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1장 - 닭장 속 여우(2)
마물이 팔과 다리로 바닥을 박차며 맹진해오자 스타샤는 칼집의 끝을 바닥으로 향하게 한 채 칼자루를 돌려 다시 장치를 조작했다. 이윽고 칼날이 뽑혀져 나오며 반동으로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칼집은 칼의 허리에 걸려 더 빠져나오지 않으며 그녀가 왼손을 뗀 뒤에도 안전히 수중에 머물렀다. 스타샤가 반집이라고 부르는 이 상태는 칼등의 홈이 칼집 내의 장치에 걸리는 것으로, 적당한 탄성과 역시 적절한 강도를 지닌 특수한 강철로 만들어진 그녀의 칼이기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하앗-!”
공중에서 한 바퀴 몸을 회전시켜 뒤로 물러난 스타샤가 바닥에 안착하며 칼을 납도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완전히 장치를 개방, 기합과 함께 다시 한 번 섬광 같은 발도로 목표를 잃고 허우적대는 마물을 가로로 베었다. 달려오던 관성은 여전히 유지된 채였으므로 마물은, 콧잔등으로부터 둔부까지 완전히 베여 나가며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수십 개의 실과 같은 주황색 살점이 뻗어 나와 절단면을 재봉하며 마물은 본 상태를 되찾았다.
“카아아악-!”
문 앞에서 멈춘 그 마물은 몸을 돌려 다시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마물의 생명력은 대체로 그것이 포식한 인간의 목숨에 비례하므로, 언제까지고 재생할 수는 없을 터였다. 방금 스타샤는 한 사람 몫의 목숨은 너끈히 베어낸 참으로, 널브러진 시체를 대강 눈으로 훑으며 그것의 남은 목숨을 계산했다. 고질적인 어깨 통증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스타샤는 시큰거리는 어깨의 통증을 이를 악물어 참아내며 달려드는 마물을, 옆으로 비켜 피했다.
두 손을 모으고 선 이디나르의 석고상이 마물과 부딪쳐 부서지며 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디나르의 머리가 불경을 꾸짖듯 마물의 머리통을 한대 갈긴 다음 예배당 한 편으로 굴러갔다. 스타샤는 외투 속으로 손을 넣어 어깨와 팔을 고정한 가죽끈을 매만지며 더 조였다. 칼집의 또 다른 잠금장치를 해제하며, 그녀는 칼자루를 최대로 눌렀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스타샤를 향해 돌아선 마물은 입에서 진득한 침을 흘리며 그녀를 노려본 채 다음 공격을 예비했다. 이번에는 스타샤가 먼저 달려들었다. 그녀는 거리를 계산하며 마물의 앞으로 달려들어 감히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목을 베었다. 어찌나 신속하게 이루어진 공격인지, 마물의 머리는 베이고 나서도 그 자리에 있었다. 스타샤는 재생할 틈을 주지 않고 칼을 납도 시킨 뒤 이번에는 칼집의 끝으로 마물의 머리를 향하게 한 뒤 반집 상태로 장치를 개방했다. 튀어나간 칼집이 마물의 끊어진 머리통을 쳐 날렸다.
석상이 있던 자리의 뒷벽에 갖다 처박은 머리통은 튕겨져 나와 스타샤를 향했다. 그녀는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하면서도 여전히 마물을 향한 시선을 유지했다. 마물의 몸이 앞으로 쏟아져 넘어지며 피를 뿜었다. 그제야 뿜어져 나온 피를 피해 물러선 그녀는 허리띠에 걸어둔 수통을 꺼내 마물의 사체 위로 들이부었다. 성냥 한 개비를 그어 시체에 던지자 그것은 맹렬히 타올랐다. 지방이 풍부한 몸체였던 탓일까. 불은 삽시간에 온몸에 옮겨 붙으며 마물의 사체를 먹어 치웠다.
큰 화재로 번질 위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스타샤는 붙은 불을 내버려 두고 예배당 밖을 향했다. 예배당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는, 곧 그 위로 털썩 주저앉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연기를 보고 달려온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외투를 벗어 맨 팔을 드러냈다. 어깨와 팔을 감은 가죽끈을 풀어낸 그녀는 어깨를 돌리며 신음성과 함께 불평을 토해냈다.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진짜.”
*
데트포드 보안관과 스타샤는 구면이었다. 방금 그녀가 모가지를 날려 버린 만프레드 신부와 마찬가지로, 또 그가 죽기 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시체귀 소탕 건으로 오래 전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유쾌하지 않은 성격의 이 사냥꾼은 제멋대로인 행동조차 여전해서 보안관의 집무실에서도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죽은 이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사냥꾼이 유족들 달래고 조문이라도 읊어줘야 한다는 거야?”
연배는 보안관이 더 높았음에도, 스타샤는 공대를 쓰지 않았다. 보안관은 넉살 좋게 웃어 보이고는 자신의 말을 부연했다.
“그럴 리 있겠소. 기대하지도 않았소이다. 메이츠니르 씨의 전문성은 발휘되는 영역이 확실하니까. 내 말은, 그들이 감염되거나······.”
“이건 사람을 감염시키고 다니거나 그런 마물은 아냐. 내가 장담하지.”
양 볼이 들어가도록 깊게 빤 담배를 입에서 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히려 감염된 마물이지. 권속이란 말씀이거든. 그 중에서도 감염력이 없는 거고. 어때, 내 말을 알아듣겠나? 내 말은, 당신의 전문성을 한번 발휘해보라는 거야.”
한 마디도 양보 없이 되받아치는 것은 그녀의 특기였으므로 보안관은 한 수 접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부하라는 거 아니오?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전문가의 몫으로 남겨두겠소. 나야 이 시궁창 같은 개척지의 치안 유지를 할 뿐인걸.”
“아주 좋은 태도야. 내가 뭣 빠지게 일하는 동안 놀고 있진 않았겠지?”
스타샤의 내민 손 위로, 보안관이 서랍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얹어주었다.
“주민들 대상으로 탐문 조사를 벌였소. 메이츠니르 씨가 열심히 일하시는 동안 나도 돌아다니며 더 보강했고. 이름과 거주지를 적어뒀으니 정보가 부족하면 직접 찾아가 물어봐도 좋소. 얘기는 이미 다 해뒀으니 협조할 거요.”
스타샤는 받아든 서류를 대강 눈으로 훑으며 넘기다 한 대목에서 멈췄다. 심상치 않은 기색을 눈치 챈 보안관이 물었다.
“뭐, 특이한 내용이라도 있소?”
“아, 있고말고. 여기 집배원도 오나?”
집게손가락으로 콧수염 끝을 말고 있던 보안관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벽에 걸어둔 달력을 슬쩍 보고는 답했다.
“마침 내일이 들르는 날이오.”
스타샤는 책상 위의 아무 종이나 하나 집어다 뒷면에 대고 글자를 휘갈겼다. 웬만한 노력이 동원되지 않고서야 알아보기 힘든 악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적어 넣은 그녀는 종이를 역시 아무렇게나 접어 보안관 앞으로 밀었다.
“어디로 보내실 거요?”
“체스바덴 성당. 거기 있는 사냥꾼 앞으로.”
애써 작성한 보고서가 편지의 겉면으로 둔갑한 가운데 스타샤로부터 펜을 넘겨받은 보안관이 부연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손가락을 튕겨 꽁초를 창밖으로 내던진 스타샤가 말했다.
“뭐, 이름? 웨인 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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