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막 3장 - 창자와 까마귀의 밤(3)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요?”
웃는 듯 우는 듯 게라르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착란을 일으키는 사람처럼 광분하는 그의 입가에 허옇게 침이 번졌다. 그러나 어쩐지 그런 게라르의 모습에서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와 같은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건 인간 육체의 가능성을 경시했던 대가이자 그 증명입니다. 보십시오, 보란 말입니다! 당신들은 눈의 노예니까. 보는 것만 믿으니까. 내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끌어다 당신들 눈앞에 대령해놨으니. 그러니 어서 눈을 들어 새로운 세계를 목도하십시오! 심연은 인간의 몸속에도 있을지니!”
불을 댕긴 화약고처럼 폭소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몸이 엉키고 뒤틀린, 가련한 생물을 에워싸고 학자들이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어 젖혔다. 듣고 싶지 않다는 듯 팔이 여섯 개 달린 생물은 앞의 두 팔을 들어 귀를 막고 웅크려 머리를 숨겼다. 이 광란의 현장에서 새로운 언어를 익히지 못한 것은 비단 이븐과 스타샤뿐만이 아니었다.
“그만, 게라르! 그만!”
페르디낭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가 향하고 선 것은 게라르가 아니라 로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사냥꾼들이 눈을 훤히 뜨고 있는데, 그 앞에서 이 따위 추태를···!”
“추태라니, 페르디낭. 진정한 아름다움은 두려움 속에서 요염한 자태로 제 몸을 감추고 있는 거야. 아직도 아리아나 그 여자가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단지 겉이 번드르르한 실험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하지만, 페르디낭, 말해 보게. 그 여자가 만들어낸 카일로파드는 어떻게 됐지? 내 피조물들을 보라고. 하나같이 유순하고 절대적으로 충성스럽지.”
로랑, 아니 진짜 게라르가 열쇠를 꺼내 우리의 자물쇠에 쑤셔 넣었다. 이븐은 오른손을 허리에 가져다 대었다가 총이 없는 것을 깨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초대된 손님들이 이븐과 스타샤, 그리고 페르디낭을 포위하는 형국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난 너희들의 새까만 속을 읽었어. 병든 장기처럼 나를 잘라내려는 심산인 거야.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오산이래도 아주 고마운 오산이지. 이 사냥꾼들은 내가 가지겠어. 내가 아름답게 만들어 줄 거라고.”
게라르가 우리의 철문을 열어젖히는 것과, 그를 향해 이븐이 뛰어드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이븐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금발의 여자가 달려드는 그의 몸을 어깨로 밀어 부딪치며 날려 버렸던 것이다. 게라르는 그 틈에 끔찍한 생물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끄르고, 그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벗겼다.
이븐을 밀쳐냈던 여자의 어깨와 양팔은 바람 넣은 돼지의 방광처럼 부풀어 있었다. 바닥에서 몸을 굴려 일어난 이븐은 그 꼴을 지켜보며 학자로 소개된 이들이 결코 학자 따위가 아님을 깨달았다. 손님은 더더욱 아니었다.
“사냥꾼들을 잡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돼!”
진짜 게라르가 외친 소리에 가짜 게라르까지 합세해 그의 명을 수행했다. 상의를 벗어던진 버나드의 팔과 손에는 문어 같은 흡반이 달려 있었고, 게라르로 행세하던 남자는 이중, 삼중으로 접혀있던 팔과 다리를 펴더니 흡사 소금쟁이 같은 모습으로 화하며 거인처럼 이 혼돈의 장을 내려다보았다.
“맙소사, 맙소사, 게라르······.”
당황해 뒤돌아선 페르디낭은 곧 덩치 큰 남자에게 붙잡혔다. 그가 저항할 틈도 없이 남자는 책장을 향해 페르디낭의 몸을 집어던졌다. 날아가 부딪은 그의 몸 위로 책장이 육중한 책들을 게워냈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책장은 이윽고 페르디낭의 몸 위로 넘어지며 그를 삼켰다.
우리에서 뛰쳐나온, 괴물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방도가 없는 그 생물은 스타샤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이 달려 나가면서 휘두른 쇠사슬에 그를 저지하려던 이븐은 무릎을 얻어맞고 휘청거렸다. 스타샤는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갈비뼈를 으스러뜨리려는 버나드의 목에 사냥칼을 박아 넣는 데에 성공했으나 그는 떨어지지 않았다.
여섯 개의 팔로 도약해 뛰어든 괴물은 스타샤와 버나드를, 그리고 그 자신까지도 함께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창문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쟁쟁히 귀를 울리고, 그 뒤를 이어 거대한 물체가 수면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붉은여우가 살아있다! 가서 잡아와!”
게라르가 에케메니아 여자와 갈색머리 여자의 등을 떠밀어 서재 밖으로 몰아냈다. 이븐은 그를 향해 쇄도하는 가짜 게라르의 기다란 팔을 가까스로 머리를 숙여 피했지만 그 다음에는 그리 운이 좋지 못했다. 덩치 큰 남자가 억센 팔로 이븐의 목을 틀어쥐었던 것이다. 이븐 역시 양손을 들어 남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남자의 복부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수 개의 날카로운 갈비뼈가 이븐의 몸을 씹어 삼킬 듯이 찔러 들어왔다. 다른 장기가 터져나가는 것도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폐에 구멍이 나는 것은 최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남자는 이븐의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을 더해왔다. 이븐은 양손을 남자의 얼굴로 옮겨 엄지를 양 눈두덩에 대었다.
“아아악-!”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가짜 게라르의 양 팔이 이븐을 남자의 몸으로부터 떼어내고자 그를 움켜쥐고 당겼다. 이븐은 엄지를 눈구멍에 넣어 두 눈알을 터뜨리고 그대로 힘을 주어 머리를 양쪽에서 가운데로 눌렀다. 이븐의 몸을 파고든 남자의 갈비뼈가 심장을 터뜨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뻗어 나왔다.
쩍-
그건 박수 소리라고 해도 좋았다. 양 손바닥 사이에 있었던 것이 사람의 머리였단 사실만 제하자면, 조금 힘겹고 느리게 진행되었달 뿐 그건 분명한 박수였다. 남자의 비어있던 눈구멍에서 뇌가 압착되어 흘러나왔다. 이븐은 세모꼴로 변한 남자의 머리를 쥐고 밀어 자신의 몸에 박혀있던 갈비뼈를 빼냈다. 뜨거운 핏덩이가 식도를 태우며 역류했다.
자신의 몸을 움켜쥔 기다란 팔을 뒤늦게 인지한 이븐은 무릎을 굽혔다 빠르게 펴며 뒤로 도약했다. 이 폭발적인 제자리 도약에 버티지 못한 팔이 이븐의 몸을 놓았다. 이븐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가 책상을 딛고 또 다시 뛰었다. 이븐은 양손으로는 가짜 게라르의 한 팔을 쥐고, 발로는 그의 겨드랑이 아래 갈빗대를 밟아 눌렀다.
빠지직-
근육이 끊어지고 살이 찢어지는 역겨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이븐은 땅에 착지하며 뜯어낸 팔을 집어던지고 이번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짜 게라르의 다리를 향해 달려갔다.
“박사님! 아파요, 너무 아파요!”
가짜 게라르가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진짜 게라르도 이븐의 예상치 못한 분전에 당황한 듯 서재의 문을 향해 뒷걸음치다 이내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가 달아나며 외친 말이 복도에서 메아리쳤다.
“놈을 붙잡고 있어!”
이븐은 가짜 게라르의 기다란 다리를 잡아 어깨에 메고 달려 나갔다. 가짜 게라르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금발의 여자가 다시 한 번 이븐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이븐은 비틀어 꺾은 가짜 게라르의 발을 우리의 창살 틈에 그악스럽게 욱여넣고 빼지 못하도록 한 번 더 비틀었다.
“끄아아악-!”
애처로운 비명이 귀를 때렸다. 금발의 여자는 부풀어 오른 팔을 휘둘러 이븐을 공격했다. 이븐은 그 육중한 팔의 공격을 재빨리 허리를 숙여 피하고, 달려들어 여자의 어깨를 물었다. 인간의 몸으로 들짐승의 공격을 감행한 데에는 대가가 따랐다. 입의 양쪽이 찢어지며 흘러나온 피가 여자의 팔을 뒤덮은 종양을 터뜨리며 그 속의 체액과 섞여들었다.
입 안 가득히 시큼하고 비린 액체가 번졌다. 고통에 가득 찬 여자의 비명이 귀의 바로 옆에서 터졌기에, 이븐은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이븐은 물었던 팔을 놓고 입 안의 액체를 뱉어냈다. 싯누렇게 덩이진 액체가 가래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이븐은 종양이 터진 자리에 손을 집어넣어 상처를 벌렸다. 여자가 몸부림치며 여전히 부풀어 올라있는 다른 팔로 이븐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러나 곧 그 움직임도 멎었다. 결을 따라 발라낸 짐승의 살코기처럼 여자의 몸이 어깨로부터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장기와 예의 누런 액체를 쏟아냈다.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뜬 여자의 얼굴 위로 이븐이 피 섞인 침을 뱉었다. 가짜 게라르가 우리의 창살에 낀 다리를 한 손으로 빼내려 하고 있었다.
“안 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그는 주저앉은 채 팔로 우리에 낀 다리를 빼려다, 이븐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휘두르다가, 다시 이상한 각도로 꺾인 다리를 당기는 등 부산스럽게 굴었다. 끊어낸 반대쪽 팔에서는 피가 다소 희극적으로 퐁퐁 솟아나왔다. 휘두른 팔을 여유롭게 피하려다 복부의 통증으로 휘청거린 이븐은, 그러나 가짜 게라르의 다른 쪽 다리를 쥐는 데에 성공했다.
“뭘 하려는 거야? 뭘 하려는 거냐고!”
이븐은 무릎의 뒤쪽에 자신의 어깨를 걸고 성실한 부두의 노역자처럼 단단히 지탱한 두 발로 땅을 밀며 천천히 나아갔다. 쇠로 만들어진 우리가 충분히 무겁기를 바라며. 찢어지는 소리는 그보다 더 날카로운 비명에 가렸고, 비명이 그칠 때쯤에는 쏟아져 나온 점액질의 무더기가 철퍽거리며 땅을 때리는 소리가 이븐의 뒤에서 들려왔다. 이븐은 다리를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심장만이 생명을 기억한다는 듯 내장 무더기 위에서 경련했다.
*
늪에서 기어 나온 스타샤는 입 안에 든 오물을 뱉어내며 헛구역질했다. 자신이 아직도 버나드의 머리통을 쥐고 있단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그것을 공중에 던져 발로 차버리려다, 온몸이 오수로 젖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단 것을 뒤이어 깨닫고 멀리 던지는 데에 그쳤다. 그런 그녀의 몸이 돌연 앞으로 엎어지며 다시 늪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스타샤는 앞으로 넘어진 상태에서 얼른 몸을 뒤집어 발목을 잡은 상대의 양팔을 교차시켰다. 팔의 교차점에 사냥칼을 내리꽂자 발목을 잡은 양손의 힘이 풀렸다. 스타샤는 그대로 발을 빼내며 아직 늪 속에 잠겨있는 괴물의 머리에 발길질을 연달아 먹였다. 마지막 발길질은 공격인 동시에 그녀 자신의 몸을 뒤로 물리는 회피 동작이기도 했다.
두어 걸음 더 물러나 이제 늪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스타샤는, 괴물이 여섯 개의 팔을 번갈아 움직여 늪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마물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 괴물을 대적한 지금, 그와 가장 유사한 마물과 그에 대한 대응책을 떠올리려 애썼다. 머리를 겨냥해 공격하는 것이 유효할 테지만, 그건 다른 머리들이 물고 있는 팔의 즉각적인 반격을 받을 터였다. 스타샤는 이븐의 사냥칼을 다시 허리 뒤에 걸었다.
괴물은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스타샤를 창문으로 밀어버렸던 도약을 다시금 감행하며 그녀에게로 뛰어들었다. 스타샤는 충분히 가까워질 때까지 대담히 기다리고 섰다가 외투를 벗어드는 것과 동시에 몸을 반 바퀴 돌리고, 달려든 괴물의 몸 위에 올라탔다. 외투로는 얼른 괴물의 머리를 덮어 숨을 쉬지 못하도록 조이고, 그녀를 등 위에서 떨어뜨리려는 팔은 다시 꺼내든 사냥칼로 베었다.
스타샤가 왼손으로 단단히 틀어쥔 외투 속에서 괴물의 머리가 미친 듯이 버르적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제법 좋은 가죽이었던지, 이를 딱딱 부딪치며 필사적으로 호흡을 막는 외투를 끊어내려는 괴물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괴물은 팔로 스타샤를 제지하는 데 실패하자 숫제 날뛰기 시작하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바닥에 등을 대고 굴렀다.
스타샤는 스타샤대로 사냥칼로 끊임없이 괴물의 가슴과 옆구리와 배를 찍고, 찢고, 갈랐다. 온몸을 뒤덮었던 늪의 오수는 잔디에 닦여 나가고, 대신에 피가 새로이 칠해졌다. 괴물은 동반자살이라도 감행하겠다는 듯 늪을 찾아 달려갔다. 팔의 접합부에 달린 머리들이 방향의 안내를 도왔다. 그러나 너무 날뛴 나머지 호흡이 가빠졌던 것이 문제였다.
괴물은 늪에 머리를 반쯤 담근 채로 천천히 무너졌다. 뒤늦게 다른 머리들과, 그 머리들이 콧구멍으로 들이켜고 있을 산소에 생각이 미친 스타샤가 접합부를 차례로 찔러 하나씩 눈을 감겼다. 마지막으로 찌른 머리가 물고 있던 팔이 힘없이 늘어지며 스타샤를 땅에 내려놓았다.
스타샤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고, 돌연 이븐이 보고 싶어진 것은 그가 자신과는 달리 건조한 담배를 안전히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얼른 이유를 덧붙였다.
- 작가의말
사실 저는 키스 장면 한 번 쓰는 것보다, 전투 장면 열 번 쓰는 쪽이 훨씬 쉽고 또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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