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5장 - 사냥꾼의 장례식(2)
변이된 육신이 고통에 대한 내성까지 갖춘 것은 아니었기에, 이븐은 식은땀을 흘리며 잘려나간 손가락에 재생력을 집중, 새로운 손가락을 만들어냈다. 그건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의 발가락 같았다. 이를 갈며 이븐은 새로이 얻은 교훈으로 말미암아 왼손으로 꺼내든 권총의 총구를 함부로 겨누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거리를 좁히는 데 힘을 쏟았다.
나무에 박힌 화살의 각도를 역산(逆算)하여 위치를 특정한 이븐은, 사전에 모의한 대로 일행의 선두에 섰다. 한 발의 화살이 한 사람의 절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더디고 지저분한 고통으로 점철된, 그러나 동시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체의 기능 장애는 확실했으므로 만약 몸으로 방패를 세울 양이면 이븐만큼 적절한 이도 없었던 탓이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 있다면 검과 도끼 같은 근접 무기가 그것을 휘두르는 이의 용력에 오롯이 기대고 있다면 활은 하나의 생물과 같아서 사수의 힘이 여기에 더해지더라도 스스로의 한계를 결코 넘어서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물의 육체 능력을 갖게 된 루퍼트가 여전히 활을 사용하는 것은 이븐이 총기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던 시절 손에 익은 무기였던 때문이었다.
“이븐!”
위험을 경고하는 스타샤의 외침이 이븐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길게 뻗은 침엽수 뒤로 얼른 몸을 숨기며, 날아온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했다고 생각한 이븐의 오른팔을, 화살이 꿰뚫었다.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보다도 의아함이 더 컸다. 불가능한 각도였다.
“곡사다! 엄폐할 생각 말고 일단 붙어!”
웨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아직 칼집에서 뽑지 않은 지팡이칼을 휘둘러, 그를 노린 화살을 쳐낸 웨인 역시 완전히 힘을 잃지 않은 화살에 오른뺨을 긁혀 피를 흘렸다. 도무지 피할 틈도 없이 날아오던 화살 세례가 일순 멈췄다.
“놈이 위치를 바꾼다! 산개해서 추격해!”
그의 나이 예순을 넘기고도 여전히 강인한 육체를 지닌 웨인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븐과 스타샤의 속도를 따라가기엔 힘이 부치는 탓에, 그를 중심으로 이븐과 스타샤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을 맡아 화살이 날아오던 고지대를 향해 우회했다.
처음 화살을 맞았던 자리가 겨우 아물어 붙을 즘에 또 다시 다른 쪽 팔을 내어주고 만 이븐은, 사냥꾼이 된 이래로는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가 자신을 휘어잡는 것을 느꼈다. 잔베르에서 해치운 늑대인간의 군주가 마지막에 감행한 발악 같은 공격으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몸을 갖게 된 이븐은, 실상 사냥꾼이 되어 마물을 해치우면서도 죽음에 대한 진지한 감상에 빠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때는 사냥꾼이었던 저 마물의 손에 들린 무기는 마물을 해치우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븐과 루퍼트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포식자인 셈이었다.
전장은 사색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븐의 눈에, 달려 나가던 스타샤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고꾸라지는 것이 들어왔다. 오른쪽 정강이를 화살에 꿰뚫린 스타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바싹 몸을 붙이고 화살대를 부러뜨렸다.
다행히 큰 혈관은 건드리지 않았던 듯, 출혈은 예상한 정도였다. 그러나 질주하던 중이었으므로 긴장되어 있던 근육을 파고든 화살이 가한 고통은 가히 예상을 뛰어넘었다.
“죽여 버린다, 이 개자식!”
재개된 공격은 스타샤 쪽이었으므로, 웨인과 이븐은 자연히 그녀가 쫓던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다리를 절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에게로 이번에도 역시 휘어져 날아오는 화살을 본 이븐은, 그 화살이 그녀의 머리를 향했으므로, 지체할 수 없이 권총을 겨눴다. 쇠공을 얹어둔 천처럼, 시간이 집중된 한 점에서 늘어지며 세상은 별안간 고요와 적막 속에서 멈췄다. 벼락처럼 뇌리에 내리꽂히는 계산은, 차라리 직감이었다.
탕-
화살이 허공에서 헛돌다가 바닥에 꽂혔다. 이 묘기의 성공을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던 이븐은 스타샤가 그를 쳐다보자 어쩔 수 없이 자못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비와 공격이 명확히 나뉜 이 일방적인 난전 속에서 유일하게 부상을 입지 않은 웨인은, 과연 노회한 사냥꾼답게 한껏 자세를 낮추며 날아오는 화살을 요령 있게 쳐냈다. 곡사에 어느 정도 적응해낸 이븐 역시 그의 몸에 흐르는 부정한 피의 도움을 받아 경미한 상처에 그치며 더 이상의 타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루퍼트의 모습이 셋의 시야에 들어오자, 이븐이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따라붙었다. 땅을 박차 뛰어오르는 그의 몸은 마치 짐승과 같았다. 그 자신도 인간과 짐승 가운데 스스로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이븐은 옆의 길을 두고 가파른 경사를 그대로 올랐다.
채 스무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루퍼트가 활을 들고 서 있었다. 마주치는 순간 내뱉으리라 다짐했던 말들은, 루퍼트의 동공 없이 새카만 눈을 보자 목구멍에 걸렸다. 이븐을 향해 내비치는 루퍼트의 순수한 살의에, 이븐은 더 이상 그에게 이성이 남아있지 않음을 확신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루퍼트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를 쫓는 셋 중 하나는 쓰러뜨려야 근접전으로 전환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쫓아가는 이븐을 향해 루퍼트가 몸을 돌려 활을 겨누었다. 얼른 상체를 숙인 이븐은, 아주 짧은 순간 이것이 의도된 엇박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날아온 화살이 그의 복부에 꽂혔다.
“컥-!”
화염을 삼킨 것처럼 장기가 고통으로 뒤틀리고 조여들었다.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늦춘 이븐은, 다시 한 번 날아온 화살을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피하고 응사했다. 복부의 달듯이 뜨거운 통증 속에서도 사격은 정확했다.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발목을 연달아 맞힌 총알에 루퍼트는 순간 기동력을 상실하고 앞으로 굴렀다. 이븐이 상처를 벌려 화살을 뽑아냈다. 오른손에서 피가 덩이져 흘러내렸다.
“회복하고 따라와!”
어느 틈에 쫓아온 스타샤가 이븐의 부상을 확인하고 소리치며 앞질러 나갔다. 그녀의 뒤에서 흩날리는 붉은 머리칼이 불꽃의 잔영인 듯이 보였다. 그제야 이븐은 자신의 시야를 흐리는 것이 고통 때문에 솟구친 눈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따라온 웨인이 이븐의 어깨를 잡아 그를 바로 세웠다.
“제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웨인이 이게 무슨 어울리지 않는 담소냐는 듯, 이븐을 쏘아보았다.
“이런 걸로 쏘니까 마물이 죽는구나······.”
“헛소리 할 기운 있으면 놈이나 쫓아!”
그들의 앞에서, 마침내 스타샤가 루퍼트를 근접전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루퍼트는 활을 몸에 끼운 채, 일전에 스타샤가 언급한 바 있던 사냥칼로 그녀에게 대적했다. 근접전에서 자신의 우위를 점치던 스타샤는, 루퍼트의 몸이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퍼트의 감염을 깨닫고 처음 벌어졌던 접전에서 그녀를 죽일 뻔한 것은 결코 칼이 아니라 예의 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루퍼트의 칼마저, 내리긋고 올려치는 모든 획이 목숨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칼을 맞대어 힘을 겨루는 싸움보다는, 빠르고 강력한 일격으로 상대를 절단시키는 검술에 특화된 스타샤였으므로, 그녀는 웨인이 싸움에 참가할 때까지 버티는 것에 집중했다.
칼집을 절반만 풀어 그것의 끝으로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는, 반집의 공격으로 허점을 만들고 뒤이은 발도로 회복 불능의 강공을 선사하는 그녀의 정형화된 공격은, 이 끔찍할 정도로 회복력이 뛰어난 마물 앞에서는 무위로 돌아갔다.
웨인이 루퍼트의 등을 노리고 칼을 휘두르며, 전투에 가담했다. 등에 걸린 활을 피해 교묘히 웨인의 검이 루퍼트의 등을 그어 내렸다. 스타샤와는 달리 그의 검술은 가늘고 긴 검으로 쉴 틈 없이 상대를 베는, 호쾌한 연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언젠가 웨인의 지팡이칼을 들어본 적 있는 이븐은 그것의 무게가 결코 얕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속을 비우고 그 안에 흑요사라는 마물의 피를 담은 그 검은 크기에 비해 무거울 뿐 아니라, 휘두르는 순간 무게중심이 칼끝으로 이동하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뿜어내는 무기였다.
루퍼트의 갈라진 등에서 실밥처럼 뻗어 나온 주황색 줄기들이 벌어진 상처를 순식간에 꿰맸다. 루퍼트가 몸을 돌려 웨인을 향해 칼을 내리치자, 웨인이 공격을 받아 흘리며 루퍼트의 균형을 흩뜨렸다.
이어진 스타샤의 발도가 루퍼트의 뒷목을 내리쳤다. 끊어진 머리가 땅에 닿기도 전에 목으로부터 뻗어 나온 벌레 같은 살점에 꿰뚫리며 다시 올라가 붙었다. 그건 도무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괴기한 광경이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루퍼트의 죽음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듯이, 이미 죽었어야 할 그의 몸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 작가의말
4막 5장 - 사냥꾼의 장례식(3)으로 이어집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최신 화의 조회수가 0이 아님을 확인할 때, 포기하려던 생각을 고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곁에 있는 한, 계속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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