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5장 - 사냥꾼의 장례식(3)
그 꼴을 지켜보던 이븐은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조급히 찾아오는 숲의 어둠 속에서 땅은 드러난 내장과도 같아 밟아 디딜 때면 더운 김을 피어 올렸다. 그 위로 결코 영면에 들지 못할 이의 저주 받은 육신이 사납게 날뛰었고 사냥꾼들은 흥분한 말처럼 거칠게 떨리는 숨을 토해냈다.
어두운 숲의 질서를 교란하는 칼들의 교접과, 결별과, 그것들이 그어대는 죽음의 경계가 허공에 새겨 넣는 글자는 다만 광기일 뿐이었다. 아가리를 벌린 광기의 궤짝을 닫아걸어야 한다!
이븐은 아물어 붙은 오른손에도 권총을 쥐고 루퍼트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초탄은 명중, 그러나 죽이지 못한 사냥감은 사냥꾼이 되어 그토록 쉬이 역할을 뒤바꾼다.
웨인과 스타샤의 공격을 연달아 막아낸 루퍼트는, 이븐의 공격으로 터져나간 어깻죽지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이븐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븐은 오른손으로 들었던 권총의 방아쇠울을 소지에 옮겨 걸고, 둘러메고 있던 블런더버스를 꺼내들어 전방을 겨냥했다.
쾅-
상체를 찢어발기는 산탄의 위력 앞에서 잠시 멈칫했던 루퍼트는, 그러나 그뿐 다시 이븐에게로 달려들며 그를 향해 사냥칼을 휘둘렀다. 목을 노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내려 베는 그 움직임은, 뒤로 물러난 이븐이 블런더버스를 들어 막으면서 저지됐다.
이븐은 순간 루퍼트의 누런 이빨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웃고 있나? 루퍼트는 막힌 사냥칼을 그대로 밀어 넣으며 이븐의 가슴 아래를 찔렀다.
“허윽-!”
갑자기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좁아지며 몸에 남아 있는 모든 숨을 쥐어 짜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븐은 들고 있던 총들을 떨어뜨리고, 양손으로 루퍼트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루퍼트가 팔을 빼내려 하자, 이븐은 손톱을 세워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루퍼트는 왼손으로 화살을 빼들고 이븐의 목과 어깨 사이를 찍었다. 고통을 참으며 숨을 내뱉는 이븐의 잇새로 피가 튀었다.
이번에는 이븐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고통 때문에 일그러져 제대로 된 미소는 아니었다. 그 순간 그에게로 검붉은 피를 뿌리며 루퍼트가 세 조각으로 나뉘었다.
이븐이 루퍼트의 팔을 잡고 어깨 위와 배 아래가 사라진 그의 몸통을 집어던졌다. 몸통에 걸려있던 활이 허공에서 분리되며 이윽고 땅 위에서 뒹굴었다.
“제기랄, 재생한다!”
웨인과 함께 루퍼트를 가로로 베어낸 스타샤가 소리쳤다. 그녀가 잘라내어 떨어뜨린 상체의 일부로부터 이번에도 역시 주황색 살점이 뻗어 나오며 몸을 재구성했다. 여전히 땅을 딛고 서 있던 하체에서도 마찬가지로 뻗어 나온 살점은, 이윽고 몸과 만나 본모습을 되찾았다.
아니, 그것은 본모습에서 멈추지 않고 더 크게 부풀어 오르며 인간다운 데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한 마물로 변이했다. 속으로부터 살을 뚫고 나온 주홍빛 살점은, 몸을 모두 뒤덮고 경화되며 검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그건 마치 피를 뒤집어쓴 야수 같았다.
목에 박힌 화살과 가슴에 박힌 사냥칼을 빼낸 이븐은 비척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뽑아든 사냥칼은 힘없이 바닥을 향했다. 시야가 흐렸다. 찔렸다고 생각한 심장은 더욱 맹렬히 뛰며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의 몸속에 흐르는 늑대인간의 피가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정신 차리게!”
웨인의 일갈은, 너무 멀었다. 이븐은 외투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몸을 부풀리는 힘을, 이 고삐 풀린 저주가 몸의 구석으로 뻗치는 것을 억제하지 않으며,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숨길 수 없이 명명백백한 살의, 이토록 단순하고, 포악하고, 순수한 힘을 대체 무엇 때문에 묶어 두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강력한 타격이 그의 후두부에 가해졌다.
“영감님!”
스타샤는 반집으로 개방한 칼집의 끝으로 이븐의 뒤통수를 갈긴 다음 웨인을 불렀다. 루퍼트를 대적하던 웨인은 스타샤에게 그 역할을 이어 넘기고, 타격으로부터 회복하려는 이븐의 목을 찔렀다. 은으로 된 웨인의 검이 이븐의 기도를 막으며, 호흡을 끊어 놓았다. 이븐은 자신의 목을 찌르고 선 노인에 대한 살의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살의가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그의 몸은 다시 인간의 것으로 되돌아갔다.
이븐은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굽혔다. 한순간 몸의 열기가 모두 빠져나가며 극도의 추위가 그의 몸을 엄습했다. 비틀거리며 이븐은 더 이상 자신이 피를 흘리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 잠깐의 변이 동안 상처가 모조리 아물어 붙은 것이었다. 웨인이 보내오는 눈빛에 그 역시 눈빛으로 답하며, 이븐은 고전하고 있는 스타샤를 돕기 위해 몸을 추스르며 나아갔다.
화살 맞은 자리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린 탓에 그녀의 장화는 어느새 핏물로 들어찼다. 완전히 변이한 루퍼트의 몸에는 제대로 된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어지럽다고 생각한 순간, 발을 헛디딘 그녀는 이윽고 날아온 루퍼트의 팔을 온전히 몸으로 맞으며 날아가 나무에 몸을 부딪쳤다. 이미 한계치로 몰아붙이는 중이었던 몸은 한번 늘어지자 다시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이븐이 루퍼트의 사냥칼을 두 손으로 붙잡고 달려 나가 온 힘으로 루퍼트를 들이박았다. 칼은 루퍼트의 옆구리에 박혔으나, 더 들어가지 않고 이븐의 손 안에서 부러졌다. 루퍼트는 양 손으로 이븐의 몸을 쥐고 물어뜯을 기세로 아가리를 벌렸다. 머리를 한 번에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아가리였다. 바로 그때, 뒤따라 달려오던 웨인이 굽힌 이븐의 등을 밟고 도약했다.
아래로 내뻗은 그의 검은, 루퍼트의 벌린 아가리 속으로 찔러 들어가며 그의 몸을 꿰뚫었다. 웨인이 루퍼트의 옆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루퍼트의 움직임이 멎었다. 온몸을 뒤덮고 있던 검붉은 살갗이 점차 옅어지며 그의 변이가 천천히 해제되었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루퍼트의 팔을 떨쳐낸 이븐이 떨어뜨렸던 권총을 주워들고 금발의 남자를 향해 쐈다. 웨인이 검을 뽑아내자 벌거벗은 남자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웨···웨···이······.”
무릎 꿇은 루퍼트가 핏물이 가득 찬 입으로 뭔가를 말하려 애썼다.
“끝을······ 나는··· 이 모든 걸··· 끝내려······.”
퍽-
루퍼트의 머리가 터지며 새까만 거머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바닥에서 몸을 뒤집으며 출산을 맞은 태아처럼 핏물 속에서 맹렬히 꾸물거렸다. 웨인이 발로 밟아 터뜨렸으나 잘게 쪼개져 여러 마리가 될 뿐 거머리들은 죽지 않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다가온 스타샤가 수통을 열어 기름을 그 위로 붓고 성냥을 던졌다. 셋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불길을 둘러싸고 주저앉았다. 불이 잘 탔다.
*
소녀가 눈을 떴다.
“방금 그 아저씨 죽었어.”
“그 사냥꾼들이 해치운 겁니까?”
카일이 읽던 책을 탁자 위에 내려두고 물었다. 소녀는 품에 안은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진하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죽어가면서 쓸데없는 소릴 하려는 것 같아서 내가 마무리했어.”
“사냥꾼들은 어떻습니까? 죽거나 다친 이가 있나요?”
“다들 다쳤는데 죽지는 않았어.”
그 말을 듣고 카일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소녀의 얼굴 위로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소녀가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지, 나는 베르자크라는 아저씨가 재밌어 보이는데.”
카일도 마주 웃었다. 새로운 장난감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역시 동의하는 바였으므로.
4막 마침.
- 작가의말
다음 주, 5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루퍼트의 머리로부터 나온 거머리에 대한 묘사를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18.7.2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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