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막 5장 - 밀알 하나도 놓치지 않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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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년 차에 접어든 사냥꾼들은 사냥에서의 효율성이란 최단 경로를 따르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필요한 행동만을 취하고 적실한 부위에만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는 마물을 굴복시키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냥감에게 위압감을 심어주는 것, 즉 공포의 활용이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이븐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것은 즉흥적이었을지언정 아주 무의미한 행동만은 아니었다.
“크아악-!”
카일로파드는 고통으로 사납게 울부짖으며 마수를 들어 그의 어깨에 올라탄 이븐을 떨쳐내려 했다. 이븐은 굽혔던 무릎을 펴며 카일로파드를 디딤판 삼아 앞으로 도약했다. 밀려나며 뒤로 넘어지는 카일로파드의 몸을 따라 목에서 솟구친 새까만 피가 호선을 그렸다. 비척비척 일어난 그는 목에 꽂힌 이븐의 사냥칼을 뽑아 내동댕이쳤다.
“협상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난 마물들하고 약속 같은 거 안 해.”
이븐이 카일로파드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이븐을 중심으로 올가와 앰버가 천천히 다가와 카일로파드와 소공녀를 둘러쌌다.
“진료소의 의사와 그 부인이 아직 우리 수중에 있단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뿐 아니라 모르델반트에도···”
“정말 마지막까지 그렇게 추하게 굴 텐가, 카일로파드 자작 나리? 너희들이 의사를 한참 전에 죽여 버렸단 사실을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시체 냄새가 그렇게 진동을 하는데도?”
물론 시체 냄새가 진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븐의 예민한 코는 카일로파드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섬세해서 미약한 피 냄새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대체 왜······!”
그러나 그렇게 부르짖는 카일로파드도 답을 알고 있었다. 인질에 대한 이븐의 착각을 이용하려 했던 것은 카일로파드 본인이었다. 알렉 외에도 인질이 존재한다는 이븐의 믿음은 카일로파드와 소공녀에게 도주할 시간을 벌어줄 것이었다.
그러나 이븐은 처음부터 의사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착각을 알렸고, 그 결과 진료소로부터 충분히 멀어질 동안 안전하리란 카일로파드의 믿음은 방심으로 이어졌다.
“하, 하지만 여전히 모르델반트의 시민들, 시민들을 우리가 죽일 수 있단 사실···”
“됐어. 이쯤 했으면 나도 최선을 다한 거야.”
이븐은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를 겨냥한 탄환은 마수에 막혔고 뒤이어 쏜 탄환은 복부에 적중했다. 소공녀가 카일로파드의 뒤에 서 있었으므로 운신에 큰 제약이 따랐다. 뒤로 뻗은 마수가 소공녀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도주의 징후를 감지한 올가가 달려들었다.
츠컥-
올가 쪽으로 돌아선 카일로파드의 마수가 쇄도해오는 곡도를 붙잡았다. 힘이 부족했는지 마수의 손가락을 반쯤 파고든 칼날은 중도에 멈췄다. 그러나 힘이 부족한 건 카일로파드도 마찬가지였다. 올가는 재빨리 칼날을 몸으로 당겨 미끄러트리면서 빼냈다. 베어낸 자리에서 검은 피가 점점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앰버가 뒤에서 철창으로 카일로파드의 등을 찔렀다. 소공녀가 업혀 있었으므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크게 휘두른 마수에 철창의 방향이 틀어졌고 앰버는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휘청거림을 이용해 돌며 창끝으로 소공녀를 가격했다.
“카일!”
카일로파드가 더 빨랐다. 그는 마수를 뒤로 더 뻗어 소공녀의 몸을 감싸 철창을 막고, 다시금 파고드는 올가의 칼날을 또 다른 마수로 막았다. 그러나 이어진 이븐의 총격에는 미처 대응하지 못해 은으로 된 탄환이 그의 옆구리를 뚫고 지나갔다.
“크아아아-!”
다시 한 번, 카일로파드가 포효했다. 일순간 힘이 풀린 그의 육체는 업고 있던 소공녀를 떨어뜨렸고, 소공녀는 비참하게도 바닥에서 구르며 올가의 공격을 피했다. 그녀는 정신없이 팔다리로 기다시피 해 도망쳤다. 이븐이 카일로파드를 향해 다시 총격을 가하며 소리쳤다.
“여자앨 죽여!”
연이은 총성과 비명, 고함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낮이었고 상점이 위치한 거리였으므로 이를 좋은 구경거리로 여길 군중이 나타날 개연성은 무척 높았다. 통제되지 않는 군중은 사냥에서 마물보다 위험하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마물의 등장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을 경험으로,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잔베르의 생존자들의 증언은 하나의 지침이 되었던 것이다. 즉, 거리의 사람들은 그곳이 어디든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비록 열린 창문과 밖으로 내민 얼굴까지는 이븐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다.
“그냥 베어버려!”
달아나는 소공녀 앞에서 올가가 머뭇거리자 앰버가 소리쳤다. 칼날을 치켜든 올가에게로 카일로파드가 덤벼들었다. 이븐이 달려가 올가와 뒤엉켜서 바닥을 뒹구는 카일로파드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으직- 하고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카일로파드의 몸이 허공에 떴다가 바닥에서 굴렀다.
“아가씨! 가십시오!”
카일로파드가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소공녀는 전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이젠 사격에 신중을 기해야만 맞힐 수 있는 거리까지 멀어졌다. 이븐이 사격 자세를 취하기가 무섭게 카일로파드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굽혔던 마수로 땅을 박차며 빠른 속도로 달려든 카일로파드를, 이븐은 쥐고 있는 권총의 손잡이로, 그리고 연이어 팔꿈치로 강타했다.
“쫓아가! 죽여!”
올가와 앰버가 비록 노련한 용병이라 할지라도 카일로파드를 상대할 실력은 못 된다. 그러므로 카일로파드와 대적하는 것은 필히 이븐 그 자신이어야만 했다. 이븐의 명령에 따라 소공녀를 쫓으려던 올가의 등을, 새까만 마수가 덮쳤다. 그건 카일로파드가 휘두른 마수를 스스로 끊어내며 감행한 원거리 공격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올가가 앞으로 넘어지며 굴렀다. 그녀는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등을 파고든 마수를 뽑아냈다. 파스귄트에서 얻은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는 몸이었다. 올가는 인상을 찌푸리며 칼날을 교차시켜 칼을 갈았다. 소공녀를 추격하는 일은 이미 그르쳤다.
“이토록 품위 없고 천박하고 비열할 줄은···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베르자크.”
마수로 붙잡은 앰버의 철창을 힘껏 밀어 그녀를 나동그라지게 만든 뒤 카일로파드가 말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듯, 거친 호흡에 굽은 어깨가 오르내렸고 마수 아닌 팔로는 이븐이 걷어찼던 옆구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븐은 약실을 갈며 차분하게 읊조렸다.
“싸움은 천박할수록 더 빨리 끝나지. 네가 품위 있는 싸움을 원했다면 나 같은 백정을 건드려선 안 되는 거였어.”
이븐이 카일로파드를 향해 다가갔다. 용병들과 협공을 펼쳐야 하므로 권총을 사용하는 그는 거리가 멀어지면 되레 위험할 수 있었다.
“이제 끝낼 때도 됐지. 루퍼트를 이용해 죽인 이들이 몇 명이고, 또 이번 수녀원에서 감염시켜 죽게 만든 이들은 몇 명이지, 카일로파드?”
그들만의 ‘생태계’를 위해 개체수를 조절한다는 카일로파드의 말이 가당찮게 들렸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카일로파드와 소공녀로 인해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적어도 백 여 명이 죽었다.
인간의 생명을 그토록 업신여기면서도 균형을 얘기하고 나아가 관리자를 자처하는 저 비대한 자의식과 가식과 자만이 이븐의 속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그가 결코 감상적인 인간이 아니었음에도 그러했다.
“그들이 네 죽음을 원한다.”
이븐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막아서는 마수가 총격에 터졌다. 권총 쥔 왼손으로 턱을 올려친 뒤 목에 총알을 박아 넣고, 다음 공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마수는 오른손의 권총으로 쏘아 터뜨렸다. 새로이 뻗어 나온 마수는 카일로파드 자신의 목을 움켜잡으며 출혈을 막았다. 회복이 뜻대로 되지 않는단 의미였다.
새로 생성한 마수는 다른 것에 비해 눈에 띄게 가늘었다. 그것이 단지 출혈을 막는 용도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븐은 힘이 다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카일로파드의 모습이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카일로파드는 이제 제대로 된 겨냥도 없이 마구잡이로 허공에 남은 마수를 휘둘러댔다. 이븐은 몸을 뒤로 기울여 공격을 피하고 복부에 총격을 먹였다. 연달아서, 방금 채웠던 약실을 모두 비워내며 총알을 쏟아 부었다. 한 발(發)마다 한 발(足)씩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카일로파드에게로 앰버가 빠르게 접근했다.
“이거나 드셔!”
“그륵-!”
철창으로 무릎 뒤쪽을 찌르는 이번 공격을, 카일로파드는 막지 못했다. 무릎 아래로 앰버의 철창이 뚫고 나오자 카일로파드의 자세가 무너졌다. 반대편인 왼쪽 다리는 올가가 맡아서 무릎을 꿇렸다. 자세를 낮추며 과감히 행한 회전 베기가 역시 무릎 뒤를 깔끔하게 베어버린 것이었다.
남은 마수들이 절망적으로 허공을 긁고, 철창을 빼내려 안간힘을 써댔다. 입에서 꾸역꾸역 검은 피가 올라와 더 이상 격식 차린 수다도 늘어놓지 못했다. 이븐이 카일로파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빛을 반사해 번쩍이던 단안경은 이븐의 그늘 아래서 그 뒤에 감춰진 눈을 드러냈다. 동공이 공포로 떨렸다.
“다··· 말해줄··· 전부······.”
총성이 울려퍼지고 뒤에 있던 진료소의 문이 회백색 점액질로 칠해졌다. 앰버가 철창을 빼내자 카일로파드의 머리 없는 시신이 앞으로 쓰러졌다. 이븐이 자세를 낮춰 시신을 들어올렸다. 마수가 꿈틀거렸다. 이븐은 권총을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카일로파드의 복부를 더듬었다.
마수가 비집고 나온 틈이 만져졌다. 이븐은 그 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이윽고 뽑아낸 그의 손에는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장기가 들려 있었다. 힘을 잃고 늘어진 마수가 시신에서 분리되어 땅에 널브러졌다.
비로소 주사위의 한 면이 지워진 것이었다.
6막 마침.
- 작가의말
내일은 막간극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6막에서 다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은 7막 등 이후의 이야기에서 마저 풀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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