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막 2장 - 전쟁터의 장의사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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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소니아에도 교단에서 파견된 사냥꾼들이 있긴 합니다만 살바도스나 게헤만에서처럼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죠. 아무래도 정교회 사제들이 달가워하질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자경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저희 같은 용병들이 마물 퇴치 의뢰를 받아 해결하기도 하니 그럭저럭 대응이 되고 있습니다. 교단의 사냥꾼들이 활약하는 제국에 비하자면 전문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단합으로 이겨내는 거죠. 이런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반?”
손짓을 섞어가며 능숙하게 하임벤어(*)를 구사하는 젊은이는 황제에 의해 고용된 전쟁 용병으로, 이븐에게는 자신을 말릭 상사라고 소개했다. 마르셀, 아블린과는 이미 안면을 튼 모양이었던지 그의 수다는 주로 이븐에게 집중되었다.
“마물에 대항하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지요. 그보다도 제 이름은 이븐입니다.”
“베소니아식 애칭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말릭은 공교롭게도 로베르한 황실의 상징 색깔과 같은 진청색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실상 그뿐 아니라 이들, 얼음송곳 용병단 전체가 그런 제복을 입고 있었다. 용병단이라면 무구나 장비가 무질서할 법도 한데 그런 일 없이 통일되어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보였다.
“글쎄요, 제 이름은 어머니 성함에서 따온 거라······.”
“모친께서도 기꺼워하실 겁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럼 하늘에서 지켜보실 테죠. 당신의 아드님을 이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이븐은 하늘에 대고 말하는 이 용병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져서 피식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 수다스러운 용병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그의 시도는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할 성싶었다.
“하임벤어는 언제 배우셨습니까?”
“지금도 젊지만 더 젊었을 때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습니다. 세젠치아에서 배를 타고 정어리 잡는 어부로 일한 적도 있지요. 덕분에 그 지방 방언도 꽤 합니다. 정어리를 잡으면 내장을 발라내고 소금에 절여서 대륙으로 보내죠. 신기한 건 철이 되면 또 잡았던 만큼의 정어리가 잡힌다는 겁니다. 정말이지 바다는 무궁무진하달까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지만 이븐은 말릭이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다만 그는 이 사내의 수다를 조금 더 연구해서 뻐꾸기 둥지에서 베크와 얀을 상대로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속일 때 요긴하게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여기라고 하지 않았나?”
앞서 걷던 마르셀이 자리에 멈춰 서며 말했다. 용병들이 주둔하고 있는 마을로부터 이십 여 분 걸어 도착한 숲은 그웬돌라드 지역에서는 드물게 관목으로 우거져 있는 곳이었다. 이븐은 식생을 살피며 자신이 와 있는 곳의 위치를 대강 짐작했다.
“예, 여기 있을 텐데요. 루보미르! 나잘!”
단원들의 이름을 외치며 수풀로 걸어 나가는 말릭의 어깨를 이븐이 잡아 멈춰 세웠다. 말릭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븐을 쳐다보자 그는 권총을 꺼내들고 앞질러 나갔다.
“뭐가 보여요?”
“보이진 않는데, 피 냄새가 나고 숨소리가 들립니다. 부상을 당한 것 같군요.”
아블린의 물음에 이븐이 소리를 낮춰 답했다. 부하 단원이 부상을 당했다는 말에 뛰쳐나가려는 말릭을 이븐이 다시 막았다. 마르셀이 석궁에 볼트를 재고 이븐의 뒤를 따랐다. 숲에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나무둥치에 기대어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잘!”
말릭이 얼른 달려 나가 남자를 살폈다. 세 명의 사냥꾼이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서며 주위를 경계했다. 루보미르는 보이지 않았다. 이븐은 땅의 혈흔을 살피며 숲에서 일어난 일을 재구성했다.
“말릭··· 이챠에스트포보냐. 티라크···아에스본데··· 시에쓰빈······.”
“파에드기스, 도프타! 아빌란디프노스파타. 트보냐에스펜!”
나잘이 기침을 쿨럭이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피와 침이 섞여 입가에 엉망으로 들러붙어 있었다. 말릭이 나잘의 상의를 찢고 상처를 살폈다. 이미 땅이 피로 흥건했다. 말릭이 지혈을 위해 환부를 압박하자 나잘이 신음성을 토해냈다.
“장기가 손상되지 않았어요. 살 수 있습니다.”
이븐이 무릎을 굽혀 다가오자 말릭이 말했다. 이븐은 사냥칼을 꺼내어 부상당한 나잘의 뺨에 대어 보았다.
“뭐 하는 겁니까?”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그랬습니다. 데리고 돌아가시겠습니까?”
그 순간 나잘이 눈을 부릅뜨고 베소니아어를 모르는 이븐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단어를 내뱉었다.
“마먀···.”
모로 꺾인 나잘의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르셀이 건조하게 선언했다.
“죽었군.”
“아까는 뭐라고 한 겁니까?”
말릭이 나잘의 눈을 감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븐을 마주 보는 그의 눈이 붉었다.
“루보미르가 죽었다는군요. 덩치가 크고 기어 다니는 마물이 있는데 낫 같은 걸로 공격한답니다.”
“송장벌레가 아니라 주검수채인 것 같은데요.”
자신의 판단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의미로 아블린이 이븐과 마르셀을 번갈아 보았다. 이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늪지대가 여기서 멀지 않으니 가능성 있는 얘깁니다. 다만 여기까지 내려왔다면 그만한 먹이가 있어야 할 겁니다. 말릭, 수습한 단원들의 시체를 이 근처에 두었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죽은 단원들의 시신은 마을에 있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린 전우의 시신을 이런 곳에 내팽개쳐두는, 애비도 없는 잡놈들이 아닙니다.”
“루보미르와 나잘은 경계 근무를 서던 중이었고요. 맞습니까?”
“아블린이 이 숲을 주의해서 보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배치했습니다.”
이븐이 말릭의 말을 확인하는 의도로 아블린을 쳐다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셀이 모자를 고쳐 쓰며 이븐과 아블린에게 물었다.
“주검수채가 둥지를 치는 데 최소 몇 구의 시체가 필요한지 아는가?”
“여섯 구 정도가 가장 적었던 것 같습니다만 사실 주검수채는 두 마리를 잡아본 게 전부입니다.”
“저는 세 구까지 봤네요. 이제 막 독립해 나온 새끼였던 것 같지만.”
“훈련된 성인 남자 두 명을 죽일 정도의 주검수채라면 성체라고 판단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군. 게다가 보통 주검수채는 기어 다닌다기보다 뒷다리를 이용해 바닥을 차며 나아가지. 덩치가 꽤 있는 놈일 테고, 그렇다면 시체도 어지간히 쌓여있을 거야.”
마르셀이 상황을 요약해서 정리했다. 이븐은 코를 들고 공기 중의 냄새를 맡았다. 흙냄새 위로 낮게 깔리는 음침한 악취는 과연 시체의 냄새였다. 오래되지 않은 시체가 여럿 모여 있으면 다양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시체가 오래되어 부패가 진행되었다면 바로 지금처럼 평등하게 썩어문드러진 냄새가 나게 된다.
“그 냄새 맡는 것 좀 그만하게. 자네가 어떤 상태인지는 나도 들어서 알지만 인간답게 굴려는 노력이라도 하란 말일세.”
“맞아요. 잘생긴 코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서 무척 불편하네요.”
마르셀이 터뜨린 불평을 아블린이 자학적인 농담으로 뭉갰다. 이븐은 말없이 권총의 끝으로 방향을 가리켜 보였다. 이븐을 앞세우고, 나머지 셋이 뒤를 따랐다. 처음에는 조용히 뒤를 따라오던 말릭은 천성을 이길 수 없다는 듯, 곧 참지 못하고 수다를 다시 늘어놓았다.
“주검수채라는 건 어떤 마물입니까? 수채가 무슨 뜻이죠? 혹시 수챗구멍 할 때 그······.”
“잠자리 유충을 수채라고 합니다. 이따 보시면 아실 테지만 제법 비슷하게 생겼지요. 그건 그렇고 사냥에서는 주변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븐이 예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릭에게 눈치를 주었다. 말릭이 조금 더 이븐을 향해 다가가 붙으며 말했다.
“네, 저도 잘 듣고 있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 주검수채라는 건 시체로 둥지를···”
“말릭 상사, 입 좀 닥치시오.”
마르셀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말릭은 조용해졌다.
“이 앞인 것 같은데요.”
아블린 역시 공기 중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개천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풀을 헤치고 나아간 이븐의 앞에 비탈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차례대로 내려갔다. 넘어질 뻔한 말릭을 아블린이 잡아 일으켜 세웠다.
“저놈이군요.”
쌓아올린 시체 더미 위에서 갈색의 살진 몸뚱이를 움직이는 마물을 보고 이븐이 말했다. 낫처럼 생긴 거대한 두 개의 앞다리로는 푸른 제복으로 감싸인 새 먹잇감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마디가 새겨진 거대한 배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고 주둥이로는 끈적이는 타액을 토해냈다.
마르셀이 석궁을 겨냥했다. 사출된 볼트가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앞다리의 연결부를 정확히 꿰뚫었다. 먹잇감을 떨어뜨린 주검수채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버르적거렸다. 앞다리의 크기를 보고 공격의 거리를 가늠한 아블린은 등에 메고 있던 철창을 꺼내어 날이 넓은 칼과 연결했다.
“제가 끌어낼 테니 배를 터뜨리십시오.”
시체 더미 뒤로 몸을 숨긴 주검수채를 향해 나아가며 이븐이 말했다. 시체는 눈으로 대강 헤아린 것만으로도 열 구가 넘었다. 먹어치운 것도 있을 테니 본래는 그보다 많았을 터였다. 이븐은 접근한 그를 향해 덮쳐오는 주검수채에게로 총을 쐈다.
앞다리에 볼트가 박혀 움직임이 둔했다. 배에 달린 수십 개의 짧은 다리들과 커다란 한 쌍의 뒷다리의 도움을 받고도 그것은 이븐의 총을 피하지도, 그를 향해 유효한 공격을 가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확실히 몸체를 둘러싼 껍데기는 단단했다. 이븐은 그의 총탄이 갑각을 깨는 데 그친 것을 보며 용병들이 어째서 이 굼뜬 마물을 상대해내지 못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새 석궁을 재장전한 마르셀이 두 번째 볼트를 발사했다. 이번에는 뒷다리의 연결부를 노렸고, 이번에도 역시 적중했다. 방금 쏘아 맞혔던 자리에 다시 탄환을 발사하며 이븐은 뒤로 물러났다. 주검수채가 끈질기게 멀쩡한 앞다리 하나로 땅을 긁으며 다가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뒤에서 가해진 충격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고통으로 몸을 꼬았다.
아블린은 글레이브를 가로로 휘두르며 배를 감싼 갑각의 틈을 노렸다. 싯누렇고 덩이진 액체가 마물의 터진 배로부터 흘러나왔다. 액체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체모도 섞여 있었다. 또 다시 날아든 마르셀의 볼트는 이제 머리와 배의 연결부를 맞히며 일격을 가했다. 주검수채가 등을 아래로 하여 뒤집어지며 앞다리를 휘저었다. 아블린이 글레이브를 찔러 넣어 숨을 끊었다.
“제가 잡아본 것 중에서 제일 큰 놈인데요.”
실개천에 글레이브의 칼날을 담가 씻으며 아블린이 말했다. 마르셀이 다가와 사체로부터 볼트를 뽑았다. 이븐은 시체 더미를 살펴보고 있는 말릭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다가갔다. 이 정도 크기의 주검수채라면 알을 까놨을지도 모르는 탓이었다. 주검수채의 새끼는 작아서 오히려 성체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울 때가 있었다.
“말릭, 새끼를 쳐놨을지도 모르니 뒤로 물러나십시오.”
“이 시체··· 이 시체들 좀 보세요.”
말릭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븐 역시 시체를 보았으나 루보미르의 시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알몸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주검수채가 인간을 먹을 때는 소화시키기 까다로운 의복을 벗기기도 하니 따지자면 특이할 것도 없었다. 말릭이 대담하게도 시체 가운데 하나의 팔을 잡고 이븐에게로 들어다 보였다. 팔뚝에는 낙인 같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말릭이 말했다.
“이건 게헤만 병사들의 시체입니다.”
말릭과, 어느새 등 뒤에 와서 서있던 마르셀의 심각한 표정을 살핀 이븐이 뒤늦게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물었다.
“누군가 일부러 갖다놨단 말입니까?”
*하임베르 제국 때부터 이어져 온 살바도스 제국의 공용어. 과거 하임베르 제국에 속해 있던 게헤만 공화국의 서부 지역 일부에서도 해당 언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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