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2장 - 거머리 늪(2)
수녀원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이븐은 처음에는 바닥에 흩어진 핏자국을 따라, 수녀원에 들어선 다음부터는 공기 중에 흩어진 냄새를 더듬어 알렉의 탈출 경로를 재구성했다. 사냥개를 앞세운 사냥꾼처럼 뒤에서 스타샤가 그를 따라왔다. 얼른 생존자를 찾아 나설 것처럼 말하던 스타샤도 정작 수녀원 내부로 들어서니 예상했던 것과 달랐던 모양인지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그녀가 소리 죽여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이미 끝난 것 같은데.”
“알렉이 공격을 당한 건 이 근처인데······.”
이븐이 자세를 낮춰 복도에 떨어진 피를 살피며 말했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원장실 앞이었다. 알렉이 수녀원에 들렀던 것은 이븐의 요청에 따른 일이었다. 즉, 그가 자신을 도와줬던 수녀에 대한 적절한 포상을 케넌에게 건의했고 그 결과로 오늘 알렉이 수녀원을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이븐이 원장실의 문을 당겼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물이 튀어나오며 이븐을 덮쳤다. 이븐은 내뻗은 왼손으로 마물의 목을 잡고 선 자리에서 반대로 돌며 벽에 내팽개쳤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이븐이 기습으로 흐트러진 균형을 다시 회복하는 동안 마찬가지로 자세를 바로잡는 마물을, 스타샤가 칼로 내리쳤다.
“아는 사람이야?”
바닥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마물을 보며 스타샤가 물었다. 이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그가 옷자락을 털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이자 스타샤가 칼끝으로 마물의 목을 찔러 숨통을 끊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새까만 거머리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마치 갑자기 생긴 입구를 탐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역겹게 꿈틀대던 그것들은 숙주가 생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밖으로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븐이 발로 쇼산나 수녀원장의 시체를 뒤집었다. 아마도 알렉을 공격한 것은 원장이었던 듯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알렉은 어딘가에 붙잡혀 있었어.”
이븐이 시간을 셈하며 말했다. 주점에서 알렉과 헤어진 것이 대략 오후 다섯 시였고 그가 부상을 입고 여관에 나타난 것은 열한 시가 넘은 무렵이었다. 무릎 뒤에 입은 부상은 출혈이 심각했으므로 그가 수녀원에 도착한 직후에 입은 상처일 수는 없었다. 그랬다면 그는 이미 죽었을 터였으므로.
“어떻게 도망친 거지? 그렇게 날렵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스타샤가 알렉의 튀어나온 배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븐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같은 감상이었다. 이븐이 나지막이 말했다.
“풀어줬군.”
“그렇다는 건······.”
이븐이 내린 결론을 스타샤가 넘겨받아 거꾸로 추론했다. 말을 잇는 그녀의 표정에 옅은 분노가 묻어났다.
“우리를 꾀어낼 생각이었다는 거네.”
그들이 카일로파드의 흔적을 찾아 모르델반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색을 벌이던 동안 이 교활한 마물은 이미 그들이 묵고 있는 숙소의 위치와 계획, 일과까지 꿰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렉이 수녀원을 방문할 거란 사실, 그에게 부상을 입혀 돌려보내면 그 즉시 사냥꾼들이 수녀원으로 들이닥칠 거란 사실까지······. 이븐은 이번 사냥이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유의 것이 되리란 예감에 전율했다.
종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이븐과 스타샤는 동시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지나왔던 복도를 다시 돌아가야 했다. 이븐은 원장실에 놓여있던 랜턴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자 빛의 구체가 그들을 감쌌다.
“방을 하나씩 살피면서 가자고. 생존자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래, 찾아서 마무리 지어야지.”
이븐은 알렉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으나 스타샤는 방금 전 자신이 베어버린 마물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븐은 오른손으로는 권총을, 왼손으로는 랜턴을 들고 스타샤와 함께 복도를 따라 걸으며 방을 살폈다. 소득은 없었다. 그들이 다시 현관으로 돌아오자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막심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좀 어때?”
“한 마리 잡았습니다. 그보다도 막심, 종소리 들으셨습니까?”
“들었고말고. 예배당으로 부르는 것 같던데?”
이븐 역시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 장소는 예배당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랑 스타샤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신호는···”
“그래, 알고 있어. 나도 튀어나오는 놈 없는지 보고 있다가 부르면 달려가도록 하지.”
막심과의 대화를 마친 이븐이 다시 스타샤 곁으로 돌아와 예배당으로 향하는 복도에 접어들었다. 밖에서 본 예배당의 건물은 천장이 높고 창이 많았으므로 이븐은 랜턴의 불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예배당의 육중한 문 앞에 서서 잠시 머리를 숙이고 예배당 안의 동정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 체취로 미루어 보건대 그 수가 적어도 기십이었다. 이븐이 돌아보며 말했다.
“많아.”
“얼마나?”
“글쎄, 서른? 적어도 그 이상일 거야.”
“그냥 수녀원에다 불을 놓는 게 낫겠네.”
물론 스타샤는 농담으로 한 얘기였겠지만 이븐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델반트 수녀원에는 수녀들뿐 아니라 그들이 돌보는 환자들도 있었고 이들 모두가 예의 그 거머리에 감염되어 마물로 변했다면 정말로 불을 질러 버리는 것이 나을 터였다. 그러나 여전히 생존자가 있으리란 예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수녀와 환자를 모두 합한다면 백 여 명에 이를 텐데 그들 모두가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마물이 되었으리라는 가정은 아무래도 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파스귄트 마을에서 뷔센과 함께 사냥했던 적목사잠은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것은 적목사잠의 독특한 감염 기제에 기대고 있는 일이었다.
“뭐해, 안 들어갈 거야?”
“숙주가 죽으면 이 거머리들은, 그러니까 감염 인자는 밖으로 나오는 거지? 그것 말고 체외로 빼내는 다른 경우가 있을까?”
자신의 재촉에도 아랑곳없이 돌연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이븐에게 스타샤는 간단히 대꾸했다.
“아까 봤잖아.”
“뷔센이랑 혈안귀를 사냥한 적이 있거든. 근데 그 마물을 죽이고 나니까 감염된 마물들이 활동을 멈추더라고.”
스타샤는 이븐이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칼자루를 쥔 그녀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이미 감염된 마물을 되돌리는 법은, 내가 아는 한 없어. 감염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막는 방법이 있다고는 해도 글쎄, 성공 사례라고는 너 하나뿐이잖아.”
이븐은 스타샤의 말을 듣고 쓰게 웃었다. 이븐은, 인간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마물을 죽여야 한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라거나 그들을 되돌리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는 인도적 차원에서 그런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이븐은 겉으론 그 자신보다 훨씬 매몰차 보이는 스타샤가 오히려 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가 말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카일로파드를 찾아 죽이면 구태여 고생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 작가의말
6막 2장 - 거머리 늪(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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