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4장 - 핏물을 닦아내고(2)
다행한 일이 있다면 이븐이 당초 카일로파드의 능력일 거라 추측했던 권속의 생성과 조종이 소공녀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소공녀가 죽은 지금 사냥꾼을 권속으로 부리려는 노블 다이스의 야욕은 한풀 꺾이게 되리란 사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소공녀를 살해한 일은 노블 다이스를 한껏 도발하게 될 터였으므로 이번 사냥의 성공을 단순히 쾌거로 치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비와 바람이 잦은 북부였으나 어쩐 일로 오늘만큼은 잠잠해서 담배 연기는 쉬이 흩어지지 않고 머리 위에서 푸르게 자욱했다. 이븐의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또 다른 의문은 노블 다이스의 정보력에 대한 것이었다. 카일로파드는 이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굴었을 뿐 아니라 이번 일을 통해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스타샤가 이븐을 모르델반트로 불렀다는 사실, 그리고 알렉이 수녀원을 방문하리란 것, 여기에 더해 이븐과 메이윌의 관계까지. 카일로파드와 소공녀가 정교하게 쌓아올린 계획의 근간에는 사냥꾼, 아니 적어도 사냥단과 관련 있는 인물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깔려 있었다. 일차적인 결론은 어렵지 않게 도출되었다.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 문제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어디서, 누구를 통해, 어떻게 새고 있는가?
소공녀가 만들어낸 권속이 그 주인과 감각 정보를 공유한다면, 그래서 바로 그런 방식으로 정보가 새어나간 거라면 소공녀를 죽임으로써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된 셈일 터였다. 감염된 것이 누구였든 간에 이제 권속을 조종할 이는 없었으므로. 그러나 만약 사냥단에 또 다시 루퍼트와 같은 인물이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노블 다이스에 소공녀와 유사한 능력을 지닌 마물이 더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종양은 계속 자라날 것이었다.
이븐은 담배를 눌러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는 여전히 복잡했지만 확인할 것이 있었다.
*
“자네도 먹을 텐가?”
“아뇨, 막심. 그보다도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막심은 계란과 햄을 찍은 포크를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잠시 만지작거리다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그가 입안에 든 것을 삼키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 잘 다녀와. 스타샤한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이븐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막심이 식사하는 양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막심은 마침내 포크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부지런한 사냥꾼이 제일 먼저 죽는다는 말은 들어봤나?”
“글쎄요, 막심이 하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 같은데요.”
이븐은 그의 재바른 행동거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븐이 보기에 막심은 천성적으로 몸을 움직이길 좋아하는 위인이었다. 그 몸에 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종종 동행의 귀를 괴롭게 했을 뿐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해치우는 성미는 타의 귀감까지는 몰라도 확실히 편리한 것이었다.
“어딘데 그래?”
“스타샤가 오면 함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방금 깨웠으니 곧 내려올 겁니다.”
마침 스타샤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쪽으로 누워 잤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 한쪽이 헝클어져 떠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옆구리에 외투를 낀 채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이븐은 스타샤가 오른다리를 조금 절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테네그림 숲에서 루퍼트가 쏜 화살에 맞은 다리였다.
스타샤가 이븐의 옆에 앉자 그가 손가락을 빗처럼 세워 스타샤의 뜬 머리를 꾹꾹 눌러 빗어주었다. 힘이 과했는지 머리카락이 뽑혀 나오자 그녀는 짜증스레 이븐의 손을 밀치고 머리를 한 갈래로 묶었다. 눈은 여전히 반쯤 감겨 있었다.
“식사하면서 들으시죠. 얘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막심이 기다렸다는 듯이 식사를 재개했다. 이븐은 우선 정보의 누출에 대한 자신의 추측에 대해 얘기했다. 수녀원에서 있었던 일을 가능케 하는 주요한 세 가지 정보가 요점이었다. 막심이 컵을 들어 물을 마신 뒤 잠깐 끼어들었다.
“정보가 하나만 샜다면 범인 특정이 어렵지만 여러 개라면 훨씬 쉬워지지. 요컨대 교차로는 어디인가, 그리고 거기 서 있는 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된단 말씀이야.”
이븐은 깍지를 끼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기 때문에 스타샤와 막심은 조금의 의구심을 담아 이븐을 쳐다보았다. 이 잠깐의 침묵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일은, 스타샤가 막심보다 빨랐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이븐이 스타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녀의 눈은 활짝 열려 있었다.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확인은 해봐야겠지. 그리고 그 머리카락 말인데······.”
막심도 뒤늦게 이 대화를 이해한 모양인지 허- 하고 탄식을 내뱉고 등받이에 털썩 기댔다. 이븐이 말을 이었다.
“네가 오펜하른 얘기를 해줬으니 나도 잔베르 얘기를 조금 해볼까.”
종업원이 다가와 이븐이 주문했던 커피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스타샤는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본래 주인에게 넘겨줬다.
“늑대인간의 군주와 싸울 때였지. 운 좋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성공했지만···”
“잠깐만. 그 전에 있었던 일은 얘기 안 해줄 거야? 거기서 열흘 가까이 숨어 지냈던 일은 어떻게 된 거야?”
이번이 스타샤와 함께 하는 두 번째 사냥이었건만 잔베르에 대한 얘기가 대화의 주제로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스타샤의 말에 이븐은 고개를 저으며 또 다시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답변을 유예했다.
“지금은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간단하게 얘기하자고. 아무튼 늑대인간의 군주에게 치명상을 입혔을 때 내 주위에는 아직도 감염된 늑대인간들이 더 있었거든. 그런데 그 녀석들이 한순간 힘을 잃고, 군주가 다시 힘을 회복하더군.”
“권속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고 그 힘을 자신의 회복력으로 돌린 거로군. 권속을 부리는 방식이야 다양하지만 그 주인의 경험과 힘을 공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막심이 이븐의 말을 부연했다.
“카일로파드와 소공녀는 계속해서 함께 움직인 것처럼 보여. 전에도 전면에 나섰던 것은 카일로파드뿐이었지만 루퍼트의 시체에서는 거머리가 나왔지.”
“지금 와서 그 얘기를 하는 이유는 뭐야? 소공녀는 이미 죽었다고.”
이븐이 두서없이 쏟아내는 정보에 질린 스타샤가 말했다. 이번에는 막심이 스타샤보다 빨리 이븐의 말을 이해했다. 막심이 말했다.
“머리카락. 거머리가 머리카락으로 변했었지.”
“맞습니다. 잔베르의 늑대인간들의 경우에는 그 매개가 핏속의 감염인자였지만 이번에는 거머리였죠. 이런 매개 물질이 구속력을 잃는 경우는 두 가집니다. 그 주인이 죽었거나···”
“주인이 힘을 필요로 해서 다시 거둬들였거나.”
이븐의 말을 스타샤가 마무리했다. 이제 막심도 포크를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븐이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인물이 정말로 정보가 새어나가는 원인이었다면, 그리고 내가 노블 다이스였다면 이토록 요긴하고 또 어렵게 얻은 권속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작가의말
6막 4장 - 핏물을 닦아내고(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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