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막 4장 - 천국의 구렁이들(2)
막심은 고삐 쥔 손을 틀어 말의 방향을 돌렸다. 그는 이제 검은 제복의 사내와 말에 탄 채로 마주 보게 되었다.
“족제비라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일행의 후미에 있던 앰버가 의아해져서 물었다. 물론 막심은 그에 대한 답을 해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는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올가와 앰버를 향해 말했다.
“둘은 이 길로 계속 달려가. 다음 목적지에서 합류할 테니.”
“혼자 상대하는 것···”
“어서!”
막심이 버럭 소리를 질러 올가의 말을 끊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올가와 앰버는 말에 박차를 가해 이 기묘한 대치 상황에서 벗어났다. 사내는 둘을 제지하거나 쫓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막심이 지키고 서 있는 침묵에 동참했다. 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사내가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매끄럽고 교만한 음성이었다.
“주사위의 네 번째 눈, 쿼그마이어 백작이다.”
“오펜하른의 대식가가 너로군. 마일스아이렌의 막심 에카르트다.”
막심 역시 말에서 내리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다음 행동을 궁리하듯 그의 손아귀에서 갈고리칼이 손잡이를 축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오펜하른에서 싸웠던 사냥꾼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냥단은 백작을 대적했을 경우의 지침을 만들어 두었고 막심 역시 한 줄도 빠트리지 않고 그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
몸에 닿는 무엇이든, 심지어 마물에게 치명적이라는 은마저도 녹여버린다는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 막심은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마물은 은에 치명상을 입는다는 것은 사냥이라는 증명 식(式)에서 늘 전제되는 항진 명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은에 치명상을 입지 않는단 것은 그것이 마물이 아니란 뜻이거나 혹은 사냥꾼들의 착각이었을 터, 라는 것이 뷔센의 녹아버린 검을 확인하기 전까지 막심이 지녔던 생각이었다. 그는 꺼내든 단검의 끝을 소매에 대고 그었다. 상대를 겨냥해 뒤로 뻗은 왼팔의 근육이 잔뜩 당겨져 상처를 벌리는 것을 느끼며, 막심은 속도를 실어 팔을 내뻗었다.
치이익-
인간이었다면 심장이 있었을 부위에 정확히 꽂힌 단검은 그러나, 마치 늪 위에 올려둔 돌덩이처럼 최소의 저항만을 받으며 쿼그마이어의 몸 안으로 통과해 들어갔다. 꽁무니에 붙었던 불은 뇌관을 터뜨리지 못한 채 초라한 소리로만 남았다. 얼마든지 더해보라는 듯 쿼그마이어가 무방비하게 양팔을 벌렸다. 물론 막심도 그답게 여유를 잃지 않았다.
“방금 건 계산을 잘못한 거였어.”
곧이어 던진 단검은 불을 붙이고도 잠시간 막심의 손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에 막심이 겨냥한 것은 쿼그마이어의 머리였으므로 백작은 고개를 까딱여 그것을 피했다.
퍽-
단검은 정확히 쿼그마이어의 머리 옆에서 터지며 그에게로 파편을 뿌렸다. 폭발의 여파로 색안경이 허공을 날았고 화기(火氣)로 뭉개진 옆얼굴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박힌 파편은 피부 아래로 침잠해 들어가고 일그러졌던 얼굴도 곧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흐트러진 금발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쿼그마이어가 웃었다.
“그게 전부라면 결과는 뻔하겠는데. 이봐, 더 보여줄 건 없나?”
“어, 미안. 그게 끝이야.”
막심은 다시 단검을 던지며 이번에는 뒤따라 달려들었다. 쿼그마이어의 왼팔에 닿는 순간 터진 단검은 제복을 태우고 그 안의 살을 드러냈다. 자세를 한껏 낮춰 허공의 파편으로부터 몸을 지키며, 막심은 갈고리칼을 휘둘러 몸을 뒤틀며 피하는 쿼그마이어의 왼팔을 베었다.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나아가며 오른발을 축으로 회전해 쿼그마이어의 뒤를 잡았다.
잘려나간 왼팔이 막심의 발치에 떨어졌다. 불에 태운 부위를 빠르게 절단할 것. 막심이 외우고 있는 사냥단의 지침의 첫 번째 항목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막심이 말했던 바와 같이 여섯 명의 사냥꾼이 오펜하른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무의미한 희생만 낳았단 것은 홀로 싸움에 임한 그에게 그리 희망적인 사실이 못 되었다.
막심을 향해 돌아선 쿼그마이어는 새로 자라난 왼팔을 시험하듯 움직여 보았다.
“오펜하른의 일만으로 날 기억한다면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진배없어.”
쿼그마이어가 막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그는 마치 연극배우처럼 과장되게 팔을 벌리며 울림 좋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펜하른의 주민들은 요깃거리였을 뿐이지. 수천의 인간이 내 몸 속에 녹아있다! 더 필사적으로 덤벼봐라. 더 처절하게 싸워봐! 내 아량은 식성만큼 넓고 깊으니.”
“너희들이 개체수를 조절한다는 건 무슨 뜻이지?”
쿼그마이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는 잇새로 쯧- 하는 소리를 한 번 낸 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카일로파드인가······. 또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모양이군.”
“항구적 투쟁.”
일순 쿼그마이어의 얼굴이 굳었다. 막심은 외투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다시 한 번 소매에 대고 끝을 그어 단검에 불을 붙인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어구를 천천히 읊었다.
“뼈로써 칼을 갈고 피로써 쇳가루를 씻어내는 것. 그게 너희들의 목적 아니던가?”
그렇게 외치면서 던진 단검은 쿼그마이어가 재빠르게 휘두른 손아귀에서 무위로 돌아갔다. 그가 허공에서 낚아챈 단검은 녹아 쇳물이 되어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막심이 던진 단검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시간차를 두고 연이어 던진 두 번째 단검은 쿼그마이어의 목에서 터지며 갈고리칼을 들고 달려드는 막심을 위해 길을 열었다.
츠컥-
머리통이 허공을 날았다. 땅에 떨어진 머리는 곧바로 녹아 액체로 변하며 철퍽거리는 소리를 냈다. 목에서 새로이 자라나는 머리를 보며, 막심은 재빨리 외투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실밥이 터진 왼팔의 상처가 아가리를 벌리고 피를 쏟아냈다. 팔뚝을 타고 흐르는 피를 외투에 문질러 닦으며 막심은 세 개의 단검을 연달아 던졌다. 휘두른 팔의 궤적을 따라 허공에 선혈이 흩뿌려졌다.
퍽- 퍽- 퍽-
목이 없는 쿼그마이어의 몸 주위에서 연달아 터지는 단검을 확인하며 막심은 다시 한 번 갈고리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몇 차례의 공격으로 날이 상해 있었으나 그건 그 주인도 마찬가지였을 터, 설령 죽어가는 이의 가장 원시적인 무기가 최선이라 할지라도 사냥은 멈춤이 없어야 한다!
들어 올린 막심의 칼이 기포가 터지며 끓고 있는 쿼그마이어의 어깨를 향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예비했던 동작은 미처 실현되지 못했다. 막심의 코앞에서 쿼그마이어의 형체가 무너져 내리며 발밑에 액체로 고였던 것이었다. 장화를 녹이고 발을 태우는 통증에 이를 악물며 막심은 몸을 던졌다. 순발력이라면 사냥단에서도 손에 꼽는 그였다.
액체로 변한 쿼그마이어는 땅 위를 기어 막심의 말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도처럼 일어난 그 액체는 곧 말을 삼키며 그것을 산 채로 녹였다. 말이 애처로이 울부짖는 소리는 성대가 녹아들어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살가죽이 녹고 그 아래 살과 근육과 뼈가 차례로 녹으며 이윽고 말은 그 존재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넌 그들을 알고 있군, 그렇지?”
다시 인간의 형상을 갖춘 쿼그마이어가 막심을 쏘아보며 말했다.
“항구적 투쟁이라는 말, 우리의 목적을 그런 말로 정의하는 놈들을 내가 알고 있거든. 그놈들과는 무슨 관계지? 우리, 노블 다이스를 사냥해 달라고 하던가?”
그렇게 말하면서 쿼그마이어는 오른손을 들어 그 안에서 새로운 색안경을 만들어냈다. 찢기고 터졌던 제복도 깨닫지 못한 새 모두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녹여 몸에 담고 있던 사물들을 다시 몸 밖으로 꺼내는 쿼그마이어의 묘기는 사냥꾼으로는 막심이 그 첫 번째 목격자였다.
“설마 하니 사냥꾼인 네가 마물과 인간을 섞어 새로운 인류를 만든다는 따위의 소릴 하는 놈들과 손잡았을 리는 없겠지. 뭐라고 하면서 구슬리던가? 자기네들이 문을 닫아 걸 수 있다고 하던가? 그러니 도와 달라고?”
“마물과 인간을 섞는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쿼그마이어가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막심의 표정을 즐거이 관람하며, 쿼그마이어가 냉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순진한 사냥꾼. 넌 그놈들에게 속은 거야. 그놈들이나 우리나 마물이 사라지는 걸 원하는 쪽은 없어. 어떤 형태로, 그리고 얼마나 많이 풀어둘 것인가 하는 데서 의견이 갈릴 뿐이지. 그러니 혹시라도 살아나가게 된다면 고용주들에게 가서 따지라고. 우리가 곧 찾아가겠단 얘기도 전해주고 말이지.”
대화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쿼그마이어의 뒤편으로 또 한 명의 말 탄 남자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뒤를 슬쩍 돌아본 쿼그마이어가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제기랄, 왜 하나뿐이야!”
피처럼 새빨간 머리의 남자는 하얗게 분칠한 얼굴을 씰룩이며 고삐 쥔 손을 놓았다. 남자의 양손에 씌워진 인형들이 입을 뻐금거렸다.
“창을 던져서 내 말을 죽였지 뭐야.”
“그래서 이년의 말을 빼앗아 타는 수밖에 없었지.”
“그러는 와중에 다른 년은 벌써 저만치 도망가고 없었던 거야.”
그러면서 이 광대 분장을 한 남자는 인형들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귀한 광경이었으나 막심에게는 그것을 구경하고 있을 경황이 없었다. 남자가 타고 있던 말의 뒤로 피투성이 여자가 밧줄로 묶인 채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올가였다.
- 작가의말
7막 4장 - 천국의 구렁이들(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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