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막 2장 - 늑대굴 비가(2)
9막 2장(2)
이븐은 자신에게로 덮쳐오는 늑대인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자빠졌다. 그는 왼손으로 늑대인간의 목을 잡고 밀쳐내려 애썼다. 자신의 왼팔에서 흐른 피와 늑대인간의 벌린 아가리에서 떨어지는 침이 섞여 이븐의 얼굴을 막처럼 뒤덮었다. 이븐은 오른팔을 들어 늑대인간의 턱 아래에 총구를 댔다.
퍽-
짐승과 인간을 상대하도록 설계된 총이었으나 은탄환은 제 위력을 모두 발휘했다. 터져나간 늑대인간의 머리에서 뇌수가 쏟아졌다. 이븐은 시체를 옆으로 밀어치우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향해 또 다른 늑대인간이 덮쳐왔다. 이븐은 다시 한 번 바닥에서 굴렀다. 가슴팍의 찢어진 옷과 살갗 사이로 피가 번졌다.
밤이 달려든 것은 그때였다. 밤은 이븐의 위에 올라탄 늑대인간을 향해 앞다리를 휘둘러 마물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늑대인간의 강인한 골격도 말이 가한 필사의 공격에는 버텨내지 못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러나 다시 자세를 바로잡은 늑대인간은 밤을 향해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었다. 밤이 길게 울었다.
이븐은 가슴을 움켜잡고 오른손의 총으로는 말의 목에 매달린 늑대인간의 머리를 겨냥했다. 약실에 남은 마지막 한 발로 하나에겐 지저분한 고통을, 다른 하나에겐 깨끗한 죽음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운명은 장난처럼 순서를 뒤섞었다. 늑대인간이 깨끗하게 쓰러지고, 지저분한 고통 속에 내맡겨진 밤은 허공에 네 발을 휘저었다.
이븐은 떨리는 손으로 장총을 장전했다.
“이쪽을 보지 마.”
밤의 새까만 눈이 이븐을 쳐다보았다. 왼쪽에서 타는 말과 오른쪽에서 타는 말의 구분이 있는 것은, 말의 뇌가 좌우를 각기 다르게 인식하는 때문이라고들 했다. 오른쪽에서 타는 말인 밤의 왼눈에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라며 이븐은 방아쇠를 당겼다.
“살려주시오! 여기요, 여기!”
이븐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타고 있는 집의 이층에서 남자가 창밖으로 팔을 내뻗었다. 그의 다른 한 팔에는 연기 때문에 혼절한 여자가 안겨 있었다. 이븐은 떨어뜨린 사냥칼을 주워들고 말했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구하십시오.”
*
“처음부터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 그 비슷한 걸 흉내 내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때의 일은 개인적이었던 거야.”
“그럼 불타는 집 앞에 있던 늑대인간들을 처치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이븐은 옅은 흉터가 남아있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쓸었다. 열병을 앓았던 것처럼 잔베르에서의 광란이 끝나고 병상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상처투성이였던 그의 몸은 말끔히 치료되어 있었다. 팔과 다리를 묶은 쇠사슬을 보았을 때 그는 그 경이로운 회복이 의술 덕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샤의 말에 이븐이 답했다.
“성문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거든. 돌아갈 만큼의 여유는 없었고.”
“자기 목숨은 자기가 구하라고? 연인의 목숨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 하기에는 이상한 말 같지 않아?”
이븐이 피식 웃었다.
“그때는 레베카와 나를 하나의 목숨으로 쳐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그럼 지금은? 스타샤는 입을 열지 않고 말했다.
*
성문을 통과한 이븐의 머리 위로 성가퀴에서 늑대인간이 뛰어내렸다. 이븐은 재빨리 몸을 앞으로 굴려 공격을 피했다. 그가 구른 흙바닥 위로 핏자국이 점점이 찍혔다. 바닥에 착지한 늑대인간이 무릎을 펴며 폭발적인 속도로 도약했다. 그 뒤로 이븐이 들어왔던 성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이븐은 무릎 꿇은 채로 장총을 발사했다. 허공에서 어깨에 탄환을 맞은 늑대인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몸을 일으킨 늑대인간이 이븐의 손으로부터 장총을 쳐냈다. 그 충격으로 쓰러질 뻔한 이븐은 엉거주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사냥칼을 빼냈다. 늑대인간의 다음 공격이 이어지기 전에 이븐은 늑대인간의 겨드랑이 아래에 사냥칼을 꽂아 넣었다.
갈빗대 사이에 박힌 사냥칼이 늑대인간의 폐를 찢었다. 동시에 이븐의 오른 손바닥도 찢겨 나갔다. 안정되지 못한 자세에서 급히 감행한 공격은 무기의 파손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칼날의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이븐은 얼른 권총을 꺼내 늑대인간의 머리를 겨눴다. 장기의 손상으로 변이가 해제된 늑대인간 역시 이븐이 아는 얼굴이었다.
탕-
뭉개진 머리는 이제 누구도 알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이븐은 비척거리며 일어나 손바닥에 박힌 파편을 빼내고 셔츠를 찢어 피 흘리는 손을 둘둘 감쌌다. 지체할 틈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희망이 있었다. 어지러운 상상 속에서 그는 밤에 레베카를 태워 잔베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
“레베카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두 번 더 싸웠고, 세 마리를 더 죽였지.”
“사냥단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사냥꾼이었군.”
스타샤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았다. 그녀는 양손을 셔츠의 앞섶에 가져다 대었다. 이븐은 좀 전부터 눈을 감은 채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히 좋은 사냥꾼은 아니었어. 레베카를, 레베카만 구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거든. 사냥단은 새로운 사냥꾼에게 가장 먼저 자신을 지킬 수 없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고 가르치지.”
“누구도 그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지만.”
살결을 따라 옷이 미끄러지고, 이어 바닥에 풀썩이며 떨어지는 소리에 이븐이 눈을 떴다. 이븐은 상흔이 가득한 스타샤의 흰 등을 보았다. 햇빛 아래 내어놓은 하얗고 얇은 이불 아래로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 뛰어 노니는 것처럼, 근육이 불쑥불쑥 솟아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생동했다.
스타샤는 허리띠를 끌러냈다. 버클의 무게로 바지는 하체의 굴곡을 따라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점차 조급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발치에 놓인 옷을 발가락으로 집어든 스타샤는 조심성 없는 발차기로 옷가지들을 침대 위에 던졌다.
“욕조가 넓다며.”
이븐은 뒤로 몸을 당겼다. 온도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끝을 모으고 곧게 세운 발이 천천히 수면 아래로 빠져 들어갔다. 적절한 온도라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 이상으로 뜸 들이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왔다. 마주 앉은 스타샤는 머리끈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는 머리를 틀어 올렸다. 가슴께에서 목욕물이 잔물결 쳤다.
“반응 한번 빠르네.”
이븐의 다리 위로 자신의 다리를 포개어 오며 스타샤가 말했다.
*
피를 흠뻑 뒤집어쓴 이븐이 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나 얼굴은 내장과 오물로 더 더럽혀졌을 뿐이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강제로 연 흔적은 없었다. 이븐은 권총을 쥐고 조심스레 문을 당겼다.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선 이븐은 핏자국을 보고 놀랐다가, 곧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진 피라는 것을 깨닫고 안도했다.
그러나 계단을 따라 흘러내린 피를 발견한 이븐은 정신없이 달려갔다. 층계 위의 난간 사이로 누군가의 팔이 튀어나와 있었다. 계단을 향해 달려가던 이븐은 또 다른 피 웅덩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일어날 경황도 없이 이븐은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모퉁이 뒤에 가려진 피의 진원지를 찾았다.
이븐은 배와 옆구리가 뜯겨 창자를 쏟아낸 시신을 보고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긴장 때문에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그는 잠깐 동안 누워있었다. 하인은 감염될 틈도 없이 죽은 듯했다. 이븐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눈꺼풀 아래로 무엇인가 낀 듯 연거푸 감았다 뜬 눈이 뻑뻑했다. 그는 흘러내린 피에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하며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또 다른 하인의 시체를 확인한 이븐의 머릿속에서 점차 그가 도착하기 전의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하인들은 이븐의 얼굴을 모른다. 문을 두드리는 방문객을 이븐으로 착각한 하인은 그를 안으로 안내했고, 늑대인간은 하인을 복도에서 죽였다.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또 다른 하인은 이 사실을 알리려다 난간 옆에서 살해당했다.
이제 더 이상 감출 게 없는 늑대인간은 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채로 남은 이들을 죽여 나간다.
이븐은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열려 있는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권총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고, 상처가 터져 피가 흘러내렸다. 방문 옆의 벽에 잠시 기대어 기척을 살핀 이븐은 방 안으로 들이닥치며 재빨리 내뻗은 팔로 사방을 차례로 겨눴다. 제이콥이 벽에 기댄 채로 검붉은 웅덩이 위에 앉아있었다.
이븐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는 이븐의 것이 아니었다. 제이콥의 모습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했다. 부러져 뼈가 튀어나온 두 다리는 상처가 그대로 아물어 붙어 마치 살가죽을 뚫고 가시가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복부의 사정도 비슷했는데, 밖으로 쏟아져 나온 창자의 주변을 피부가 뒤덮고 있었다.
부상을 당했으나 감염된 탓에 재생력이 제멋대로 상처를 복구시킨 것이었다. 기이한 빛을 띤 눈동자에는 이성이 담겨있지 않았다.
“알브라이트 씨······?”
이븐은 자세를 낮춰 제이콥에게 접근했다. 그는 왼손을 뻗어 제이콥의 오른팔 근처에 떨어진 사냥총을 집었다.
“카악-!”
황급히 물러난 이븐은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앞으로 쓰러진 제이콥의 몸이 땅에서 꿈틀거렸다. 이븐은 정수리에 대고 총을 겨누었다. 레베카를 만나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당신 아버지를 죽였노라고? 내 장인 어른이 될 분의 머리에 총알을 꽂아 넣었노라고? 이븐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움직임이 멎은 것을 확인한 이븐은 시체의 곁에 놓인 사냥총을 집어 들어 약실을 확인했다. 흔하지 않은 회전식 연발 사냥총이었고, 제이콥이 아직 자신의 딸과 이븐의 관계에 대해 알지 못했던 당시 이븐의 조언을 듣고 구매했던 것이었다. 약실은 비어있었다. 이븐은 서랍장 옆에 떨어진 화약통을 집어 들어 뚜껑을 닫고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였다. 이븐은 사냥총이 비어있단 것도 잊은 채 얼른 열려있는 문을 겨눴다. 이븐은 총을 쏠 수 없었다. 약실이 비어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를 향해 뛰어오는 늑대인간의 머리 뒤로 붉은 머리칼이 흩날렸기 때문이었다.
챙그랑-
얇고 가벼운 것이 등에 닿아 부서지는 느낌도 잠시, 허리를 두 동강 내는 듯한 고통이 옆구리에 가해지고, 이어 무수한 바늘이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모든 고통 사이로 분명한 것은 낙하의 느낌이었고,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마물이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뻗은 나무의 가지에 몸을 한 번 부딪고 덤불 속에 떨어진 이븐은 맨손으로 마물을 떨쳐내려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는 동안 붉은 털로 뒤덮인 늑대인간은 이븐의 양 어깨를 잡고 벌린 아가리로는 목을 씹으려 했다.
으드득-
이븐의 오른쪽 어깨에서 파열음이 선명히 들려왔다. 늑대인간의 목을 밀어내던 팔은 그대로 힘이 빠지며,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가 아닌 것처럼 이븐의 몸 위로 툭 떨어졌다. 홀로 버티는 왼팔이 점점 몸에 가까이 붙었다. 늑대인간의 송곳니가 이븐의 목깃을 긁었다.
이븐은 왼손으로 늑대인간의 어깨를 쥐고 숫제 끌어당겼다.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늑대인간은 이븐의 목을 채 물지 못하고 땅에 주둥이를 박았다. 이븐은 자신의 목을 틀어, 입을 벌리고 늑대인간의 목을 물어뜯었다. 입 안에 피가 번지고 잇새로 질긴 관이 씹히는 것이 느껴졌다.
식도를 물어뜯은 이븐은 재빨리 힘이 빠진 늑대인간을 옆으로 밀어 치우고 덤불에서 빠져나왔다. 정신없이 바닥을 짚으며 기어가는 와중에 손에 무엇인가 잡혔다. 이 층에서 떨어지며 놓치고 말았던 권총이었다. 마찬가지로 덤불 속을 빠져나온 늑대인간을, 이븐이 권총으로 겨눴다.
탕- 탕-
이븐은 자신에게로 덮쳐오는 늑대인간의 양쪽 가슴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차마 심장을 맞힐 용기는 없었다. 폐에 구멍이 뚫린 채로 쓰러진 늑대인간은 바닥에서 버르적거렸다. 늑대인간의 살갗 아래로 붉은 털이 기어들어가 사라졌다. 이븐은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으로는 여전히 늑대인간을 겨눈 채로 천천히 다가갔다. 오른팔을 쓸 수 없어 발로 머리를 밀었다.
이븐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곧 방아쇠를 당겨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알브라이트 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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