뽑아내는 데는 그만한 검도 없다는 것이었다. 뷔센이 오른손을 뒤로 들어 칼자루에 손을 얹자 이븐도 상념에서 깨어나 품속으로 손을 넣어 권총을 잡았다.
“쫓기고 있는데요?”
“흐, 벌집이라도 건드린 모양이지.”
뷔센이 말의 배를 차며 앞으로 나아가자 이븐도 뒤를 따랐다. 볼 만한 광경이었다. 마차 위에 선 남자가 채찍을 휘둘러 따라붙는 마물들을 쳐내고,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여자는 다른 팔로는 곡도를 쥔 채 위협이 될 만큼 가까이 온 마물들을 베었다. 그 모든 것이 빠르게 질주하는, 그러나 진창길로 인해 충분히 빠르지는 못하게 달리는 마차 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가 왜 저런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요?”
사냥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방식에 이븐이 순수하게 감탄하며 꺼내든 권총으로 전방을 겨눴다. 그러나 마차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
“비켜! 다 뒤진다고!”
마차를 모는 여자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이븐은 별 수 없이 옆으로 물러났고 그건 뷔센도 마찬가지였다. 마차가 그들 사이를 통과해 가는 순간, 이븐은 뷔센이 달려가는 마차를 향해 빠르게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았다. 그건 마치 단두대의 칼날 같은 움직임이었다.
“야 이 미친 작자야! 뒤질 뻔했······!”
그러나 앰버는 자신의 손에 들린 고삐가 방금 전 남자가 휘두른 검에 잘려나갔음은 물론, 마차와 말을 잇고 있던 마구 역시 깨끗하게 절단되었음을 깨달았다. 추진력을 잃은 마차는 비로 질퍽해진 길 위에서 점차 속도를 잃었고 때 아닌 자유를 획득한 말들만이 이 소란 속에서 황급히 도망쳐 갔다.
이븐은 뷔센이 선보인 기예에 혀를 내두르며 공격을 위해 도약한 마물을 쏘아 맞혔다. 뷔센 역시 예의 안장 위에서 들썩들썩하며 용케 균형을 잃지 않고 마물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아니, 오히려 뷔센은 그 움직임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숙련된 솜씨를 발휘했다. 머리통이 터지고 잘려나가기를 몇 차례, 예닐곱 마리 마물의 시체가 널브러지며 소란은 정리되었다.
“돌아와, 이 씹어 먹을 놈들아!”
이제 더 이상 앞으로 가지 않는 마차에서 내려, 앰버가 달아난 말들을 쫓아가며 소리쳤다. 오스왈드와 올가도 뒤따라 내렸으나 여전히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있었다. 이븐은 말을 돌려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마차는 미안하게 됐습니다. 교단에 배상을 신청하고 제 이름을 대도록 하십시오.”
“그것 참 친절하시군요. 이제 우린 발이 묶여버렸는데 말입니다.”
오스왈드가 허공에 채찍질을 하여 살점과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븐이 채찍 소리에 긴장한 말을 진정시켰다.
“이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름 말하나?”
다소 어색하게 말하는 여자는 백금발과 흰 피부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베소니아 출신인 듯했는데, 단단히 각이 잡혀 있었다. 이븐은 그녀가 이 무리를 이끌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며 답했다.
“이븐 베르자크입니다. 그쪽은 성함이?”
“올가.”
오스왈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하-!”
그는 얼른 낯빛을 바꾸고는 한 발은 뒤로 빼고 벗은 실크해트를 쥔 손은 앞으로, 또 다른 손은 뒤로 두며 복잡하고 고풍스러운 인사를 해보였다.
“그 이름 드높은 늑대사냥개시군요. 이거 참 영광입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고충을···”
“이제 어쩔 거야, 이 버러지 같은 놈들아!”
그러나 앰버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이쪽으로 걸어오며 그런 오스왈드의 노력을 무위로 흩어버렸다.
“지금 뭐가 우릴 쫓아오고 있는지 너희들이······”
“앰버!”
오스왈드가 얼른 소리쳐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는 다시 이븐에게로 고개를 돌려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하던 말을 이었다.
“사냥꾼께서도 짐작하셨겠지만 저희는 돈을 받고 마물을 잡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최근에는 감염된 마물을 몇 쓰러뜨려 그 잘라낸 머리를 방역관에 가져가 보이기도 했었지요.”
“네, 들어서 압니다. 요점을 말씀하시죠.”
이븐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여전히 마물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오지 않고 서있는 뷔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전권 위임으로 해석해야 할지 어떨지 고민했다.
“네, 그렇게 하지요. 어떻게 설명을 드릴까······. 간단하게 말해, 거대한 마물이 나타났고 힘에 부쳐 쫓기게 되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희들도 돕고 싶지만 아무래도 우리 같은 미천한 용병들이 끼어들기에 전투는 너무 위험하고, 또 사냥꾼들께서도 마음껏 무예를 펼쳐 보이기 힘드실 테니 불편하시겠지요. 저희는 일단 도망간 말들을······”
퇴로를 마련하고자 하는 마지막 말에 오스왈드는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븐은 얼른 그의 말을 잘랐다.
“아뇨, 불편하지 않습니다.”
마상에서 몸을 앞으로 숙여 오스왈드와 눈을 마주한 이븐이 분명한 발음으로 덧붙였다.
“도움을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이죠. 앞장서십시오. 따라가겠습니다.”
앰버가 오스왈드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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