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5장 - 구렁텅이(1)
3막 폐허
5장 구렁텅이
“마을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왔단 말입니까?”
이븐이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당신이라고 별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우리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건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깨워봐야 상황은 더 악화됐을 거라고. 아니지, 우리가 오히려 미끼가 돼서 사람들이 안전했던 거야!”
앰버는 그녀 스스로도 그것이 놀라운 발견으로 생각되는 모양인지 주먹 쥔 손으로 반대편 손바닥을 내리쳤다. 이븐은 입으로 들이켠 숨을 코로 뿜어내며 뷔센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은 다 좋은 친구들이지. 왜냐하면 친구가 많을수록 좋으니까.”
뷔센이 근처 나뭇가지에 아무렇게나 고삐를 걸어두며 대답 같지 않은 대답을 지껄였다. 밤의 어둠은 더 짙어졌으나 비는 마침내 그쳐, 이븐은 평상시대로 무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블런더버스에 탄환을 장전해 총구가 위를 향하도록 어깨에 걸었다.
“제 말은, 마을 사람들 말입니다.”
“가보면 알겠지. 답도 그때 나올 거고. 흐, 세상만사, 계획은 하나같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아.”
그건 이븐의 방식도, 그리고 그를 가르친 웨인의 방식도 아니었다. 계획이 계획대로 진행된 적은 아무리 너그럽게 기준을 잡아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언제나 피해는 그가 예상한 정도를 웃돌았지만 이븐은 피해가 그 수준에서 그친 것은 계획 덕분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뷔센, 저랑 같이 적목··· 적목수··· 혈안귀를 맡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임무를 저들에게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사냥개 좋으실 대로.”
그들의 대화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앞장서기로 되어 있었으나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뒤처진 나머지 셋에게도 공유되었다. 이븐은 앰버와 오스왈드, 그리고 올가의 면면을 한 번 눈으로 훑고 말했다.
“올라갑시다.”
마을 입구에 이르러 이븐은 어둠에 잠긴 인가와 길을 응시했다. 전율이 한 번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자 감았다가 뜬 눈에 선명한 영상이 담겼다. 감염된 이들 너머로 새까맣고 거대한 파충류 같은 마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감염된 이들은 길 양편에 자리한 집들의 굳게 닫힌 문을 부술 양으로 거듭 몸을 부딪었다. 상황은 금방 이해되었다. 올가가 곡도를 꺼내들고 이제는 습관이 된 몸짓으로 칼을 갈았다.
“앰버, 오지,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좋다. 사냥꾼들 함께 해서, 내가 막는다.”
“하지만, 올가!”
오스왈드의 이의 제기를, 올가가 눈빛으로 묵살했다.
“저것과 싸움 있어본 경우 있나, 군터하임?”
그들을 발견하고 이쪽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는 혈안귀를 보며 올가가 말했다. 뷔센은 자신의 성을 알고 있는 용병에게로 흥미가 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예전에 저런 게 많았지. 지금은 적고. 흐흐흐.”
“촉수로 공격한다면서요. 촉수는 어디······?”
이븐은 뷔센이 잔베르에서 그가 제정신일 때 해주었던 설명을 상기하며 말했다. 그의 질문은 때 아닌 괴성으로 끊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대답은 확실히 주어졌다. 머리와 몸통을 일으켜 세운 혈안귀가 음파를 발산하는 가운데, 그 시꺼먼 몸뚱이에서 수십 개의 촉수가 일시에 펼쳐졌던 것이다. 감염된 이들의 움직임이 바뀐 것을 눈치 챈 이븐이 권총을 겨냥해 쏘며 사냥의 시작을 알렸다.
수효는 열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이븐과 뷔센으로도 충분했다. 문제는 이븐이 싸워본 적 없는 혈안귀의 움직임이었다. 거대한 몸체는 굼뜨게 움직였으나 어쩌면 이븐과 일행을 상대로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더욱이 고막을 찢어발길 기세로 내지르는 음파 공격은 이븐에게 특히 치명적이어서 그는 아직도 뇌가 흔들리는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다. 사냥에 박차를 가할 양으로 이븐은 권총을 하나 더 꺼내들어 왼손에 쥐었다. 더 없이 비효율적인 자세였으나, 확장된 감각은 정확한 사격을 가능케 했다.
감염된 마물이 그들에게로 덮쳐오자 이븐은 양손으로 번갈아 사격을 개시했다. 빗나가는 탄환은 없었으나 일격에 죽이지 못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올가가 그것들을 정리했다. 화려한 듯하면서도 절제된 움직임이었다. 물이 흐르는 듯 유려한 동작은 필요한 시기, 필요한 위치에서 정확한 공격으로 이어질 뿐, 조금의 낭비도 없었다. 동료였던 오스왈드조차 새삼 놀라 말했다.
“올가가 저 정도였나?”
“이거 대피시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마물들의 공격은 멀찍이 물러선 오스왈드와 앰버를 제한 나머지 셋에게로 집중되었다. 오스왈드는 앰버의 말에 고개를 젓고 그녀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앰버. 대피시켜야 해. 거래 내용이 들통 나기 전에 입을 맞춰 놔야지.”
“이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데 사냥꾼들한테 그걸 말하겠어?”
“그러니까 그걸 분명히 해야지.”
이런 방면에서는 대체로 오스왈드가 옳았으므로, 앰버는 더 이상의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은 마물들을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해 입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집의 문부터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생존자 탐색은 네 번째 집에 이르러서야 첫 성과를 거두었다.
“나오십시오. 도망쳐야 합니다.”
“누, 누구시오? 정체를 밝혀!”
지체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오스왈드는 가장 효율적인 답안이라 생각되는 것을 내뱉었다.
“사냥꾼입니다. 지켜드릴 테니 나오십시오.”
문이 열리다 말았다. 남자가 문 뒤에 몸을 숨기고 말했다.
“당신들, 사냥꾼이었소?”
“아니, 저기 저 사람들이 사냥꾼이란 말이지요. 어서 나오십시오. 대피해야 합니다.”
남자가 미심쩍은 눈길을 유지한 채 가만히 서 있자 오스왈드가 답답해져서 재촉했다.
“가족들 데리고 산을 내려가십시오. 팻말이 있는 곳에 가 있으면 따라 내려가겠습니다.”
그제야 남자는 집 안에서 떨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 둘을 데리고 나왔다. 오스왈드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의 등을 입구 쪽으로 떠밀었다.
“제기랄, 오지!”
오스왈드가 남자와 대화하는 동안 경계하며 서 있던 앰버가 소리쳤다. 많지 않다고 생각했던 감염된 마물은, 집과 집 사이 골목에 숨어있다 뛰쳐나오며 수를 불렸다. 예상치 못했던 지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달려, 달리라고!”
앰버가 철창으로 구멍 낸 마물을 오스왈드가 채찍으로 다시 후려치며, 남자와 가족을 향해 소리쳤다. 남자와 그의 아내가 아이들을 하나씩 업고 뛰었다. 입구를 벗어난 그들이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마을 바깥에서 마물이 뛰쳐나오며 그들을 덮쳤다.
오스왈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내버려 뒀다가 그들이 모였을 때 덮쳤다면 더 효율적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 마물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입구에 있던 마물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또 방금 그가 대피시켰던 가족이 이제는 마물이 되어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며 천천히 이유를 깨달았다. 이 마을에는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
방금 그가 이 마을에서 가장 튼튼한 문을 가진 집에 살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아니 감염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문을 부수던 마물들은? 그 모든 게 단지 기만을 위한 시늉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그들 일행이 싸움과 생존자 대피의 두 임무로 갈라지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가족을 감염시키기 위해서?
“하, 하하하, 하하, 맙소사.”
“좋은 생각이 떠오른 거지, 그렇지, 오지?”
갑자기 실성한 듯 웃어대는 오스왈드에게로 앰버가 속사정을 알지 못한 채 물어왔다. 오스왈드는 어떻게든 포위의 형세를 저지하려 채찍을 휘두르며 저편을 향해 소리쳤다.
“올가! 생존자는 없어! 이 마을은 끝났어! 죄다 감염되어 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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