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5장 - 구렁텅이(2)
덩치가 크고 인간을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는 이유만으로 지능이 아닌 본능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 섣불리 판단했던 것이 실수였다. 앰버의 도움을 받아 또 하나의 마물을 처치하며 오스왈드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저 시꺼먼 도마뱀 새끼가 우릴 속였다고!”
“염병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앰버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덩달아 소리쳤다. 그녀의 철창이 어느 때보다 급박하게 움직였다. 인간형 적을 상대할 때, 특히 거리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에서 창의 이점은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았다. 조금씩 생긴 허점들이 몸집을 불려 거대한 대가가 되어 그녀를 추궁했다. 포위된 상태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며,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한 그녀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스왈드의 등이 그녀의 등에 맞닿았다.
“사냥꾼!”
올가가 그렇게 부르짖으며 이븐과 뷔센의 주목을 요청했다. 그녀는 이미 몸을 돌려 오스왈드와 앰버가 있는 쪽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숨어있다 튀어나온 마물들이 그녀를 집요하게 막았다.
“그쪽으로 간다!”
이븐의 외침이었다. 고개를 돌린 올가는, 자신을 향해 갈지자의 변칙적인 움직임을 구사하며 땅을 말아 일으킬 기세로 달려오는 시꺼먼 형체와 마주했다. 재빨리 옆으로 도약했으나 혈안귀의 공격은 예측을 빗나갔다.
그 거대한 대가리는 돌연 방향을 바꿔 올가의 늑골을 들이박아 부러뜨리며 그녀를 멀리 쳐냈다. 땅바닥에서 한참을 구르다 인가에 부딪혀 정지한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로 뻗쳐오던 구원의 손길이 좌절되는 것을, 또 더 큰 재앙이 그들에게로 덮쳐오는 것을 보며 오스왈드가 말했다.
“앰버······!”
“지금 말고 나중에!”
앰버의 오른발에 채찍이 감겼다. 그녀가 깨닫지 못한 사이 그녀의 몸은 이미 허공을 날고 있었다. 급히 정신을 차린 그녀는 허공에서 몸을 돌려 철창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며, 지붕 위에 안착했다. 몇 번이고 연습했던 동작이었다.
그러나 기습을 위한 것이었지 결코 탈출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혼자 스물이 넘는 마물에 둘러싸인 그를 향해, 앰버가 그녀답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래, 나도 사랑해!”
준비 동작 없이 혼자 감행한 곡예의 여파로 오스왈드의 어깨뼈는 빠져 버린 상태였다. 그는 채찍을 옮겨 쥐며 필사적으로, 그러나 그 자신도 놀랄 만큼 동시에 침착해져서 휘둘렀다. 총성과 마물을 베어 넘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포위의 바깥에서 그것을 뚫어 보려는 앰버의 거친 숨소리가 오스왈드의 귀에 닿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에게 다가와 등으로부터 뻗어 나온 촉수를 찔러 넣는 혈안귀를 막지는 못했다.
“꺼윽- 꺼윽- 꺽- 꺽-.”
그건 오스왈드에게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시꺼먼 도마뱀, 혈안귀가 내는 소리였다. 그것은, 웃고 있었다. 이븐은 뇌를 덥히던 투쟁심의 열기가 증오로 뒤바뀌며 눈앞을 가리는 것을 느꼈다. 달려 나가려는 그를 뷔센의 칼이 막았다. 이븐의 반응 속도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반으로 갈라 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조심성 없는 움직임이었다.
“흐, 자넨 작은 친구들을 맡아야지.”
“잡아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죽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올가와 오스왈드에게 달려들기 전까지 대여섯 개의 촉수를 잘라내며, 또 달려들 때마저 놓치지 않고 칼을 휘둘러 마물의 옆구리를 찢었던 뷔센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이븐에게는 더 없이 더뎌 보였다.
“뭐, 이렇게 큰 건 나도 처음이니까.”
이븐이 대꾸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뷔센이 덧붙였다.
“저기 쓰러진 친구 좀 봐줘.”
올가를 가리키며 말한 뷔센은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혈안귀를 향해 다가섰다. 휘청거리며 몸을 뒤로 넘기는 것은 그의 준비 동작이었다. 다음 움직임에서 반동을 실어 그는 혈안귀의 돌리고 선 등을 베었다. 날이 넓고 묵직한 칼끝에 무게중심이 쏠리자 그는 원심력에 몸을 내맡기며 빙글 돌았다.
혈안귀의 터진 살갗 속에서 끈적이는 회백색 진피가 쏟아졌다. 그것은 곧 굳어져 새까맣게 변하며 살갗을 전보다 단단하게 뒤덮었다. 이런 식으로는 끝이 없을 거란 사실을, 뷔센은 알고 있었다.
그는 높이 든 검으로 땅을 내려찍더니 도약해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뷔센은 칼끝에 실린 힘으로, 이제는 돌아서 그를 마주한 혈안귀의 머리를 찍었다. 두 발은 마물의 대가리 위에 올려둔 채, 칼은 대가리를 찍은 채로 잠시 서 있던 뷔센은 촉수가 그를 향해 덤벼들자 몸을 숙여 첫 공격을 피한 뒤 검의 가드를 잡고 돌렸다.
그가 상시 복용하는 진통제는 그를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어깨의 근육이 파열되는 것을 느끼며, 그러나 고통은 조금도 느끼지 않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마물의 대가리에 회복 불능의 공동을 남긴 채로. 총성이 울리며 날아든 탄환이 그를 향해 쇄도하던 촉수를 맞혀 떨어뜨렸다. 뷔센은 뛰어내리며 바닥에서 몸을 굴렸다.
쓰러진 올가의 근처에 있던 마물을 처리한 이븐이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팔뚝만한 총을 양손에 쥐고 혈안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음파 공격을 시도하려던 혈안귀는, 그러나 뷔센의 공격으로 문제가 생긴 모양인지 바람이 새는 것 같은 절망적인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혈안귀는 대가리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남은 촉수와 재생이 진행 중인 촉수를 모두 꺼내들고 이븐을 향해 내질렀다. 이븐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를 찔러오는 모든 촉수에 몸을 내맡긴 채, 그리고 곧 그것에 온몸이 찔린 채로 이븐은 혈안귀의 볼썽사나운 대가리에 블런더버스를 들이댔다. 혈안귀가 아가리를 벌리며 위협했다.
“끝이다, 도마뱀 새끼야.”
굉음이 울리며 시꺼먼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깨어진 이빨의 파편이 이븐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의 몸을 꿰뚫고 있던 촉수는 힘을 잃고 빠져나오며 위축되어 혈안귀의 몸속으로 되돌아갔다. 혈안귀는 상체를 일으키며 단말마의 발악으로 사실상 사라진 대가리를 허공에서 저었다. 죽음을 부정하듯, 그것은 하늘을 향한 도리질이었다.
혈안귀는 곧 무너지며 진흙바닥에 몸뚱이를 처박았다. 땅에 오롯이 가해진 중량감으로 이븐이 휘청거렸다. 블런더버스를 집어던진 이븐은 다시 권총을 꺼내들고 수 차례 확인 사살을 가했다. 뷔센도 가담해 검을 깊이 찔러 넣고 빼내기를 반복하며 그것의 내장으로 바닥을 칠했다.
광기라고밖에 달리 부를 수 없는 행위가 제풀에 지쳐 멈췄을 때, 이븐은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을 향해 호전성을 감추지 않던, 감염된 마물들은 이제 마치 기면증 앓는 이처럼 제자리에 죽은 듯 서있었다. 뷔센이 남은 마물들을 도륙했다. 진통제의 약효가 떨어져가는 모양인지 그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이븐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이븐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그러나 숨은 붙어있는 올가의 손에서 곡도를 주워들고 나머지 마물들을 정리해나갔다. 뷔센이 주저앉아 품속에서 약병을 꺼냈다. 주저앉은 사람은 또 있었다. 뷔센은 고개를 돌려 앰버를 쳐다보았다.
비가 그치고 드러난 달의 옅은 빛을 받으며, 앰버가 가슴팍에 철창을 꽂아 넣은 오스왈드의 시체를 껴안고 있었다. 누구를 향해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욕이 넋을 놓은 앰버의 입에서 연신 흘러나왔다.
“개새끼들··· 개새끼들······. 개새끼······.”
3막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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