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막 2장 - 식사 예절에 관한 문제(2)
“버나드. 제가 그렇게 불러도 되겠습니까?”
뭐라 부르든 상관없으니 자신의 원대한 포부에 대한 감상을 어서 밝히라는 듯 버나드는 이븐을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버나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발상 자체는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마물의 절멸이라 해도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물의 공격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 피해를 줄이게 될 뿐 아니라 사냥도 한결 수월해질 테고, 실제로 이건 항마연구원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인간의 몸에서만 추출할 수 있는 어떤 성분의 정체를 밝혀내는 작업이 마물의 불쾌한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을 거라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기대에 들떠 있던 버나드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이 자리에 모인 학자들이 학계에서 이론의 첨단 위에 있다면 사냥꾼들은 최전선의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이 일선의 사냥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학계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는 위상과 직결되어 있었다. 이븐은 안절부절못하는 버나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지금껏 드러난 증거들은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요. 인간을 먹어치운 마물은 갈증을 참지 못하고 바닷물을 들이켠 이와 같이 계속해서, 그리고 더욱 인육에 탐닉하게 됩니다. 마물에 의한 피해가 도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단순히 발생건수가 높이 집계된 탓뿐 아니라 마물의 공격성 자체에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지요. 사람 고기의 맛을 더 많이 본 마물들이 더욱 공격적이라는 말입니다.”
“이해를 못 하셨군. 베르자크 당신은 내가 말하는 성분을 인육으로 환원시켜 파악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소. 인육을 맛본 마물이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은 단순히 인육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오. 인육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사냥의 흥분, 살점을 씹고 피를 들이켜는···”
줄곧 대화를 듣고만 있던 게라르가 헛기침을 하며 버나드의 말을 끊었다. 그제야 양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시늉을 하고 있던 버나드도 자신이 있는 곳이 식사 자리라는 것을 깨닫고 멈췄다.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오. 인간의 육신에 내재한 특정한 성분, 나는 그것을 에센스라고 부르고 싶소, 여하간 그 에센스를 찾아내는 것이 마물에 침식당한 어두운 시대를 끝내는 열쇠가 되리란 것!”
열정적으로 마무리된 버나드의 일장연설은, 그러나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게라르는 형식적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고 페르디낭은 고개를 모로 한 번 까딱였을 뿐이었다. 의외로 박수를 친 것은 스타샤였는데 그마저도 조롱의 의미를 잔뜩 담아 느리게 서너 번 쳤을 뿐이었다. 박수가 끝나자 이븐이 감상을 밝혔다.
“충분히 숙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그 근간을 이루는 몇 가지 가정들, 예컨대 마물이 다른 어떤 세계에서 왔고 그 때문에 결여하고 있는 성분을 인간으로부터 취해야 한다는 말씀은 제게 상당히···”
이븐은 잠깐 멈추고 입안에서 말을 골랐다.
“···문학적으로 들리는군요.”
별로 우스울 것 없는 그 말에 버나드를 제외한 학자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붉으락푸르락해진 버나드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콧김을 내뿜었고 스타샤는 순전히 그 꼴이 재밌어서 웃음에 동참했다. 이븐은 웃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피츠독슨 씨의 연구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마물과 인간의 구분을 지우는 연구 말입니다.”
스스로 마물이 된 에드가드, 카일로파드를 만들었다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학자, 그리고 마물과 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한단 사실을 자인한 게라르까지. 이븐이 지금껏 마주한 학자들에게는 모두 마물과 인간의, 도무지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은 간극 위로 교량을 놓고자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모르델반트에서 카일로파드가 말했던 ‘확장’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경쟁 세력이 단순히 마물일 것이라 가정했던 이븐의 생각은 카일로파드의 시체에서 발견한 실험의 흔적으로 변화를 맞았다. 이들 학자 집단에게 카일로파드라는 강력한 마물을 만들어낼 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건 분명 마물들의 통솔자를 자처하는 노블 다이스에게 위협적인 힘일 터였다.
“그래요, 게리. 당신의 연구에 대해서도 말해 봐요.”
금발의 여자가 이븐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게라르의 답변을 재촉했다. 게라르는 빙긋이 웃어 보인 다음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식사가 끝나면 잠시 휴식을 갖고 제 서재에서 모이는 걸로 합시다. 보여드릴 것이 있으니.”
식탁을 둘러싸고 앉은 이들의 표정을 살핀 그가 덧붙였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말씀 좀 여쭙시다!”
막심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망치 소리를 넘어 전달될 수 있도록 충분히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달군 쇳덩이를 모루에 대고 망치로 눌러 펼 뿐 대답이 없었다.
“어··· 저기, 대장장이 어른?”
“말씀허시오. 듣고 있으니.”
정말로 듣고 있는 건지 한 귀로 흘리는 건지 알 수 없게 대장장이는 망치질을 계속하며 말했다. 막심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려다 화덕의 열기와 자신의 외투 속에 가득한 화약에 생각이 미쳐 곧 그만두었다.
“은괴를 좀 녹이고 싶습니다.”
대장장이는 높이 들었던 손을 멈추고 곁눈질로 막심의 행색을 힐끗 살폈다. 본격적인 대화에 대한 막심의 기대는 곧 대장장이가 망치질을 재개하며 무산되었다. 대장장이는 별 힘들이는 기색 없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뭣에 쓰시려고?”
“뭘 만들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녹이는 방법을 좀 알았으면 합니다.”
“합치면 되오? 거기 두시오. 녹여줄 테니.”
“아뇨, 제가 녹이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화덕 같은 게 필요하겠습니까?”
대장장이는 다시 한 번 망치 든 손을 멈추고 막심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그런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냥은 못 녹이지.”
“은이 잘 안 녹습니까?”
막심의 물음에 대장장이는 망치가 쇳덩이를 내리쳐 내는 소리를 말의 분절 단위로 삼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띄엄띄엄 답했다.
“잘 안 녹는다는 것이 아니라! 녹이려면 요령이 필요허고 말마따나 화덕이 필요허고! 여간 준비할 것이 많은 게 아닌데! 그걸 그쪽 같은 양반이 혼자서 해내겠느냐! 그 말이올시다, 내 말은!”
“그렇다면 제가 어쩌면 좋겠습니까?”
대장장이는 마침내 망치를 내려놓았다.
“야야, 기름 부어다 이거 식혀라!”
도제가 달려와 대장장이로부터 집게를 넘겨받았다. 대장장이는 막심을 내버려두고 대야 앞으로 가서 얼굴과 목에 물을 적셨다. 목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그는 다시 막심 앞으로 돌아왔다.
“은만 녹여야 하오?”
“네?”
“뭘 섞어도 되느냐 그 말이오. 은을 그냥 녹이려면 영 힘이 드는데 거기다 수은을 섞고 허면 수월해지오.”
“아, 수은···!”
그 자신의 전투 방식에 맞는 무기를 손에 쥐기 위해 교단의 공방을 수차례 드나들었고, 그래서 은을 제련하는 과정도 여러 번 지켜본 막심이었지만 정작 이를 적용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앞에 놓인 너무 큰 과제가 눈을 어둡게 한 탓이었다.
“아말감이라 그러지. 좌우간에 은을 녹여다 뭘 허시려고 그러오?”
“사냥에 쓰려고 합니다.”
대장장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막심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갈색머리는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뒤로 넘겼으며, 짧게 난 턱수염은 하관을 뒤덮고 있는 데다가 왼 얼굴은 화상을 입은 듯 뭉개져 부랑자의 행색에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대장장이는 막심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사냥꾼이셨소?”
“그렇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오셨소?”
“마일스아이렌 소속입니다.”
“교황청에서 오셨군.”
짧은 문답이 잠깐 오고간 뒤 대장장이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나온 말은 막심이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이었다.
“딸자식 하나 있는 것이 작년에 죽었소. 늑대인간한테 물려서 열이 끓는 걸 내 손으로 끝냈소.”
수염으로 뒤덮인 대장장이의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서렸다. 막심은 고개를 약간 숙여 조의를 표한 뒤 말했다.
“유감입니다.”
“그 늑대인간 잡으러 사냥꾼이 하나 옵디다. 머리가 다 세고 지팡이 짚고 다니는 게 웬 노인네를 보냈나 했소. 날 찾아와서는 이것저것 물어봅디다. 어디서 봤느냐, 다른 놈은 없느냐.”
막심은 대장장이가 말하는 노인네가 누구인지 알았다. 대장장이가 계속해서 말했다.
“물어보는 말에 다 대답했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지. 그러더니 나한테 그 늑대인간을 어쨌으면 좋겠냐고 묻습디다. 마음 같아서는 내 손으로 찢어죽이고 싶다 했더니 알겠다, 은으로 말뚝 네 개만 만들어 달라, 그러기에 만들어 쥐여 줬소. 그날 저녁에 사냥꾼이 다시 왔소. 늑대인간을 산 채로 잡아서.”
제대로 된 사냥꾼이라면 마물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 단순한 규칙을 어겨 죽어간 사냥꾼이 얼마나 많았던가. 사냥은 단지 사냥일 뿐, 거기에 불필요한 감상을 담는 순간 동작은 헛돌고 힘은 낭비된다. 수녀를 사랑했던 데릭이 바로 그렇게 죽었다.
“팔다리를 끊고 거기다 내가 만들어준 말뚝을 박았더만. 난 망치로 그놈 온몸의 뼈를 으스러뜨려 죽였소. 질긴 놈이었소. 밤을 꼬박 새웠으니. 내가 그날 해 뜨는 걸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오?”
무뚝뚝했던 대장장이의 말에는 어느새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막심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나게 침을 삼켰다. 대장장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음에 사냥꾼이 또 오거든 다 내어 주리라. 손이 필요허다 허면 내 손모가지를 끊어 내어 주고, 머릿수가 부족허다 허면 내 모가지를 잘라다 바치기로··· 그렇게 다짐했소.”
이윽고 그가 한 말은 막심이 처음 대장간에 들어섰을 때 했던 말과 비슷했지만 뜻은 달랐다.
“필요헌 게 있으면 말씀허시오. 듣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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