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3장 - 핏빛 예배(2)
막심이 갈고리칼을 흔들자 걸려 있던 내장이 주르륵 쏟아졌다. 마물을 상대하는 사냥꾼의 싸움은 처절할 정도로 지저분한 구석이 있었다. 타격은 하책 중의 하책이었고 절단은 잠깐의 시간을 벌어줄 뿐,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해부학(*)만이 언제나 올바른 해답이었다. 더 많은 피와 더 많은 내장을 뽑아낼수록 승산은 높아진다.
이미 이븐과 스타샤가 감염된 수녀들을 모조리 죽여 수녀원 건립 이래로 바닥을 새로이 칠한 데 더해, 막심이 가세해 늑대인간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예배당은 그야말로 도살장 같은 풍경이 되어 있었다. 그 시체들 너머로 소녀가 서 있었다. 이븐은 직감적으로 그 소녀가 노블 다이스의 소공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카일! 이 사냥꾼들이 내 부하들 다 죽였어!”
그렇게 말하는 소공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아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새까만 머리칼이 굽이쳐 흘렀고 예배당 창문을 통과한 달빛은 그 위에서 윤슬로 화했다. 피부는 희었으나 흡혈귀와 같은 마물에게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핏기 없는 피부와는 달랐다. 다시 말해, 살아있는 인간과 같았다.
기이한 것은 레이스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원피스와 은실 수놓은 검은 케이프 따위의 다소 꾸밈 많은 복식이었는데, 이븐은 이 때문에 소공녀가 전투에 능한 마물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그 순간 천장으로부터 시커먼 물체가 아래를 향해 떨어지며 이븐과 소공녀가 서 있는 사이를 갈랐다. 허공에서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회전해 발로 착지하는 그것과 이븐은 구면이었다.
“반갑습니다, 사냥꾼 여러분.”
단안경이 빛을 반사하며 묘한 인상을 만들어냈다. 이븐이 스타샤, 웨인과 함께 루퍼트를 쫓던 때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지금의 재회에는 이른 감이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날 위해 준비한 건 여기까진가? 수녀와의 입맞춤은 누구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각별했어. 머리가 날아가 버릴 정도였으니까.”
“내 생각이었어. 제대로 먹혀 들어갔으면 넌 이미 소피의 수중에 있는 거였어. 그러니까 건방떨지 마!”
소공녀가 카일로파드 옆에 다가서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아이의 모습을 한 마물이란 성가신 존재였다. 인간 아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닌 듯했다.
“넌··· 그때 그 여자애군.”
이븐, 그리고 막심도 마찬가지로 스타샤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를 쳐다보며 표정을 살폈다. 그때라니? 소공녀, 소피가 까르르 웃어댔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스타샤를 보며 배를 잡고 웃는 소녀는 손가락을 세워 제 눈의 눈물까지 닦아냈다. 스타샤가 좀 전보다는 커진 목소리로 물었다.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거지?”
사납게 치켜뜬 눈으로는 저 순진한 꼬마를 쏘아보며, 그러나 분노가 끓는 와중에 음성은 오히려 차분했다. 어쩌면 그녀 스스로도 질문 따위는 소용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바보 같은 사냥꾼들 놀리는 게 재밌으니까! 인간들 몸에 꼬물이를 넣어서 가지고 노는 건 더 재밌고.”
응결된 분노가 칼자루를 쥔 오른손의 힘줄에 뿌듯하게 실렸다. 늑대인간이 할퀸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허리띠 위에 고이며 천천히 아래로 틈입했다. 고통보다는 불쾌가 앞섰다. 칼자루를 쥐고 누르며 스타샤가 말했다.
“막스, 네가 맞았어. 무의미한 죽음이었다고. 그건······.”
스타샤가 앞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 앞에 놓인 두 마물은 위협 따위 느끼지 않는단 듯이 당당히 서 있었다. 이븐은 멈춰 선 스타샤의 발 위치를 보며 그녀의 다음 행동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개죽음이었어.”
정확한 거리 계측과 신속한 발도는 유효한 타격으로 이어졌어야 할 터, 하지만 카일로파드의 마수가 칼날을 잡아채며 소녀의 목을 안전하게 지켰다. 이어진 이븐의 총격도 전에 보았던 묘기를 재현해내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즉, 발사된 탄환이 마수의 손아귀 속에서 허무하게 끝을 맞았다.
“물러나 계십시오.”
“잊으면 안 돼, 카일. 늑대 아저씨는 우리 장난감이야.”
카일로파드의 말에 소공녀가 여전히 발랄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대꾸했다. 다시 한 번 공격해보라는 듯, 카일로파드가 잡은 칼날을 스타샤 쪽으로 밀치며 놓았다. 그 조그만 동작에도 제법 힘이 실려 있는 모양인지 스타샤가 휘청거렸다.
“메이윌! 칼!”
이븐이 총구를 카일로파드에게 겨눈 채로 메이윌에게 소리쳤다. 아직 그의 사냥칼이 메이윌의 수중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칼을 던지면 자칫 사냥꾼들의 몸이 상할까 저어하다가 이내 방법을 찾은 듯 바닥에 대고 힘껏 밀었다. 조준이 제법 정확해서 이븐의 발치에서 멈춘 사냥칼을, 그가 끝을 밟아 허공에 띄웠다. 왼손으로 사냥칼을 움켜쥔 이븐은 자신의 자리를 잡으며 진형과 전술을 고민했다.
그와 스타샤가 카일로파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저 새까맣고 끝이 예리한 마수를 배 속에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일로파드와 처음 마주쳤을 때 그가 꺼냈던 마수는 여섯 개였으나 열어젖힌 옷깃 속의 시꺼먼 어둠은 얼마든지 더 꺼내들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막심, 칼 얼마나 남았습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던 막심은 이븐의 질문을 듣고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어째선지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서로 아는 사이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답 대신에 외투 자락을 젖혀 보였다. 그의 외투 안감에는 빼곡하게 단검이 세로로 꽂혀 있었다. 대충 눈으로 헤아려도 십여 개에 이르렀다. 그가 지금껏 보여줬던 날렵한 움직임은 그 무게를 이겨내고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스타샤에게 기름이 있을 겁니다. 제게는 화약이 있고요.”
이븐은 스타샤가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기름통을 떠올리며 말했다. 정화유(淨化油)라고 불리는 그 기름은 마물의 시체를 태우는 용도였는데 고래기름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성분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불이 붙으면 꺼질 줄을 몰랐고 잘 옮겨 붙지 않는다는 점에서 범용성이 높았다.
“재밌겠는데.”
막심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이븐은 약실을 장전할 때 사용하는 화약통을 꺼내어 막심에게 던졌다. 받아든 화약통을 주머니에 넣은 막심은 한 번 더 갈고리칼을 허공에 휘둘러 핏물을 떨쳐낸 다음 카일로파드를 향해 다가갔다.
그들의 앞에서 스타샤는 카일로파드와 여전히 대치 중이었다. 카일로파드는 꼿꼿이 선 채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며 스타샤를 향해 마수를 휘둘렀다. 그런 그의 공격에는 진지함이 없었다. 막심이 다가오자 스타샤가 뒤로 물러서며 카일로파드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신호를 주면 기름을 막심에게 뿌려.”
이븐이 스타샤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듯, 스타샤가 적을 주시하는 것도 잊고 이븐을 돌아봤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진지했으므로 스타샤는 뭐라 덧붙일 수 없었다. 그녀는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음으로써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막심의 공격으로 인해 사냥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짐작할 수 없게, 그의 갈고리칼이 카일로파드의 어깨와 목 사이를 찍어 그를 끌어당김으로써 자세를 흩트린 것이었다. 카일로파드가 뻗은 마수가 막심의 오른팔을 잡아채려 하자 그는 얼른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보는 이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만 막심의 얼굴 위로는 짓궂은 장난기가 흘렀다.
*황지우, 「끔직한 모더니티」의 “너무나 원시적인 해부학적 비극” 구절을 일부 차용(황지우. 1992. 「끔찍한 모더니티」. 『문학과사회』 1992년 겨울호.).
- 작가의말
6막 3장 - 핏빛 예배(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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