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2장 - 몰이사냥(2)
달려든 또 한 마리의 시궁쥐를, 이번에는 가로로 쳐 날리며 베른트가 호쾌하게 소리쳤다. 남은 한 마리는, 이븐이 재빨리 쏘아 맞혀 죽였다. 가만히 뒀으면 숨이 끊어졌을 시궁쥐를, 기어이 망치로 내리쳐 죽이며 베른트가 궁색하게 덧붙였다.
“이건 반반씩 기여한 셈 칩시다.”
“베른트, 이건 놀이가 아니오. 그리고 나는 삼 대 이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요.”
그들은 잠시간 또 수로를 따라 걸었다. 이번에는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정확히 언제로 볼 것인지를 두고 제법 철학적인 논쟁을 벌이던 그들은, 다시 시궁쥐들과 마주쳐 한 차례 전투를 벌였다.
“불공평합니다, 이건.”
“무엇이 불공평하단 겁니까?”
“제게 달려들지 말라 하셨잖습니까. 본인은 권총을 쓰시면서.”
“아, 베른트, 나는 두 번이나 약실을 갈았소. 그리고 이런 건 후배가 눈치껏 져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모퉁이 뒤에서 또 찰박거리는 소리가 나자 베른트가 얼른 전투망치를 들고 뛰어 나갔다. 베른트의 실력이야 이미 확인한 바와 같았으므로, 이븐은 별 걱정 없이 그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모퉁이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렇게 조심성 없이 달려들라고 가르쳤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가 어디 있나! 자네 죽으면 자네만 아쉬운 것을!”
갈림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웨인이 베른트를 호되게 혼내고 있었다. 이븐은 가만히 있다간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 것을 알았으므로 선수를 쳤다.
“제가 부추겼습니다.”
“잘하는 짓들이야, 아주!”
웨인은 그가 화를 낼 때면 으레 그러하듯 지팡이칼로 바닥을 때렸다가 물이 튀자 곧 그만두었다. 그는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는 듯, 잔뜩 긴장해 서있는 베른트를 향해 구호 같은 말을 던졌다.
“사냥 수칙 하나.”
“흥분하지 말 것.”
베른트의 대답이 얼른 따라붙었다. 웨인이 다시 앞서 걸었다. 체스바덴 시의 모든 오물이 물을 따라 합류하는 지점에서 웨인은 멈춰 섰다. 이븐은 그의 뒤에서 어깨 너머로 거대한 시궁쥐들을 만들어낸 원흉이자, 때 아닌 하수도 탐험의 최종 목표가 그들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털에 뒤덮이지만 않았더라면 하수도에서 숙식하는 넝마주이로 착각할 만한 모양새였다. 이븐이 말했다.
“들쥐인간이군요.”
“자, 베른트,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이빨과 손톱에 독성이 있으니 거리를 유지하라. 그리고, 골통을 빠개라.”
말소리를 들은 들쥐인간이 쭈그려 앉아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듬성듬성 이빨이 난 주둥이 위에서 광기가 담긴 두 눈이 따로 놀았다.
“이븐, 나서지 말고 위험할 때만 엄호하게.”
베른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븐은 눈빛으로만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웨인은 자신의 말을 관철시키려는 듯 검지를 들어 명령을 재차 환기할 뿐이었다. 베른트가 양손으로 전투망치를 쥐며 천천히 나아갔다. 시궁쥐들이 그의 주위로 모였다. 충분히 접근할 때까지 내버려두던 베른트는 전투망치를 크게 휘둘러 스파이크로 그것들을 휩쓸며 찢었다.
빈틈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들쥐인간이 덮쳐들었다. 베른트는 그러나, 망치를 따라 재빨리 몸을 회전시키며 들쥐인간의 옆구리를 찍어 날렸다.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날아가 벽에 몸을 부딪은 그 마물은 다시 자세를 바로 잡으며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탐색전을 벌일 모양으로 베른트의 주위에서 맴돌았다. 첫 번째 공격에서 죽지 않은 시궁쥐 한 마리가 베른트의 등 뒤를 노리다가 도약했다.
이븐이 권총을 들어 겨냥했으나 웨인이 지팡이칼로 그의 행동을 제지시켰다. 베른트는 몸이 젖는 것에 아랑곳 않고 옆으로 몸을 던져 굴렀다. 협공에 실패한 들쥐인간의 몸이 허공에 떴다. 재빨리 일어난 베른트는 망치를 내리찍어 마물의 허리를 작살냈다. 두 번째 타격은 기습을 감행했던 시궁쥐를 위한 것이었다. 사지를 버르적거리며 달아나려던 들쥐인간을, 베른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아래로부터 위로 올려쳤다.
철썩-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마물의 몸이, 다시 한 번 벽에 처박혔다. 베른트는 곧장 추격해 따라붙으며 해머가 앞으로 향하도록 쥔 망치로 마물의 머리통을 숫제 눌러 펼 셈으로 두들겨 부쉈다. 하수도가 울리며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그제야 웨인이 앞으로 나아가 뽑아든 지팡이칼로 시궁쥐들을 찔러 확인 사살을 가했다. 이븐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대단한데요.”
웨인은 지팡이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손을 까딱여 베른트를 불렀다.
“첫 번째 공격 자세 다시 잡아보게.”
베른트가 전투망치를 고쳐 잡고 기억을 되살려 자세를 잡았다. 웨인이 감정이 탈색된 것 같은 목소리로 지적했다.
“왼발이 거기가 아니었을걸.”
베른트는 주춤주춤 발을 옮겼다. 웨인이 지팡이칼 끝으로 베른트의 왼발을 툭툭 두드렸다.
“발이 왜 여기 있는지 설명할 수 있나?”
“그건, 글쎄요. 자연스러운······ 그러니까, 여기서 힘이 이렇게 들어가잖아요?”
베른트가 망치를 휘두르는 시늉을 천천히 해 보였다.
“다음 동작으로 이어질 때 발을 어떻게 옮겼지?”
“그러니까, 제가 여기서, 이렇게, 아······.”
느리게 재현해 보이던 베른트가 한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자 곧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탄식했다.
“균형. 균형을 잃으면 끝이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웨인이 그 이상 말을 않고 왔던 길로 돌아 나가자 베른트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그 뒤를 따랐다. 이븐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별명 말인데, 대장장이는 어떻습니까?”
제법 괜찮은 작명 실력이라는 듯, 베른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멀찍이 앞서 나간 웨인이 용케 알아듣고 말했다.
“이미 있는 이름이야.”
*
“얼마 전에 뷔센이랑 같이 사냥을 다녔거든요.”
“그 친구는 여전하던가?”
웨인이 이븐의 앞에 놓인 잔을 채우고 뒤이어 자신의 잔도 채우며 말했다. 이븐은 등받이에 편안히 기댄 채 술을 들이켰다. 소나무향이 입 안 가득 번졌다.
“예, 뭐, 실력도 여전하고, 좀 변했으면 싶은 점들도 여전하고 그렇던데요.”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베른트가 웃옷을 벗어던지고 나무기둥을 상대로 연신 망치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가 한 번 나무기둥을 때릴 때마다 훈련장이 쩡쩡 울렸다.
“뷔센이야 아직 젊으니 어떻게든······”
“헬라이드 엽사님!”
훈련장의 문이 열리며 헌팅캡을 눌러쓰고 가방을 둘러멘 소년이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머리를 짧게 깎은 소녀였다.
“엽사님 앞으로 온 거예요.”
웨인은 말없이 편지를 받아들고 펼쳐 읽었다. 이븐이 품에서 동전을 몇 개 꺼내 소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소녀가 감격해 꾸벅이다가 떨어뜨린 모자를 주워들고 곁에서 기다렸다. 웨인이 답신을 보내진 않겠단 뜻으로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이븐이 물었다.
“왜요, 또 누가 죽었답니까?”
“그랬으면 오죽 좋게.”
사냥꾼의 목숨을 이처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웨인의 평소 모습이 아니었으므로, 이븐은 의아해져서 몸을 틀어 편지를 슬쩍 보았다. 웨인이 그런 이븐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잠시 편지의 겉과 속을 착각한 이븐은, 이윽고 진짜 내용은 낙서 같아 보이는 글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지 몰라도 심하게 부상당한 이가 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내용을 읽었다.
추적 중이던 감염 사냥꾼이 그웬돌라드로 향함.
체스바덴에서 합류하겠음.
스타샤.
추신: 또 술 먹고 있죠?
웨인이 술병의 뚜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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