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3장 - 핏빛 예배(3)
이븐은 총을 들고 일부러 카일로파드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조준했다. 소공녀가 놀라 장의자 뒤로 몸을 던졌다. 카일로파드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는 다시 쇄도해오는 막심의 갈고리칼을 마수로 쳐내고 이븐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 속도가 가히 폭발적이어서, 이븐은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흡!”
마수(魔手)가 권총을 든 이븐의 오른팔을 붙잡아 분질러 버리고, 또 다른 두 개의 마수는 교차하며 상체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일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이븐도 평범한 몸은 아니어서, 그 순간에도 왼손의 사냥칼을 카일로파드의 목에 꽂았다. 점성 높은 새까만 액체가 이븐의 얼굴에 튀었다.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었으나 이들 노블 다이스는 감염된 인간형 마물과는 전혀 달랐다. 인간이나 동물이 감염되어 발생한 마물은 뒤틀리고 변이되더라도 본래의 성질을 일부 유지하는 데 반해, 저 시꺼먼 마수에서는 인간의 육신과 닮은 점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븐은 도무지 카일로파드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이 무엇일지 짐작하지 못했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카일로파드는 순수한 마물이었다. 파스귄트에서 사냥했던 거대한 적목사잠 역시 그 같은 순수성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카일로파드는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위력이 덜해 보이기보다 오히려 집약된 결정체인 듯 느껴졌다.
상체를 공격했던 마수가 이번에는 이븐의 배를 움켜쥐었다. 마수의 날카로운 손끝이 살을 파고들어 갈빗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븐은 오른팔이 붙들린 상태에서 오른손만 꺾어 카일로파드의 머리를 겨냥했다. 용케 권총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탕-
재빨리 이븐을 내던지고 뒤로 물러나는 카일로파드를, 스타샤가 빠르게 베었다. 아래로부터 위로 올려친 칼끝에서 새까만 마수가 잘려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돌았다. 이븐은 카일로파드와 처음 만났던 당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스타샤가 그의 마수를 베어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카일로파드가 떠나고 난 자리를 확인해봤을 때 절단한 마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는 미처 관찰하지 못했던 사실이 지금에서야 분명해졌다.
바닥에 떨어져 뒹굴던 마수는 이윽고 액체로 변하더니 의지를 가진 생물인 것처럼 카일로파드의 발밑으로 옮겨가 흡수되었다. 기이한 광경이었으나 이븐은 차분히 그 의미를 파악하려 애썼다. 마수를 액체로 변이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째서 스타샤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또 그것이 탄환을 잡아내는 묘기와도 관련되어 있는지, 이븐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막심은 이븐과 공모한 모종의 계획을 위해 폭발하는 단검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다. 대신에 그는 카일로파드를 베고 때로는 끌어당기며 끊임없이 카일로파드의 주위를 맴돌며 그의 동작에 훼방을 놓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될 때만 해도 여유로워 보이던 카일로파드는 이제 한 갈래로 묶은 머리가 풀어 헤쳐져 있을 뿐 아니라 표정 또한 사뭇 진지했다. 전력을 다하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 싸움이 그에게 쉽지만은 않다는 뜻이었다.
이븐이 다시 한 번 카일로파드의 머리를 노리고 총을 발사했다. 카일로파드는 움직이지 않고 또 다시 마수를 뻗어 총알을 잡아냈고 막심과 스타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막심이 카일로파드의 옆구리에 갈고리칼을 박아 넣어 그를 밀친 것은 스타샤에게 적합한 각도를 선사해주기 위함이었다.
서걱-
잘려나가 허공에서 회전하는 마수를, 이븐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최대한 접근해 쏘아 맞혔다. 이번에는 권총이 아니었다. 그가 어느 틈에 장전해둔, 녹색 화약을 채워 넣은 블런더버스였다.
퍽-!
허공에서 마수를 잘게 조각내는 산탄은 물론 은으로 된 것이었다. 조각나 땅으로 떨어진 마수가 액체로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이븐은 파훼법의 발견을 확신하고 미소를 지었다. 구성 성분이 무엇이든 간에 그 조직이 아직 살아있을 때 궤멸적인 타격을 주는 것, 그래서 복구를 불가능케 하는 것이 그가 발견한 파훼법이었다.
스타샤가 단순히 마수를 잘라내기만 했을 때에 그것은 본체로부터 떨어져 점차 생명력을 잃어 가지만 타격이라 할 만한 것은 한 번의 절단뿐이었으므로 마수 자체에는 커다란 손상이 없었다. 그러나 이븐이 블런더버스로 마수에 고르게 산탄을 발사했을 때 손상은 전 범위에 입혀지는바, 액체로 변이할 여력은 남아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사냥 방식의 발견은 이 자리에 모인 사냥꾼들 사이에서 빠르게 공유되었다. 막심이 카일로파드를 붙잡으면 스타샤가 마수를 베고 이븐이 총으로 쏘아 맞히는 일련의 동작은 놀랍도록 정확한 호흡 속에서 이루어졌다. 바뀐 점은 이븐이 블런더버스를 장전할 시간이 없어 여러 차례 권총으로 쏘아야 했다는 것인데 그 때문에 성공률은 실패율과 비등했다.
“자작이라고 했던가? 이봐, 자작 나리. 힘 좀 더 써보시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막심도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방금 전에 있었던 다섯 번째 마수 파괴 시도는 성공적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카일로파드의 공격이 막심의 목에 스쳤던 것이다. 피를 흘려 어지러운 듯 그의 한쪽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정말로 그래야겠군요.”
카일로파드의 그 말이 힘을 더 써보겠다는 의미였음은, 마수가 아예 상의를 찢어발기고 그렇게 드러난 하얀 상체를 새까맣게 감싸기 시작했을 때야 이해되었다. 가슴으로부터 배까지 세로로 길게 찢어진 틈에서 마수가 꾸역꾸역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로 뻗어 올라간 두 마수는 그 손아귀가 머리를 뒤덮으며 악마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븐은 그러한 변이가 곧 온몸으로 뻗쳐 나갈 것임을 알았다.
“스타샤, 지금!”
스타샤는 이븐의 주문을 금세 이해하고 허리에 차고 있던 기름통을 막심의 머리 위로 던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던진 기름통을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스타샤가 발도한 칼이 기름통을 정확히 양분하며 그 아래 서있던 막심을 기름으로 흠뻑 적셨다.
막심은 얼른 외투를 벗어 역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중이던 이븐에게 던졌고, 이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뒤늦게 알아차린 카일로파드가 변이를 중단하고 이븐을 막아서기 위해 달려들었다. 스타샤와 막심이 동시에 카일로파드를 제지했다. 덕분에 기름으로 젖은 외투를 움켜쥔 이븐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카일-!”
소공녀 소피의 외침은 이윽고 그녀를 뒤덮은 외투 속에 파묻혔다. 이븐은 망설임 없이 사냥칼을 소녀의 몸에 내리꽂았다.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예배당에 쟁쟁히 울려 퍼졌다. 몸과 외투의 고정은 사냥칼로도 충분할 터, 남은 일은 불을 댕기는 것뿐! 이븐은 재빨리 왼손으로 성냥을 꺼내 권총의 손잡이에 대고 그었다.
이븐의 손을 떠난 불씨가 날아가 내려앉자 꽃이 만개하듯 불길이 한순간에 치솟았다. 몸부림치는 불꽃. 그리고 철판에 대고 철필을 긁는 듯 찢어지는 비명 소리. 바닥에 넘어져 구르던 화염은 곧 연이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더욱 요란스러워졌다. 불붙은 외투의 표면을 뚫고 칼날이 살점과 함께 튀었다. 터져 나온 피가 불길에 먹혀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카일로파드의 공격에 나가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던 스타샤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뒤이은 공격에 당해 장의자의 잔해 속에 처박힌 막심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카일로파드가 미친 사람처럼 불길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외투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이븐의 화약통이 폭발했다. 폭발의 여파로 뒤로 밀려나는 카일로파드의 꼴을 보고 있자니 이제 이븐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카일로파드의 몸은 모두 마수로 감싸여 그림자처럼 보였다. 카일로파드의 얼굴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븐은 어떤 표정일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향해 달려오는 카일로파드의 공격은 그 위력이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이븐은 카일로파드가 휘두른 팔에 얻어맞고 한참을 날아가 제단에 몸을 처박았다.
정신을 수습하고 얼른 권총을 겨눴지만 카일로파드는 빨랐다. 다행한 일은 그의 다음 행동이 이븐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이제는 불붙은 걸레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물체를 품에 안고 예배당을 뛰쳐나가는 것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븐은 몸을 일으켰지만 쫓지 않았다. 소공녀의 절명을 확신했던 것이다.
“기분 째지네.”
여전히 수녀들의 시신과 함께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스타샤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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