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막 1장 - 전장으로부터의 초대(2)
“마지막으로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 햇수로는 이 년 전, 오펜하른에서였지.”
케넌이 그렇게 말하면서 스타샤 쪽을 쳐다보자 그녀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랄 맞은 일이었어. 에이델이 그때 죽었고 뷔센이 지금 그 모양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때 일 때문이었지.”
“성과는 있었나?”
이븐의 질문에 스타샤가 입술을 서로 붙였다 떼며 잇새로 쯧- 하는 소리를 냈다.
“흐지부지됐어. 야심차게 모였는데 추격도 시원찮고 사상자까지 생기니 한 달을 못 가서 시들해졌지. 그러다가 잔베르에서 난리가 났단 얘길 듣고 데릭이 뛰쳐나가고 얼떨결에 나도 따라 나가면서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
“그 뒤로는 지금까지 잠잠했네. 그들이 배후에 있다고 짐작되는 건(件)은 그 후로도 몇 차례 있었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어.”
케넌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내려 그 너머로 이븐을 쳐다보며 덧붙였다.
“목적이 무엇일 것 같나? 예단이나 속단이어도 상관없으니 말해보게.”
이븐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지는 않고 코 아래에 대고 굴리며 잠시간 생각에 빠졌다. 케넌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븐과 스타샤는 추측은 피하고 사실만 기술하기로 결정했었다. 그것은 물론 전해 듣는 입장인 케넌으로 하여금 한정된 시각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지만 실상 그뿐 아니라 마땅한 추측이 떠오르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잔베르에서 몸을 추스르는 동안 이븐은 그 나름대로의 가설을 세워두었다.
“카일로파드와 루퍼트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케넌도 짐작하신 바가 있겠지요. 낭비되고 있던 힘을 활용한다는 카일로파드의 말은, 자신들에게 군주급 마물의 힘을 이식할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계속하라는 뜻으로, 케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븐은 담배를 귀 뒤에 꽂고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모았다.
“대화의 핵심은 카일로파드가 루퍼트와 자신의 관계를 단순히 누가 누구를 도와주는 식의 일방적 성격을 띤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다고 표현한 데에 있습니다. 자신들은 루퍼트에게 힘을 주고, 루퍼트는 자기네들, 노블 다이스를 돕고요. 저는 처음에 이것이, 루퍼트가 권속을 만들어 그 권속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강성해지면 다시 루퍼트가 그 권속의 힘을 취하는 연쇄의 끝에 노블 다이스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먹이사슬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힘에 대한 대가로 노블 다이스를 돕는다는 카일로파드의 설명에 부합하는 일이겠지요.”
이븐은 찻잔을 들어 이제는 식어버린 차로 목을 축였다.
“이 가설에는 몇 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첫째는 카일로파드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사냥꾼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말짱 헛소리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는 없지만, 노블 다이스에 대한 루퍼트의 협력을 설명하려면 카일로파드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더군요.”
이븐이 말을 잇지 않고 스타샤 쪽을 바라보며 부연 설명을 요구했다. 그녀는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동안 입 안에서 말을 골랐다.
“우리가 루퍼트를 죽였을 때는 이성 같은 게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루퍼트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된 날 말이에요. 그땐 혼란스러워 보이긴 해도 할 말은 하더라고요. 나한테 계획이 있다, 나를 쫓지 마라, 설명할 기회가 있을 거다, 어쩌고저쩌고.”
“‘최종 해결책’이라는 말이 등장한 맥락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루퍼트의 협력이, 적어도 처음에는 자발적인 것이었다면 카일로파드가 말하는 최종 해결책에 그가 동조했다는 뜻이 되겠지요.”
이븐은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리는 여드레 전 저녁에 있었던 일을 다시금 떠올리느라 분주해졌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최종 해결책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직전에 두 가지 질문이 선행했습니다. 마물이 어디서 오는지 아느냐? 왜 이 마물들이 줄어들지 않는지는 알고 있느냐? 그런 질문이었지요. 이로부터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최종 해결책은 마물의 기원과 관련된 것이며 항구적으로 혹은 적어도 일시적으로 이를 억제 내지는 폐쇄하는 방책으로 보입니다.”
“카일로파드는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사냥꾼뿐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고.”
케넌이 지적한 바는, 최종 해결책에 대한 이븐의 해석, 즉 그것이 마물에 대한 절멸 계획이라는 설명은 역시 마찬가지로 마물인 노블 다이스에게 전혀 이로울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저는 여기서 또 다른 세력의 존재를 상정할 때 이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블 다이스에 버금가는, 혹은 그것에 비견될 만한 또 다른 마물 세력이 있고, 카일로파드를 위시한 노블 다이스 세력은 이들을 견제할 필요를 느낀 것이죠. 각각의 세력은 자신들의 휘하에 부리는 마물들이 있고, 서로 패권을 다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카일로파드의 진술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루퍼트의 선택 역시, 이해 가능한 것이 되고요.”
이븐의 주장은 일견 대담한 추측 같았으나 주어진 단서들을 배치하고 그것의 빈틈을 채우는 논리적 수순을 따른 결과물일 뿐이었다.
“우리가 아는 한, 노블 다이스가 가장 강력한 세력일세. 그에 비견되기는커녕 버금가는 세력도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싶지는 않군.”
그러나 케넌은 곧 이븐의 가설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일리 있는 얘기들이야. 노블 다이스가 자신들의 세력 다툼에 사냥꾼을 끌어들여 장기짝으로 쓴단 말이지. 지금으로선 그보다 나은 가설을 찾기 힘들 것 같군.”
잔베르에 머무는 나흘 동안 이븐과 스타샤는 부쩍 가까워졌으므로 이븐이 내세운 예의 가설은 이미 그녀에 의해 한 차례 검토를 거친 뒤였다. 그녀는 이 검토에 새로운 질문을 추가했다.
“그럼 그 자식이 이런 얘기를 지껄인 이유는 뭘 것 같아? 내가 볼 때 그 자식은 계획을 알려줄 생각도 별로 없었던 것 같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못 느꼈던 것 같았어.”
“우리를 유혹하려고 그랬던 건 아닐까 싶은데. 그 최종 해결책이란 것에 호기심을 느끼게 만들고, 마물의 기원에 대한 비밀과 군주급 마물의 힘을 미끼 삼아서 우리 같은 사냥꾼들을 낚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낚아서 공들여 만든 루퍼트라는 장기짝을 우리한테 내어줬단 말이지.”
스타샤의 지적대로였다. 루퍼트가 있는 장소를 알려준 것 역시 카일로파드 본인이었던 것이다.
“스타샤, 그 날 내가 쏜 탄환을 카일로파드가 아무렇지 않게 잡아내던 모습을 기억해?”
“그거 참 볼만했지.”
스타샤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이븐은 그 코웃음이 자신에게서 옮은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은, 우리의 필사적인 발버둥이 그놈들한테는 잠깐의 유흥거리일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수십 명을 잡아먹은 감염된 사냥꾼이 과연 사냥꾼 셋을 대적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식의, 지극히 유치하고 단순한 흥미 말이야. 네가 말한 것처럼, 세상은 이토록 단순한 걸지도 모르지.”
이븐이 귀 뒤에 꽂고 있던 담배를 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성냥을 흔들어 끄면서 그는 터져 버린 루퍼트의 머리와, 거기서 기어 나왔던 거머리들을 떠올렸다. 스승과, 동료와, 사제(師弟)가 합심하여 죽일 수밖에 없었던 루퍼트 데어도크를 생각할 때 이븐은 냉소적인 그가 으레 그러하듯, 버릇처럼 또 다시 이 모든 것이 질 나쁜 장난 같다고 속으로 뇌까렸다.
이븐이 잡념에 빠져 있는 동안 케넌이 스타샤를 향해 말했다.
“스타샤, 카일로파드의 추적을 당분간 자네한테 맡겨도 되겠나?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라는 뜻은 아닐세.”
“저 혼자서요?”
“데려갈 사람이 있나?”
케넌의 물음에 스타샤가 대답은 않고 이븐 쪽으로 턱을 까딱여 보였다. 케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븐에게는 맡길 일이 따로 있네.”
“저라고 루퍼트 꼴 나지 말란 법이 없는데 너무 하시는 거 아녜요? 아직 다리도 성치 않은데! 루퍼트는 죽었고, 테니아는 혼자 부펜하르크를 떠맡게 됐으니 바빠 죽을 테고, 이븐까지 다른 일에 배치시키면 북부에서 빼 올 수 있는 사냥꾼이 없잖아요.”
“다모크와 함께 하라면 하겠나?”
“뭐예요, 이제 그런 식으로 불평을 틀어막는 거예요?”
스타샤의 반응이 이와 같았으니 다모크라는 사냥꾼에 대한 이븐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는 것이었다. 케넌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를 좀 묶어둘 필요가 있어서 그래. 원하지 않는다면 못 들은 걸로 하게.”
“저한테 맡기실 일이란 건 뭡니까?”
케넌이 이븐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국경 문제일세. 전쟁터에는 시체가 있고, 자네도 알다시피 시체는···”
“마물을 끌어들이죠. 교황 성하가 전쟁을 그토록 반대하시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제게 시체 처리를 맡길 생각이십니까?”
케넌이 안경을 벗고 서신 위에 내려놓았다. 케넌과 이븐은 이븐의 사냥꾼 서임식에서 처음으로 만났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가로로 그어져 무표정한 입하며, 비워둘 수 없어 박아 넣은 것만 같은 감정 없는 눈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언젠가 웨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케넌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평소 모습에서는 좀처럼 연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마일스아이렌에서 두 명의 사냥꾼이 차출되어 나갔네. 그웬돌라드 지역에서도 차출되지 않으면 불만이 클 걸세. 엄밀히 말하자면 동부 국경은 그웬돌라드에 속해 있는 영역이니까.”
이븐이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 그가 담배를 눌러 끄는 동안 잠시 정적이 흘렀다.
“케넌,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은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 우리의 대화는 대리인을 통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서신을 통해서도 진행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잔베르까지 직접 오신 이유가 뭡니까? 거기다가 가장 실력이 우수한 마일스아이렌의 사냥꾼을 이미 둘이나 보내두고 또 저를 보내시려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케넌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손으로 두 눈 사이를 눌렀다.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네, 이븐. 베소니아의 전쟁 용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단 내부에도 전쟁을 두고 알력이 있지. 교단이 그러니, 사냥단 내부라고 안심할 수는 없는 셈이지.”
잠시 말을 멈춘 케넌은, 눈을 치뜨고 이븐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문득, 이븐은 그가 주교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을 때의 눈빛이 이와 같았으리라 생각했다. 케넌의 입에서 무거운 한 마디가 떨어졌다.
“내가 자네를 믿어도 되겠나?”
- 작가의말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하는 장(章)인 탓에 진행이 다소 지지부진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다시 빠르게 달려보겠습니다.
케넌의 말에서 “삼 년 전”을 “이 년 전”으로 고쳤습니다.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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