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막 3장 - 야수의 심장(1)
9막 배태
3장 야수의 심장
불쾌한 우연, 공교롭게 맞아떨어지는 불행들, 그리고 기대한 것보다 늘 부족한 행운을, 염려한 것보다 항상 넘치는 불운을 쥐어주는 인색하고 괴팍한 운명. 그러한 것들과 마주쳤을 때 이븐이 습관적으로 뇌까리는 말이 있었다.
“마치 질 나쁜 장난처럼, 수중에 있던 총은 모두 비어 있었지. 그러니까 처음 의도대로 내 머리를 쏘려면 약실에 화약을 재고 탄환을 넣어야 했던 거야.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 어째선지 죽으려던 생각을 단념하게 되었어.”
말을 멈춘 이븐은 떨리는 콧김을 뿜었다. 웃는 것처럼 들렸으나, 스타샤는 자신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체온이 담긴 물방울을 느끼며 그것이 웃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수중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븐이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스타샤는 고개를 돌려 이븐을 본다면 공기방울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익사하는 것처럼.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던 거야. 총성이 들렸으니 늑대인간들이 몰려올 테고, 오롯이 혼자서 죽으려면 우선 자리를 피해야 했겠지.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 총을 장전한 다음 끊어졌던 연극을 재개하는 것처럼 다시 내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대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뭐라고 해야 할까, 지저분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살았던 거고?”
“그래서 살았지.”
“지저분하게 죽기 싫어서? 그냥 깔끔하게, 저 빌어먹을 몇 대 비극인지 뭔지 하는 것들의 주인공처럼 긴장이 고조됐을 때 한 발의 총알로 한 번에 죽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근데 어쩌나. 누구도 그런 식으로는 죽지 않아.”
스타샤는 신랄하고 못돼먹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엇 때문에? 그녀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의문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했다.
“목을 매달아 죽은 이들은 자라처럼 목이 늘어지지. 강에 투신한 이들은 돼지처럼 퉁퉁 불고, 물고기들만 신나서 포식을 하는 거야. 머리를 쏘는 건 그 중에서도 최악이야. 잘못 쏘기라도 하면 괴로워 죽을 것 같은데 죽지는 않고 구멍 난 대가리로 총 쏘는 법을 떠올려야 하거든. 근데 머리가 멀쩡할 때도 제대로 못 쏘던 놈이 머리에 총 맞고 개뿔이나 제대로 쏘겠어? 이러나저러나 죽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지에 똥오줌을 지리지. 지저분하게 죽기 싫었다고? 넌 그냥 죽기 싫었던 거야.”
“아니.”
이븐은 스타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입김이 번졌고 스타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을 떨었다. 이븐이 머리를 들고 말했다.
“맞아. 네 말대로 그냥 살고 싶었던 거야. 죽는 게 무서워서. 차라리 잔베르에 있는 늑대인간 놈들을 모조리 다 죽이는 게, 나를 죽이는 것보다 쉬울 듯싶어서.”
“그래서 살았군.”
“그래, 그래서 살았지. 그래서 죽였고.”
스타샤는 그녀의 손을 벗어나 점차 아래로 향하는 이븐의 손을 내버려두었다. 침을 삼키는 그녀의 목이 꿈틀거렸다. 이븐이 말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모조리 죽이지는 못했지.”
*
굉음과 함께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이 무너졌다. 벽돌 파편이 등 뒤에서 튀며 이미 너덜너덜한 외투를 다시 한 번 찢어 발겼다. 이븐은 바닥에서 구르다 일어나며 먹먹한 귀의 감각을 되돌리기 위해 침을 삼켰다.
그는 얼른 건너편 건물로 뛰어 들어가 깨진 유리창의 틈으로 사냥총을 내밀었다. 폭발의 잔해 속에서 기어 나올 늑대인간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두 놈이 동시에 기어 나왔다. 이븐은 깨진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늑대인간을 겨냥해 한 발을 쐈고, 경악한 표정으로 그와 눈이 마주친 다른 한 놈에게도 은탄환을 먹였다. 두 놈이 나란히 쓰러졌다.
“캥-!”
소리가 들린 것은 그가 일부러 열어둔 뒷문 쪽이었다. 이븐은 얼른 뒤를 돌아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늑대인간을 겨눴다. 덫에 걸린 발목을 어떻게든 빼내려 안간힘을 쓰며, 늑대인간은 장난을 치다 들킨 아이처럼 이븐과 그의 총구를 향해 비굴하게 씩 웃었다.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지.”
이븐의 말에 늑대인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놈은 덫에 발이 걸린 채로 이븐을 향해 뛰어들었다.
철컹-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이 허공에서 바르르 떨었다. 이븐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늑대인간의 머리에 사냥총 대신 권총을 가져다 대었다. 사냥총은 장전하기가 까다로웠고, 권총은 위력이 부족했다. 덫에 연결되어 벽에 고정된 쇠사슬의 끝에서 못이 빠져나올 듯 위태롭게 목을 뺐다.
퍽-
늑대인간의 머리가 터지고 사지가 늘어졌다. 이븐은 시체의 발목을 잘라 덫을 빼내고, 장도리로 벽에 박힌 못도 뽑아냈다. 이제는 몸에 익은 수순이었다.
‘늑대들은 왜 바보같이 매번 덫에 걸리는 거죠?’
‘그렇게 걸린 놈들은 예외 없이 죽으니까. 한 놈만 놓아줘 봐라. 그러면 돌아가서 다른 늑대들한테 알릴게다.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밥벌이는 글러먹은 거지.’
죽은 아버지가 그의 스승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단호하고 엄격했고, 한 번 내린 결정은 그것이 잘못되었든 어떻든 계속해서 밀고 나갈 것을 주문했다.
또 다른 스승은 과거의 이븐 자신이었다. 일 년 남짓했던 참전 경험은 시체들 틈에 끼어 잠드는 법 따위의, 생존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르쳐 주었다.
계속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이는 눈 뜬 시체나 다름없고, 곧 눈을 감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구분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이동만이 생의 표증이었다. 이븐은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창밖으로 갈고리를 감아 던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갈고리였다.
밧줄을 타고 지붕 위에 오른 이븐은 굴뚝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그는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 목탄으로 방금 죽인 늑대인간의 수를 썼다. 노르트 거리··· 세 마리는 확실했고 건물 아래 깔린 다섯 마리는 불분명했다. 이븐은 소리를 듣고 지도를 챙겨 넣었다.
탕-
무너진 건물 옆에서 늑대인간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다 이내 쓰러졌다. 넘어지는 머리를 따라 허공에 붉은 호선이 그어졌다. 이븐은 사냥총을 다시 어깨에 메고 지도의 숫자를 고쳤다. 확실한 건 네 마리.
*
스타샤가 탄식을 내뱉었다. 부드럽고 약한 생살 위로 굳은살 박인 거친 손이 거미처럼 기어 다녔다. 다리 하나마다 하나의 주둥이가 달린 듯 그것은 피부 위를 재게 놀며 게걸스럽게 살을 먹어치웠다. 이븐이 손을 거두자 스타샤는 그의 팔목을 잡으려다 곧 그만두고 물속에서 주먹을 쥐었다.
“그래서?”
스타샤가 숨을 고르고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죽였느냐고.”
“여든아홉.”
“맙소사.”
스타샤는 미지근한 물속에서 서늘한 전율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늑대인간의 피가 강처럼 흘렀단 소문은 과장이 아닌 셈이었던 것이다.
“닷새째부터는 교구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이용했지. 화약으로 채운 건물을 폭파시키는 건 다반사였고, 따뜻한 시신을 미끼로 삼는 일도 서슴지 않았어. 아버지와 내가 단골이었던 사냥용품점에는··· 외상을 많이 달아두었다고 해야겠네. 이른바 잔베르 탈환이 끝나고 내가 가장 먼저 마주했던 것 가운데 하나는 노한 교구장이었어. 시설물 파괴, 교구 재산의 사적 운용, 가택 무단 침입, 상습 절도··· 또 뭐였더라?”
“교구장이 너를 그렇게 대했다고? 잔베르를 구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였는데?”
스타샤는 자신의 등에 맞닿은 이븐의 몸이 앞뒤로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단 사실을 알았다. 정작 이븐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교구의 질서를 유지해야 했으니까. 내 행동을 교구장이 용인해버리면 마물을 핑계로 그 같은 일을 또 벌이는 걸 막을 수 없게 되니까. 중요한 건 그렇게 무수한 죄목을 줄줄이 읊고 난 뒤에 날 사면해줬다는 거지. 조건부 사면이었지만.”
“사냥꾼이 되면 용서해주겠다?”
이븐이 고개를 끄덕였고, 스타샤가 코웃음을 쳤다.
“치사한 새끼들, 누굴 뭐로 보고. 어차피 넌 사냥꾼이 될 거였잖아. 그런데 무슨 시답잖은 형량 협상이야. 어떨 때는 우리가 사냥꾼의 길을 택한다기보다 사냥꾼의 길이 우리를 택하는 것처럼 느껴······”
“아닌데?”
“뭐?”
스타샤가 고개를 홱 돌려 이븐을 쏘아보았다. 이븐은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망했구나 싶었어. 살아나간다면 평생 마물 같은 것하고는 관계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잡힌 데다 목줄까지 쥐어 줘버렸으니······. 죄목만 놓고 보면 사형이거나 무기 강제 노역이었거든. 차라리 죽었어야 했나 싶었고.”
스타샤가 물 아래로 손을 넣었다. 그녀가 주먹을 쥐자 이븐의 몸이 움찔거렸다.
“죽는단 소리 좀 함부로 하지 마. 때 되면 어련히 안 죽여줄까 봐 그래?”
약점이 잡힌 상태에서도 이븐은 능청스럽게 물었다.
“누가? 네가?”
“그래, 때 되면 내가 죽여줄 테니까 그 전에 죽는다, 죽는다 그러지 마. 죽으려거든 허락 받고 죽고, 누가 너 죽이려거든 내 허락 받았느냐고 물어보고. 알았어?”
“예이- 분부대로 합죠.”
“까불지 말고.”
“알았으니까 이제 놔줘.”
스타샤는 곧장 풀어주는 대신 잠시 손에 쥔 약점의 처분에 대해 고민했다.
“이것도 재생되는 거 아냐?”
스타샤는 이븐의 긴장한 기색을 읽으며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녀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가 손을 놓자 이븐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여드레, 아흐레쯤 되던 날에는 나병환자처럼 몸을 떨어뜨리고 다녔어. 나도 모르는 사이 손가락이 두 개쯤 없어졌고 부목을 대지 않으면 걷지 못하는 수준이었지. 왼팔은 탈구되었는데 맞춰지지가 않아서 밤만 되면 열이 끓었어.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몰랐지. 쉬지 않고 화약을 만졌더니 독이 올라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 감각이 없었고.”
이븐의 말을 들으며 스타샤는 이만큼 지독하고 끈질기게 싸운 사냥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아니, 그는 사냥꾼조차 아니었다. 그녀가 존경하는 안드로스 단장도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또 성벽을 사이에 두고서야 간신히 마물들 무리를 격퇴할 수 있었다.
하루나 이틀이라면 그녀도 이븐만큼 마물에 맞서 싸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열흘은 그녀의 능력뿐 아니라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일이었다.
“잔베르 곳곳에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성당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고, 석조 건물에도 간혹 숨어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굶주림을 못 이기고 밖에 나왔다가 죽거나 감염됐어. 그러기 전에 나를 만나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곤 했지. 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늑대인간보다 더 지독한 무엇이었던 거야.”
그렇게 말한 이븐은 실없이 웃었다.
“그쯤 되니 자꾸 이런 생각이 맴돌더라고. 이 정도 했으면 됐다. 누구의 허락인지, 또 무엇을 허락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만큼 했으면 됐다는 생각이 계속, 계속 들었어. 그래서 열흘째에 그렇게 결심했지. 딱 한 마리, 아니 한 무리만 더 죽이고 여길 뜨자. 세상을 뜨든지 잔베르를 뜨든지 아무튼 그만두자.”
때로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온다. 자신의 목소리로 같은 말을 자꾸 머릿속에서 되뇌는 동안 단어는 위엄을 갖추고 문장은 명령으로, 그리고 종내에는 선언으로 변하는 순간들. 그럴 때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도 권위 있는 이의 엄숙한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간 지시처럼 여겨지고, 모든 질문은 뒤로 미뤄지거나 아예 모습을 감춘다.
마지막 한 무리만 잡아 죽이고 여길 떠나라. 이븐의 머릿속에서 누군가 명령했다. 이븐은 그 명령을 따르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곧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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