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2장 - 거머리 늪(3)
“방법은 있고?”
“카일로파드를 찾아내는 방법은 생각해 봐야겠지만, 지금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건 그놈이 정확히 원하는 일일 거란 말이지. 알렉을 미끼로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들인 놈이야.”
스타샤가 이븐을 앞질러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뭐가 준비되어 있는지 봐야지.”
그녀는 양손으로 육중한 문을 당겨 열어젖혔다. 스타샤의 행동은 그녀 나름의 계산 끝에 나온 것이었으므로 무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카일로파드가 그녀 자신과 이븐을 여기까지 꾀어낸 이유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한 차례 루퍼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던 노블 다이스였다.
달이 밝았고, 덕분에 예배당의 상황은 한눈에 들어왔다. 동공 없이 새까만 눈을 제하자면 외견으로는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마물들이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이븐의 예상대로 수십 마리였고, 모두 수녀들이었다. 이븐이 스타샤의 옆에 다가가 섰다. 마물들이 그들을 향해 반원의 진열을 형성하며 점차로 좁혀들어 왔다. 이븐은 권총을 집어넣고 등에 메고 있던 총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쾅-
블런더버스가 불을 뿜는 것을 신호로 난전이 시작되었다. 산탄에 맞은 마물들의 몸이 허물어지자 그 뒤의 마물들이 사체를 밟고 넘어왔다. 이븐은 블런더버스로 달려드는 마물의 턱을 후려쳐 밀친 뒤 재빨리 무기를 교체했다. 이제 그의 양손에는 연발 권총이 하나씩 들려 차례로 총격을 뿜어댔다. 탄환이 마물을 뚫고 내장이 폭죽처럼 터져 허공에 흩어졌다. 쓰러진 시체의 눈과 코에서 거머리들이 기어 나왔다.
이븐이 오른쪽을 맡아 처리하는 동안 스타샤는 왼편을 맡아 마물들을 베어 넘겼다. 칼끝으로 짧게 베어 거리를 벌린 뒤 납도한 칼을 빠르게 뽑아내며 목을 쳐 날리는 식으로 그녀는 순식간에 서너 마리의 마물을 해치웠다. 기세가 꺾일 법도 한데 마물들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그건 이 마물들이 조금의 합리성도 갖추지 못했을 만큼 저급한 것이거나 ‘주인’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마물의 수효가 줄어들어감에 따라 오히려 더 정교한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렇게나 쏘고 베어도 얻어 걸리는 식이었다면 이젠 신중한 조준이 있어야만 유효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븐은 권총을 집어넣고 사냥칼을 빼들었다.
이상한 것은 이 마물들이, 그 수가 많았음에도 위협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감염된 마물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변형된 신체가 이들에게서는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단지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손을 휘저을 뿐 이렇다 할 공격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이븐은 마물의 공격을 피하고 그 머리를 움켜잡은 뒤 사냥칼로 목을 베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상해.”
스타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마지막 마물의 가슴팍에서 칼을 뽑아내며 말했다. 허공에 칼을 휘둘러 피를 떨쳐낸 그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품속에서 헝겊을 꺼내 도신을 닦았다. 십수 마리의 마물의 목을 친 탓에 칼은 삽시간에 무뎌져 있었다.
“더 둘러보자고.”
이븐은 빈 약실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어쩌면 이 위협적이지 않은 마물들의 공격의 목적이 그로 하여금 탄환을 낭비토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사격에 신중을 기할 생각이었다. 이븐은 예배당의 앞쪽을 향해, 스타샤는 건물 밖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뒤쪽을 향해 걸어가며 내부를 살폈다.
제단이 놓인 내진(內陣)은 기둥으로 둘러쳐져, 회중석이 있는 공간과 구분되어 있었다. 이븐이 내진 측면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려는 차에 스타샤가 살피고 있는 측랑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공격하지 마세요!”
아는 목소리였다. 이븐은 즉시 나선형 계단을 올라 이층으로 뛰어갔다. 철로 된 디딤판을 밟는 소리가 예배당의 둥근 천장에 부딪쳐 메아리쳤다. 스타샤의 뒷모습에 가려 그녀가 칼을 겨누고 있는 대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븐이 스타샤에게 다가갔다.
“메이윌.”
몸을 떨며 웅크리고 있는 은발의 수녀에게로 이븐이 자세를 낮췄다. 여전히 메이윌의 목을 겨눈 스타샤의 칼을, 이븐이 손등으로 밀어 치웠다. 그제야 스타샤는 칼집에 칼을 넣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언제라도 뽑아들 양으로 칼자루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색이 창백했으나 변이의 가장 특징적인 외형인 눈은 멀쩡했다. 이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돌연 눈물이 솟구쳤다.
“이븐······.”
이븐의 품 안으로 무너져 안겨오는 메이윌을, 이븐이 양팔로 붙잡고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의 눈빛이 엄격했다.
“감염된 이들이 더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저는, 죄송해요, 저는······.”
메이윌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방금 그녀의 발아래서 함께 지내던 수녀들이 떼로 죽어나갔던 것이다. 메이윌이 고개를 들고 이븐을 바라봤다. 탈력한 기색이었다.
“밖으로 데려다 줘요.”
이븐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메이윌이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스타샤가 앞장서서 내려갔다. 그 뒤를 메이윌과 이븐이 차례로 따르며 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돌연 메이윌이 이븐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기억··· 어요.”
이븐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소녀, 소녀랑··· 꼭··· 지네처럼··· 러 개······.”
무언가에 홀린 듯 메이윌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그녀의 속삭임이 끊어질 듯 위태롭게 들렸으므로 이븐은 자세를 낮춰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 순간 메이윌이 양팔을 뻗어 이븐을 껴안았다.
“무슨···!”
그러나 이븐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입을, 메이윌이 자신의 입으로 틀어막은 것이었다. 이븐의 혀를, 치아를, 그의 입 안에 든 것은 무엇이든 죄 먹어치울 기세로 그녀가 혀를 섞어 왔다. 메이윌의 돌발 행동에 놀란 건 이븐뿐만이 아니었다. 스타샤는 도무지 이 행위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고 떼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내버려두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이라고, 스타샤는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오판이었다. 이븐은 자신에게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메이윌을, 힘껏 밀쳐 바닥에 넘어뜨렸다.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기침을 하던 이븐은 곧 넘어지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스타샤도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븐은 헛구역질을 하며 입 안에 양손을 집어넣고 그 안을 헤집었다. 바닥으로 투둑, 투둑 새까만 거머리들이 연이어 떨어지며 뒹굴었다.
“죄송해요,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 곁에 모로 쓰러져 있던 메이윌이 울먹이며 말했다. 스타샤가 칼을 빼들고 그녀를 겨누자 이븐이 제지했다.
“메이··· 잘못이 아냐······.”
마치 목이 졸린 듯 그의 얼굴이 점차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구역질을 계속하며 바닥에 대고 침을 흘리는 이븐에게서 마치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가 났다.
“미쳐 버리겠네.”
스타샤는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굽혀 이븐을 살폈다. 그는 이제 숫제 피부를 손끝으로 긁어내어 그 아래로 침투한 거머리들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의 입이 자신의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 순간 정말로 엉뚱하게도,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소녀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스타샤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겹치자 방향을 찾지 못하고 우선 메이윌 쪽을 돌아보았으나 그 수녀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방향은 조금 전 이븐이 살펴보았던 내진 쪽이었다.
“잡았어, 카일! 내가 잡았다고!”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웃음소리의 주인이었다. 사춘기가 지나지 않은 아이들이 내는 여린 고음의, 카랑카랑하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스타샤는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불쾌감으로 머리털이 곤두섰다.
탕- 탕-
스타샤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이븐이 예배당의 창문을 겨누고 연달아 두 번 총격을 가했다. 약속했던 신호였다. 그러나 그의 다음 행동은 스타샤도, 지켜보던 메이윌도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븐은 유리창을 쐈던 권총을 거두어 자신의 뺨에 그 총구를 들이댔다.
이윽고 이븐은 방아쇠를 당겼다. 피와 살점이 바닥에 후드득 흩뿌려졌다.
- 작가의말
6막 2장의 제목을 ‘지네와 소녀’에서 ‘거머리 늪’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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