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5장 - 사냥꾼의 장례식(1)
4막 침윤
5장 사냥꾼의 장례식
“그러니까 걔네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들은 교단의 버림받은 자식들인 반면 우리는 교단의 총아라는 거지. 아예 입버릇처럼 그런 말을 한다니까. 주께서 나를 버리시되 내가 주를 감히 버리지 않았으매 진실로 나는 그의 종이라.”
구마사제와 샤낭꾼의 관계에 대한 이븐의 질문은, 스타샤에 의해 장황히 설명되다가 성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맺어졌다. 요컨대 사냥단의 창설 이래로 마물의 사냥에 대한 사냥꾼의 입지가 굳어지자 구마사제에 대해서는 명목적으로나마 이어져오던 항마 활동 지원금도 끊기고 그들의 일은 포교활동의 일환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스타샤는 이 같은 설명에 기초해 안드레아 신부의 날선 태도를 밥줄 뺏긴 자의 설움 정도로 해석했다. 스타샤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세상은 그토록 단순했고, 오히려 그래서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 만큼 복잡했다. 단순한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낼 만큼 순진한 인물은 없었고 그 때문에 세상은 어떻게든 자신의 욕망을 들키지 않으려 말을 돌리고 그럴싸한 포장을 일삼는 군상들의 집합체였다.
“이를테면 욕망의 숨바꼭질이라는 거군.”
“그렇지. 배우는 속도가 빠르네.”
일전에 술이 들어간 상태로 늘어놓았던 스타샤의 웅변을 그대로 적용하는 이븐의 솜씨에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다면 욕망이란 건 어떤 거지?”
“뭐긴 뭐겠어. 돈과 그거지.”
‘그거’를 말할 때 스타샤는 고삐 쥔 두 손으로 외설적인 손짓을 취해 보였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 돈과 그걸로 움직이고?”
“아닌 사람을 열 명만 대봐. 너희 중에 의인은 없나니 정녕 없도다.”
스타샤의 말(言)에 이븐이 앞서 말을 몰고 가는 웨인의 등을 가리켜 보였다. 스타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이 들어서 못 하는 사람은 빼고.”
“다 들린다!”
웨인이 고함을 지르자 장난을 치다 들킨 아이들처럼 이븐과 스타샤가 말 위에서 소리죽여 키득댔다.
“그럼 스타샤 당신은 어떤데? 당신은 여기서 벗어나 홀로 초연한 사람인가?”
“나라고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만, 난 그보다는 휘둘리는 사람이지. 장기짝이고,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린 칼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 진실이 있지. 사냥꾼은 기껏 해봐야 교단이 짜놓은 판 위에서 졸(卒)밖에 안 되는 거야.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사냥꾼이 판의 끝에 다다라 봤자 승격은커녕 전당에 안치된다는 것 정도일걸. 그것도 싸늘하게 식어서 말이지.”
“루퍼트는, 그는 어떻게 되지?”
살아있는 루퍼트를 벌써부터 묻을 생각을 하며, 이븐이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대답하는 스타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사람을 워낙에 많이 죽여 놔서 사냥꾼의 전당에는 못 갈 거야. 체스바덴 성당 묘지에 묻히면 다행이겠지.”
“그보다 더 가능성 높은 결말은, 연구원에서 해부하겠다고 시신을 빼돌리는 일일 텐데.”
“아, 그 개자식들. 진짜 마물은 몸에 있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거라니까.”
웨인을 따라 말에서 내리며 스타샤가 말했다. 항마연구원에 대한 스타샤의 일관적인 태도는, 어떤 사냥꾼보다 연구원과 더 깊이 관계 맺고 있는 이븐을 종종 불편하게 했다. 이븐 역시 연구원의 시체 도굴꾼 같은 태도에는 이를 갈았지만 그들의 속내를 단순히 음흉한 것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습니까, 웨인? 루퍼트가 아직 여기에 있을까요?”
이븐이 총기를 점검하며 물었다. 장소는 그쪽에서 정했으니 시간은 이쪽에서 정한다는 논리에 입각해서, 그들은 카일로파드 자작이라는 자가 찾아온 지 이틀이 지나서 테네그림 숲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동에 걸린 반나절을 제하자면 그 이틀 동안 셋은 잠을 줄여가며 숲의 지형을 나타낸 지도를 구해 전략을 구상했다. 방패를 구해다 들고 접근하자는 이븐의 제안은 사각을 찾아 사격해내는 루퍼트의 실력을 아는 나머지 두 사람에 의해 즉시 기각되었다.
그웬돌라드 지역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휠들렌 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와 맞닿아 있는 테네그림 숲은, 우거진 침엽수들이 도열한 창기병들처럼 뻗어 있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마물의 등장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 숲은 숱한 전설을 만들어내며, 괴물의 본거지로 알려져 왔던 것이다.
“숲에 들어가면 데어도크만 있는 게 아닐 테니 신경을 곤두세워두세.”
웨인은 대답 대신 경고를 주었다. 그 옆에서 스타샤가 칼을 느슨하게 매고 어깨를 풀었다.
“화살촉이 지랄 맞아서 한 번 박히면 빠지지도 않을 거야.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맞았다면 환부를 절개해서 빼내야 해.”
“네 발도로는 화살을 쳐낼 수 없나?”
이븐의 질문에 스타샤가 바닥에 침을 뱉고는 답했다.
“지랄, 누굴 서커스 단원으로 아나.”
사냥을 앞두고 스타샤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것을 이븐이 알 리 없었으므로, 그는 억울해져서 웨인 쪽을 쳐다보았다. 웨인은 이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 대 줘보게.”
의외의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여정이었다. 세상의 종말이 찾아와도 정갈한 옷차림과 신사다운 품격을 잃지 않을 것 같던 웨인은, 벌써 신경을 돋우는 구마사제의 목에 칼을 대고 이제는 피우지 않던 담배까지 얻어 피우는 것이었다. 셋은 멈춰 서서 담배를 피웠다. 웨인의 가라말이 주인을 쳐다보며 불안하게 바닥을 긁었다. 스타샤가 침묵을 깼다.
“영감님, 제가 영감님한테 못할 짓 한 건 아니죠?”
“아닐세. 이렇게 될 것 같았어. 녀석을 가르치는 일이 어쩐지 꺼림칙하더라고. 누구를 가르치기는 그때가 처음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마는······. 자네처럼 눈에 불빛이 있는 이들은 자기 몸을 태우지만 그 녀석처럼 속이 무너져 있는 놈들은 세상을 무너뜨리려들지.”
손으로 튕긴 담뱃불을, 발로 눌러 꺼트리며 이븐이 말했다.
“카일로파드가 말하기를 루퍼트와는 서로 돕는 관계라고 했죠. 어느 정도 짐작은 갑니다만, 가능하다면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가세. 어두워지면 일이 더 복잡해지지 않겠나.”
낮이었으나 불친절한 북부가 늘 그렇듯 태양은 최소한의 조도만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조문객 행렬처럼, 그들 셋은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
스타샤가 칼로 허공을 내리치며 도신에 달라붙은 피를 떨쳐냈다. 봄이었으나 아직은 벌거벗은 거무튀튀한 땅 위로 핏방울이 먹혀 들어갔다. 최선은 소각이었겠지만 차선으로서 잘라낸 머리통을 멀찍이 발로 찬 이븐은 그것이 완만한 경사를 따라 굴러 내려가는 양을 지켜보았다.
숲을 가로질러 산맥을 향하며, 이븐은 루퍼트가 없기를 은근히 바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전은 최대한 미뤄져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게 단지 사냥꾼의 말로를 직접 보는 것이 꺼려져서인지, 아니면 앞서 걷는 사냥꾼의 흔들리는 붉은 머리칼 때문인지는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부펜하르크로 곧장 돌아갈 생각인가?”
“이대로 그웬돌라드에 눌어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덜 추워서 좋긴 하다만. 돌아가면 또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겠지. 품만 많이 들고 잡스러운 일은 용병들한테나 맡기면 좋으련만 교단은 꼭 이런 데서···”
웨인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븐이 재빨리 앞으로 뛰어나가며 그를 엄호했다. 다행히 웨인의 휘청거림은, 날아든 화살을 피하는 움직임이었던바, 그의 몸에 화살이 박혀 있는 불상사는 없었다. 화살은 그들의 뒤에 있던 나무에 박히며 거기 앉아 있던 새들을 날아 올렸다. 스타샤가 나무에서 나무로 몸을 숨기며 빠르게 전진했다. 이븐과 웨인도 그녀를 따라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두 번째 화살은 그러나,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날아오며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이븐의 어깨를 뚫었다. 왼쪽, 하고 크게 외치며 이븐은 환부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깊숙이 박힌 화살을 빼냈다. 환부와, 화살촉을 잡은 손끝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영감님 대체 뭘 키운 거예요!”
또 다시 날아든 화살을, 몸을 굴려 피하며 스타샤가 악을 썼다. 이번에는 다시 앞이었다. 화살이 그녀의 등을 스치며 외투를 찢고 살갗 역시, 깊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찢어 놓았다. 이븐은 눈을 부릅뜨고 날뛰는 심장을, 그의 안에서 끓어오르는 피에 내맡겼다. 마침내 전방에서의 움직임을 포착해낸 이븐은 권총을 들어 조준했다.
퍽-
정확히 총구에 화살이 박히며, 이를 예상치 못하고 방아쇠를 당긴 이븐의 손 안에서 권총이 그야말로 폭발했다. 검지와 엄지가 잘려나가고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상처가 그대로 아물지 않도록, 이븐이 나무에 기대 잘려나간 부위를 손톱으로 긁어 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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