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막 3장 - 짐승의 머리, 뱀의 혀(2)
“노블 다이스의 자작이 카일로파드라는 것은 사냥단조차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이스게르버 당신의 반응은 이 괴상한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던 듯이 보이는군요.”
에드가드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말이 없었다. 달변을 쏟아내던 그의 입은 이제 굳어져 혀로 입술을 핥을 때에만 잠시간 열릴 뿐이었다. 로지아의 당혹감과 스타샤의 적개심은 의혹의 공통분모를 지녔으므로 이를 추궁하는 일은 이븐에게 양보되었다.
“그러니 대답해 주셔야겠습니다. 카일로파드를 알고 계셨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이보시오, 사냥꾼. 나는··· 그러니까, 나는······.”
글라트펠트에서 한 차례 회의를 가진 뒤 막심은 소공녀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 그리고 이븐과 스타샤는 문제의 경쟁 세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갈라졌다. 재정비를 위해 잔베르에 들렀던 이븐과 스타샤가 로지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은 사냥단에 협조적인 마물의 존재가 드물 뿐 아니라 그 활용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냥꾼들이 카일로파드 자작을 죽였다. 바로 이 사실을 공표하는 일은 마물의 입을 통해서라면 더욱 효과적일 거라는 단순한 계산, 그리고 경쟁 세력의 존재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될지 모른다는 요행이 이 방문의 본래 목적이었다. 그러나 방금 에드가드가 내비쳤던 반응은 지금의 만남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고 있었다.
에드가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미간에 팬 주름마다 낭패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 알고 있었소이다. 그자는 이쪽 세계에서 제법 유명한 존재요.”
“이쪽 세계라 함은?”
대체 얼마나 많은 세계가 겹겹이 쌓여 있단 말인가. 의심과 증거를 씨실과 날실 삼아 빈틈없이 세계의 직조물을 짜내어도 그 아래를 들춰내면 늘 새로운 괴물이 명명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다. 당신은 세계의 전말을 결코 손에 쥐지 못할 것이며 평생의 탐구도 그 겉을 손끝으로 긁는 데 그치리라는 절망적 사실을 암시하며.
“베르자크, 그대도 항마연구원이 마물을 연구하는 유일한 기관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을 테지. 나처럼 개인적인 연구를 진행하면서 항마연구원의 자문 역할을 겸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 —물론 비공식적으로 하고 있소— 집단을 이뤄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도 있소. 그런 이들은 공동으로 출자해서 용병과 계약하기 때문에 마물 시체를 얻기도 훨씬 수월하지.”
“마물의 혈액이나 체액을 영생의 비밀이라며 팔아먹는 약사들을 말하는 겁니까?”
물론 에드가드가 지칭하는 대상이 그 따위 떠돌이 약사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븐은 부러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이븐은 순진한 문외한 앞에서 학자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변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대가 알고 있는 그런 돌팔이들과는 격이 다르오. 그대도 내 연구의 성과를 방금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소이까? 나처럼 홀로 연구하는 이조차 이 정도 경지라면 단체는 어떻겠소? 물론 나는 경우가 조금 다르오. 내 비록 개인적으로 연구하지만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집단의 힘은 무시할 수 없지.”
에드가드의 말은 설명처럼 시작되었다 점점 혼잣말로 번져갔다. 이븐은 에드가드의 뒤죽박죽 어지러운 말 속에서 그가 ‘개인’의 의미를 담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있음을 눈치 챘다. 에드가드가 고개를 들어 이븐을 쳐다보았다.
“카일로파드의 시체를 면밀히 살펴보시었소? 그렇다면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보셨겠구려. 카일로파드는 만들어진 마물이오. 아니, 다시, 카일로파드는 실험으로 탄생한 마물이오.”
어렴풋한 짐작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븐은 에드가드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므로 섣부른 예단을 내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알기로 실험이라는 건 학자들이 주로 하는 건데 말이지.”
그처럼 당연한 사실을 스타샤가 읊은 데에는 바로 그 ‘학자들’ 속에 에드가드 역시 포함되어 있는 때문이었다.
“맞소. 그러나 나를 겨냥하고 있는 의심의 눈초리는 부디 거두어주시오. 학자들도 다양하오. 그 가운데에는 그런 인간들이 있소이다. 우리가··· 마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스타샤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에드가드가 쏟아내는 정보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나 그 가운데서도 그의 방금 말은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내 옆집의 이웃으로 마물이 이사를 온대도 기꺼이 포용하겠다는, 그런 뜻이 아니오. 그것보다 훨씬 가까이 두겠다는 거지. 마물의 특질을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수용, 아니 그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 그렇게 해서 인류사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키겠다는 거요. 늙어죽지 않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 강인한 육신, 어둠을 꿰뚫어 보고 수백 걸음 떨어진 곳의 냄새도 맡아내는 탁월한 감각······ 인육에 대한 기이한 열정만 제한다면, 아니 그것만 해결한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거요.”
그러나 정말로 기이한 열정을 내보이고 있는 것은 에드가드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거두어 달라 요청했던 의심의 눈초리는 이 대목에서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카일로파드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마물이오. 나는 아주 초기 단계에 있는 그자를 언젠가 본 일이 있소. 초대를 받아 가게 된 자리였소. 학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지. 거기서 본 카일로파드는 인간의 몸에 시커먼 마수를 달아둔 모양새더군. 그러나 나는 그런 광기에 동참할 수 없었소. 내가 그들과는 연을 끊고 오히려 항마연구원과 손을 잡은 건 그날의 광경 때문이었소. 그러니 내가 카일로파드를 모를 수 없지.”
“잠깐만요, 바이스게르버. 인류사의 도약이 어쩌고 하는 집단이 만들어낸 게 고작 그런, 그러니까 그다지 우아하지 못한 마물이었다는 겁니까?”
이븐이 카일로파드의 새까만 마수들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이븐이 기억하는 카일로파드는 마수를 꺼내들지 않을 때야 귀족적인 외모의 청년이나, 마수들이 배 속을 비집고 나오면 아무래도 역겨울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던 것이다.
“외양은 중요한 게 아니오, 베르자크. 팔다리의 총합은 반드시 네 개여야 한다는 인간중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시오. 아니, 내 말은 그들이 그렇게 주장한다는 거요.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들었지.”
말이 많아질수록 에드가드의 말실수는 더 잦아졌다. 충격 받은 표정으로 에드가드의 말을 듣고 있던 로지아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맙소사, 에드가드. 그러니까 그게 다 사실이었군요. 마물과 하나가 되려는 인간이 있다는 소문 말이에요. 당신은 그럼 대체 어디까지 관계되어 있는 거죠?”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오, 레니스 양. 대신에 나를 당신이 알던 나로 계속 보아주시오. 나를 보시오. 내가 괴물처럼 보이오?”
그러나 그런 에드가드의 주문은 약효가 떨어져 가는 얼굴의 절반을 그림자가 덮고 있었던 탓에 우스워지고 말았다. 스타샤가 괴물처럼 보이는 에드가드를 향해 말했다.
“그래, 카일로파드가 실험으로 만들어진 마물이라고 쳐. 그런데 그 자식이 왜 노블 다이스에 들어가 있는 거야? 설마 하니 노블 다이스라는 것들도 죄다 그 정신 나간 학자 놈들이 만들어냈다고 할 셈인가?”
“아니요, 아니외다. 내가 아는 한 노블 다이스의 일원 가운데 실험체였던 마물은 카일로파드뿐일 거요. 피조물이 조물주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그런 진부한 사건이 벌어졌단 사실이 내가 전해들은 전부요.”
빗장을 걸어 잠그는 듯한 에드가드의 태도에 이븐은 그에게서 더 이상의 정보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가 내놓는 정보들은 흔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븐은 공연히 더 찔러보았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제법 많이 알고 계십니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면 그만한 이점이 있소이다. 규율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고, 가장 귀한 정보들은 대체로 그어진 선 바깥에서 얻어지는 법이니까. 물론 선 바깥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십분 주의를 기울여야 할 테지.”
이븐의 예상대로 에드가드는 두리뭉실한 수사로 말을 흐릴 뿐 그 이상의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 에드가드가 쏟아낸 정보가 모여 앉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동안 잠시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이븐이었다.
“바이스게르버. 카일로파드를 만들었다는 그 학자 집단 말입니다.”
이븐은 어쩐지 불안한 기색이 감도는 에드가드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신중하게 덧붙였다.
“소개를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
다음 행선지는 정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실질적인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그들이 이제 만나야 할 집단은 에드가드의 말을 빌리자면 오래 전에 연을 끊은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로지아와 인사를 나눈 에드가드가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스타샤가 말했다.
“잠깐만.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자고.”
스타샤는 담뱃갑을 꺼내드는 대신 이븐을 향해 말했다.
“같이 갈 거야?”
스타샤가 그녀답지 않게 자리를 옮기려는 것을 보며 이븐은 그 목적이 비단 흡연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눈치 챘다. 이븐이 로지아를 돌아보자 그녀 역시 스타샤의 의중을 파악한 듯 순순히 말했다.
“가보세요.”
숲을 향하며 잠시 둘은 말없이 걸었다. 에드가드의 집과 그리고 로지아로부터 충분히 멀어지자 스타샤는 그제야 담배를 꺼내 물고 이븐에게 말했다.
“저 인간, 아니 저 멧돼지가 했던 말. 무슨 어둠을 꿰뚫어 보고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마물-인간에 대한 얘기 말이야.”
“그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 인류 말이지.”
이븐은 에드가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답했다. 마물이 지닌 회복력과 같은 능력들이 인간의 관심을 끈다는 것은 이븐 역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물과 인간의 결합이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을 뿐 아니라 감히 그 경계가 있다고 믿었던 광기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스타샤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이븐을 잠시 쳐다보았다가 에드가드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털어내지 않은 담배의 재가 하얗게 길어지도록 내버려두며 말을 머뭇거리는 태도 역시 그녀답지 않았다.
“그거는 그냥 완전히······.”
이윽고 스타샤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뱉어낸 말은 너무 명백해서 오히려 놓쳤던 사실이었다.
“너잖아?”
- 작가의말
과분하게도 또 한 번 추천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화 장면만으로도 서스펜스가 유지되었으면 좋겠는데 결과물이 마음에 차지 않아 고민스럽네요. 다음 장에서는 서툰 글쟁이의 도피처인 전투 장면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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